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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65화 (65/563)

제65화

제15편 테러 (2)

아직 행사가 시작되기 전.

"빨리 앉아요."

공주는 조금 전과 다르게 말했다. 다행히 내 표정을 잘 숨긴 듯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다른 자리에 앉겠습니다."

내 말에 공주와 마누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공주는 황당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주변의 시선 때문인가요?"

어라? 나는 그녀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의 시선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음. 과연.

핑계로 삼기에는 딱 적당한 이유였다.

"제 처지에 이런 관심은 좀 과한 듯합니다."

내 말에 꼬맹이 공주님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고, 마누엘도 나지막이 혀를 찼다.

충분히 실망할 법하지만, 나는 전혀 상관없었다.

솔직히 평범한 귀족가 '서자'라면 당연한 말이자 행동이었다.

왕비나 카트린이 왜 나를 공주와 엮으려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귀족가 서자와의 친분은 공주에게도 좋을 리 없었다.

공주의 실망을 뒤로한 채 나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깐 앉겠습니다."

내가 자리에 비집고 앉자, 곁눈으로 나를 살피던 공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이 불편해서 자리를 옮긴다는 사람이 홀 구석이 아니라 홀 앞쪽, 그것도 신입생 선서를 하는 학생들 옆에 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내가 찾은 기운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옆자리에 앉은 소년에게 인사를 했다.

* * *

아까 전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나는 폭발을 일으킨 기운의 시작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상한 기운이란 일종의 변형된 마나처럼 보였는데, 처음 예상과 달리 유물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이것도 상속 능력이겠지.'

결국 사람이 일으킨 테러. 거기다 폭발에 자신까지 휩쓸렸으니, 일종의 자살 폭탄 테러였다.

그 폭탄 테러범이 지금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갑자기 끼어 앉은 나를 보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끼어 앉은 자리 때문이겠지.'

내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남학생과 내 앞에 앉아 있는 여학생은 각각 귀족 신입생 대표였고, 나에게 밀려난 예비 자살 폭탄 테러범께서는 '평민 신입생 대표'였다.

'보복 테러일까?'

'외국의 스파이?'

'신분 개혁 테러인가?'

'프롤레타리아 혁명?'

귀족에게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가 능력을 깨우쳐 보복하는 상상에서, 귀족들에게 고통을 받는 평민들을 계몽하려는 테러까지.

평범하게 생긴 소년을 보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얼굴이 굳어 있던 소년은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며 표정을 풀었다.

뭐, 자리에 끼어 앉았다고 뭐라 하기에는 좀 그랬겠지.

다른 사람들도 뭐라 할 리 없었고.

"예의가 없군요."

아니, 뭐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앞에 앉은 붉은 머리 소녀가 나를 보며 나지막이 꾸짖었다.

이 소녀도 신입생 선서를 하는 학생이었다. 어디 백작가의 딸이라고 하던데, 선서할 때 제대로 듣지를 않아서 정확한 이름은 몰랐다.

내가 평민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 테고, 공주와 같이 들어온 것을 보지 못했나?

"귀족이라면 작은 일에도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귀한 분과 알고 계신다면 그분에게도 폐를 끼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아실 텐데요."

아니군. 공주와 같이 들어온 것을 봤군.

꽤 예뻐 보이는 그녀가 이어서 한 말은 목소리가 크지는 않지만, 무척이나 단호했다.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꿈꾸는 소녀였나.'

어느 가문인지 무척이나 제대로 교육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실무 쪽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듯했고.

그녀와 달리, 내 왼편에 앉은 다른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이드 데 차이프리입니다."

이 소년이 마지막 신입생 선서자였다.

이쪽은 제대로 현실을 알고 있는 귀족이고.

물론, 내가 서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바로 외면하겠지만.

다른 때였으면 두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봤겠지만, 지금은 내 오른편에 앉아 있는 평민 대표에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갑자기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아는 분인 줄 알고 그랬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괜찮습니다."

소년에게 고개를 숙이니, 그도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알렉스 데 그레시아입니다."

"아! 그레시아 가문……. 이런, 전 피아르입니다."

이어서 내가 이름을 대니 바짝 긴장하며 자신의 이름을 댔다. 그의 눈에는 내 뒤로 공작 가문의 깃발이 펄럭이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이름은 테러범의 피아르인가. 평민이니 성은 없을 테고.'

다행히 공작가의 이름이 괜찮게 먹힌 듯했다. 아직 행사가 시작되려면 조금 시간이 남았고, 이야기를 늘어놓아 정보를 얻으려 했다.

하지만, 반대쪽 옆자리에 앉은 소년이 내 계획을 망가뜨렸다.

"그레시아? 거기에 알렉스라는 이름을 가진 자녀가 있었나?"

소년은 나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첫째가 시몬, 둘째가 공주님 옆에 있는 마누엘. 그리고 여동생만 있을 텐데?"

오! 정보력이 상당하군.

거기다, 서자 무시도 대단하고.

사과로 표정을 풀었던 앞자리 소녀도 그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귀족 사칭은 아니겠죠? 최악의 경우 사형까지 당할 수 있어요!"

이런, 귀족가의 정보력을 너무 얕보았나.

거기다, 저 고지식한 소녀 덕분에 대충 넘어가기도 어려워 보였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나는 입을 열었다.

"알렉스 데 그레시아. 서자입니다."

"아……."

"……."

내 말에 소녀는 입을 크게 벌리고는 뜻 없는 감탄사를 터트렸고, 내 양옆의 소년들은 눈썹을 찡그렸다.

"미안. 내가 생각이 없었어. 사과할게."

소녀는 바로 표정을 수습하고, 내게 사과를 했다.

반말로.

역시 제대로 배운 모양이었다.

귀족의 예의는 차별을 전제로 하는 예의. 그들의 배려는 하층민들에 대한 베풂일 뿐이었다. 서자도 제대로 된 귀족이 아니었고.

그녀의 사과는 반말 덕분에 전혀 사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제대로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보력이 좋았던 소년은 사과는커녕 나를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망했네.'

반대쪽에 앉아 있던 폭탄 테러범도 나를 외면했다.

아니, 넌 평민이잖아.

신입생 선서를 하게 된 평민이라서 그런가. 생각보다 훨씬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한 모양이었다.

공작 가문이라는 휘황찬란한 배경이 서자라는 신분 하나로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그 뒤로 행사 내내 테러범을 포함한 세 사람 모두에게 말도 붙이지 못했다.

"……초대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왕국의 번영에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맹세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세 사람이 앞에 나가 선서를 하고,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 맞춰 선서를 했다.

신입생 모두가 맹세하니, 홀 안에 마나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신전에서 하는 계약이 아니니 강제성은 없었지만, 상속 능력을 지닌 백 명에 가까운 사람의 맹세는 나름의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아예 딴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역하거나 나라를 배반하고자 하면 마음속에 껄끄러움을 불러일으키는 효과.

이것도 아카데미에 상속 능력자들을 몰아넣은 이유일 것이다.

이 왕립 아카데미에는 각성한 귀족의 자녀와 평민만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모든 각성자가 이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라가 점차 커지게 되면서 수도와 다른 지방에도 여러 아카데미가 설립되게 되었다.

이 아카데미를 본떠 만든 다른 아카데미에는 각성자 말고도 돈 많은 평민이나 기사 지망생, 관료 지망생 등 비각성자들도 다닐 수 있게 했다.

대신 왕립 아카데미는 유력 귀족가의 후계자, 좋은 상속 능력을 받은 귀족가의 자녀와 평민, 그리고 좋은 상속 능력은 아니지만 힘 있는 가문들이 후원하는 각성자들이 입학을 하는 최고의 아카데미로 남게 되었다.

당연히 서자인 나는 들어올 수 없는 곳이지만, 왕실 인사의 후원이라는 거창한 후원자 덕분에 이렇게 입학하게 된 것이다.

신입생 선서가 끝난 뒤 슬쩍 공주 쪽을 바라보았다.

우연히 주변을 둘러보던 공주와 눈이 마주쳤다. 공주가 인상을 쓰며 눈을 돌렸다.

이런, 이번에 살아나게 된다면 후원자에게 꽤나 욕을 먹을 것 같았다.

지금의 상황도 그렇고, 앞으로 할 행동 때문에.

신입생 선서 뒤, 이런저런 식순이 이어지고 이제 입학식이 거의 끝날 때가 다가왔다.

'테러범이 맞나?'

말을 붙이진 못했지만, 입학식 동안 테러범 피아르를 계속 살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자살 폭탄 테러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그건 아카데미에 들어온 신입생들이 보이는 그런 수준의 긴장이었고, 주변을 살피거나 뭔가 딴짓을 하려고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가 테러범이라면 엄청난 프로일 터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배를 잡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크게 앓는 소리를 냈다.

"크윽 윽, 배, 배가!"

주변의 학생들이 모두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주변을 지나던 선생이 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옆에 앉은 피아르의 허벅지를 쥐고, 몸을 웅크리며 계속 신음 소리를 흘렸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지고, 식순이 중지되었다.

달려온 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왜 그러지?"

"배, 배가 너무 아파요. 긴장 때문에 장이 꼬인 것 같아요."

아픈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지만, 나는 아픈 척을 하며 열심히 상태를 설명했다.

괜히 큰 병으로 오해를 하면 곤란했다.

"잠깐 진료실에 가서 쉬면 될 것 같아요."

나는 피아르 쪽으로 기대며 계속 중얼거렸다.

선생뿐만 아니라, 주변의 학생들도 눈살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지. 네가 좀 데려가라."

선생은 우리 테러범을 지목해서 나를 부축하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주변에 평민은 그밖에 없었으니, 그에게 나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피아르는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부축했고, 주변 사람들은 홀을 나서는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공주도 황당해했고, 마누엘도 혀를 찼다.

음, 확실히 아카데미 생활은 망한 듯했다.

나는 식이 끝나기 전에 피아르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 홀 뒤쪽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에 신관은 없었다.

"진료실에는 내가 데려갈게. 너는 다시 자리로 들어가."

대신 뒤쪽에 있던 여선생이 나섰다.

하지만,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자폭범 피아르의 옷을 움켜잡았다.

"진료실까지 같이 가 줘. 제발 부탁해."

정나미가 떨어진 표정이었지만, 평민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부탁하는 공작가의 서자를 차마 외면하지는 못했다.

여선생도 떨떠름한 얼굴로 포기했고, 대신 공작가 저택의 집사가 나서서 나를 부축했다.

피아르와 집사는 나를 데리고 홀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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