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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69화 (69/563)

제69화

제19편 수업 첫날 (2)

행정 학부는 가문을 이어받지 못하는 낮은 귀족의 자녀들과 평민들이 안정된 생활과 신분 상승을 위해 다니는 곳이었고.

기사 학부는 육체 강화 능력이나 전투용 마나 심법을 가진 자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가문의 후계자나 대귀족의 자녀들은 대부분 상속 능력 학부를 다니고 거기를 졸업했다.

솔직히 대귀족들은 상속 능력을 가문 내에서 배우고 훈련받는 것이 가장 유리했다.

왕립 아카데미의 훈련은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자들을 위한 것이고, 다른 면에서는 귀족의 자식들을 인질로 잡는 역할이 주였다.

결국, 제대로 된 귀족들은 상속 능력 학부를 다니며 서로의 친분과 카르텔을 강화하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공주도, 마누엘도 그리고 신입생 환영회에 나선 두 귀족 신입생도 모두 상속 능력 학부에 속했다.

"공작가라고 하지만, 나는 서자일 뿐이잖아. 각성한 것도 행정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정기사만 되어도 감지덕지하지."

뭐, 얼마 전이었으면 입으로 꺼낸 말이 사실이었겠지만, 지금에서야 기사 학부에서 배울 게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골치 아픈 높으신 분들의 눈을 피하는 게 중요했다.

공주를 부탁한다고 했지만, 수업 중에 공주에게 문제가 생길 리도 없고, 아니,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지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했다.

애매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대충 이해시킨 모양이었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나야 육체 능력 강화 쪽이라 기사가 당연하기도 했고……. 그런데 피아르는 어떤 능력이야?"

나는 피아르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자, 토해 내라. 네놈의 능력을.

* * *

반원형의 커다란 강의실.

신입생 모두가 강의실에서 첫 수업을 듣고 있었다.

"반갑다. 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보가드다."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교수는 다른 이야기 없이 한마디로 자기소개를 끝내고 바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 세상은 대전쟁 이전의 세상과 대전쟁 이후의 세상으로 나뉜다고 보면 된다. 대전쟁 이전의 고대 제국의 문화와 기술, 역사는 대전쟁으로 전부 흩어지고 사라져 지금은 유물로나 발견될 뿐이고, 지금의 문화와 정치, 국가는 모두 대전쟁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늙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수업 진행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열정적인 그의 수업은 학생들의 마음에 닿지 않았다.

소수의 학생들만 들을 뿐 대부분은 교양에 불과한 역사 수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1학년 통합 교양 수업이라 모두 참여하기는 하지만, 점수 비중도 크지 않고 대부분 집에서 가정교사에게 들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집에 있을 때 역사서는 모두 완독했고, 가정교사와 열심히 토론도 했었다.

"……대전쟁의 위대한 승리와, 승리를 만들어 낸 영웅들의 업적은 그 누구도 헐뜯지 못하겠지만, 역사학자인 나로서는 그 전쟁 중에 파괴된 기록과 유물들이 무척이나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전쟁 이전의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뒤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의 고대 제국을 생각하면……."

역시 왕립 아카데미인가. 역사서에 나오는 내용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네. 그런데 왕립 아카데미에서 저런 말을 해도 되나 몰라.

뭐, 저 정도는 상관없으니 교사로 놔두는 것일 테고.

나는 호기심을 거두어들였다. 그래 봤자, 색다른 유물이 등장하지 않는 교수의 개인적인 의견이자 이론일 뿐이었다.

나는 교수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신입생 전체가 모인 만큼 큰 강의실에는 빈자리가 얼마 보이지 않았다.

지정 좌석이 아니어서인지 신입생들은 이리저리 모여 있었다.

크게 보면 세 그룹. 딱 봐도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그룹이었다.

어제 예비교육 때문인지 학과별로 모인 게 여실히 느껴졌다.

강의실 맨 뒤쪽에는 건장한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대다수가 남자. 거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용맹한 기세가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딱 봐도 기사 학부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기사 학부가 모여 있는 앞쪽, 강의실 중앙에는 화려해 보이는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여유로운 행동과 허식이 가득 찬 자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눈길.

전부 한가락 하는 귀족 집안의 자녀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당연히 그 중앙에는 다른 학생들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아이샤 공주가 앉아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역시 공주는 공주였다.

불안해 보이지도 않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오히려 주변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기 위해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 눈이 마주쳤잖아.'

눈이 마주치자 공주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전과 다르게 조금은 인정한 듯한 눈길. 공주도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다른 이들은 공주의 눈길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마누엘은 바로 알아차린 것 같았다.

공주의 모습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별일 아니니 신경을 꺼 주었으면 좋겠는데.

공주와 마누엘 말고도 대단한 집안의 후계자로 보이는 학생들이 몇몇 보였다.

나야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마누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될 듯했다.

마지막으로 맨 앞쪽에는 다른 그룹과 달리 평범해 보이는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행정 학부 신입생들이었다.

모두 잘 모르는 학생들이었지만, 교단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남녀 두 학생은 아는 학생들이었다.

피아르와 그의 사촌 누이인 미리사. 두 사람은 그동안의 내 고생도 모르고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다.

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니 저렇게 열심히 듣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고 보면 그나 그의 사촌 누이는 작은 영지의 마을에서 왔다는데 저 정도 교육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각자 뭉쳐 있는 그룹들 사이에 나는 홀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어제 자리에 없었으니 아는 사람도 없었고, 나에게 따로 접근하는 사람도 없었다.

공주도 공적으로는 아는 척 안 하는 것 같았고, 마누엘도 당연히 모르는 척.

룸메이트인 피아르도 완전히 나를 무시하는 중이었다.

어젯밤에 열심히 구슬렸던 게 하루 만에 다 사라져 버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가 어디서 태어나고 자랐는지. 그리고 어떻게 왕립 아카데미로 오게 되었는지. 게다가 그의 능력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 *

그가 태어난 곳은 소아트 자작이라는 귀족의 영지였다.

"소아트 자작이 다스리는 영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소아트 영지가 어디냐고……요? 음. 아르고시아 영지 아세요? 아니면 메세시아는요? 아, 메세시아는 아신다고요. 메세시아 남작 영지 바로 아래에 있어요."

소아트 영지는 잘 모르는 곳이었지만, 메세시아 남작가는 잘 아는 곳이었다.

수도에 오기 전에 들렀던 곳.

쫓겨난 두 번째 공작부인의 능력에 빠져 있던 남작이 나를 죽이려던, 아니 죽였던 곳이었다.

우연일까.

어쨌거나 이 내용은 기억에 담아 두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마을의 촌장이어서 저와 미리사 누님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제대로 글을 배울 수 있었어요."

"능력을 어떻게 얻었느냐고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별다를 게 없이 지냈는데, 마을을 지나가던 어떤 분이 저와 미리사 누님을 보고 혹시 상속 능력이 있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셔서 알게 되었어요."

전생에 들었던 '지나가던 사람'인 건가.

뭔가 걸리는 게 있었지만, 이것도 우선 머리에 담아 두었다.

"저하고 미리사 누님의 능력은 비슷해요. 일종의 증폭 능력인데요. 입학 테스트 때 들어 보니 일종의 버퍼 능력이라고 하더라고요."

말을 하면서 피아르는 손을 들어 올렸다.

손으로 모여드는 마나.

미친!

나는 질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왜 그러시죠?"

그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나가 모여든 그의 손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조금씩 올려 줄 수 있대요. 시간도 늘려 줄 수 있고. 일종의 저장고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는데, 어쨌거나 대단한 능력은 아니라서 행정 학부로 지원했어요. 능력은 아카데미에서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하긴 자폭 능력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질겁한 표정을 짓는 바람에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게 되었다. 때마침 잠을 잘 시간이 되었기에 흐지부지 넘길 수 있었지만, 정말 깜짝 놀랐다.

* * *

여러 가지 의심이 들 만한 내용을 머릿속에서 조합하는 중에 교양 수업이 끝났다.

이어진 수업은 다른 교양 수업인 '상속 능력 기초' 시간이었다.

"여기 모인 학생들은 모두 대부분 각성을 마친 능력자들입니다."

중년의 여교수가 말을 하며 강의실을 쭉 훑었다.

'대부분'이라는 말을 하는 중에 슬쩍 말이 흔들리는 게 보였지만, 나는 물론이고 모든 학생들이 그녀의 실수를 모른 척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강의실에서 능력자가 아닌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바로 강의실 중앙에 앉아 있는 아이샤 공주였다.

아직 10살. 각성일이 되려면 한두 달은 지나야 했다.

원래 각성한 뒤에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게 맞는데, 아이샤 공주는 그 관례를 깬 것이었다.

물론, 왕족이자 공주인 아이샤 공주가 각성을 못 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왕족인 그녀가 관례를 깨고 미리 들어올 이유도 없었다.

나도 의문이 들어 왕비를 만났을 때 물어봤었다.

"카트린이 돌아왔고, 왕실이나 수도의 분위기도 복잡해지는 중이라 하루라도 빨리 아카데미를 끝내는 게 좋을 듯해서 보내는 거랍니다. 거기다 올해 들어가면 그대와 같이 수업을 받게 되니 더욱 좋고요."

왕이 시름시름 앓고 있고, 왕자들 사이에서 승계 다툼이 심화되고 있으니 이모인 카트린이 돌아온 김에 우선 아카데미로 보내 시선을 돌린다는 계획이려나.

나름 괜찮아 보이는 계획이었지만.

'내가 아니었으면 입학식 때 몽땅 죽는 거였잖아!'

그러면, 입학식 테러가 공주를 노린 테러였을까. 그래서 카트린도 수석 기사도 부산스럽게 움직인 거고.

흠, 위험한 걸 알았으니 입학을 취소하고 그냥 왕궁으로 돌아가면 안 되려나.

아니, 내가 테러를 막아 버려서 별 위험을 못 느낀 건가?

이어지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일이 단단히 꼬인 듯했다. 잘못하면 가면 갈수록 더 꼬일 수도 있을 듯했고.

결국, 누가 벌인 일인지 꼬리를 잡아야 할 이유가 더 늘어나 버렸다.

이어진 수업도 역사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능력의 종류와 위험, 거기다 상속 능력을 사용하는 귀족의 중요함과 왕실에 대한 충성 등.

상속 능력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일종의 정훈 교육이 되어 버렸다.

'설마 한 학기 내내 이런 수업은 아니겠지.'

전공 수업은 아니었지만 나름 기대를 하고 왔는데, 이런 식의 수업이 계속된다면 대체 뭘 배우게 될지 난감할 따름이었다.

'정말 사교가 다인 아카데미는 아니겠지?'

이러면 결국 전공인 기사 수업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한숨과 함께 상속 능력 기초 수업도 끝이 났고, 그와 함께 오전 수업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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