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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8화 (18/563)

제18화

제18편 나들이를 하러 갑니다 (2)

"어서! 마차로 돌아가야 합니다!"

도무지 숨기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긴 검을 들고 비앙카가 소리쳤다.

검을 든 순간, 그녀는 일행의 리더가 되었다. 고위 귀족 자제들을 이끄는 하녀라니.

평상시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검을 쥔 그녀의 기세에 우리는 모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비앙카는 우리가 봐도 웬만한 기사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후작가에서 몰래 키운 기사일까? 아니면 숨겨진 귀족일까?

어느 쪽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몬마저도 그녀의 지시를 잘 따랐다.

우리는 남은 벽과 기둥들로 미로처럼 변한 요새 내부를 달려갔다.

비앙카를 제외하고는 다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일행 모두는 평범한 어른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유적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가죽 갑옷을 입은 평범한 남자였다.

그는 검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찾았다! 여기 있……. 컥!"

그의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가까이 다가간 비앙카가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서걱!

가슴에서 피가 솟구치고, 비앙카는 피를 뒤집어쓰며 계속 달렸다.

"멈추지 말아요!"

그녀는 뒤에도 눈이 달린 것 같았다.

시몬과 아드리아가 움찔하는 기색을 바로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소리를 들은 것일까? 안타깝게도 요새를 다 벗어나기 전에 다시 공격을 받게 되었다.

"죽어!"

식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검을 든 남자가 무너진 벽 뒤에서 튀어나왔다.

비앙카가 지나간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아드리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비앙카가 몸을 돌릴 시간이 없었지만, 아드리아 앞에는 시몬이 있었다.

공작가가 자랑하는 후계자 시몬은 침착하게 달려오는 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달려드는 자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것 같았지만, 기사에게서 제대로 배운 어린 귀족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캉!

습격자의 검이 튕겨 나갔고, 습격자는 검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후욱, 후욱.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나한테 덤빈 거냐!"

시몬은 쓰러진 남자를 향해 거칠게 외친 뒤에 몸을 돌렸다. 한 수에 적을 쓰러뜨린 덕분에 무너진 자존심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돌아서는 그의 모습은 다시 자신만만한 공작가 후계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를 보는 비앙카와 아드리아의 입에서는 칭찬이 나오지 않았다.

"위험해요!"

"위험!"

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소리쳤고, 시몬은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푹!

그리고 시몬은 엎드린 채로 단검을 던지려던 남자를 보게 되었다.

녹색으로 번들거리는 단검이었다.

하지만, 바로 던져질 것 같았던 독 단검은 남자의 손을 떠나지 못했다.

대신 그의 입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있었고, 엎드린 남자 등에는 검이 깊게 박혀 있었다.

"대련이 아닙니다.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합니다."

나는 방금 남자의 등에 박아 넣은 검을 뽑으며 말했다.

그륵. 그륵.

검을 뽑자, 습격자가 마지막 숨을 내뱉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검을 휘둘러 피를 털었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고개를 드니, 사람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앙카는 안심을 한 얼굴이었고, 아드리아는 나를 보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설마 또 대련하자는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시몬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시체와 나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죽였어?"

뜻밖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 아직 실전을 해 보지 못하셨군요."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었으니 내 살인에 저런 표정이 된 것이다.

하지만, 비앙카도 적을 죽였는데 급하게 지나가느라 잘 보지 못했나?

"너도 처음이잖아! 집에만 있었으면서!"

어라? 시몬 말대로였다.

죽기야 여러 번 죽었지만, 남을 죽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피 묻은 검을 보고, 시체를 다시 쳐다보았다.

흠…….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심장도 그대로였고, 공포를 느끼거나 구토가 올라오지도 않았다.

역시 첫 살인의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안전해지면 그때 떠오르려나?

그것도 아니면 너무 죽음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뭐, 지금은 계속 움직여야 하니 충격이 없는 편이 좋았다.

"지금 그런 것은 따질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빨리 움직이죠."

내 말에 일행은 정신을 차렸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는 비앙카, 후위는 나. 아드리아와 시몬은 중앙.

좀 전처럼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진형을 갖춘 일행은 요새 밖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멀쩡하지? 실수했어. 내가 죽였어야 했어."

앞에서 시몬의 중얼거림이 들려왔지만, 그리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바람결에 흘려버렸다.

요새를 빠져나오자, 이쪽으로 달려오는 기사가 보였다. 한차례 싸움이 있었는지 갑옷에 피가 튀어 있었다.

"무사하셨군요! 유인은 성공했습니다!"

유인이라니. 역시 이번 나들이는 꿍꿍이속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후작의 딸을 미끼로 삼은 거지?

달려오던 기사는 시몬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시몬 공자님이 왜 이곳에……."

"역시 말 안 하셨던 거군요."

비앙카의 말에 기사가 일행을 살펴보았다.

피를 뒤집어쓴 비앙카의 옷을 보고, 내 칼에 피가 튄 것을 확인했다.

피 묻은 내 칼을 보고 슬쩍 표정이 변했지만, 그것에 대해 따로 말을 하지는 않았다.

"벌써 습격이 있었던 모양이군. 시몬 공자님이 계시면 계획대로 일을 진행할 수 없소."

"네. 알고 있습니다. 계획은 취소입니다. 빨리 돌아가죠."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자신 때문에 일이 틀어진 것을 안 시몬은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를 위로할 시간은 없었다.

기사는 품에서 크지 않은 쇠막대기를 꺼냈다.

그는 쇠막대기를 치켜들었고, 쇠막대를 든 손에 마나를 집중했다.

쇠막대기가 점점 붉게 변했다.

그리고,

퍽! 슈우우웅!

막대기 끝이 폭발했고, 폭발과 함께 붉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저건 분명 마나로 화약을 터트려 하늘로 쏘아 올린 것이다.

화약 폭발을 추진력으로 쓰는 신호기라니.

아니, 화약도 있는 동네였나? 도대체 문명 수준이 어떻게 되는 세계인 거야?

"신호를 보냈으니 지원이 올 겁니다. 서둘러 마차로 갑시다."

기사의 말에 따라 우리는 유적 아래로 달려갔다.

* * *

같은 시각.

공작은 집무실에서 기사단장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기사 열을 주변에 배치하고 후방에 중대 규모의 병사를 준비시켰습니다. 추적을 위해 용병들도 배치를 마쳤습니다."

기사단장의 보고를 들은 공작이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절대 후작가 영애가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하네. 확실히 주지시켜 놓았지?"

"네. 여러 번 숙지시켜 놓았습니다."

자신에 찬 기사단장의 말에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문제없겠군."

공작의 대답에 기사단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안전하더라도 아드리아 영애를 미끼로 내놓은 일입니다. 거기에 알렉스 공자도 있고."

"알렉스 공자라……."

공작의 말에 기사단장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성실하고 실력도 좋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능력을 무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공작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그 아이는 만약을 위한 담보이네. 그 나이에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놀려 둘 수는 없지."

기사단장은 차가운 공작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드리아를 미끼로 내놓는 한이 있어도 이번에 끝장을 내야 해. 이에로 후작가와 그레시아 공작가가 연합을 하려면 이 정도 위기는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어야 하고."

기사단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소문보다 더 왕국의 정세가 어지러운 모양이었다.

두 세력가의 결혼을 신부를 죽여 방해하려고 하는 세력이 있고, 공작과 후작은 신부를 미끼로 내놓아 그 세력을 잡을 생각을 하다니.

평화로울 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사정은 그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저도 자리에 가 보겠습니다."

기사단장이 집무실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보고입니다."

병사 하나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공작이 나가려는 기사단장을 멈춰 세웠다.

"방금 옆 영지, 테네리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주일 동안 우리 영지를 향해 출발한 용병대가 둘입니다. 마지막 용병대는 4일 전에 출발했다고 합니다."

병사의 말에 공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둘? 그중에 우리 영지로 들어온 용병대가 있었나?"

"일주일 동안 새로 들어온 용병대는 없습니다."

"란사로테 쪽에서 온 용병대는 하나였지?"

"네."

"그럼, 중간에 사라진 용병대가 셋이라는 건가?"

적 규모를 용병대 하나나 최대 둘을 생각하고 준비한 계획이었다.

공작이 검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 있는 인원이 용병대 셋을 막을 수 있나?"

공작의 물음에 기사단장이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용병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용병으로 위장한 것이라면 어렵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십 대 소녀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용병대 셋을 동원하다니.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일까요?"

기사단장의 말대로 영지전이라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공작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 인원이라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을 텐데……."

누가 벌인 일인지 들키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는 정치적으로 치명타를 입을 게 분명했다.

"설마, 들켜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공작은 떠오른 생각에 표정을 굳혔다.

그는 바로 기사단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병력은 전부 대기 상태지?"

"네!"

"계획은 취소한다. 가까이에 있는 병력을 바로 합류시키고, 지원병을 보내!"

"네!"

"경계수위를 최대로 올리고, 후작에게 전령을 보내서 상황을 알려!"

"알겠습니다!"

공작은 방을 나서며 계속 지시를 내렸다.

"나도 갈 테니 말을 준비시키도록."

"네!"

보고했던 병사가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노인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총집사였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작이 걸음을 멈추었다.

급한 분위기를 눈치 못 챌 노인이 아니었다. 평범한 일이었으면 말을 꺼낼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지?"

"시몬 공자님이 아침부터 보이지 않습니다."

"시몬이?"

그를 멈춰 세울 일은 아닌 것 같았지만, 총집사의 말에는 불길한 느낌이 흐르고 있었다.

"알아보니, 아드리아 아가씨가 탄 마차에 몰래 타신 것 같습니다."

총집사의 말에 공작이 눈썹을 실룩였다.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공작의 몸에서 마나가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근처에 있던 고용인들의 표정이 창백해지는 순간, 기사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신호탄이!"

기사단장은 창문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쪽으로 나 있는 창문.

멀리서부터 붉은 연기가 차례로 솟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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