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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0화 (30/563)

제30화

제5편 서자 대 서자 (2)

"그런데 이렇게 밤에 몰래 나가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까요?"

"나는 괜찮던데. 성안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이젠 찾지도 않는걸."

다 포기한 건가.

영주 성의 비밀 통로는 평범했다.

중간에 해골이 있지도 않았고, 숨겨진 보물 창고가 있지도 않았다.

통로 중간에 다른 방과 연결된 곳들이 보였지만, 우리는 손도 대지 않고 바로 출구로 향했다.

길게 이어진 비밀 통로는 내성을 벗어나 영주 성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막다른 지점에 도착하자, 아드리아가 벽 한 곳을 힘껏 눌렀다.

드르륵.

정면의 벽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천장에서 제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에서 보았던 신을 모시던 제단이었다.

제단은 바닥까지 내려왔고, 제단이 있던 자리는 위로 올라가는 통로가 되었다.

우리는 제단이 있었던 자리를 통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신전인가…….'

창밖에서 들어오는 달빛이 먼지를 뒤집어쓴 신전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 어제 비앙카가 말했었지.

신전은 1년 전부터 비어 있었다고.

그 이유가 아마.

담당 신관이 술을 먹고 성벽을 역으로 걸어서 출입 금지가 되었다고 했었나?

어, 잠깐.

"여기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잖아요! 성불구가 된다면서요!"

기겁한 나는 아드리아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드리아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어려서 괜찮잖아."

아니, 괜찮을지 안 괜찮을지 어떻게 아는데! 9살이면 엄연한 남자라고!

신전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건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고자라니. 당장 자살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중대 상황이었다.

"훗, 어린애가 별 이상한 걱정을 다 하네."

한껏 긴장한 내 모습을 보고, 아드리아가 웃었다.

"마나 오염으로 생기는 저주라서 각성한 사람, 귀족들에게는 효과가 없어. 평민들만 걸리는 저주야."

"정말이죠?"

아드리아의 말에 겨우 안심했지만, 나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니까."

안 괜찮기만 해 봐라. 다음 삶에서는 절대 도와주지 않을 테다.

무척이나 꺼림칙했지만, 결국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적막한 신전을 벗어나자, 도시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밤의 도시는 무척이나 어둡고 조용했다.

등을 밝힌 집들도 드문드문 보였지만, 거리는 어두웠고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전생의 밤거리를 생각했던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긴 전생을 기준으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마나와 상속 능력이 있다지만, 밤의 도시를 전부 밝힐 수 없는데 밤거리가 활기찰 리가 없었다.

"여기는 너무 어둡다. 빨리 가자. 용병 거리 쪽은 밤에도 사람이 많다고 했어."

그녀는 앞장서서 어두운 거리를 걸어갔다.

낮에 왔던 길을 다시 걸으며, 우리는 용병 거리로 향했다.

잠시 뒤, 도착한 용병 거리는 아드리아의 말대로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거기 서!"

"제기랄! 내가 도망가는 것처럼 보이냐! 잠깐 화장실 갔다가 올 거라고!"

"우에엑! 젠장 술에 뭘 탄 거야!"

"다 튀었잖아! 죽을래!"

도망치는 용병과 그를 쫓는 용병. 거리에 술을 토하는 남자와 술이 튀었다고 그를 후려치는 다른 용병.

아직 초저녁인데, 거리는 온통 술주정뱅이들과 용병들로 가득했다.

"와! 엉망진창이다!"

아드리아가 놀란 눈으로 거리를 둘러보았다.

용병 사무소를 중심으로 용병들의 숙소와 여관, 상점과 술집, 그리고 대장간까지.

해가 졌는데도 불구하고 이 거리의 가게와 여관들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전생처럼 불야성을 이루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마치 전생의 유흥가를 보는 것 같았다.

"아, 취한다."

신나게 주변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던 아드리아의 옆으로 술에 취한 용병이 비틀거리며 지나갔다.

용병이 아드리아의 옆을 지나가는 순간, 그의 손이 아드리아의 옷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소매치기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드리아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용병의 손이 빠져나간 다음 순간, 아드리아의 손이 잔상을 남기며 움직인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용병의 손과 달리 아드리아의 손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정확히 보지 못했지만,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손재주가 좋은 평범한 소매치기 따위가 가속 능력을 각성한 귀족의 눈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고함을 치거나 팔을 자르거나 하진 않았네.'

그랬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잔뜩 모았을 게 분명했다.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아드리아의 모습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안심이 빨랐던 모양이었다.

"악, 돈주머니가 없어졌어! 내 주머니!"

비틀거리며 멀어지던 용병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정신없이 자신의 몸을 뒤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비틀거리던 모습은 사라졌고, 그의 얼굴에는 놀란 표정만이 가득했다.

저건 훔친 물건이 없어져서 나오는 표정이 아닌데?

설마 훔쳐 간 것만 되찾아온 게 아니라, 되레 소매치기의 물건도 훔친 거야?

아드리아는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지만, 소매치기가 그 모습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너! 이년이!"

소리를 치며 다가오는 소매치기를 보며 나는 품에 숨긴 검을 손에 쥐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상관없겠지?

조금 소란스러워지더라도 빨리 처리해야 했다.

그렇게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사이,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휙!

"도둑질에 실패했으면 그냥 달아나라. 괜한 애들에게 시비 걸지 말고."

앞을 막은 사람은 머리까지 망토를 둘러쓴, 몸집이 크지 않은 용병이었다.

그는 검집에 넣은 검으로 다가오는 용병의 다리를 걸어 바닥에 쓰러뜨리고, 탁한 목소리로 쓰러진 소매치기에게 훈계했다.

갑자기 벌어진 활극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자식이!"

엎어졌던 소매치기가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치곤 몸을 일으켰고, 용병의 손에 들린 검이 다시 휘둘러졌다.

퍽!

머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소매치기는 다시 땅바닥에 엎어졌다. 이번에는 기절했는지 엎어진 채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너희들 괜찮아……. 어라?"

그가 뒤돌아보기 전에 나는 아드리아의 팔을 잡고 서둘러 군중 속으로 숨어들었다.

대신 처리해 준 것은 고맙지만, 더 이상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는 없었다.

실력이 좋아 보였으니, 귀찮은 일에 휘말려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드리아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자기가 소란을 일으킨 것을 알았는지 내가 이끄는 대로 잘 따라왔다.

그렇게 군중이 모여 있는 곳을 벗어난 뒤, 아드리아의 팔을 놓아주었다.

"미안. 그렇게 빨리 알아차릴 줄 몰랐어."

그녀의 말에 나는 손을 내밀었다.

"응? 왜?"

"봐드릴 테니 반으로 나누죠."

"뭐?"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겠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훔친 것도 내가 아니었으니 걸릴 것도 없었다.

후안을 꼬시느라 큰돈이 나가서 돈이 부족했다. 소매치기의 놀란 표정을 보아하니 아드리아가 훔친 돈주머니는 꽤나 무거울 것 같았다.

아드리아는 입을 딱 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건지.

"어린애가 벌써 돈을 그렇게 밝히면 어떻게 해!"

어린애는 돈 쓸 일이 없나? 웬 아이 차별?

"말없이 빠져나와서 도와준 사람한테 미안한데, 돌아가서 그 사람에게 주는 게 어때?"

"사람 모여 있는 걸 보고도 그래요?"

내 말에 아드리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훔친 돈주머니를 반으로 나누었다.

역시 사람의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꽤나 쏠쏠한 벌이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보다 그 용병은 뭐지?'

언뜻 보았지만, 우리를 도와준 용병은 평범한 용병으로 보기에는 실력이 무척이나 좋았다.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검을 휘두르는 모습으로 그 실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망토로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도 억지로 바꾼 티가 나는 걸 보니, 보통 의심스러운 게 아닌걸?'

그런데 의심스러운 것치고는 오지랖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가 휘둘렀던 검집에 싸인 검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평범한 검집에 특별해 보이지 않은 검이었는데……. 왜지?

"아! 저기 맞지?"

생각을 이어 가는 동안, 아드리아는 마르틴이 머문 여관을 발견했다.

<은빛 용사 여관>

"와, 정말 안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녀는 허름한 여관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뭐, 저 별명을 가졌던 용사는 별명처럼 아름답기도 했지만, 깔끔한 체하는 걸로 유명한 용사였다. 허름하고 지저분한 용병 여관과 어울릴 리가 없었다.

여관으로 들어가니, 1층 식당에는 식사하고 술을 마치는 용병들로 가득했다.

"아! 저기 있다!"

다행히 이번에는 마르틴이 식당에 있었다.

그는 식당 구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마르틴은 세상의 고뇌를 모두 짊어진 얼굴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르틴 오빠!"

그녀는 환한 얼굴로 마르틴에게 달려갔다.

이름이 불리자 마르틴은 고개를 들었고, 그는 다가오는 아드리아를 보았다.

마르틴의 표정이 여러 번 변했다.

분노, 회한, 슬픔, 안타까움.

다채로운 표정을 짓던 그는 결국 아드리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억지웃음인가.'

속마음을 잘 감춘 웃음이었지만, 같은 표정을 계속 흉내 냈던 나는 그 숨겨진 표정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여길 어떻게 나왔어?"

"마르틴 오빠를 보려고 몰래 나왔어요."

아드리아의 말에 마르틴이 나를 쳐다보았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짓을 하다니! 다들 걱정할 거야!"

"저녁 식사 뒤에 찾지 말라고 한걸요? 아침까지 아무도 모를 거예요."

뭐, 나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아침 식사 전까지 찾는 사람이 없었다.

"보내지 말아요. 오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요."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오해할 만한 말이었지만, 아드리아도 마르틴도 그런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 마르틴의 얼굴은 훨씬 더 복잡해 보였지만.

결국, 마르틴은 두 손을 들었다.

"그럼 좀 있다가 내가 바래다주마."

"응. 응."

마르틴의 말에 아드리아는 마냥 기쁜 모양이었다.

이야기가 잘 된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을 꺼냈다.

"저는 구경 좀 하고 올게요."

"응."

"혼자서 괜찮겠어?"

아드리아는 냉큼 허락했고, 마르틴은 나를 걱정해 주었다.

나는 품에 숨긴 검을 툭툭 두드렸다.

"하긴, 네 실력이면 문제없겠다."

마르틴은 내 실력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 실력이 그렇게 좋아요?"

"아, 올 때 여러 번 대련했는데 말이지……."

오랜만에 만난 배다른 남매는 나를 화제 삼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둘 다 밝게 웃는 얼굴이었지만, 한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표정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당장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까.'

나도 있는데 아드리아를 건드려 후작가를 놀라게 할 리는 없었다.

나는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여관을 나섰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고 여관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용병 거리는 시끄러웠지만,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소음과 빛이 사라졌다.

나는 어둠 속에 몸을 묻은 채로 품속에 숨겨 놓았던 검과 망토를 꺼냈다.

그리고 검을 허리에 차고, 망토를 둘렀다.

망토 속에 몸과 얼굴을 숨기자, 나도 이 용병 거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아쉽게도 체형은 숨길 수 없었지만, 용병들 중에는 여자 용병과 난쟁이도 있었다.

적어도 내가 후작가 손님으로 온 소년이라는 사실은 숨길 수 있었다.

"그럼 가 볼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다니게 되었다.

처음 느껴 보는 자유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어둠을 타고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붉은 곰 용병단 숙소.

날 죽였던 자들을 찾아가 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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