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제25편 여행의 인연 (1)
옆 영지와의 경계로 삼은 숲 외곽에서 마물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젠장, 중급 마물이다!"
"윽! 그쪽으로 간다!"
"뒤로 빠져! 기사님들이 상대하실 거야!"
"마나도 못 쓰면서 나대지 마!"
병사들이 방패로 마물들의 공격을 받아 내자, 기사들이 달려가며 외쳤다.
쾅! 쾅!
뒤이어 부서지고 터지는 소리.
시몬과 나도 급하게 마차에서 내렸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두 분 다 저런 걸 보는 건 처음이시죠?"
뒤따라 내린 총집사가 우리에게 물었다.
"저게 마물인가?"
시몬이 기사들과 싸우는 것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들개, 아니 늑대인가.'
크기가 소형차만 해 들개는커녕 늑대로 보기도 어려웠지만, 생긴 것은 늑대를 많이 닮아 있었다.
아마 멀쩡했으면 커다란 늑대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기사들과 싸우는 두 마리 괴물들은 마물이라고 불릴 만했다.
반쯤 벗겨진 피부. 벗겨진 피부 아래로 드러난 근육에는 검붉은 피가 진흙 타르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머리와 가슴 같은 부위는 근육마저 파헤쳐져 뼈가 드러나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게임에서 보던 좀비견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크기는 몇 배나 컸지만.
'어떻게 살아 있는…… 아니,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근육이 아니라 뼈만 연결된 상태로 움직이는 곳도 있을 정도였다.
기어 다니기도 벅차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마물들은 기사들을 상대로 열심히 날뛰고 있었다.
"언데드 울프다! 짐승형 언데드 대응 진형을 갖춰!"
우고 기사가 다른 기사들에게 소리를 쳤고, 기사들은 마물들을 상대하면서 빠르게 자리를 이동했다.
잠시 뒤, 언데드 울프라고 불린 마물들은 기사들이 만든 원형진에 갇히게 되었다.
설마 저게 언데드 마물인가? 마물에 관해 설명한 책이 그림책이 아니어서 이런 모습일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고름이 좀 있고, 무섭게 생긴 돌연변이를 생각했건만.
초대형 좀비견이라니, 이건 완전히 판타지 괴물이었다.
이래서야 스켈레톤 같은 건 정말 뼈다귀만 남은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내가 검을 들고 입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는 해골 군단을 상상하는 사이, 시몬 형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이미 검을 손에 들고 있었다.
"참가하실 겁니까?"
뒤에서 지켜보던 기사단장의 말에 시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을 상대할 기회잖아. 놓칠 수 없어."
잠시 고민을 하던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조심해 주십시오."
기사단장은 앞을 향해 소리쳤다.
"왼쪽 놈은 시몬 공자님이 상대할 거다! 진형을 재조정해!"
"알겠습니다."
기사단장의 말에 우고 기사가 대표로 대답했다.
우고 기사의 지시로 진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물들이 계속 날뛰었지만, 차츰 거리가 벌어지더니 따로 포위망에 갇히게 되었다.
각각 다섯 명의 기사가 마물들을 포위했고, 시몬이 왼쪽 포위망 안으로 들어섰다.
"괜찮을까요?"
나는 기사단장 옆에 서서 그에게 물었다.
기사들이 포위망을 만든 채로 잘 싸우고 있었지만, 괴물에게 큰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휘두른 검은 마물들의 피부를 잘라내고 근육에 상처를 입혔지만, 이미 굳어진 피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괴물들의 움직임도 달라지지 않았다.
굵은 나무도 한 방에 잘라 버리는 기사들인데, 썩어 버린 것 같은 근육과 뼈를 잘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병사들이 창을 휘둘렀을 때는 상처도 안 났었나?'
그런 괴물을 시몬 형이 상대한다니 다른 기사들이 도와주겠지만 많이 위험할 텐데…….
기사단장이 내 물음에 답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만나기 드문 중급 마물이지만 괜찮을 겁니다. 혹시 미겔에게서 못 들었습니까?"
"무얼요?"
"쯧."
기사단장이 나지막이 혀를 찼다. 미겔이 뭔가 빠뜨린 모양이었다.
나중에 혼나게 될 미겔에게 위로를…….
"그럼, 지금 보시죠. 왜 귀족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무뚝뚝한 말투에 분노와 서글픔이 느껴진다면 내 착각이었을까?
기사단장의 표정을 확인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시몬은 반쯤 썩어 버린 거대한 늑대 앞에 서서 검을 치켜세웠다.
다른 기사들과 치받던 마물이 시몬을 쳐다보았다.
크아아앙!
늑대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뼈만 남은 턱을 벌려 으르렁거렸고.
곧이어 시몬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아악.
그 순간, 시몬의 검이 빛났다. 은은한 하늘빛. 검에 마나를 씌운 것이다.
하지만, 기사들도 마찬가지로 검에 마나를 씌운 채 싸웠었다.
마나를 씌운 덕분인지 병사들보다 상처를 많이 입혔지만, 치명상을 내지는 못했는데…….
시몬은 전혀 겁먹지 않고 있었다.
죽기 전에 보았던 표정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기사단장도, 기사들도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늑대는 입을 가득 벌린 채로 시몬에게 달려들었고, 시몬은 언데드 울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위험!
시몬이 소형차 크기의 늑대에게 뒤덮어 버렸다. 시몬의 머리는 늑대의 머리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서걱!
하지만, 다음 순간 늑대 머리가 기우뚱하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몸은 그대로 있고 머리만 떨어져 나간 것이다. 잘린 목에서 썩은 피가 꿈틀거리며 올라왔지만, 바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쿵!
뒤이어 머리를 잃은 언데드 울프의 몸이 반대쪽으로 쓰러졌다.
맙소사.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저렇게 강했다고? 분명 특별하지 않은 검이었는데. 저 정도면 기사 몇은 쉽게 이길 거 같았다.
하지만, 저번 삶에 보았던 시몬도, 지금 마물을 쓰러뜨린 시몬도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기사단장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기사단장은 전과 달리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귀족들이 가진 상속 능력은 대전쟁 때 마왕을 무찌른 용사들의 능력을 물려받은 겁니다. 지금에서야 피가 옅어져서 약해지고, 일부만 물려받게 되었지만, 마왕이 이끌었던 마족과 마물들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여러 가지 초능력을 가지게 된 히어로 같은 사람들을 용사라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 용사들은 대마왕, 대마족 특화 병기였나?
"마왕과 마족이 돌아간 지금도 남은 마물에게는 충분히 효과적입니다. 그 피를 쥐꼬리만큼 이은 저도 이렇게 기사단장을 하게 된 거고요."
무뚝뚝한 말 사이로 슬쩍 자괴감이 느껴졌다.
"공작님도, 시몬 공자도 저희 왕국의 시조이신 카를로스 용사의 마나 심법을 가지고 계시죠. 사람들을 상대할 때도 훌륭한 심법이지만, 마물 상대로는 몇 배 이상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일격에 목을 날릴 수 있었던 건가?
아직도 시몬은 마물 앞에 서 있었다. 첫 사냥의 흥분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쓰러진 마물 앞에 서서 빛나는 검을 들고 서 있는 시몬의 모습은 꽤나 멋져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에는 환호성을 질러 줄 어린 소녀들이 없었다.
시몬이 무게를 잡는 사이, 다른 마물도 슬슬 마무리되는 중이었다.
내가 다른 싸움을 지켜보자, 기사단장이 물었다.
"알렉스 님도 싸워 보시겠습니까?"
다리 하나가 날아가 버린 마물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나도 제대로 못 다루는데요. 어차피 곧 정리될 것 같고요."
내 말에 기사단장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함정이 깔려 있었다.
내 주제를 아는지, 시몬에게 숨기고 있으라는 말을 기억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었다.
솔직히 내 마나가 통하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괜히 여기서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쾅!
그때였다.
숲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반쯤 삭아 버린 늑대. 또 다른 언데드 울프였다.
울프는 멍하니 서 있는 시몬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포탄처럼 쏘아지는 언데드라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나는 급하게 검을 던졌다.
팽그르르!
회전을 주어 던진 덕분에, 검은 언데드에 박히지 않고 검면으로 언데드의 몸을 때릴 수 있었다.
텅!
제때 마나를 실은 덕분일까. 검면에 부딪힌 언데드가 살짝 옆으로 밀려났다.
전생이었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마나를 쓴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마나 만세였다.
"헉!"
옆을 스치는 언데드에 시몬은 기겁을 했다.
멋졌던 모습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어린 소녀가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쿵.
어느새 달려 나간 기사단장이 바닥에 나뒹군 늑대에게 검을 휘둘렀다.
푸학!
뭔가 제대로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늑대의 머리가 박살이 났다.
"우와!"
나는 놀라 입을 딱 벌렸다.
아니, 쥐꼬리만 한 능력이라며!
시몬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그도 무척이나 놀란 모양이었다.
저게 쥐꼬리면 시몬은 정말 약한 거 아냐?
내가 그런 의심을 하는 가운데, 기사단장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는 머리가 박살이 난 마물을 살펴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죽었던 놈인데……."
그게 무슨 말이지? 언데드면 당연히 죽은 놈이잖아.
내 표정을 본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설명했다.
"제 검으로는 이렇게 부술 수 없습니다. 이리로 날아오기 전에 이미 망가진 마물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언데드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나무들 사이에 건장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덩치에 안 맞게 단정한 얼굴의 남자였다.
그는 가죽 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커다란 중검을 들고 있었다.
용병인가?
그는 미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거기까지 날아가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기사단장이 성큼성큼 걸어 내 앞에 섰다.
"귀족이십니까?"
기사단장은 먼저 그것을 물어봤다.
기사 혼자서 상대하기 어려운 중급 마물을 죽여서 날려 버린 남자였다. 아니, 죽이는 와중에 날아간 것일까?
아무튼 그 정도 실력자가 평범한 용병일 리가 없었다.
"귀족이긴 한데……. 가문에서 쫓겨났습니다. 땅도 가문도 없으니 평민으로 봐도 됩니다."
무슨 소리지? 귀족이면 귀족이지 가문에서 쫓겨났다고 평민이라니.
나는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기사단장은 아니었다.
기사단장은 나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남자를 바라보았다.
"혹시…… 서자입니까?"
"네! 덕분에 평민과 다를 바 없답니다."
아, 그래서였나?
서자라니,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을 보게 될 줄이야.
"흥!"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몬은 자신이 놀란 것에 성질이 났는지 마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미 사과를 받았으니, 그의 성격에 화를 내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어, 도련님이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인데, 다시 사과해야 할까요?"
"괜찮습니다."
남자의 물음에 기사단장이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네요. 도련님이 깔렸는지 알고 깜짝 놀랐어요. 어려 보이는 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는 나를 보며 칭찬을 했다.
"덕분에 저도 살았어요. 겁이 나서 냉큼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니까요."
내가 없었으면 시몬이 저 죽은 마물에 깔리고, 남자는 열심히 도망쳤으려나?
전에도 느꼈지만, 나 때문에 달라진 상황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사이, 다른 마물도 정리가 되었다.
네 개의 다리가 다 잘려 나간 뒤, 장작을 패듯이 몇 번이나 머리를 패어 잘라낸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나는 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말해도 되는 건가?
"이에로 후작가에 갑니다."
말해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단장의 말에 남자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무척이나 밝은 표정이었지만, 슬금슬금 불안이 떠올랐다. 뭐지?
"어, 그럼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그는 정말 기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쫓겨났지만, 이에로 후작가는 제 집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