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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6화 (16/563)

제16화

제16편 형의 약혼자가 왔습니다 (2)

"봐. 금방 만났지?"

손님용 응접실 중앙에 서서 밝게 웃는 소녀를 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루 만에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더구나 종일 붙어 다녀야 했다.

"알렉스입니다."

"응. 오늘부터 잘 부탁해. 안내 겸 경호 담당자님?"

"안내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경호는 모르겠지만 안내라니. 서재와 방, 연무장만 뺑뺑이 돌았던 내가 누굴 안내하는 것은 무리였다.

"안내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사정을 아는 플로라가 옆에서 거들어 주었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만난 지 1분도 안 되었는데, 벌써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온종일이라니.

도대체 언제까지 같이 다녀야 하지?

"방문 일정은 어떻게 되십니까?"

"방문 일정?"

시몬의 약혼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갸웃거리는 모습은 꽤나 볼만했지만, 짜증이 가득한 지금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쯤 집으로 돌아가시는지를 묻는 겁니다."

내 말에 소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나랑 같이 있는 게 싫다는 이야기인 거야?"

음. 의외로 눈치가 좋군.

"네."

내 말에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를 쳐다보던 그녀가 잠시 뒤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너, 정말 재미있어. 너 같은 애는 처음이야."

쩝, 짜증이 나서 될 대로 되라고 질렀는데, 오히려 흥미를 돋운 모양이었다.

"응응, 잘됐다. 시몬과 다르게 같이 다니면 재미있겠어."

소녀는 정말 즐거운 얼굴로 내 물음에 대답했다.

"나도 잘 몰라. 아버님이 일이 끝나면 부르겠다고 하셨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니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끙, 역시 도움이 안 되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일이 끝나면 부른다라……. 그럼 지금은 공작가에 와 있어야 하는 일이 있다는 소리인 걸까? 아니면 후작가를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긴 걸까?

'설마?'

뭔가 기분 나쁜 촉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정보가 부족했다.

아니, 뭔가 알아차려도 달라질 게 없었다.

'딴생각 말고 내 일이나 하자.'

"그럼, 오늘은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그냥 방에서 책을 읽으면 좋을 텐데. 응접실에서 다과회도 좋고.

"그럼, 바로 가자!"

내 생각과 달리 그녀는 응접실 문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어라? 그러고 보니 그녀는 드레스를 입고 있지 않았다.

워낙 화려해서 몰랐는데,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드레스가 아닌 기사단 정복. 여성 기사들이 입는 옷이었다.

"첫 안내는 연무장으로 부탁해! 어제 못 한 결투, 아니 대련하자!"

결투라니……. 속마음이 나와 버렸다. 아무리 봐도 그녀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어선 게 분명했다.

이건 분명 중2병이었다.

"빨리 와. 그리고 알렉스! 날 아드리아라고 불러!"

먼저 복도를 나서며 그녀가 말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아드리아의 뒤를 따랐다.

연무장에 도착하자, 개인 훈련을 하던 기사와 종자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모아졌다.

"와, 여기가 그레시아 공작가의 연무장이구나. 그럼, 너도 여기서 훈련을 받는 거야?"

물론 내가 훈련을 받는 곳은 이 연무장이 아니었지만, 윗사람의 허락 없이 공작 일가의 연무장에 아드리아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아드리아가 연무장을 두리번거렸다.

몇몇 기사가 연무장을 찾아온 그녀와 나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니, 눈살을 찌푸린 것은 나 때문일 게 분명했다.

다행히 뭐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사 몇 명이 그녀를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른 기사에게 수신호를 했고, 기사들 모두가 슬금슬금 연무장에서 벗어났다.

"어라, 내가 연습을 방해한 거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아드리아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돌아가시죠."

냉큼 말을 꺼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빨리 대련하자! 너도 사람들이 없는 편이 좋을 거잖아."

아무래도 '공작가의 숨겨진 검'이라는 소문을 진짜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진짜면 대련을 해 줄 리가 없잖아.

이건 민폐 캐릭터인지 순진한 캐릭터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더는 피하기가 어려웠다.

이곳까지 오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 보았지만, 실력을 보여 주지 않으면 경호도 받지 않겠다고 해 버리는 바람에 이제 다른 핑곗거리를 대기도 어려워졌다.

솔직히 나도 궁금하기는 했다. 그동안 대련 상대는 미겔 기사뿐.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바람에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경호를 위해 가져온 진검은 플로라에게 건네주고, 비치된 목검을 들었다.

아드리아는 벌써 검을 들고 자세를 잡고 있었다.

"대련 형식은 어떤 식으로 할까요?"

"죽으면 패하는 거로!"

나는 그녀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아니, 나를 죽이고 싶은 건가? 목검으로 생사결이라니. 도대체 목검으로 얼마나 패야 사람이 죽으려나.

"하……. 그냥 평범한 대련으로 하죠."

"그럼 재미없잖아."

아니, 사람을 죽이는 거로 재미를 느끼는 쪽이 이상한 거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플로라 옆에 서 있는 하녀를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말없이 아드리아를 수행하던 하녀였다.

"따로 말 안 해도 아시겠지만, 대련 중에 호위를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하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호위라니?"

그리고 아드리아는 의아한 얼굴로 나와 하녀를 바라보았다.

아드리아는 모르는 건가? 그녀의 실력을?

나도 알아보기가 어려웠으니 아드리아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용인에게 실력을 숨기는 하녀라니. 아무래도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흥, 실없기는."

아드리아는 입을 삐죽 내밀었고, 나는 검을 들어 올렸다.

좋아. 이렇게 된 바에 제대로 대련해 줘야겠다. 대련을 해 달라고 한 것은 저쪽이었으니 나중에 울고불고해도 내 책임은 아니었다.

나는 자세를 잡고 아드리아를 바라보았다.

차분한 그녀의 자세와 정갈한 호흡,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기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중2병은 아니었네. 제대로 배운 검술 실력이야.'

하긴 보통 귀족도 아니고, 후작이 자신의 첫째 딸을 생각 없이 검을 마구 휘두르고 다니는 망나니로 키울 리는 없었다.

귀족가 여식에게 제대로 된 검술을 가르쳤다는 이야기인데.

아! 그럼 상속 능력인가?

이에로 후작가의 상속 능력이 뭐였지?

……머릿속을 뒤져 보았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서재 안에 있는 책과 서기관들에게 들은 정보만으로는 왕국 귀족들의 상속 능력을 모두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사실 신경을 안 쓴 거였지만.'

공작가와 주변 귀족들에만 신경 쓰느라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의 허술한 준비에 혀를 차고는 다시 아드리아에게 집중했다.

'대충 뛰어난 종자급쯤 되려나.'

기사를 수발하는 같은 나이대의 종자들과 비교해도 그녀의 실력은 뛰어나 보였다.

다만, 내가 한눈에 실력을 알아보는 것인 만큼 나와는 꽤 차이가 났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상속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후작가 첫째 딸에게 검을 쥐여 줄 정도의 능력이었다.

무슨 능력인지 모르는데 먼저 달려들 수는 없었다.

나는 선수를 양보하기로 했다.

"오십시오."

10살짜리 아이가 꺼낸 말에 소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간다! 조심해!"

그녀는 크게 외쳤고,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번쩍.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니, 그녀의 모습을 놓치고 만 것이었다.

쳇!

그녀의 모습을 놓치는 순간, 나는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캉!

"우악! 막았어?"

검을 휘두른 곳에는 목검으로 내 검을 막은 아드리아가 나타나 있었다.

"가속 계열입니까?"

"와, 알고 있었어?"

"조금 전까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막은 거야? 설마 보였어? 상속 능력이 눈이 잘 보이는 그런 쪽인 거야?"

눈이 잘 보인다니, 그런 능력도 있는 건가?

"잘 보이진 않았습니다."

마나의 움직임을 느꼈고, 다가오는 기척에 반사적으로 검을 가져다 댔을 뿐이었다.

"끙, 역시 막혀 버리면 엄청 아프네."

그녀는 뒤로 휙 물러서며 검을 잡은 손을 털었다.

기사급 신체를 가진 나도 충격을 받았는데, 나보다 육체적으로 약한 그녀는 상당한 통증을 느꼈을 게 분명했다.

"아직 끝이 아니야."

아드리아는 검을 움켜쥐더니 다시 달려들었다.

다른 사람보다는 빨랐지만, 이번에는 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캉! 캉!

나는 그녀의 검을 하나하나 막아 냈다.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그녀의 검 정도는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다.

"큭! 이것도 막아 봐!"

의외로 그녀와의 대련은 꽤 재미있었다.

항상 약자의 위치에서 바득바득 덤벼 왔는데, 처음으로 반대편에 서니 왠지 모를 개운함마저 느껴졌다.

미겔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미겔에 대한 고마움이 사르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여러 번 검을 맞대니 아드리아의 상속 능력을 알 것 같았다.

나처럼 육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 마나를 이용한 신체 가속 능력이었다.

아직 능력이 완성되질 않아 가속, 감속의 제어도 불안정했고, 준비가 되질 않으면 최고 속도도 내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제대로 성장하기만 한다면 대단한 검사가 될 것 같았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시몬 형과 약혼을 시키는 거겠지.'

최고의 마나 심법을 지닌 시몬 형과 대단한 가속 능력을 가진 아드리아.

둘의 약혼은 두 가문의 결속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둘이 낳을 자식에 대한 기대도 가득 담겨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히 온 거지? 다시 의문이 치솟았다.

"너, 일부러 막고만 있는 거지? 막지만 말고 공격해!"

계속 막고 있는데, 아드리아가 버럭 소리쳤다.

"너무 공격이 빨라서 막기도 벅찹니다."

"거짓말 마! 지금도 여유롭게 대답하고 있잖아!"

이런, 들켜 버렸다.

좀 더 대련을 이어 가고 싶었는데 들켜 버렸으니 이제 끝을 내야 했다.

나는 차분히 검을 막아 낸 뒤, 공격 사이의 틈을 이용해 목검을 내질렀다.

퍼억!

검이 그녀의 몸을 때렸고,

"꺄악!"

아드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그녀가 튕겨지는 모습은 대련 때마다 내가 날아가는 모습과 무척 닮아 있었다.

이렇게 지켜보는 처지가 되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애처로웠는지 알 수 있었다.

아드리아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 버렸고, 그녀 옆에는 어느새 아드리아의 하녀가 다가와 있었다.

"어, 언제 거기로 가셨어요?"

플로라가 놀란 눈으로 텅 빈 옆자리를 쳐다보았다.

살짝 실력을 보인 건가?

살짝 던진 떡밥을 냉큼 물어 버린 것을 보니, 하녀는 계속 자신의 실력을 숨길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급하게 아드리아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에 맞은 순간 기절해 버렸지만, 멀리서 본 것과 다르게 상처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게 상처를 낼 리가 없었다.

필요에 의해 과하게 공격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공작가의 손님. 그것도 시몬 형의 약혼자를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심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봐주면서 공격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실제로 대련 때마다 아등바등 덤비기만 했으니, 핑계로는 그만이었다.

좋아. 계획대로였다.

저렇게 기절해 버렸으니 적어도 며칠은 방 안에서 푹 쉴 게 분명했다.

꽁해서 경호를 바꿔 달라면 더 좋고.

보면 볼수록 이번 일은 단순한 경호가 아니었다. 이렇게 위험해 보이는 일은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게 좋았다.

거리를 두지 못한다면 시간을 벌어야 했다.

적어도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하녀가 아드리아를 업고 저택으로 향했고, 나는 플로라에게, 그리고 어머니께 한참 동안 혼이 났다.

기쁜 마음으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내 눈앞에 시몬 형의 약혼자가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드리아는 생각보다 훨씬 몸이 튼튼했다.

젠장, 좀 더 세게 두들겨 패는 건데.

속으로 투덜거리는 동안, 그녀는 신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는 정말 최고였어! 정말, 소문 이상이었어. 그리고 오늘은 영지 나들이야!"

영지 나들이? 저택 밖으로 나간다는 소리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몰래 온 것 아니었어?

황당한 소리에 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저택 밖은 거의 모릅니다. 안내는 무리입니다."

10살이 되도록 저택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아드리아가 나보다 공작가 영지에 대해 더 잘 알지도 몰랐다.

"안내는 내가 할 거야. 넌 멀리서 따라오면 돼."

그녀 옆에서 더 황당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몬 데 그레시아. 공작의 첫째 아들이 약혼자와 같이 나들이를 가겠다고 그녀 옆에서 무게를 잡고 있었다.

화사한 소년, 소녀가 나란히 서 있으니 절로 한 폭의 그림이었지만, 왜 거기에 내가 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행을 가는 애인 사이에 낀 친구도 아니고, 신혼여행을 따라가는 시동생인 거냐!

"공작님이 허락하셨으니 바로 준비해서 내려오도록."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는 말을 남기고, 두 사람은 현관으로 향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집무실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이런 때 나들이 허락이라니, 공작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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