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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6화 (56/563)

제56화

제6편 남작가 (1)

그녀도 어리지만 더 어린 나를 상대로 하는 말이 꽤나 어울리지 않아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더니, 모두 억지로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식사는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게 끝이 났다.

"피곤한 사람들을 너무 붙잡고 있었군. 내일 출발해야 하니 이만 마쳐야겠네."

도무지 이해 못 할 예의를 갖춘 말을 끝으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끝내고 로비로 나가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여행자로 보이는 젊은 남녀였다.

남자가 식당에서 나온 남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남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배웅했다.

사람들은 모두 한쪽에 서 있었고,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는데, 마침 두 사람이 현관으로 나가며 내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꽤나 잘생긴 남녀였다.

평복을 입었지만, 걸음걸이나 얼굴이 결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니 나는 슬쩍 고개를 숙인 뒤, 관심을 거뒀다.

하지만, 일은 내 생각대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나는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좋을 겁니다."

나만 겨우 알아들을 정도의 작은 음성.

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말을 꺼낸 당사자는 아무 표정도 없이 그냥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평온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조금 전에 내가 들은 말은 아무래도 잘못 들은 듯 느껴질 정도였다.

* * *

저택에서 멀어지자, 말없이 걷던 여자가 남자를 보고 눈을 흘겼다.

"아니, 일 잘 끝내 놓고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어쩌라고요."

"어라? 많이 놀랐나 보네. 어차피 계약, 아니 돈 받고 하는 일이잖아. 돈 잘 받고 해 줄 일 다 해 주었으면 끝난 거지 뭐. 일이 실패하건 성공하건 우리랑은 상관없는 거잖아."

놀리듯이 대답하는 말에 여자의 눈꼬리가 점점 위로 올라갔다.

"그게 할 말입니까? 조직에 관련된 일은 아니지만, 실패하면 신용이 떨어질 게 뻔하잖습니까!"

"뭐, 말 한마디 한다고 그렇게 쉽게 실패할 일도 아니니까."

결국, 여자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하신 겁니까?"

"공작가의 서자잖아. 이에로 후작가 때는 실패했지만, 거기서도 서자를 꼬여서 잘 써먹었고. 혹시라도 멀쩡하게 살아나면 내 말을 기억해 줄 거 아냐. 이렇게 작게나마 끈을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겠지."

그는 자기 말에 감탄을 했는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역시 난 먼 미래를 생각하는 훌륭한 전략가야."

그의 말에 여성은 이마를 짚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또 마음에 드신 것 아닙니까?"

"뭐, 그런 점도 있긴 하지만."

그는 여성을 보며 싱글거렸다.

"너와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그 아이도 꽤나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있더라고. 닳고 닳은 귀족의 자식 같지도 않고, 분노를 담고 있는 서자의 모습도 아니고. 두고 보면 무척이나 재미있을 것처럼 보이더라고."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뭐, 그것도 무사히 빠져나올 때의 이야기겠지만."

두 사람이 빠져나간 뒤, 나는 어떻게 방까지 안내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남자의 음성을 듣고 오랜만에 눈앞에서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새로운 '저장 지점'이 설정되었습니다.]

분명 죽은 적도 없고, 능력을 각성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뿐이었다.

* * *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남작가에서는 작지 않은 방을 홀로 쓰게 해 주었다.

밤이 깊은 시각.

방으로 안내된 나는 침대 위에 앉아 고민에 잠겼다.

남작과 그 가족의 이상한 행동들과 처음 본 사람이 남긴 말, 그리고 뜻밖의 시점에 등장한 '저장 지점'까지.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한 것이 없었다.

"그동안 너무 편했긴 했어."

무덤 탐험 이후로 근래에는 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죽지도 않았고.

"하아, 죽지 않은 게 편안한 것의 기준점이 되다니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어."

내 처지에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문제가 있는데, 마냥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괜히 기다리다가 죽어 버릴 수는 없지."

어렸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은 경험이 트라우마가 된 것일지도.

뭐, 이제는 나이에 맞지 않는 실력이 있으니 쉽게 죽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앉아서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달밤의 산책이라고 둘러대지 뭐."

아니면, 밤에 오줌이 마려워서 나왔다고 하거나.

'그래, 아직 아슬아슬하게 핑계 댈 수 있는 나이이니 이 핑계를 대기로 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 깊이 담고 있던 마나를 끌어올려 주변으로 퍼트렸다.

우우우웅.

걸리는 것은 없었다. 적어도 숨어서 감시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옆구리에 걸려 있는 단검을 확인했다.

대검도 가지고 왔지만, 남의 집 안에 가지고 들어올 수 없어서 마차에 남겨 두었다.

뭐, 이 단검도 보기와 달리 꽤나 대단한 검이니까.

나는 깨워 놓은 마나를 몸에 둘러 몸을 가볍게 만든 뒤, 발소리를 줄인 채 복도로 나왔다.

밤이 늦어서인지, 복도는 어둡고 고요했다.

하지만, 드문드문 달려 있는 등 덕분에 복도를 살피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뭘 찾아야 할까.'

복도로 나오기는 했는데, 이 뒤에 어디로 갈지 정하는 게 조금 난감했다.

뭔가 문제가 있고 의심이 든다고 해도, 하룻밤 사이에 뭘 찾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오늘 꼭 무슨 문제가 생길 거라는 확신도 하기 어려웠다.

'뭐, 정말 달밤에 산책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지.'

각성 이후 하룻밤 정도 안 자는 건 몸에 별로 무리가 가지도 않았고, 방을 비워 두어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을 일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편히 하고, 텅 빈 복도를 걸어갔다.

마나로 감싸서 내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복도.

흔들리는 등불만이 화려한 복도를 어렴풋이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한가롭게 복도를 걸어가던 중이었다.

"……정말, 꼭 해야 해요?"

작은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마나로 강화하지 않았으면 들리지 않았을 소리.

어린 여자의 불만 어린 목소리였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역시, 이대로 끝날 리가 없었다.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님들 방이 있는 곳을 지나, 남작의 가족들이 있는 내실까지.

목소리는 예상대로 남작의 딸 목소리였고, 딸의 방에서 나고 있었다.

나는 문과 약간 떨어진 복도 구석에 몸을 붙인 채로 귀를 기울였다.

"그냥 친한 척 접근해서 발을 묶기만 하면 된다면서요. 팔다리 부러뜨리는 정도나 크게 다치는 정도면 되지 않아요? 서자라도 사람이 죽으면 무사히 넘어갈 리가 없잖아요!"

딸의 항변을 들으며, 방 안으로 마나를 흘려보냈다.

묘한 껄끄러움을 뚫고 마나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방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남작의 딸일 테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넌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목소리를 들으니 다른 한 명은 남작이었다.

설마, 내 이야기인가? 아버지가 딸에게 나를 죽이라고 시키는 것인가?

"하아,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는지. 정말,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네요."

한심하다는 듯이 푸념을 늘어놓는 딸의 말에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동안 네가 벌인 일들을 수습하느라 고생한 걸 기억하고 있다면 감히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할 텐데. 내가 아니었으면 넌 진즉에 사형을 당했을 거야."

"흥,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때잖아요.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니까요."

철컥.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닫혔던 문이 열렸다.

어라? 분명 문 옆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봐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주변 감시는 확실히 하고 있잖아요. 쥐새끼가 듣고 있는 것도 바로 찾아내고요."

'제길, 들켰나.'

어떻게 들켰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물러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마나를 돌려 땅을 박찼다.

푹!

어? 땅을 밀어내던 발이 바닥 깊이 푹 파묻혔다.

분명 돌바닥이었는데? 놀란 내가 다리를 빼는 사이, 복도와 천장도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 저 멀리 복도 끝까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벽과 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환상인가? 아니, 실체가 느껴졌는데?

분명 이건 상대방의 능력이었다.

이곳 복도에는 창도 없었고, 환상이든 아니든 이대로 복도를 내달리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젠장, 정말 싫은데 답이 없네.'

결국, 남은 것은 정면 돌파밖에 없었다.

나는 출렁이는 바닥과 벽을 디디며 열린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문 안쪽은 침실과 붙어 있는 응접실이었다.

남작의 딸치고 무척이나 크고 화려한 응접실. 응접실은 복도와 달리 원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응접실 안에는 마나로 느껴졌던 것처럼 두 사람이 있었다.

남작과 남작의 딸. 두 사람은 이 늦은 시간에 외출복을 입고 마주 앉아 있었다.

그녀는 방에 뛰어든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아~ 세상에 이게 누구야. 누나는 정말 놀랐네."

전과는 다른 말투.

하지만, 밤의 등불 아래서도 눈을 동그랗게 뜬 그 모습은 꽤나 예뻐 보였다. 아마 몇 살만 더 먹으면 귀족 파티에서 이름을 날리는 영애가 될 게 분명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한 남작도 묘한 얼굴이 되었다.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느낌이려나.

어쩌지? 싸울까? 하지만, 선수를 치기에는 애매한 분위기였다.

아니, 공격할 생각을 하자 몸속 깊은 곳에서 경고가 울렸다.

나는 재빨리 표정을 바꾸었다.

"밖의 복도가 막 움직였어요. 잠이 안 와서 일어났는데, 복도를 걷다가 길을 잃었거든요. 그런데 좀 전에 막 바닥하고 벽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설마 유령이 있나요?"

놀란 표정을 가득 담고서 횡설수설 이야기를 쏟아 냈다.

"아! 이런, 많이 놀랐어요? 공자님이 잠결에 헛것을 본 모양이네요."

그녀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작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나랑 같이 가요. 내가 방으로 데려다줄게요."

"그래 주실래요? 고맙습니다."

그녀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나눴지만, 그녀가 다가올수록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자, 손을 잡아요."

다가온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나는 허리에 찬 검을 힘껏 휘두르며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쾅!

내가 휘두른 검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뒤로 쭉 밀리며 돌바닥이 치솟아 내 검을 막은 것이다.

돌은 잘려 나갔지만, 그뿐이었다.

예상대로 그녀의 모습은 다 연기였다.

"호호호, 역시 안 속네. 거기다 그쪽 연기도 무척 훌륭했어. 안아 주고 싶었다니까."

솟아오른 벽 뒤에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창을 향해 달릴 뿐이었다.

그리고 온몸에 마나를 감싼 채 힘껏 창을 향해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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