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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2화 (52/563)

제52화

제2편 추천서 (2)

뭔가 급하게 일이 벌어질 것 같았지만, 시간은 조용히 흘러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오래 걸릴 거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둘째 형이 유학 갈 시간이 다가와도 초청장은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나는 초청장을 기억에서 지워버렸고, 혼자만의 훈련을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키도 커지고, 몸도 자라게 된 14살이 된 어느 날.

다다다다.

저택으로 나 있는 길로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내 전속 시녀 플로라였다.

그녀는 한껏 긴장한 얼굴로 달려오더니,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헉, 헉, 공작님이 알렉스 도련님을 찾으세요. 다른 일을 제쳐두고 빨리 오시라고 하셨어요. 뭔가 중요한 일인가 봐요."

내가 알고 있는 중요한 일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나는 바로 플로라를 따라 저택으로 향했다.

공작의 집무실에는 공작 홀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이름을 대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고, 공작은 집무실에 들어온 나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평상시 이상으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못 본 척 책상 앞에 섰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겨우 얼굴만 책상 위로 나왔었는데, 이제는 가슴 아래에 책상이 걸쳐졌다.

책상 위에는 평상시처럼 문서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내가 앞에 서자, 공작은 서랍을 열고 편지 봉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고급 재질의 봉투에 붉은 인장으로 봉인이 되어 있었던 편지 봉투.

딱 봐도 높으신 귀족이 보낸 편지였다.

봉투의 봉인은 이미 뜯겨 있었고, 공작은 열려 있던 봉투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는 꺼낸 편지를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편지를 내 쪽으로 내려놓았다.

"이 초청장이 왜 오게 되었는지 나에게 설명해 보도록."

앞뒤를 다 잘라먹은 질문에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편지를 읽어 보았다.

그동안 교육받은 것이 헛된 것이 아니었는지 귀족적인 수식어가 장황하게 적혀 있는 편지가 쉽게 읽혔다.

편지를 다 확인한 나는 공작이 눈살을 찌푸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간이 너무 지나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초청장이었다. 이렇게 늦게 오다니.

복잡한 수식어를 빼놓고 보면, 편지 자체는 평범한 초청장이었다.

누구의 소개로 나를 알게 되어 수도로 불러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초청장.

하지만, 초청장 마지막에 적혀 있는 이름이 문제였다.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었다.

그동안 내 앞에서 용병 노릇을 했던 카트리네 드 라텐하마르. 그녀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인 라텐하마르 백작의 이름이 적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리아 데 카를로스.

결혼 전의 이름은 리아 드 라텐하마르였고.

국왕의 세 번째 아내이자 카트린의 언니, 즉 왕녀의 어머니가 직접 보낸 초청장이었다.

뜻밖의 인물의 등장에 내 머릿속은 엉망이 되어 공작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공작은 그런 나를 계속 노려보았고, 나는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

"그게…… 왜 이 초청장이 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편지 안에 있는 사람은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초청장 안에 이 사달을 일으킨 사람의 이름, 즉 카트린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내 예상보다 훨씬 높은 곳에 내 추천을 해 버린 것이다.

"카트리네 영애와는 후작가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용병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나는 그녀와 함께한 일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후작가에서 벌어진 일과, 돌아온 뒤에 그녀와 함께 탐사를 벌인 일.

물론, 무덤 탐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녀와 비밀을 지키기로 서약을 했기 때문이다.

"신전에서 계약서를 쓴 건가."

내가 말을 얼버무리자, 공작은 바로 알아차렸다.

"네. 대신 공작가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내 말에 공작은 앞에 놓인 편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넌 아직 모르겠지만, 이 추천장이 온 이상 피해가 가는 일이 없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이런, 공작가가 왕비의 초청장을 받아 버렸으니 이를 받아들이든 아니든 공작은 조금 난감한 상황에 처해지게 되려나?

아무래도 이건 모르는 척하는 편이 좋겠다.

"후작가 일을 돕는 도중에 용병 모습으로 암행을 하고 있던 라텐하마르 백작 영애와 알게 되었고, 그 뒤로 그녀의 일을 도와주어 호감을 사게 되었다라……. 그래서 그녀가 자신의 언니에게 말해서 초청장을 보내게 했다는 소리인데……."

역시나 공작의 정확한 상황 설명이었다.

"하지만, 호의만 가지고 이런 초청장을 보낼 이유가 없을 텐데 무슨 이유지?"

나는 그의 말에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신전에서 행한 계약 덕분에 말하지 않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그건 내가 따로 알아봐야겠군."

한참 나를 노려보던 공작이 초청장을 거둬들였다.

"잘못된 초청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남은 문제는 이걸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겠군."

그는 책상을 두들기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역시, 예상대로 내 의견은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공작 같은 귀족이 14살이 막 넘은 서자에게 의견 따위를 물을 리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내 귀에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어떻게 하고 싶지?"

어라? 나한테 하는 질문인가?

놀라 쳐다본 공작의 표정은 조금 전과 다르지 않았다. 얼음처럼 무표정한 얼굴.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뜻밖의 말에 난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가고 싶습니다. 좀 더 배워 형님께서 영지를 다스리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행히 쓸 만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내 말을 들은 공작은 눈꼬리가 슬쩍 접혔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대답이었던 것 같다.

영지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착한 서자가 딱 할 만한 말이었는데…….

시몬보고 형님이라고 한 게 좀 무리수였나?

그래도 다행히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공작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집무실에서 내보냈다.

다음 날.

나는 공작의 결정을 들을 수 있었다.

아침부터 내 방으로 쳐들어온 우리 둘째 형님께서 나를 향해 열심히 쏟아 낸 말 덕분이었다.

"너도 수도에 같이 간다는 게 무슨 말이야! 말도 안 되잖아!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야!"

그의 목소리가 방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옆에서 차를 따르던 플로라는 놀란 새처럼 빠르게 뒤로 물러섰고, 그는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아 나를 노려보았다.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조금 까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귀족 예절은 착실히 지키던 마누엘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영 안하무인이었다.

"공작님이 벌써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뭐야, 정말 너 뭔가 알고 있었던 거야?"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별다를 것 없는 내 표정에 마누엘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그는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뒤를 보고 외쳤다.

"형도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고 말해! 뭔가 이상하잖아!"

그가 들어온 입구에 첫째 형님께서 서 있었다. 시몬은 애매한 얼굴로 문 밖에 서 있었다.

우리 둘째 형님께서 내 응접실에 들어오자마자 난리를 치신 덕분에 미처 시몬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쯧, 집안이라고 너무 풀어진 건가.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겠다.

"아버님께서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겠지. 어머니가 뵈러 가셨으니 금방 이유를 들을 수 있을 게다. 너도 귀족답게 열 내지 말고 돌아가서 기다리자."

어라? 시몬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동생 편을 들기 위해 같이 온 게 아니었나?

"형도 후작가에 다녀오고 나서 이상해졌어! 약혼하더니 괜히 무게만 더 잡고."

마누엘의 말에 시몬을 다시 살펴보니, 확실히 전처럼 가벼운 느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처럼 억지로 폼을 잡는 것 같지도 않고.

나는 시몬을 보며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후작가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우리 첫째 공자님께서 이제 어른이 된 모양이다.

형의 호응이 없자, 마누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에잉! 아무리 뭐라 해도 난 인정할 수가 없어! 제대로 된 능력도 없는 반푼이가 나랑 같이 수도에 간다니. 이런 놈하고 같이 지내면 내가 어떻게 수도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라고!"

오, 16살 치고는 제법 뼈를 때리는 불쾌한 말을 하네.

성질이 폭발해서 꺼낸 말일 테지만, 그래도 꽤 듣기 거북한데.

하기야 서자 출신하고 같이 수도로 유학을 왔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주변에서 쑥덕거림이 장난이 아니겠지.

공작가에 대한 온갖 가십이 쏟아져 나올 거고, 서자인 나와 비교하는 이야기도 나올 테고 온갖 귀찮은 일이 마구마구 벌어질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갈 만도 했지만.

역시, 기분이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나는 슬쩍 떡밥을 띄워 보았다.

"그렇다면 실력 검증을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다른 사람을 써서 확인해 봐도 본인이 납득하기 어려울 거고, 음……. 가볍게 형님이 대련으로 제 실력을 직접 확인하시는 게 어떨는지요."

꽤나 뻔한 꼬드김이었지만, 상대는 아직 파릇파릇한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다.

"하? 직접 대련? 좋아! 내 생각이 바로 그거야!"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보던 마누엘은 곧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 말에 동의했다.

"좋아! 기다려! 당장 허락을 받아 오지. 아버지께서 네 본 실력을 보시면 당장 계획을 취소하실 테니까. 어디 도망가지 말고 준비나 철저히 해 둬!"

그는 내 말이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는지, 신난 얼굴로 방을 뛰쳐나갔다.

달려 나가는 동생을 보며 한숨을 내쉰 시몬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네가 수도로 가게 된 게 이해가 안 되지만, 아버지께서 결정하신 일이니 뭐라 하지는 않겠어. 네 실력이면 어디서 꿀리지는 않을 테고."

후작가에 다녀오는 동안, 그도 내 훈련과 대련을 여러 번 보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겠지만, 나이에 맞지 않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마누엘은 물론이고, 어머니도 가만히 계시지는 않을 거다. 능력이나 실력이 된다고 해도 네 출신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닐 테니. 수도에 가서도 내 동생이나 공작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답지 않게 길게 말을 뱉은 뒤에 그는 몸을 돌려 동생을 따라갔다.

무척이나 차가운 말투였지만, 의외로 듣기에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어라? 설마 나에게 조언을 해 준 건가?'

정신없는 형님의 방문이 끝난 뒤, 금방 대련 시간이 잡혔다.

솔직히 대련이 잡힐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공작까지 이야기가 가지 않은 것일까?

어쨌거나 대련 장소는 저택 뒤 숲에 있는 가문의 연무장으로 결정되었다.

마누엘은 중앙 연무장을 대련 장소로 삼아 모두의 앞에서 나를 깔아뭉갤 생각이었지만, 위에서 반대한 모양이었다.

그에게는 안타까운 일일 테고, 나도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냐!"

그와의 대련 전에 내 유학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가 놀라 내 방으로 달려오셨다.

나는 공작에게 한 말을 어머니께 다시 말씀드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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