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63화 (63/563)

제63화

제13편 입학식

정문 안으로 들어선 뒤.

"와!"

창밖으로 보이는 넓은 부지와 건물들을 보고 마누엘이 입을 딱 벌렸다.

'장난 아닌데.'

전생에 거대한 대학교 건물들을 보아 왔던 나에게도 이 왕립 아카데미는 꽤 놀랍게 여겨질 정도였다.

아름답게 꾸며진 미로 정원과 넓은 연무장 그리고 담벼락에 가려진 시설들과 5층 이상으로 보이는 건물들, 중앙에 보이는 수십 층짜리 탑까지.

5층 이상의 건물이 거의 없는 수도의 건물들과 비교하면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법 계열 능력자분들이 힘써 주셨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 몰랐군요."

"중앙 탑을 세울 때는 대마도사까지 초빙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까요."

마누엘과 집사의 말에 멀리 보이는 우뚝 솟은 탑을 바라보았다.

전생에 보았던 원형 고층 타워가 탑이라는 이름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쪽 세상과 어울리지 않게 높게 솟구친 건물이었다.

대마도사라……. 대전쟁 때의 용사 중 한 명을 말하는 걸까.

대전쟁 시대의 용사들을 떠올리는 사이, 마차는 각종 시설들을 지나쳐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외관이 마치 신전처럼 보이는 거대한 대리석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그런 종교적인 건물이 아니라 이번 신입생 입학식이 거행될 아카데미의 중앙 강당이었다.

대형 행사에 사용되는 곳인데, 지금 아카데미로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이 건물로 향하는 중이었다.

마차가 멈추고, 집사가 내린 뒤 내가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다.

"그레시아 공작가다."

"이번에 둘째 아들이 입학한다고 들었는데."

"그럼, 지금 내린 사람이 둘째 공자야?"

"아닐걸. 둘째 공자는 육체 각성이 아니라고 했어. 저건 육체 능력자나 기사 같잖아."

"그럼 누구지?"

특별히 귀로 마나를 모으지 않아도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역시 왕국의 이름 높은 공작가다웠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거기다 마누엘의 입학은 모두 알았지만 내가 입학한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수도는 적서 차별이 더 심하다더니 아카데미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현실에 씁쓸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괜히 처음부터 시선을 받을 필요는 없겠지.'

나는 마차 문 옆에 서 있는 집사 뒤쪽으로 슬쩍 자리를 옮겼다.

다음에 내릴 마누엘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집사는 내 모습에 만족한 얼굴이 되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벗어나 다시 마차로 향했다.

그리고 마누엘이 마차에서 내렸다.

"마누엘 공자다!"

"둘째 공자지?"

웅성거리는 사람들.

공작가의 후계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작의 둘째 아들인 데다 어머니인 공작부인의 가문도 이름 높은 후작가이니 사람들의 시선이 이리 모이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몬 형이 들어왔을 때는 장난이 아니었겠네.'

둘째가 이 정도니 공작가의 후계자가 왔을 때는 과연 어땠을지 절로 상상이 되었다.

마누엘이 마차에서 내리자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차에서 내리는 마누엘의 모습은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왕자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려한 의상에 절제된 미소, 격식에 맞는 몸짓 등. 공작가라는 배경이 없더라도 고위 귀족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공작가의 교육은 대단했다.

찌질한 마누엘조차 이런 모습이라니. 나도 마음속으로 박수를 크게 쳐 주고 싶을 정도였다.

마누엘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를 보고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에고, 좋단다.'

포장이 바뀌어도 마누엘은 역시 마누엘이었다.

"그럼 들어가지."

마차가 떠나자, 마누엘은 다시 표정을 가다듬더니 강당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내가 따르고, 집사가 뒤를 이었다.

마누엘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의 뒤를 따르는 나의 정체에 의문을 느꼈지만, 이어 들리는 소리에 모두 고개를 돌렸다.

강당으로 향하던 마누엘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샤 데 카를로스 공주마마의 마차요! 모두 왕실의 권위에 경의를 표하며 고개를 조아리시오!"

전생에 보던 차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멈추는 광경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의 뒤를 따르던 마차들이 길가에서 좌우로 갈라지더니 급하게 멈췄다.

그리고 그 중앙을 가로지르며 다가오는 화려한 마차.

마부 옆에 앉은 궁중복을 입은 남자가 목이 터져라 앞의 말을 계속 외치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우르르 자리를 옮긴 뒤 몸을 낮추었다.

평민은 양쪽 무릎을 땅에 대고 몸을 숙였고, 귀족들도 길 양쪽에 서서 머리를 숙였다.

나도 그들과 같이 머리를 숙였다.

서자이긴 했지만, 그래도 각성을 했으니 평민들과 같이 엎드릴 필요는 없었다.

전생과 다른 차별대우에 기분이 영 찝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릎에 흙을 묻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심정은 조마조마할 뿐이었다.

좀 더 일찍 출발하거나 늦게 출발할걸. 이렇게 딱 마주치다니.

머리를 숙인 채 기다리고 있자니 마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마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샤 데 카를로스 공주가 지나가십니다! 모두 예를 갖추시오!"

다시 한번 예의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처음 아카데미를 세운 초대왕은 왕족이든 귀족이든 아카데미에 입학을 하면 모두 같은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왕명을 내렸다.

교육을 위해, 그리고 왕국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내린 명령이었지만, 시대가 흘러 지금은 아카데미 내에서도 권력 구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겉으로나마 왕명은 지켜지는 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왕족이나 귀족, 평민이 같은 수업을 받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입학 전이었고, 공주의 행차에 모두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마나를 주위에 뿌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왕족과 귀족들, 기사들이 버글거리는 이곳에서 그런 행동이 들키지 않을 리 없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계속 소원을 빌 뿐이었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제발 그냥 지나가라. 말 걸지 말고 아는 척도 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라.'

하지만, 지나가던 발소리가 내 앞에서 딱 멈추었다.

'제길!'

"알렉스 공?"

바로 앞에서 얼마 전에 들었던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죠? 고개를 들어 봐요."

망했다. 확실히 망했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모두의 시선이 이곳을 향하고 있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냉큼 도망가고 싶었지만, 감히 공주님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알렉스 공! 잘되었어요. 아는 사람 없이 입학식에 들어갈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우리 같이 들어가요."

아직 꼬마인 공주님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하는 중이었다.

뒤쪽에는 왕실 기사들, 그리고 왕궁에서 보았던 왕실 집사와 메이드들이 보였고, 공주 옆에는 카트린이 미안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공주. 하지만, 공주의 눈매가 묘하게 휘어져 있었다.

고의다. 분명 고의였다.

저건 멋모르고 말을 건 게 아니었다. 일부러 말을 건 거였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애매한 느낌이더니만, 이 어린 공주는 나이와 달리 아주 여우임이 분명했다.

"모두 고개를 들어요. 이제 같은 학생이 될 텐데, 이제부터 이런 예절은 받지 않겠어요."

공주는 큰 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와 공주를 보며 모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완전히 당했다. 평화로운 아카데미 생활은 이제 끝이었다.

아니, 서자 따위에게 공주가 같이 움직이자고 하다니 이대로는 수도 정치의 거친 물살에 풍덩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서 가요."

공주의 말에 나는 난처한 얼굴로 옆을 돌아보았다.

마누엘의 눈꼬리가 꿈틀거리고 있었고, 집사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아, 마누엘 공자시죠? 처음 뵙네요."

공주의 말에 마누엘이 허둥거리며 인사를 했다.

훌륭한 공작가의 교육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공자님도 같이 가는 게 어때요? 알렉스 공자에게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는데…….

어쨌거나 공주의 말에 마누엘의 표정은 다시 좋아졌고, 우리 일행은 공주의 일행과 함께 강당으로 향했다.

으, 시선이 따갑다. 날카로운 검에 찔리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되면, 입학식 날 학교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될 게 분명했다.

'제길, 자살이다. 그것밖에 없어.'

이대로 아카데미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한 번도 자살한 적은 없었고 죽음의 고통이 끔찍했지만, 이런 세파에 시달릴 수는 없었다.

나는 입학식이 끝나고, 밤에 자살하기로 마음먹었다.

옆에서 마누엘과 공주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배경으로, 나는 입학식장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내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뭐라고?!

* * *

전생에 겪었던 입학식과는 묘하게 비슷하면서 다른 입학식이었다.

신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커다란 홀 안에 수많은 사람이 들어차 있었다.

마법 등처럼 보이는 불빛들이 천장에 매달려 홀 안을 밝히는 중이었고, 사방의 벽에 매달린 명화와 조각들이 홀의 품격을 높여 주었다.

홀 중앙에는 긴 테이블 여러 개가 죽 늘어서 있고, 그 양쪽으로 각양각색의 신입생들이 앉아 있었다.

어린 소녀부터 청년, 공주부터 평민까지.

그리고 홀 뒤쪽에는 학생들과 같이 온 사람들, 즉 가족과 수행원들이 모여 있었다.

나도 신입생들과 같이 긴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지금은 교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는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당연히 내 옆에 앉아 있는 공주 때문이었다.

거기다 앞에서 공주와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아는 선생 때문이었고.

공주의 이모이자 얼마 전까지 용병으로 뛰었던 카트린이 다른 선생들과 앉아 우리 쪽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으득.

공주와 공주 이모가 쌍으로 나를 물 먹이는 중이었다.

거기다 나를 도와주던 능력까지 내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겼다.

아카데미 입학을 했다고 '저장 시점'이 설정되다니.

죽지 않고 '저장 시점'이 생성된 것은 각성일 이후로 처음이었다.

각성일까지 포함해서 생애 두 번째이고.

아무래도 죽은 뒤 '저장 시점'에서 다시 살아나는 이 능력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능력과 다른 능력인지도 몰랐다.

방금 전까지 '상속 능력'과 비슷한 또 다른 내 능력이고, 각성일에 '저장 시점'이 만들어진 것은 상속 능력이 간섭을 벌여서 일어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만들어진 '저장 시점'은 능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만들어졌다. 능력 대신 아카데미 입학이라는 특정 이벤트로 발생한 것이다.

'이벤트나 트리거로 발생하는 걸까? 죽는 것도 일종의 이벤트인 거고?'

아직 정확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기존 생각과 다른 결과에 고심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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