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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8화 (58/563)

제58화

제8편 비밀 (1)

늦은 아침 식사 시간.

식사가 시작되기 전, 마누엘은 굳은 얼굴로 나를 꾸짖었다.

"밤에 몰래 밖에 나갔다면서? 다른 귀족가를 방문해서 그러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걸 몰라?"

낮은 목소리였지만, 마나까지 실어서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크기를 키운 목소리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귀족 자제가 동생을 혼내는 표본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남작 부인들이 놀란 표정으로 마누엘을 쳐다보았고, 남작 아들도 감탄한 얼굴로 마누엘을 바라보았다.

물론, 나는 마누엘이 공작을 최대한 흉내 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다른 때와 달리 마누엘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 그래. 알면 됐어."

내 대답에 살짝 목소리가 흔들렸지만 마누엘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남작에게 사과했다.

"동생을 대신해서 밤에 시끄럽게 한 것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하, 괜찮네. 별일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았나 걱정했을 뿐이라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남작과 딸을 살펴보았다.

남작의 표정은 대답과 달리 상당히 굳어 있었고, 그의 딸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런, 눈이 마주칠 뻔했다.

바로 시선을 피한 뒤, 마침 나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는 내 귀에 다시 남작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 길인데 하루 더 쉬어 가는 게 어떻겠나. 아이들 준비도 더 필요할지 모르고."

예상한 대로라고 할까. 남작은 우리를 더 머물게 하려고 애썼다.

"아, 죄송합니다. 저도 더 있고 싶지만, 입학날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오, 역시 귀족 모드 상태일 때는 마누엘도 할 말을 제대로 하는군. 역시 교육 하나는 제대로 되었다니까.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지."

예상과 달리 남작은 쉽게 포기했다.

궁금해서 나이프에 비쳐 보니, 남작은 말을 하며 딸을 쳐다보았다.

뭔가, 아직 꿍꿍이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죽었는데 그 꿍꿍이를 그대로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그 뒤 식사는 평범하게 끝이 났다.

얼마 뒤, 저택 앞에 다시 일행이 모였다.

별채에 묵었던 병사와 기사는 마차와 함께 저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작의 아들과 딸은 각자의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아들 쪽은 다른 모자간의 작별과 다르지 않았다.

"수도에 가서도 몸조심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편지하렴."

"알아서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어머니도 몸 건강하세요."

걱정하는 엄마와 자신감에 차 있는 아들.

하지만, 딸 쪽은 분위기가 이상했다.

"갈게요."

"그, 그래. 잘 가라."

딸의 작별 인사에 남작 부인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마치 딸을 무서워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다 부인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흥!"

그 모습에 딸은 코웃음을 치고는 몸을 돌렸다.

아들 쪽도 인사를 끝내고 마차로 향했다.

인사가 끝날 동안, 남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작은 딸뿐만 아니라 다른 식구와도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남작님의 자제분들은 수도에 있는 동안 제가 최대한 잘 보살피겠습니다."

마누엘의 인사에 남작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작에게도 만족할 만한 작별이었다.

마누엘도, 나도 마차에 올라탔다.

전과 달리 네 명이 타게 된 마차였지만, 공작가의 마차답게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와, 확실히 대귀족은 다르네요.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차이가 안 나는데, 이게 내실이 있다는 건가요?"

남작 딸은 실내를 둘러보며 계속 감탄을 터트렸다.

남작 아들도 신기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마누엘이 이것저것 그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마차는 마을을 벗어났고, 한참을 달려 해가 저물 무렵에는 남작의 영지를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오늘은 야영을 해야겠습니다."

해가 질 무렵, 말을 탄 기사가 마차로 다가와 마누엘에게 말했다.

마누엘은 허락을 했고, 마차와 일행이 멈추었다.

같이 따라온 사용인들과 병사들이 캠핑을 준비했고, 우리도 마차에서 내렸다.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차에 실린 대검을 꺼내 들었다.

"검은 왜 꺼낸 거야?"

마누엘의 물음에 나는 씩 웃었다.

"몸도 찌뿌듯해서 사냥이나 해 올까 해서요."

"저녁 식사 재료는 충분합니다. 사냥감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옆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병사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군데군데 나무들이 보이긴 했지만, 이곳은 너른 벌판 한가운데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처럼 훈련 삼아 하는 거니까. 뭐, 늦으면 먼저 먹고 주무세요."

내 말에 병사와 기사는 금방 수긍했다.

후작가를 다녀온 여정 중에도 후작 서자와 대련을 하고, 또 이렇게 훈련 삼아 밤에 돌아다닌 적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마누엘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아침 식사 때 고개를 숙인 덕분인지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오늘은 첫날인데, 같이 식사하세요. 네?"

남작 딸이 옆에서 손을 모으고 부탁했지만, 나는 소름이 돋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자주 하던 일이라서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야영지 밖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야영지가 멀어지면서 점점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뒤 야영지에서 충분히 멀어지자, 나는 몸을 돌렸다.

목표는 오전에 떠난 남작 영지.

나는 다리에 마나를 밀어 넣고, 발을 박찼다.

쾅!

여유롭게 천천히 반나절을 왔으니 힘껏 달리면 2시간 정도면 돌아갈 거리였다.

* * *

나는 어젯밤을 보냈던 언덕 위에서 저택을 내려다보았다.

총 2시간. 야영지에서 이곳 언덕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다행히 오는 길에 마주친 사람은 없었고, 마을 가까이에 도착한 뒤에는 사람을 피해 마을을 멀리 빙 둘러서 이 언덕에 선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의 40㎞. 마라톤을 달린 것 같았다.

"전생이었으면 올림픽 신기록이었을지도……."

마나가 없었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절대 불가능한 속도였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고 이대로 누워 쉬고 싶었지만, 가만히 마나를 순환시켰다.

다리를 달구던 마나를 몸 전체에 퍼트리자, 격렬히 움직이는 심장과 허파에 마나가 스며들면서 몸 상태가 점점 나아졌다.

"휴우……."

잠시 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금방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좋아."

역시, 마나는 사기였다.

몸 상태를 확인한 뒤에 나는 언덕을 내려갔다.

아직 밤이 늦지 않아 불이 켜진 방이 남아 있었지만, 달도 보이지 않는 흐린 날이라 몸을 숨기기에는 충분했다.

정문에 서 있는 병사들의 눈을 피해.

다시 담을 넘은 뒤, 미로 정원을 거쳐 현관 대신 내가 자던 방 아래로 갔다.

이 밤에 현관이 열려 있을 리가 없었고, 강제로 열었다가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으차."

방 아래에 도착한 나는 손에 마나를 모으고, 벽을 타고 올랐다.

이곳저곳에서 여러 번 해 본 경험 덕분인지, 전날 자던 방 창문 앞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다음은 손을 창에 대고, 마나를 일으킨 손을 당겼다. 손과 함께 창이 딸려 나왔다.

끼이이익.

작은 소리를 내며 창이 열렸다.

다행히 창을 고정하는 걸쇠는 아침에 내가 망가뜨린 그대로였다.

다시 찾아올 생각에 떠나기 전 걸쇠를 망가뜨려 놓았는데, 예상대로 아직 고치지 못한 것이다.

창은 그대로였지만, 방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차피 사람이 없는 것만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방을 지나 어두운 복도로 걸어갔다. 남작 방을 향해.

떠나기 전에 남작의 방은 알아 두었다. 딸 방 가까운 제일 안쪽 방. 다른 귀족들처럼 방은 그 혼자서 쓰고 있었다.

복도는 조용했다.

하루 전, 아니 죽기 전이었으니까 그보다 더 전이었나.

아무튼 그때는 사람들이 자고 있었어도 얼마간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사람 사는 소리가 내 좋은 귀로 들려왔었다.

하지만, 지금 이 저택은 마치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무거운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조심스럽게 움직인 보람도 없이, 남작 방에 도착할 때까지 복도에는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사람들이 아직 잘 시간이 아닌데…….

잠시 뒤 남작의 침실 앞에 도착했다.

나는 도망칠 준비를 제대로 끝내 놓은 뒤,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마나를 흘려보냈다.

'이런, 허탕인가?'

방 안에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듣기로는 남작은 이 시간에 항상 자신의 방에 있다고 하던데…….

나지막이 혀를 찬 뒤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보았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여니 남작의 집무실 겸 서재가 보였다. 서재 안쪽에는 반쯤 열린 침실 문도 보였다. 침실에도 남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느꼈던 것처럼 서재와 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식들이 여행을 떠나서 평상시하고 달리 움직인 걸까? 하지만, 웬만한 일이 아니면 항상 이 시간에 방에 있다고 하던데.

기껏 이리저리 모은 정보가 헛수고가 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남작을 찾기 위해 저택 안을 뒤질 수도 없었다.

나는 지금 공식적으로는 40㎞ 떨어진 곳에서 숲을 쏘다니며 사냥을 하는 중이었다.

남작을 찾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곤란했다. 어차피 아직 크지 않은 나이라 변장도 소용이 없었고.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던 찰라.

텅 빈 서재의 모습이 묘하게 느껴졌다.

평범한 서재처럼 보였지만, 분명 공작의 집무실이나 공작 저택의 방들과는 다른 점이 느껴졌다.

'설마?'

비밀 통로가 있던 후작 저택에서 맡았던 바로 그 느낌.

"역시 제대로 된 귀족 서재는 비밀의 문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겠지."

바로 서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귀족 중에는 비밀의 문을 찾거나 사람의 흔적을 찾는 사이코메트리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법하긴 한데…….

아쉽게도 지금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마나는 대신 다른 능력을 나에게 주었다.

휴우.

숨을 크게 들이켜고.

마나를 귀와 눈, 그리고 코와 피부까지. 오감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우우우웅.

어둠침침하던 방이 환하게 밝아지고, 각종 냄새가 느껴졌다.

스스스슥, 치칙.

이어서 조금 전까지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왔다. 살랑대는 바람에 서류가 살짝 들리는 소리, 촛불이 일렁이는 소리, 그리고 귓가를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공기의 느낌.

어라? 공기가 움직여?

들어온 뒤에 문을 닫아 놓았는데. 분명 침실과 서재의 창문도 닫혀 있고.

나는 가만히 서서 공기의 흐름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피부의 감각을 전부 일깨워 공기 분자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잡아낼 정도로 정신을 집중했다.

희미하지만 공기가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공기가 흘러 나가는 곳은 내가 들어온 방문도 아니었고, 닫힌 창문 쪽도 아니었다.

책장?

공기가 움직이는 방향은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이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책장 쪽으로 움직였다.

살랑거리는 미세한 바람은 바로 벽에 세워진 책장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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