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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8화 (28/563)

제28화

제3편 이에로 후작가 (2)

"마르틴 님, 여기 계셨네요?"

나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두 용병과 이야기를 나누던 마르틴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나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를 따라오는 비앙카를 보고는 바로 굳은 얼굴이 되었다.

"마르틴 님……."

비앙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이렇게 빨리 만날 줄 몰랐어요."

나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못 느낀 것처럼 마르틴에게 다가갔다.

마르틴 옆에 있던 두 용병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가가는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꼬맹이가 아는 척을 하는 것을 보면 저런 표정을 짓는 게 당연했다.

남자 용병이 마르틴에게 물었다.

"누구?"

"그레시아 공작가에서 온 분."

"아, 같이 왔다던."

마르틴의 대답에 두 사람은 얼굴을 찡그렸다.

나를 만난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아쉽군. 나는 무척이나 반가운데.

나는 마르틴이 앉아 있는 식탁 앞에 앉으며 환하게 웃었다.

"정말 만나서 기뻐요. 답답한 영주 성을 빠져나온 게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사전 답사를 하기 위해 나왔다고 할 수 없으니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뻔한 말을 꺼냈다.

내 말에 비앙카와 우고가 나를 돌아보았다.

어라, 뭔가 한심한 듯이 보는 느낌이 드는데…….

설마, 일을 핑계로 놀러 나온 거로 오해를 한 건가?

아니, 오늘 나를 처음 본 비앙카는 이해하지만, 우고는 그러면 안 되잖아!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유치한 행동을 해도 다들 믿어 버리다니.

나이가 어리다는 건 대단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당연히 마르틴도, 두 용병도 내 말을 믿었다.

"이렇게 만났는데 여기 좀 있다가 가도 되죠? 좀 있으면 점심시간인데 같이 밥 먹고 가죠."

내 말에 우고가 조금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외유라고 해 봤자, 영주 성이 있는 안전한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사전 답사는 원래 계획에도 없는 일이었고, 방금 내가 그 일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했으니, 그의 허락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떠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자, 마르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내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용병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그래야겠습니다."

마르틴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간다고?

"두 분 다 용병이시죠? 같이 식사하시면 안 될까요? 제대로 된 용병은 처음 보는데, 제가 밥을 살 테니 용병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반짝이는 미소와 천진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꼬마 도련님, 미안해요. 저희는 높은 분들하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일이 있어서 그만."

여자 용병은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고, 남자 용병은 정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둘은 여관을 빠져나갔다.

이런, 실패했다. 좀 더 정보를 얻고 싶었는데…….

우선은 놈들을 찾았다는 거로 만족해야 할 것 같았다.

"와, 저렇게 간단하게 거절하다니 두 분 다 대단하신 용병들인가 봐요."

살짝 비꼬자, 마르틴이 그들을 감쌌다.

"둘 다 정말 바빠서 그래. 벤하민은 작지 않은 용병단의 단장이고, 노아도 부단장이라 할 일이 많거든."

드디어 이름을 알아낸 건가? 가명일 것 같지만, 이곳에서 쓰는 이름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마르틴과 나, 그리고 우고 기사와 비앙카는 여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기사와 하녀, 꼬마와 용병으로 보이는 남자의 점심 식사는 무척이나 어색했다.

나야 철판을 깔고 대화를 이어 갔지만, 우고 기사와 비앙카는 말없이 식사만 했고, 마르틴도 건성건성 대답할 뿐이었다.

우리 주변으로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하기야 용병들이 득실거리는 식당에 기사가 나타났는데 반가워할 리가 없었다.

식사 시간은 어색하게 끝이 나고, 마르틴과 인사를 나눈 후 여관을 빠져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잡담 사이에 끼워 넣은 질문으로 몇 가지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었다.

'붉은 곰 용병단이라고 했지?'

두 용병이 소속돼 있는 용병단 이름과 지내는 곳. 그리고 마르틴과의 관계 정도.

많지 않은 정보였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몇 가지 더 알고 싶은 것들이 있었지만, 대답해 줄 리도 없었고 대신 말해 줄 사람도 있었다.

여관을 빠져나온 뒤, 우리 일행은 남은 지역을 돌아보았다.

시끄러운 상업 지역과 도시의 전경이 보이는 외성벽 위까지.

예상대로 위험해 보이는 곳은 없었고, 우리는 늦지 않게 영주 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주 성의 내성을 지나 우리는 헤어졌다. 우고 기사는 복귀를 신고할 모양이었고, 비앙카는 아드리아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아드리아를 보았을 때 옆에 없어서 지금은 서로 접점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도 바로 내 방으로 향하진 않았다.

나는 후안 병사를 만나 붉은 곰 용병단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후작가 영지에 있는 용병단 조사를 우리 영지의 병사에게 부탁하다니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다행히 후안 병사는 이번에도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뭔가 전생에서 보았던 아이의 탐정 놀이를 지켜보는 어른의 인자한 미소가 스쳐 지나간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방에 돌아오자, 아드리아의 하녀가 와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초대 카드가 들려 있었다.

"티 파티 초대?"

"네. 시몬 님과의 차 모임에 같이 참석해 주시길 바라십니다. 내일 행사에 관해 묻고 싶은 것이 있으시답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하녀는 초대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이유를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태껏 나를 부른 적도 없었고 내일도 시몬 형과 놀러 가는 것뿐인데, 티 파티에 나를 부를 이유가 없었다.

'들러리로 부른 건가? 괜히 가서 시몬 형 눈치만 봐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고, 저녁 식사 전에 티 파티를 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나는 간단하게 씻고, 하녀를 따라갔다.

그녀의 응접실은 예상대로 깨끗하고 담백했다.

시몬은 방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이렇게 될 것 같더라니. 점심 식사도 속이 부대끼는 시간이었는데, 차 맛도 무척이나 떨떠름할 것 같았다.

"어서 와요."

아드리아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생각과 달리, 이 티 파티의 주인공은 시몬이 아니라 나였다.

"조금 전에 비앙카에게서 들었어요. 오늘 마르틴 오빠와 만났다면서요?"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나를 티 파티에 부른 진짜 이유를 말했다.

"저희 영지로 올 때도 마르틴 오빠와 같이 왔다면서요. 시몬 공자님이 말해 주지 않아서 몰랐어요."

그녀가 시몬을 흘겨보자, 시몬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하기야 골수 귀족인 시몬이 다른 귀족 가문의 서자 이야기를 꺼낼 리가 없었다.

아무튼 그녀는 배다른 오빠에 대해 알고 싶어서 나를 부른 것이었다.

그런데, 다소곳한 그녀의 모습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1년 만에 성격이 바뀔 리도 없으니 내숭이라는 건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제가 많이 어리잖아요."

내 말에 아드리아가 말을 뚝 멈추었다.

그녀는 슬쩍 시몬을 쳐다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녀도 전부 응접실을 나갔으니 우리 말고는 들을 사람이 없었다.

곧이어 그녀의 얼굴이 실룩거리기 시작했고, 시몬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녀는 내숭을 포기했다.

"푸하! 정말 반말해도 되지? 참느라 혼났네."

반말하라고 했지, 누가 내숭을 그만두라고 했나.

솔직히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긴 했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다니.

나야 원래 성격을 알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깜짝 놀랐을 게 분명했다.

아, 맞다. 놀란 표정을 해야지.

"많이 놀랐어? 이게 원래 내 성격이야. 시몬 님도 알고 나서 많이 놀라셨지."

그녀의 말에 슬쩍 시몬을 바라보자, 시몬은 어두운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며칠 만나는 동안 시몬에게 이미 들킨 모양이었다. 하기야 나한테도 이렇게 금방 털어놓는데, 며칠 동안이나 참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약혼이 깨진다고 어른들이 요조숙녀 흉내를 계속 내라고 얼마나 닦달을 했는지 몰라. 시몬 님께 들키면 약혼이 취소될 거라고. 그러면 1년 내내 방 안에 갇혀서 꽃꽂이와 예절 수업만 주야장천 들어야 한다나?"

그녀는 시몬을 보며 씩 웃었다.

"하지만, 전부 틀린 소리였지 뭐야. 시몬 님도 내숭인 걸 알고 놀라기는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니까. 좋은 분이야."

그녀의 말에 시몬도 마주 웃었다. 그는 어둠이 내려앉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아쉽게도 아드리아는 시몬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라서 그녀의 본성을 받아 준 게 아니었다.

지금 시몬의 얼굴에는 고뇌가 묻어나고 있었다.

왜 이런 성격의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아니 좋아하는 여자가 어떻게 이런 성격인지, 도무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거기다 아드리아가 말한 '좋은 분'이라는 말은 무척이나 안타깝게 들려왔다.

좋은 분. 좋은 사람.

전생에는 솔로인 남자들이 아는 여자 사람들에게 항상 저런 소리를 들어 왔다.

나도 몇 번이나……. 아니, 아니, 지금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우울한 얼굴로 아드리아를 바라보는 시몬에게 위로를 보냈다.

'첫사랑은 다 그런 거라네. 브라더.'

잠깐의 소란이 지나가고, 응접실의 분위기는 전보다 훨씬 편안해졌다.

나도 놀란 표정을 지우고, 그동안의 일을 아드리아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마르틴을 만난 장면부터 그와의 대화, 그리고 대련까지.

아드리아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마르틴을 만난 장면에서는 놀라워했고, 그가 한 말을 기억에 담으려 했으며, 그와 대련했다는 말에 눈을 반짝였다.

어라, 대련 이야기는 뺄 걸 그랬나.

어쨌거나 그녀는 오래전에 헤어진 친오빠의 이야기를 듣는 얼굴이었다.

하긴 그녀는 저번 삶에서도 마르틴이 일을 벌였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 했었다. 지금 표정을 보니, 어렸을 때부터 무척 친하게 지냈었던 모양이다.

"마르틴 님과 사이가 좋았었나 보군요."

"응. 다른 형제들하고는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나하고는 정말 잘 지냈어. 집을 나간 뒤에 소식을 듣지 못해서 걱정이 많았어."

오케이, 드디어 원하던 질문을 꺼낼 때가 되었다.

"마르틴 님은 무슨 일로 영주 성을 나간 건가요? 각성도 하신 것 같은데……."

"알렉스!"

내 질문에 시몬이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쓸데없는 걸 묻지 말라고 주의를 시키는 것이다.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 준 게 고작 혼내려고 부른 거라니.

다시 봐도 정말 멋진 형이었다.

"아, 말하면 안 되는 건가요? 같은 서자라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했어요."

말을 하면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늦기 전에 열심히 써먹어야 했다. 이제 몇 년만 지나면 효과는커녕 되레 역효과가 날지도 몰랐다.

아드리아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시몬을 쳐다보고, 나를 바라보았다.

한쪽은 약혼을 위해 온 사람이고, 다른 쪽은 그의 동생이자 자신의 오빠와도 처지가 같은 서자.

그녀는 다시 한번 방 안을 둘러보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르틴 오빠가 집을 나가게 된 건 오빠의 상속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서인 이유도 있었지만, 결국 오빠의 여동생 때문이었어요."

그녀 입에서 후작가의 비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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