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제13편 비상하는 불새 (1)
후작가에서 돌아온 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길이 달라져 갔다.
후작가에서 일어난 일들이 사람들 사이에 알려진 것이다.
그때 있었던 내 활약이 이리저리 과장과 왜곡을 거쳐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갔다.
어떤 사람은 나를 희대의 운빨 캐릭터로 알았고, 다른 사람은 머릿속에 수십 마리의 능구렁이를 품고 있는 음침한 책사로 믿게 되었다.
물론, 대다수는 고의로 축소된 소문을 들었다. 운이 좋아 나이에 맞지 않는 활약을 한 서자 정도로.
어쨌거나 저택 안에서의 위상은 후작가에 가기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나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기사들이나 관료들처럼 공작부인도 나를 지켜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름의 소식통이 있을 테니 후작가의 일을 들었을 테고, 나에 대해 경계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당연하면 안 되잖아! 괜히 잘못 보였다가 둘째 공작부인 때처럼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 여자 때문에 몇 번이나 죽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계속 내가 모르는 일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고, 아직 미래에 어떻게 살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만큼 죽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바뀐 시선에 조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후안이 찾아왔다.
"후안 씨가 왔어요. 들어오라고 할까요?"
후안이 찾아오자, 플로라는 후안을 문밖에서 기다리게 한 뒤에 안으로 들어와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냥 안으로 들어오게 해도 될 텐데…….'
플로라는 후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와 대다수 고용인처럼 내가 운이 좋아 후작가에서 공로를 세웠다고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듣고 나를 한참 혼냈고, 플로라도 오랜 시간 삐져 있었다.
다 나를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한참 동안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지금은 다 풀렸지만, 그런 이유로 그녀는 아직도 후안을 싫어했다.
더구나 내가 준 돈으로 어머니가 건강해져서 후안은 내 부하를 자처하고 있었으니, 그가 찾아올 때마다 플로라의 심통은 더욱 심해졌다.
내가 들어오라고 말하고 나서야 후안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마침 비번이었는지 안으로 들어오는 후안은 평복을 입고 있었다.
플로라는 후안 옆을 지나갈 때, 내가 듣지 못하도록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후작가에서 경험한 실전 이후로 훨씬 민감해진 귀 덕분에 그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다.
"플로라를 대신해서 사과할게."
"괜찮습니다. 다 도련님이 걱정돼서 그런 거니까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무슨 일이야?"
후안은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유 없이 찾아올 사람은 아니었다.
"불새 사냥꾼이라는 용병이 도착했답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기다리던 사람이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후안과 함께 저택을 나섰다.
후작가를 다녀온 뒤에 내 위치가 달라졌다는 게 다시 실감이 되었다.
그동안 저택 밖으로 나가는 게 쉽지 않았었다.
서자였지만 그래도 공작의 자식이었고, 나이도 어렸기에 밖으로 나가려면 사람들의 보호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서자라는 위치는 내 사람이나 어머니의 하녀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요청하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후작가에 다녀온 뒤에는 따로 요청할 필요가 없었다.
후안과 함께였지만, 이렇게 밖에 나가는 것을 막는 병사도 없었고, 걱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넓은 앞마당을 지나 정문을 나서자, 고급 주택가가 이어진 시가지가 보였다.
도시의 북쪽에 자리한 공작의 저택. 그리고 그 아래에 이어진 고급 주택가.
도시에서 지내는 공작 휘하의 귀족들과 고급 관료, 기사들과 유력 상인들이 사는 곳으로 도시의 제일 상류층이 지내는 곳이었다.
도로는 깨끗하고, 공작 저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건물들도 크고 화려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자, 중앙 광장이 나왔다.
이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신전과 일반 주거지가 있었고, 서쪽으로 시장과 공방, 상업 길드들이, 그리고 남쪽으로는 용병들의 거리와 하층민들이 사는 주거지가 있었다.
나는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쪽은 나도 처음 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후작의 영지에서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그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생각과는 많이 다른데……."
"하하, 같은 용병들이지만 영지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죠."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거리를 바라보자, 후안이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우리 영지의 용병 거리도 소란스럽고 지저분한 것은 후작가의 그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후작가와 달리 이 거리는 조금은 경직된 느낌이 들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서 그런지,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싸우는 사람도 없었다.
혼자서, 혹은 일행이 자기 길을 가기에 바쁠 따름이었다.
"후작가보다 조금 삭막하죠? 저희 영지가 다른 영지보다 용병들 관리가 좀 빡빡해서 그렇습니다. 저희 공작님이 영지 내 안전을 중요시해서 용병들의 범죄나 일탈을 그냥 두고 보시지 않으시기 때문이죠."
분위기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뜬금없는 공작의 칭찬을 듣게 되었다.
역시, 공작은 일 하나는 잘하는 사람이었다.
저택 안에서나 밖으로 나가도 곳곳에서 들려오는 공작에 대한 칭찬.
내가 공작의 서자가 아니라 평범한 영지민이었으면 남들처럼 공작을 칭송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입장이 같을 수 없었다.
후작의 영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활기차 보이는 용병들의 거리를 지나 한 여관 앞에 도착했다.
<붉은 장미 용병 여관>
용병들이 지내는 여관으로는 전혀 안 어울리는 이름이었지만, 깔끔한 여관 분위기를 보니 나름 어울리는 면이 없지 않은 여관이었다.
"이 거리에서 제일 비싼 여관입니다. 아마 북쪽 거리의 여관을 제외하면 제일 비쌀 겁니다."
이번에도 불새 사냥꾼이라고 불러 달라던 용병은 용병 거리에서 제일 좋은 여관에 자리를 잡았다.
따로 용병단에 가입한 것도 아니었고, 혼자 다니는 용병이 분명한 것 같은데, 저번에도 그렇고 이렇게 매번 좋은 여관에서 지낼 수 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부잣집 딸이거나 아니면 용병 일을 하다가 벼락부자가 되었을지도.
혹시 그녀가 부자가 된 것은 문양이 새겨진 검과 관련된 일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1층 식당은 한가해 보였다.
대부분은 비어 있는 테이블 가운데 그녀가 앉아 있었다.
"여기야! 여기. 일찍 왔네."
그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와 후안은 그녀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녀는 내 뒤에 따라오는 후안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옆에 있는 분은 누구?"
그가 평상시처럼 군복을 입고 있었다면 질문이 없었겠지만, 평복을 입은 후안은 덩치가 있는 보통의 평민처럼 보였다.
"후안이라고 해요. 오늘 저를 호위해 주시는 병사이십니다."
"호위?"
내 말에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후안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공자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오늘도 호위한 게 아니라 이곳까지 안내한 것뿐입니다."
그의 말에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형식상 호위. 같은 거지?"
조금 다르지만,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 앞에 있는 의자에 올라앉았다.
쩝, 언제 키가 클는지. 아직도 의자에 앉으면 발이 바닥에 잘 안 닿았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셨네요. 못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나보다 며칠 늦게 도착할 줄 알았는데, 몇 개월이나 늦어졌다.
"정리하는 건 금방 끝났는데, 일이 좀 꼬여서 그걸 해결하느라고 늦었어."
일이 꼬였다라……. 뭔가 듣는데 찝찝한 기분이 드는 말이었다.
하지만, 해결했다고 했으니 우선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 했다.
"그럼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인사도 채 마무리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딱 봐도 마음이 무척이나 급해 보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가하다곤 하지만,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이야기해도 되나요?"
내 말에 그녀도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그건 곤란하지……. 그리고 많은 사람이 들으면 좀 그런데……."
그녀는 내 뒤에 서 있는 후안을 보며 말했다.
아직 그는 자리에 앉지 않고 있었다. 역시 마음에 들었다. 그는 확실히 자신의 위치를 정한 듯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후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저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역시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 특히 기사들도 이렇게 눈치가 빨랐으면 좋으련만.
후안을 1층에 남겨 두고, 나와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2층 안쪽에 있는 그녀의 방은 상당히 크고 안락해 보였다.
이 여관의 스위트룸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빨리 말해 봐! 어떻게 안 거지?"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눈에 불을 켜고 나에게 달라붙었다.
다르게 보면 방에 여자와 남자 둘만 있는 데다 여자가 남자에게 달라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누가 보든지 이상한 생각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오히려 나는 나보다 훨씬 큰 여성이 갑자기 달려들자,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저, 저기, 앉아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연기할 필요도 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내 말에 그녀는 뻘쭘한 얼굴이 되어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한숨을 돌린 뒤, 우리는 방 가운데 놓인 탁자에 마주 앉았다.
그녀는 조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지만, 재차 재촉하지는 않았다.
음. 어쩐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잠깐 고민에 빠졌다.
그녀를 데리고 무덤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그녀를 속이든가 강압적으로 검을 뺏은 뒤 나 혼자 확인하는 것이 더 좋을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후자는 답이 될 수가 없었다.
강압적으로 혹은 죽여서 검을 뺏는 것은 혼자서는 아예 불가능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오히려 아는 사람을 늘리는 꼴이 되었다.
더구나 검만 달랑 들고 가서 일이 내 예상대로 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몰래 정보를 빼내는 것도 어려웠고, 결국 무덤을 확인하려면 그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제일 좋았다.
하지만, 무덤에 데리고 가는 것도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었다.
과연 그녀를 믿을 수 있느냐였다.
여태껏 믿을 수 있는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무덤 안에서도, 보물이 발견되어도 같은 모습을 보여 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기다 보물이 발견되어도 문제였다. 발견된 보물을 어떻게 나눌지, 나눌 수 없는 물건이면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해야 했다.
그런 의미로, 나는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이게 뭐야?"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나는 내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 검에 새겨진 문양. 날아오르는 새 문양을 한 무덤에서 보았습니다."
"정말? 무덤 맞아?"
내 말에 그녀는 앞의 질문은 까먹고, 바로 반문했다.
"네. 비어 있는 관이 있는 무덤이었습니다."
"맞아! 내가 찾고 있던 곳이야! 거기가 어디야?"
그녀는 나를 잡아먹을 듯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전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과 딴판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더욱 중요한 일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위치를 알려 드리기 전에."
나는 빈 종이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저택에서 가져온 먹과 깃털 펜을 꺼내 종이 옆에 놓았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가 꺼내 놓은 물건들을 쳐다보았다.
"계약서를 쓰시죠."
나는 펜을 들어 종이에 제목을 적었다.
<무덤 탐사에 관한 계약서>
그 뒤에 종이를 돌려 그녀 앞에 놓았다.
"서로의 안전에 대한 서약과 무덤에서 나온 물건에 대한 분배, 정보의 공유까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세세하게 토론해서 적죠. 아직 밤까지는 시간이 많고, 모자라면 내일이나 모레도 있으니까요."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보는 불새 사냥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런 계약서를 꺼낼 줄을 몰랐을 테니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듯한 그녀의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 계약은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급한 것은 내가 아니니 제대로 작성할수록 내 이익은 더욱 커질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