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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1화 (31/563)

제31화

제6편 용병들 (1)

붉은 곰 용병단은 용병 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상점가 안쪽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관처럼 보이는 2층 목조건물과 창고, 작지 않은 공터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대부분 밖으로 나갔는지 불이 켜져 있는 곳은 몇 없었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남의 집을 몰래 염탐하기에는 좋은 상황이었다.

나는 발소리를 줄이고, 건물 벽에 달라붙었다.

건물 벽은 영주 성이나 공작 저택에서 보던 매끈한 석재 벽이 아니라, 우툴두툴한 회벽으로 되어 있었다.

감시가 심한 공작 저택이나 후작 영주 성을 들락날락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이런 평범한 집의 벽을 타는 것은 어려울 게 없었다.

1층과 2층의 불빛이 보이는 방들은 별다를 게 없었다.

장비를 정비하는 용병들과 편지를 쓰는 사람, 그리고 분홍빛의 야릇한 분위기가 흘러나오는 방도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빛이 흘러나오는 3층 창을 향해 위로 올라갔다.

마지막 방이었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죠? 좀이 쑤셔서 못 견디겠어요."

운이 좋았다.

빛이 흘러나오는 창에서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용병의 목소리였다. 이름이 노아라고 했지?

나는 창 아래에 찰싹 달라붙었다.

양 손가락을 각각 창틀과 회벽의 틈에 걸치고, 몸을 벽에 바싹 붙였다.

'아슬아슬한데.'

창틀도, 회벽도 엄청나게 낡아 있었다. 둘 다 내 몸을 겨우 버텨 주었다.

꼬맹이라서 다행이었다. 조금만 더 무거웠으면 벽이나 창틀이 버텨 낼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방 안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아는 목소리였다.

"조금만 더 참으면 돼. 마르틴하고도 충분히 친해졌고, 후작 일가를 몰살시킬 방법은 마르틴이 금방 가져올 테니까."

"그거 믿을 수 있는 거예요? 요새 영 맞추지 못하잖아요. 이번에도 갑자기 몇 개월이나 일을 당기던데……."

일이 몇 개월이나 당겨졌다니, 무슨 이야기지?

"다른 지방은 틀린 적이 없었어. 이 지역에 뭔가 그의 능력을 방해하는 것이 있을지도 몰라."

"그럼 더 못 믿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큰 틀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기다려."

"네. 네."

이번에는 상속 능력에 관한 이야기인가? 누구의 무슨 능력을 말하는 거지?

"준비는 다 된 거야?"

"일이 갑자기 당겨져서 훈련이 좀 부족하긴 한데……. 어쨌거나 애들 준비는 대충 되었어요. 다른 용병단들과도 이야기를 끝내 놓았죠. 우리 애들하고 이야기가 된 용병단이 내부를 정리하고 라팔마 백작이 기사단을 제때 데려오면 될 거예요."

들려오는 이야기가 점점 이상해져 갔다.

설마, 저번 삶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건가?

하지만 그건 몇 개월 뒤잖아! 왜 그걸 벌써 지금 준비한다는 거지? 설마 내가 이번 삶에서 한 행동 때문에 나비효과가 일어난 건가?

하지만, 내가 한 일이라곤 시몬 형의 여행에 참가한 것밖에 없었다.

마르틴을 만나 같이 오고, 아드리아와 같이 비밀 통로로 빠져나온 것까지…….

음, 이렇게 보니 한 일이 꽤 있었네.

하지만, 그 일들이 저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긴 어려웠다.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나는 귀를 더 기울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같이 일하는 용병들 이야기 그리고 자질구레한 불평들.

아쉽게도 뭔가 딱 원하는 내용은 들려오지 않았다.

더구나 자리를 옮겼는지 말소리가 작아졌다.

"그래서……. 이렇게……. 그 문제는……."

자리를 옮겨? 그렇다고 말소리가 작아진다고?

그 순간, 등줄기가 차가워졌다.

팍!

나는 힘껏 벽을 박찼다.

그 순간.

"쥐새끼가!"

쾅!

창틀이 부서지고, 고함과 함께 남자가 창밖으로 튀어나왔다.

흩어지는 나뭇조각 사이로 검 하나가 쏘아져 들어왔다.

까앙!

벽을 박찼을 때 꺼낸 검으로 쏘아져 들어오는 검을 막았다.

마나가 가득 담긴 검. 막았던 검이 비명을 질렀고, 순간 손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나는 겨우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뒤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허공에 떠 있으니 체중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짜증이 났겠지만, 지금은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튕겨 나가는 힘을 이용해 최대한 몸을 날렸다.

휘이익!

넓은 거리를 날아서 가로지른 뒤 발이 땅에 닿자, 그대로 달려 나갔다.

자, 도망칠 시간이다!

"진짜, 쥐새끼였나!"

"정말 몸집이 작은데요? 여자인가?"

"난쟁이든 여자든 상관없다. 빨리 쫓아!"

"네. 네."

어느새 여자도 내려온 모양이었다.

휘익!

뒤쪽에서 대화가 들리더니, 휘파람 소리와 함께 여자 용병의 음성이 들려왔다.

"와! 오랜만에 재미난 일이네! 쥐새끼인지 난쟁이인지 기다려!"

여자 용병의 목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제길, 코만 좋은 줄 알았는데 달리기도 빨랐다.

"적이야?"

"막아! 근데, 왜 이렇게 작아?"

거기다 거리 양쪽에서 용병들이 튀어나왔다.

올 때는 보이지 않던 용병들이었는데, 어디서 다 튀어나왔는지.

"설마, 꼬맹이야? 맨손으로 잡아도 충분……. 컥!"

검도 뽑지 않고 앞을 가로막던 용병을 검 등으로 후려쳐 주었고.

퍽!

"크악!"

그 뒤에서 검을 뽑으려던 용병은 옆구리를 걷어차 주었다.

가로막던 용병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만약을 대비해서 죽이지는 않았지만, 뼈 몇 개는 박살 난 것 같았다.

하지만, 날려 버린 용병들보다 더 많은 용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병신들이! 애가 아냐! 실력자다! 포위만 해!"

거기다 그 잠깐 사이에 더 가까워진 여자 용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거리를 달려 도망가기는 무리였다.

뒷골목을 확인해 놓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냉큼 건물 사이로 뛰어들었다.

사람 한두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

덩치가 있는 어른이라면 쉽게 도망치기 어려운 골목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밤에 빛도 들어오지 않은 좁은 골목은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가 숨기에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어디야!"

"이쪽 골목에는 없습니다!"

"이쪽도 없습니다!"

골목 곳곳에서 용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어디야! 문이 열려 있거나 창이 열려 있는 집도 다 확인해!"

"다 닫혀 있습니다만."

"열린 곳에 들어가 문을 닫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열어서 확인해!"

아까 들었던 말이 모두 사실인 것 같았다.

수색하고 있는 용병단이 하나가 아니었다. 숙소 주변의 다른 용병단들도 모두 한통속이었다.

용병단 숙소에 대해 듣고 냉큼 달려온 게 잘못이었다.

나름 조심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전에서는 실수가 자꾸 드러났다.

'조심해야지. 이래서야 또 죽어도 할 말이 없겠어.'

나는 아래쪽 골목을 뛰어다니는 용병들을 보며 다시 다짐했다.

역시, 지붕으로 올라온 게 정답이었다.

나를 찾는 용병들은 내가 건물 지붕으로 올라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못 하니 남도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뭐, 내가 봐도 보통 사람들은 그 짧은 시간에 지붕으로 올라오기는 무리였다.

내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이, 여자 용병이 아래 골목에 나타났다.

"흠, 어디로 도망쳤을까."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바라보았다.

이크, 들킬라.

나는 거북이처럼 고개를 쑥 집어넣었다.

안 들켰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냄새를 잘 맡는 여자였다. 들키지 않은 것 같지만, 후딱 도망칠 필요가 있었다.

거의 기다시피 몸을 움직여 자리를 피한 뒤, 다른 집 옥상으로 건너뛰었다.

내가 뛰어넘은 골목에는 용병들이 뛰어다녔지만,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계속 건물을 뛰어넘었다.

얼굴을 스치는 밤공기가 무척이나 시원했고, 뛰던 심장은 이제야 잠잠해졌다.

몇 건물 너머로 용병 거리가 보였다. 그리고 몇 건물 더 너머 마르틴이 있는 여관 지붕도 보였다.

여기까지 여관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한껏 활극을 벌이고 왔는데, 다른 곳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럼, 슬슬 돌아갈까."

여관이 있는 용병 거리는 시끄러웠지만, 이 주변은 무척 조용했다.

용병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곳까지 찾으러 올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전에 아드리아 옆에 있는 꼬맹이로 돌아갈 터였다.

나는 훌쩍 아래로 뛰어내렸다. 2층 지붕이라 꽤 높았지만, 이 정도 높이가 무서울 나이는 지나 있었다.

"찾았당!"

그때, 내 발아래 어두운 골목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아의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위로 뛰어올랐다.

밤의 어둠 속에서 벌겋게 상기된 여자의 얼굴이 빠르게 다가왔다.

흥분으로 붉어진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뭐가 그렇게 기쁜지 모르겠지만, 환한 그녀의 얼굴과 함께 녹색으로 번뜩이는 검이 빠르게 다가왔다.

'이 동네 용병들은 개나 소나 독이냐!'

나는 힘껏 검을 휘둘러 다가오는 독 검을 막아 냈다.

챙그랑!

그런데,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검에서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나는 뒤로 튕겨 나가 벽에 부딪혔다.

큭!

몸무게 차이를 다시 느꼈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실력은 좋은데, 검은 왜 그 모양이야? 가난뱅이였어? 쥐새끼가 아니라 좀도둑이었던 거야?"

상대의 황당한 얼굴 이상으로 나도 한숨이 나왔다.

한 번 부딪쳤는데, 검이 댕강 부러지다니.

양산형 철검의 한계인 건가.

아까 용병 대장하고 검을 부딪쳤을 때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쉽게 부러질 줄은 몰랐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벽에 처박혀 등도 아프고, 검이 깨져 나가며 다리를 베였는지 허벅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길, 위험한데.

여자가 막고 서 있는 골목이 용병 거리로 향하는 골목이었다.

몸 상태도 안 좋고, 검도 잃었는데, 도망칠 길목도 막혀 버렸다.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기에는 피가 흐르는 다리 상태도 좋지 않았다.

휘이이익!

그때, 여자가 휘파람을 불었다.

"다들 금방 올 거야. 쥐새끼인지 좀도둑인지는 금방 알 수 있겠지."

용병들이 몰려오면 곤란했다. 눈앞의 여자도, 용병대장도 내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망토만 젖히면 내가 누군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제길, 여기까지인가.'

다시 살아갈 시간을 생각하면 끔찍했지만, 죽지도 못한 채로 잡혀서 고문을 당할 바에는 여기서 끝을 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번 삶은 무척이나 아쉬웠다. 이제 어느 정도 파악을 했다 싶었는데, 내 자만심이 일을 그르치고 만 것이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아주, 아주 운이 좋다면 달아날 틈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렇게 다친 다리에 힘을 주어 달려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뭐 하는 짓이야!"

여자 쪽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다친 애를 겁박하다니! 넌 명예도 모르나!"

여자 용병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음성은 여자 용병의 뒤에서 들려왔다.

여자 용병 노아는 황당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명예? 용병에게 명예를 이야기한 거야?"

음,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리고 여자 용병 뒤쪽의 어둠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망토를 둘러쓴 왜소한 용병. 얼마 전에 아드리아를 도와주려 했던 용병이었다.

"용병이든, 기사든, 검을 든 자는 검을 든 만큼 책임이 있는 거야! 그걸 모르는 너는 검을 들 자격이 없어!"

나도, 여자 용병도 입을 딱 벌리고, 새로 등장한 용병을 바라보았다.

전생의 영화에서나 나오던 오글거리는 대사를 직접 듣게 되다니.

분명 나를 구하러 온 사람이었지만, 당장은 모르는 척하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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