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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7화 (17/563)

제17화

제17편 나들이를 하러 갑니다 (1)

현관 앞에 마차가 와 있었다.

가문 문장이 멋들어지게 그려진 마차였다.

마부석에는 가죽 갑옷을 입은 병사 둘이 앉아 있었고, 고용인들이 마차 뒤에 여러 물건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달래고 있는 기사 한 명.

'역시 공작가인가.'

짧은 나들이였지만, 준비는 제대로였다.

저택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만 하고 있어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레시아 공작가는 왕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가였다.

지금도 대단한 권력을 지닌 대귀족. 그런 가문의 첫째 아들이 나들이를 간다는데 대충 준비할 리가 없었다.

'그런 것치고는 오히려 검소한 준비이려나?'

하지만, 멀리 가지 않는데 과한 경호를 하는 것도 좀 이상했다.

'하지만,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닌걸.'

플로라에게 인사를 한 뒤 마차에 오르자, 이미 마차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마차 안에는 시몬 형과 약혼녀 아드리아, 아드리아의 하녀가 앉아 있었다.

"고용인은 더 없습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몬 형이 항상 데리고 다니던 고용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경호도 충분하고, 내가 오지 못하게 했다."

시몬 형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역시나 말 섞기도 싫은 것 같았다.

의아한 대답이었지만,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검을 옆에 세우고 자리에 앉았다.

"그럼 오늘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녀에게 묻자, 아드리아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마요르카 요새! 그리고 방어 성벽도 보고 싶어!"

뜻밖의 요청이었지만, 아드리아다운 말이기도 했다.

"메테나 시에는 커다란 시장이나 아름다운 신전도 있습니다. 도시 중앙에 있는 광장도 멋지고, 신전 첨탑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노을도 아름답습니다만……."

시몬 형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지만, 아드리아는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대전쟁 유적을 제일 먼저 보고 싶어요."

시몬 형은 그녀의 말에 아쉬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아무래도 그레시아 공작의 첫째 아들은 약혼녀에게 몹시 휘둘리는 모양이다.

'좋을 때다.'

파릇파릇한 청소년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살짝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아드리아가 나를 쏘아보았다.

"왜 그런 이상한 웃음을 짓는 거야! 아빠가 짓는 웃음과 비슷하잖아. 너, 이상해!"

이런, 떠올린 생각이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잠깐 딴생각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미안할 건 없는데……."

내 사과에 그녀는 우물쭈물했다.

그녀와 말을 나누자, 시몬 형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왜, 저 녀석한테는 말을 놓는 겁니까? 말을 놓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맞다. 그랬었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말해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정중하게 대하잖아! 왜 나한테만 반말하는 건데?

"아! 그러네요."

아드리아는 놀란 눈이 되었다.

설마, 자신도 몰랐던 건가?

"왜 그랬지? 음……. 나보다 어려서? 아니, 집에 있을 때부터 소문을 많이 들었기 때문일까요? 처음 볼 때부터 왠지 낯설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아드리아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 아니, 죄송해요. 화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깨닫자마자 사과라니. 역시 심성은 나쁘지 않은 듯했다. 이제 나하고 관련만 안 된다면 천사로 봐줄 텐데…….

"아니, 괜찮습니다."

나도 그녀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시몬 형이 끼어들었다.

"으흠, 그렇다고 바로 말을 올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친하게 말을 나누는 것을 보고 끼어들었으면서 이번에는 말을 높여 주자 그게 또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인가. 역시 어린애들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드리아도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전처럼 편하게 대해 주시면 됩니다."

"응!"

아드리아가 환하게 웃었고, 시몬은 무척이나 복잡한 얼굴로 아드리아를 바라보았다.

저택의 정문을 빠져나온 마차는 바로 시내로 향했다.

저택은 영지의 중심 도시인 메테나 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택 북쪽으로는 넓게 둘러쳐진 숲과 산맥이 적들을 막아 주었고, 남쪽으로는 메테나 시의 넓은 시가지가 펼쳐져 있었다.

시가지 너머로는 시가지를 크게 두른 높은 성벽이 보였다. 메테나 시를 보호하는 외성이었다.

시 북쪽의 고급 주택가를 지나, 시몬 형이 말했던 도시 중앙의 광장을 지났다.

"이 광장은 영지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서쪽에는 중앙 시장이 있고, 동쪽에 보이는 첨탑이 있는 아름다운 건물은 신전입니다. 대주교께서도 아름다움에 몹시 감탄……."

항상 예의를 지키고 점잖은 시몬 형이었지만, 지금은 들뜬 소년일 뿐이었다.

그는 마차 주변으로 스쳐 지나가는 경치를 열심히 떠들었고, 아드리아의 하녀와 나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관광객처럼 그의 설명에 열심히 고개를 돌렸다.

아쉽게도 아드리아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한참을 떠들던 시몬 형이 결국 말을 멈추었다.

아쉬웠다. 조금만 듣는 척 좀 해 주지. 이런 가이드 구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저택 밖으로 거의 나와 본 적 없었던 나는 거리의 모습이 무척이나 새로웠다.

뒷골목이 아니라서 그런지 도시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활기찼다.

뭐, 전생에 살았던 현대 도시의 깨끗함은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책에서 보던 말똥으로 뒤덮인 중세 도시는 아니었다.

거기다 공작가는 이 도시의 영지민들에게 꽤나 인정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차가 지나가자, 사람들은 마차의 문양을 보고 몸을 피한 뒤 바로 고개를 숙였다.

두려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도 많았지만, 진심을 담아 인사를 올리는 사람도 꽤 많았다.

영지의 주인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진심으로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공작은 영지민의 인망을 꽤 얻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뭐.

전생에도 가정을 버리고 존경을 받는 위인들은 많았다.

위인이든 어쨌든, 공작을 인정하고 용서해 줄 마음은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광장을 지나 대로를 가로지르니, 높은 성벽이 다가왔다.

낮이라 그런지 성문은 열려 있었고, 한쪽에서는 성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사람들을 정리하던 병사들은 공작가의 마차를 보자 경례를 붙였고, 줄을 서던 사람들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당연하게도 검문은 없었다. 기사의 얼굴을 확인한 병사들은 길을 비켜 줬고, 마차는 성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마요르카 요새는 남쪽 성벽을 지나 마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목장 사이로 난 길을 지나 낮은 언덕을 올라가니 반쯤 무너진 건물이 보였다.

마요르카 요새.

용사들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마왕과 싸웠다는 대전쟁 때의 유적.

이곳에서 용사들과 연합군은 마왕군과 건곤일척의 혈투를 벌였고, 승리한 뒤에 두 명의 용사가 다시 돌아와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는 건국 신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다.

뭐, 지금은 전쟁의 흔적만 남은 황량한 폐허일 뿐이지만.

문화재 보호를 하는 세상도 아니어서 유적은 폐허만 남게 될 뿐이었다.

병사들은 유적 아래에 마차를 세웠다.

기사는 요새 주변을 살피기 위해 말을 몰고 떠났고, 일행은 마차에서 내려 유적으로 향했다.

병사들이 마차를 지키는 것을 보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작의 영지는 왕국 내에서도 안전하기로 이름 높은 곳이긴 했지만, 시몬도 있는데 안전에 신경을 너무 안 쓰는 것 같았다.

뭐, 같이 움직이는 일행 전부가 웬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이긴 했지만.

"와! 이곳이 바로 그 마요르카 대결전이 있던 요새란 거죠?"

아드리아는 감격한 얼굴로 유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몬 형은 여러 번 와 본 듯했다. 그는 주변 구경보다는 약혼자의 옆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아드리아의 하녀는 마차에 있을 때와 달리, 굳은 얼굴로 주변을 살피는 중이었다.

무너진 유적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절대 관광객의 표정이 아니었다.

역시 그녀는 하녀가 아니라 경호원이었다. 아니, 하녀 일도 잘하니 경호원 겸 하녀이려나.

무너진 건물 더미를 피해 가며 안쪽으로 들어가니 아직 남아 있는 벽들과 조각들이 보였다.

그 시절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아드리아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 여기 남은 벽에 벽화 흔적이 있어요."

"아, 그건 말이죠. 원래 이 요새는……."

내가 보기에는 그냥 쓸린 흔적 같았지만, 시몬 형은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역시 다음 대를 이을 공작의 후계자다웠다. 그는 검술 말고도 뛰어난 지식과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은 연애 사업에 그 힘을 온통 쏟는 중이었지만, 공작가의 앞날은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슬슬 물러나야겠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자리를 비켜 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아드리아의 하녀에게 눈짓했다.

경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거리 정도로. 물러서자고.

그녀도 금방 이해했고, 그녀와 나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대충 무너진 벽들로 시야가 가려지고, 시몬의 음성이 작게 들릴 정도 떨어진 곳.

그리고 주변이 잘 보이는 벽 위로 그녀와 나는 올라왔다.

"요새 주변도 잘 보이고, 이 정도면 괜찮겠죠?"

내 말에 하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이름을 못 들었군요."

"비앙카입니다. 하녀에 불과합니다.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정말 하녀에 불과한가요?"

내 말에 비앙카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간을 벌어 보려는 계획은 물 건너갔으니,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비앙카는 신기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또,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말했던 걸까?

"천재라더니, 들었던 것 이상이네요."

아니, 도대체 어떤 소문이 났던 걸까.

"곧 아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리고 언제나 하셔야 하는 일은 다르지 않아요."

"경호 말인가요?"

"네. 잘 부탁드려요."

알아도 경호는 같다라……. 그렇다면?

"경호 대상인 아드리아 양이 위험하다는 겁니까? 그런 것치고는 경계가 너무 허술한데?"

내 말에 비앙카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생각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어진 생각에 조금씩 톱니바퀴가 맞아 들어갔고, 머릿속에서 뭔가 떠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지막 순간에 방해를 받았다.

스스스스.

차가운 바람이 몸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칙칙했던 유적의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았다.

등을 타고 무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

죽기 전에 몇 번이나 느꼈던 그 느낌이 점점 강해졌다.

'공기가 바뀌었다!'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나는 급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비앙카와 눈이 마주쳤다.

비앙카도 굳은 얼굴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비앙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시몬과 아드리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반만 남은 조각상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 잘되고 있었던 걸까? 우리 두 사람의 난입에 시몬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시몬의 연애 사업 지원은 다음으로 미룰 때였다.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비앙카가 먼저 시몬에게 물었다.

"공자님을 보호하는 기사님들은 어디 계시죠?"

"나를 보호하다니? 무슨 소리지?"

비앙카는 시몬의 말에 인상을 썼다. 그녀는 뭔가 떠올렸는지 급하게 다시 물었다.

"따라온 고용인도 없고……. 설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오신 건가요?"

설마? 말도 안 돼. 저 시몬이 남들 몰래 왔을 리가…….

"……그게 왜?"

몰래 온 거냐!

"마차를 탈 때 다른 사람들이 봤을 텐데요. 기사님도 계시고 병사들도 있었습니다만."

내 말에 비앙카가 고개를 저었다.

"그분들이 오기 전에 마차를 탔어요. 다른 사람들은 못 봤을 거예요."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 표정을 보았는지 시몬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상관없잖아! 약혼자 혼자 나들이를 보낼 수는 없잖아!"

훌륭하게 자란 공작가 장남은 아직 사춘기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원래 이 나들이는 아드리아 혼자만의 나들이였다.

어라, 왜 혼자 나들이를 보낸 거지? 시몬을 일부러 떼 놓기까지 하면서?

의문이 드는 사이, 아드리아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습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아드리아가 검을 뽑아 들었다.

"역시,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괜찮아.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아빠한테 들었어."

그녀는 비앙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제는 알려 줄 수 있는 거지?"

나도 정말 듣고 싶었다.

"일이 끝난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바로 저택으로 돌아가셔야겠습니다. 일이 좀 꼬였습니다."

비앙카가 시몬을 보지는 않았지만,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짐처럼 말하지 마!"

그녀의 말이 시몬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시몬은 벌게진 얼굴로 검을 뽑았고, 나도 한숨을 내쉬며 검을 쥐었다.

알 수 없는 일에 휘말렸는데 일까지 꼬이다니.

몇 년 무사히 살아왔는데, 이제 다시 고난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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