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제21편 유산을 찾았습니다 (2)
푸하!
물 위로 올라오자, 저수지 밖에 쓰러진 마물들과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가 보였다.
무척이나 지친 모습.
물소리를 들었는지, 숨을 헐떡이던 그녀는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맙소사! 살아 있었어?"
내가 죽긴 왜 죽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마물들은 하나, 둘, 셋. 총 세 마리.
처음 상대한 마물들이 맞았다.
모두 쓰러져 있는 것을 보니, 역시 그녀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한 숫자였다.
하지만, 그녀도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역시 세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나 보다.
숨을 크게 들이켜 허파에 공기를 넣어 주었다. 마나 덕분에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지만, 역시 숨을 참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힘들게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이상하게 가벼운 방패를 양손으로 붙잡고 물 밖으로 헤엄쳐 나갔다.
잠시 뒤, 바닥에 발이 닿자 방패에 기대 몸을 일으켰다.
조금 어지러웠지만,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잠수병 같은 것도 걸리지 않은 것 같고. 역시 마나가 최고였다.
내가 몸을 일으켰을 때, 그녀가 다가와 내 몸을 마구 더듬었다.
"괜찮아? 엄청나게 오래 물속에 있었잖아? 미안해.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서 먼저 물 밖으로 나오고 말았어. 이렇게 무사할 줄 알았으면 더 찾는 건데. 정말 미안해!"
그녀는 내 몸을 살피며 말을 쏟아 냈다.
쏟아지는 말에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여태 보아 왔던 그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
죽은 줄 알았던 내가 살아 돌아온 것이 그녀 속에 있는 뭔가를 건드린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보다 웬 마물이죠?"
"아, 물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나타났어. '레드 마우스'처럼 보이는데, 세 마리가 한꺼번에 덤비니까 속도 때문에 상대하기가 힘들었어. 그리고……."
나는 질문을 던진 뒤, 슬쩍 가지고 나온 방패를 살펴보았다.
다시 봐도 크지 않은 방패였다. 어린 내가 가지고 다녀도 될 만한 크기의 방패. 성인 남자라면 겨우 가슴을 가릴 만한 작은 방패였다.
물속에 오래 있었는데도 전혀 녹슬지 않은 방패. 방패의 전면에는 날아오르는 새가 새겨져 있었다.
'어라, 지금은 꽤 무거운데.'
물 밖으로 나와서 그런가. 아니면 마나를 싣지 않아서일까.
나는 방패에 살짝 마나를 밀어 넣어 보았다.
우웅.
방패가 작게 떨렸다. 그리고 무척이나 가벼워졌다. 무게는 마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나를 밀어 넣으면 가벼워지는 방패라니. 이런 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 건가? 뭐, 마나부터 이해가 안 되는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방패를 살펴보았다.
'마나를 넣으니 문양이 조금 흐려진 것 같은데…….'
"검은 어디 가고 방패를 들고 있어?"
"아, 검이 무거워서 저수지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그런데 그 방패를 들고 왔다고?"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거워서 검을 놓고 왔는데, 다른 걸 들고 오다니. 그녀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왜 그 방패를……. 잠깐만!"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금방 바뀌었다.
그녀는 급하게 달려와 방패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방패 표면의 문양을 살피고, 재질을 확인하면서 그녀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저수지 아래에서 찾았다고? 저, 잠깐 내가 써 봐도 될까?"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장난을 쳐 볼까 하다가, 곱게 방패를 넘겨주었다.
"받아요."
보물 창고의 물건들이 쏟아진 저수지에서 찾은 방패였고, 방패의 문양은 그의 검에 새겨진 문양과 똑같았다.
물속에서 방패에 마나를 집어넣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이 방패는 그녀가 찾던 물건이었다.
내가 망설임 없이 건네주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방패를 받았다.
그녀는 방패를 반대편 팔에 끼웠다.
내가 들었을 때는 그래도 꽤 몸을 가렸던 방패였는데, 그녀의 팔에 걸쳐 있으니 많이 작아 보였다.
전생에 보았던 캡틴 어쩌고의 방패 정도의 크기로 보일 정도였다.
그녀는 한쪽 팔에 방패를 차고, 반대편 손에는 검을 들었다.
'방패 검사였나?'
방패와 검을 든 그녀의 모습은 검만 들었을 때보다 훨씬 어울렸다.
자세를 잡은 그녀는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우우웅.
그녀의 몸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검이 울기 시작하고, 검날의 문양이 밝은 빛을 뿌렸다.
동시에 방패의 문양도 은은한 빛을 머금었다.
바닥에 놓은 등의 빛을 배경으로 마치 날개를 활짝 편 새 두 마리가 밤하늘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우우웅. 우웅.
검과 방패의 울림이 더 커지고, 검 끝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패 주변도 칼끝과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방패 주변으로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만들어진 것 같은 일렁거림.
예상대로 방패는 검과 한 쌍이었다.
역시 주인은 따로 있었다.
내가 마나를 주입했을 때는 문양 앞만 조금 일렁거렸는데, 제대로 된 마나를 주입하니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감격한 표정으로 일렁거리는 방패를 바라보았다.
평생을 꿈꿔 왔던 물건을 찾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냥 놔두면 온종일 방패만 쳐다볼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지금의 상황도 그렇고 배가 아파서라도 그냥 놔둘 수 없었다.
"저기요? 여보세요?"
"……어?"
내가 여러 번 부르니 그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나는 손가락으로 일렁거리는 방패를 가리켰다.
"찾던 물건이 이게 맞나요?"
"으응. 맞아."
내 물음에 그녀는 퍼뜩 놀란 얼굴로 방패를 낀 팔을 몸 뒤로 숨겼다.
그런다고 숨겨질 리도 없는데…….
아직도 가출한 정신이 다 돌아오지 못한 것 같았다.
"잘되었네요. 찾던 게 그 방패라면 우리가 한 계약대로 방패는 용병님 것이에요."
내 말을 듣고 그녀의 표정은 환하게 변했다가 다시 미안하고 난처한 얼굴로 변했다.
"물속에 들어가서 방패를 찾은 것도 너고, 가져온 것도 넌데. 그냥 내가 갖기가……."
순진한 건지, 호구인지, 아니면 공명정대한 사람인 건지.
어쨌거나 사람이 언제나 일관성이 있었다.
"마물들이 사방으로 굴을 파 놓은 바람에 우리가 이곳에 떨어진 모양이에요."
나는 죽은 마물들의 시체와 벽에 뚫린 구멍을 가리켰다.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방패는……."
"마물이 판 굴 때문에 보물 창고도 무너져 내려서 창고에 있던 물건도 이 저수지에 쏟아진 모양이에요."
나는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검을 바닥에 놓는 와중에 운 좋게도 방패를 발견했어요. 문제는 내가 바닥에 놓아 둔 검인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내 말에 그녀가 방패를 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거기다 검집에 꽂아 넣은 검까지.
"검도 저수지 바닥에 있고, 보물 창고에 있는 다른 물건들도 같이 있을 거라는 거지?"
"네? 아, 검은 바닥에 꽂아 놓았는데, 잡동사니 말고 다른 물건들은 보지 못했어요."
"뭐, 다른 물건들이 없어도 검을 꺼내 와야 하니까……."
그녀는 갑옷을 훌러덩 벗은 뒤, 겉옷과 신발도 벗어 버렸다.
그 뒤에 속옷 차림으로 허리띠를 하고 그 허리띠에 등을 걸었다.
그리고 저수지 안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가져올게."
첨벙!
"아……. 잠깐……."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물속으로 잠수해 버렸다.
황당하리만큼 빠른 행동력이었다.
어이없는 상황에서 나는 사방에 흩어진 옷가지를 모았다.
그 뒤에 그녀의 방패와 검을 들고, 옷가지 앞에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그녀가 돌아오기 전에 마물이 나타날 확률은 높지 않지만, 미리 준비해 두는 편이 좋았다.
무척이나 합리적인 생각이었지만, 나는 검과 방패를 들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유를 대든, 지금 내 모습은 물에 들어간 여자 옷을 지키는 어린 소년이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방패와 검에 마나를 주입해 보았다.
아쉽게도 내가 마나를 주입했을 때는 그녀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다.
무기와 방패는 마나를 잘 받아들였지만, 칼끝도, 방패와 주변에도 일렁거림이 보이지 않았고 문양만 조금 일렁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하나, 둘, 셋……. 이백, 이백 일."
일 초에 한 번 숫자를 세며 그녀를 기다렸고,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걱정하는 순간, 소리가 들려왔다.
저수지 쪽이 아닌, 반대편 동굴 쪽에서.
그르르르르.
"역시 쉽게 되는 일이 없지."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넷.
총 네 마리.
내가 상대하기 불가능한 숫자였고, 마물 셋과 싸워 겨우 이긴 그녀도 이기기 쉽지 않은 숫자였다.
"빨간 놈들이 없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했지만, 역시 헛된 위로일 뿐이었다.
마물들은 바닥에 쓰러진 사체들을 보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다가오는 마물들을 보니, 조금 전에 뜯겨 나갔던 목이 다시 아파지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벌써 몇 번이나 죽은 것인지.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이 죽어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꽤 힘들었다.
한계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이러다가 맛이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어이, 조금만 더 빨리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마물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놓칠 것 같은 움직임.
나는 급하게 방패를 치켜들었고.
그 순간, 등 뒤에서 물이 치솟는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이익!
동시에 등 뒤에서 바람을 가르며 대검이 쏘아져 들어왔다.
검은 내 얼굴 옆을 지나 정면에서 쇄도하는 마물의 몸에 박혔다.
꽤액!
정면에서 덤벼들던 마물은 검에 맞아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다른 마물들은 멈추지 않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마물들이 내 몸을 덮치려는 순간,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 물건들을 찾느라 늦었어."
말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이 방패를 들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서 마나가 흘러들어 왔다.
내 마나와 조금 다른 마나가 내 손을 지나 방패로 흘러들어 갔다.
우우우웅!
방패 주변에서 일어난 일렁임이 내 몸을 뒤덮었다.
동시에 마물들이 나와 그녀를 뒤덮었다.
콰아아앙!
폭음이 울리고.
키이이익!
일렁임과 충돌한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지켜 줘서 고마워. 검하고 방패는 내가 쓸게."
그녀는 내 손에 들려 있던 검과 방패를 가져갔다.
그리고 속옷 차림으로 튕겨 나간 마물들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발밑에서 마물의 소리를 들었다.
그르르릉.
내 검에 박힌 채로 쓰러진 마물이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나는 마물에 박힌 검을 손에 쥐고, 힘껏 내리그었다.
서걱!
피가 뿜어져 나오며 마물의 상체가 갈라졌다.
솟구치는 피 가운데에서 대검을 뽑아 들었다.
검은 멀쩡했다.
그리고 나는 검에 기대어 속옷 차림으로 싸우는 불새 사냥꾼을 구경했다.
속옷에 달린 레이스가 휘날리고, 검과 방패가 사방을 휘저었다.
공간이 일렁거리고, 마물들의 몸이 잘려 나가고 부서졌다.
세 마리의 마물에 헐떡이던 그녀가 더 많은 숫자의 마물을 지금 박살 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