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4화 (44/563)

제44화

제19편 던전 탈출 (2)

나는 마물이 수영을 못 한다는 가정하에 저수지를 뒤에 둔 채로 마물들을 상대하는 '배수진'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 의견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무턱대고 동굴로 들어가면 포위 공격을 당할 수도 있어요."

조금 전 동굴에서 죽었을 때의 일을 넌지시 꺼내 보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물을 뒤에 두면 겨우 포위망 한 곳이 줄어들 뿐이야. 더 쉽게 포위당할 수도 있고, 물로 피한다고 해도 결국 따라잡힐 뿐이야."

그녀의 말에 저수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지하 광장 중앙에 있는 저수지는 다른 곳으로 연결된 곳도 보이지 않았고, 어느 방향으로도 벽과 가깝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수영으로는 마물의 발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전생에 들었던 병법은 이런 실전에서는 그리 쓸모가 없었다.

아니, 병법의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알지 못한 내 탓이었다.

전생에 소설과 인터넷 글로 대충 알고 있었던 병법이었다.

실제로 싸움을 해 보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공부도 하지 않은 채 꺼내 놓은 의견이 제대로 된 것일 리 만무했다.

"그래도 동굴에서의 포위와, 마물들이 수영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참고해 볼 만한 의견인 것 같아."

그녀는 내 의견을 듣고 새로운 작전을 짰다.

내가 꺼낸 '배수진'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작전이었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일개 용병이 생각할 만한 건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녀는 재미있게도 죽기 전과 같은 동굴로 들어갔다.

다른 동굴로 가자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괜히 다른 동굴로 바꾸었다가 길이 막히는 등 의외의 상황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결국 마물들을 죽이고, 같은 동굴로 걸어가는.

죽기 전의 상황이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움직임은 전과 달랐다.

걷는 속도는 그때의 반밖에 되지 않았고, 일정 시간마다 멈춰 서서 사방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녀나 나도 몇 배나 주의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스르르르.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소리가 들려왔다.

벽에 마나를 집중한 귀를 대니 겨우 들리는 소리. 바로 마물의 발소리였다.

마물들의 발소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고,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마물들이 몰래 따라오는 건가?"

발소리를 들은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것 같은데요? 앞쪽에는 다른 마물들이 기다리고 있겠죠."

내 말에 그녀는 어둠에 잠겨 있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렇겠지? 맙소사. 결국 우리가 몰이사냥을 당하는 중이라는 거잖아? 이놈들이 이렇게 머리가 좋았나?"

그녀는 작게 푸념을 내뱉은 뒤에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신기하네. 어떻게 안 거야? 조금 전까지도 솔직히 믿기 어려웠는데……."

경험해 봤기에 아는 거였지만, 그걸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제가 감이 좋은 편이에요."

"감이라니……. 머리만 좋은 게 아니었어."

그녀의 표정을 보니, 이곳을 나가게 되면 천재라는 소문 말고 다른 소문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 그럼 계획대로 해야겠지?"

"네."

그녀와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올라왔던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마나를 다리에 가득 밀어 넣어 달려가는 길.

동굴이 빠르게 뒤로 밀려나고 뒤쪽, 아니 우리가 달려가는 앞쪽에서 허둥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스스, 스슥.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뒤를 따라오던 마물들을 보게 되었다.

이런 일자형 동굴 속에서 앞뒤로 포위되면 정말 위험하지만, 그건 포위망이 완성된 뒤의 이야기였다.

완성되기 전의 포위망은 각개격파의 먹이일 뿐이었다.

"후딱 해치워야 해!"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달려 나가는 그녀의 검 끝이 일렁거렸고, 내 손에 쥔 검도 희미하게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우리 앞에는 동굴을 가득 채우며 다가오는 마물들이 있었다.

마물들의 숫자는 총 네 마리.

좀 전에 죽인 마물들보다 한 마리가 더 많았지만, 상대할 마물은 전보다 줄어 있었다.

마물들의 크기가 커서 두 마리가 겨우 나란히 설 수 있었다.

동굴 높이도 높지 않아 뒤쪽의 마물이 넘어올 수도 없는 상황.

우리는 각각 한 마리씩 상대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다리와 손에 마나를 불어넣고, 힘껏 검을 내질렀다.

"피할 수 있으면 어디 피해 봐!"

동굴이 좁아 큰 검을 마음껏 휘두르긴 힘들었지만, 마물 쪽은 더 피하기 어려웠다.

옆과 뒤에 있는 마물과 벽이랑 천장에 막혀 특유의 빠른 속도를 내기는커녕 움직이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검을 내밀고 힘껏 몸통 박치기를 펼쳤고.

푸우우욱.

검은 앞을 막아선 앞다리를 꿰뚫고, 쥐를 닮은 마물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르르륵."

역시 이런 동굴 속에서는 현란한 검술이 필요 없었다.

나는 마물을 걷어차 검을 빼내고, 다시 앞으로 달려갔다.

다음 마물도 금방 처치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불새 사냥꾼은 나보다 빨리 마물들을 쓰러뜨렸다.

그녀는 내가 마물들을 쓰러뜨리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정말 10살 맞아?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실력이 가능한 거야?"

"능력 덕분이죠."

"10살에 기사급 이상의 능력을 만들어 내는 상속 능력이 있다고?"

쩝, 너무 실력을 드러낸 건가. 하지만, 실력을 숨겨서는 살아남기 어려웠다.

다행히 그녀의 의문은 거기서 끝이었다.

그르르릉.

우리가 가려던 동굴 깊숙한 곳에서 마물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던 마물들이었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내 말대로 일이 벌어진 덕분인지 그녀는 나에게 의견을 구했다.

조금 전과 다르게 웬만한 의견을 들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계획은 세워져 있었고, 나도 더 좋은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계획대로 물러서죠. 최대한 숫자를 줄여 보죠."

"좋았어!"

그녀와 나는 처음 출발한 저수지가 있는 지하 광장으로 빠르게 물러섰다.

우리는 동굴을 달리다가 처음 보는 구멍을 발견했다.

"아까 저 구멍은 없었잖아?"

"네. 우리를 쫓았던 마물들이 만든 구멍인가 보네요."

"굴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뚫을 수 있는 거였어?"

아니, 댁이 모르는데 내가 알 리가 없잖아.

어쨌거나 그녀와 내가 쉽게 포위당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거기다 마물의 날카로운 발톱들은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땅을 파기 위한 것들이었다.

발톱치고는 엄청 단단하더니 그런 이유였나.

우리는 벽에 뚫려 있는 구멍을 지나 동굴을 계속 달려 나갔다.

다행히 마물들은 빠른 움직임에 비해 지구력은 그리 높지는 않았다.

마물들의 소리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고, 우리는 저수지가 있는 지하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동굴로 들어갔다.

우리는 최대한 저수지가 있는 지하 광장과 멀어지지 않게 동굴들을 들락거리며 마물들을 처리했다.

최대한 귀를 기울여 수가 작은 마물들이 다가오면 먼저 처리하고, 많은 숫자면 다시 지하 광장으로 후퇴해서 다른 동굴로 들어갔다.

숫자 파악이 잘못되어 위험한 적도 있었고, 너무 깊이 들어가 포위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대부분의 마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결국 마무리는 여기서 하게 되네요."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저수지의 물을 떠먹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처음 떨어진 지하 광장. 주변에는 죽은 마물들이 널려 있었다.

우리가 이 지하 광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자, 마물들은 결국 이 저수지가 있는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포위당했고, 결국 처음 내가 이야기한 대로 '배수의 진'을 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야기할 때와 달리 우리를 포위한 마물들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동안 각개격파로 숫자를 왕창 줄였기 때문이었다.

총 여섯 마리.

그동안의 싸움으로, 놈들의 사냥법에 익숙해진 우리 두 사람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숫자였다.

그리고 마지막 격돌.

그녀와 나는 마물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물을 마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저수지 쪽으로는 안 오려고 하는 것 같죠?"

"확실히 그런 것 같아. 수영을 못 해서는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으로 물을 떠서 조심스럽게 물을 마셨다.

나는 물을 마시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저수지로 시선을 돌렸다.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는 평범한 지하 저수지였다.

하긴, 먹을 수 있는 물이 있는 지하 저수지가 평범한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은 마물들의 지하 생태를 연구할 때는 아니겠죠."

나는 몸에 힘이 돌아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을 기다려도 더 이상 나타나는 마물이 없었다. 이제 안심을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녀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벗어 놓은 망토까지 다시 걸친 뒤 나에게 물었다.

"그럼 출발할까?"

"네. 돌아가죠."

우리는 다시 동굴로 향했다.

"저 마물들도 돈 좀 되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만, 가지고 나갈 방법도 마땅찮고, 가지고 나가는 것도 곤란하지."

보물 창고가 멀쩡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지금, 마물이라도 팔아서 돈을 버는 게 좋을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이 지하에서 벌어진 일을 다른 사람이 알게 할 수는 없었다.

나도 저택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웠고, 그녀도 이 무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물도 다 잡았으니 영지에 문제는 생기지 않을 테지.'

내가 영주나 후계자도 아닌데, 괜한 일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조금은 아쉽고,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을 누르며 나는 계속 걸어갔다.

마물들과 싸우면서 확인한 바로는 이 동굴들은 모두 위로 향해 있었고 중간마다 서로 만나게 되어 있었다.

전에 내가 죽었던 광장이 동굴들이 만나는 곳이었고, 그렇게 모인 동굴들은 위로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간 우리는 동굴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걷고 있는 동굴은 마물들이 판 동굴이 아니라, 돌벽과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동굴. 즉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지하 통로였다.

"설마…… 아직 남아 있는 걸까?"

비밀 창고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기력해 보이던 그녀의 눈에서 다시 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허리에 차고 있던 등을 손으로 들어 올리고, 뛸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검을 끌며 열심히 그녀를 따라갔다.

통로를 나아가는 동안, 옆으로 작은 방들이 보였다.

아쉽게도 방들은 오래되어 부서진 탁자와 의자 정도만 남았을 뿐이었다.

우리는 방들을 대충 살피며 계속 걸어갔고, 통로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통로 끝에는 철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칼에 새겨진 것과 똑같은 문양이 새겨진 문.

분명 그녀가 찾던 비밀 창고의 문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밀었다.

끼이익.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은 거친 소리를 내며 조금씩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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