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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4화 (14/563)

제14화

제14편 결자해지(結者解之) (2)

밤사이 내 방에서 벌어진 활극은 조용히 묻혔다.

아는 사람은 나와 공작, 총집사와 어머니뿐이었다.

어머니도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공작이 암살자에게서 나를 구해 준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날 밤, 공작이 내 방을 나선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는데, 다음 날 저택에서 벌어진 일로 그 결과를 알게 되었다.

두 번째 공작부인, 마리아 공작부인이 급하게 자작가인 처가로 떠나게 된 것이다.

건강 문제 때문에 휴양차 가게 된 것이라고 했지만, 갑작스럽게 내려진 결정에 사람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 저택, 아니 영지에서 공작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크게 앓은 것같이 보이는 공작부인의 어두운 모습에 사람들은 가슴속 깊이 의문을 묻어 두었다.

공작은 집무실 창 앞에 서서 앞마당에 서 있는 마차를 쳐다보았다.

마차 주변에는 갑자기 길을 나서게 된 공작부인을 배웅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동안 공작부인이 저택의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을 받아 온 만큼, 마차가 서 있는 곳에는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배웅 나와 있는 것 같았다.

고용인들은 물론이고, 첫째 부인과 그 아들들도 함께 나와 있었고, 첩인 아만다도 아들과 함께 멀찌감치 서서 그녀를 배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딸 엘레나는 그녀의 앞에 서서 계속 울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정말 몸이 안 좋은지 그녀의 딸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달라진 그녀의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그녀를 배웅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집무실 창 쪽을 한 번 바라본 뒤,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뭔가에 놀란 것처럼 급하게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가 출발했다.

급하게 여행길에 오른 행렬이었지만, 공작부인의 이동인 만큼 제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화려한 마차 앞뒤로 경비병들이 마차를 호위했고, 기사가 앞에 서서 일행을 이끌었다.

마차가 화원 사이의 길을 지나 저택의 정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마차는 점점 멀어져 갔다.

공작은 멀어지는 마차를 보며 입을 열었다.

"편지에 적어 놓았지만, 자작에게 다시 한번 경고를 하도록. 마리아는 앞으로 자작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엘레나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제대로 주지시켜."

"알겠습니다."

공작 뒤에서 총집사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데 공녀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공작이 대답하기도 전에 밖에서 어린 소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공작님! 저 왔어요! 제발 들여보내 줘요!"

공작이 고개를 돌렸다.

"들여보내도록."

"알겠습니다."

총집사가 문을 열어 주었고, 눈물로 범벅이 된 엘레나가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왜 엄마가 나가는 거죠? 엄마는 어제도 안 아팠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나한테는 왜 아무도 말 안 해 줘요."

공작은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딸의 얼굴은 조금 전 저택을 떠난 마리아와 무척이나 비슷했다.

정신을 차리기 전 보았던 마리아의 모습과.

어제 보았던 마리아의 얼굴이 딸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그녀는 침실을 찾아온 공작을 보고 무척이나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셨군요! 안 오실 줄 알았어요!"

정말 진심으로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환한 얼굴을 보자, 공작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그녀는 아직도 공작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는 달랐지만, 그녀의 미소는 처음 만났을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세요. 이런 제가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네요."

그녀는 그때와 다르지 않았지만, 공작이 그때와 달라져 있었다.

공작은 그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마나로 그녀의 능력을 깨뜨렸을 때 느꼈던 감정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날, 그녀에 대한 사랑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상대방의 사랑은 소유욕이 범벅이 된 욕망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공작은 숨이 막혀 더 이상 그녀 옆에 있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공작은 그녀의 방을 찾지 않았다. 낮에 만날 때도 공적인 관계만 유지했고, 최대한 그녀를 멀리했다.

그는 마음을 닫고 가면을 뒤집어쓴 채로 공작의 삶을 이어 온 것이다.

다만, 공작은 그녀를 벌하지 않았다.

자신을 기만한 죄가 컸지만, 공작은 자신이 그녀를 더 이상 찾지 않은 것으로 그녀의 죄를 용서했다.

자신의 딸을 낳았기 때문에, 이미 아내로 들였기 때문에.

아니,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나약한 결정이 오늘과 같은 일을 만들어 버렸다.

"조금 전까지 알렉스 방에 있었다."

"네?"

공작의 말에 마리아의 미소가 깨져 나갔다.

그녀는 그제야 공작의 손에 든 칼을 보게 되었다.

검을 들고 있는 그의 손에도, 검을 집어넣은 칼집에도 점점이 핏물이 묻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몇 년 전 알렉스가 독살 미수를 당했을 때, 일을 그냥 무마한 것이 내 마지막 용서였다."

공작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넋을 놓고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택 내에 암살자를 들여 내 아이를 죽이려고 들다니, 내가, 이 그레시아 공작가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나?"

공작의 말이 끝나자, 벌컥 마리아가 소리를 질렀다.

"나를 안 돌아봐 주니까!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날 멀리하는 거예요! 당신에게 사랑받기 위해 참고 또 참았어요. 화날 일도 참아 냈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웃어 줬어요. 모두가 나를 사랑해 주는데 왜 당신만이 나를 멀리하는 거죠?"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모습은 능력이 발휘되지 않아도 처절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공작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부 아만다 때문이에요. 그 꼬맹이만 죽으면 아만다, 그년을 저택에서 쫓아낼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한 건가?"

공작의 말에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 위로 차가운 공작의 말이 들려왔다.

"실수했군. 생각보다 훨씬 정신이 망가져 있었어."

그는 마리아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마리아가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공작의 눈은 차갑기만 했다.

"아니, 둘 다 망가져 버린 거겠지."

공작은 손에 마나를 주입했다.

우우웅.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힘에 마리아가 놀라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공작은 그녀의 머리를 쥐고 놓지 않았다.

"죽이지는 않으마. 하지만, 너는 이 집에 더는 있지 못할 것이다."

"이…… 이건……. 어떻게……."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마나가 그녀의 머리를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그녀의 상속 능력.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정신계 능력은 그녀의 머리 깊은 곳에 있었다.

공작의 마나는 그 깊은 곳에 있는 능력을 잘라내고 해체해 나갔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이런 게 가능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공작은, 아니 공작가의 능력은 마나 심법 중 하나일 터였다. 그가 다른 사람의 능력을 부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안 돼!"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공작의 손을 움켜잡았지만, 그녀가 기사 이상의 힘을 지닌 공작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잠시 뒤, 공작은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마리아는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이제 그 능력으로 더 이상 남을 농락할 수 없겠지. 내일 친정으로 돌아가라.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조용히 지내는 거다."

그의 말에 마리아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만일 내일부터 죽을 때까지 무슨 다른 소리가 들리면 너는 물론이고 자작가 전체가 큰 화를 당할 거다. 엘레나는 따라가지 않는다. 네가 조용히 있는다면 엘레나는 마지막까지 공녀로 남게 될 것이고, 아니면……."

마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고통과 체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옛날에 내가 사랑했던 당신이 아니군요. 지금 당신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네요."

그는 몸을 돌렸다.

마리아는 울음을 터트렸고, 공작은 문을 나서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날 변한 거지. 누구 때문에."

"흑, 흑, 흑. 엄마가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해 주세요. 저도 잘못을 빌게요."

마리아의 울음이 딸의 울음으로 바뀌었다.

공작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가 회상하는 동안, 딸은 그에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

공작은 딸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엄마의 비슷한 얼굴이었지만, 엘레나는 마리아와 달랐다.

그녀의 얼굴은 가식이 가득 찬 만들어진 얼굴이 아니었다. 엘레나는 아직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은 어린 소녀였다.

"엄마가 꼭 갈 수밖에 없다면 저도 따라갈게요. 제 능력으로 옆에서 치료해 드릴게요."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마리아는 버렸지만, 엘레나는 아직 공작가의 딸이었다.

"그렇군. 이 저택에서는 혼자 지내기 어렵겠군. 조금 이르지만, 너도 아카데미에 갈 준비를 해라."

"네?"

놀란 엘레나를 무시한 채로, 공작이 총집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침 상속 능력도 정신 회복 쪽이니 수녀회 소속 아카데미에 다니는 게 좋겠군. 연락을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총집사는 우는 딸을 데리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고, 공작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자신의 첩과 함께 걷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아기 때부터 풍파를 일으키는 아이였다.

신기한 일을 벌이는 아이. 천재로 이름이 높았지만, 천재와는 조금 다른 듯한 아이. 아이답지 않게 자신과 거래를 하는 아이.

그리고 특별한 상속 능력을 지닌 아이였다.

"자, 이렇게 나를 고생시켰으니 이제 네 쓸모를 스스로 증명해 봐라."

공작은 차가운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고, 아이는 귀가 가려운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긁어 댔다.

* * *

두 번째 공작부인이 저택을 나간 뒤,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먼저, 공녀 엘레나가 교육을 받기 위해 저택을 떠나게 되었다.

아직 아카데미를 가기에는 이른 나이였지만, 공작의 지시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엘레나는 우울한 얼굴로 저택을 나섰고, 나와 엄마는 떠나는 엘레나를 위로해 주었다.

솔직히 엘레나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잠자코 죽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미안한 마음은 가슴 깊이 묻어 둘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는 서자인 내가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기사 훈련을 받게 되었다.

저택 뒤에 있는 공작 일가의 연무장에서 남들 모르게 받는 훈련이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금세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나를 지켜보는 눈들이 늘어났지만, 나는 훈련을 따라가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 뒤로 나를 죽이려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렀고.

네 번의 겨울이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10살이 되던 봄.

저택에 손님이 찾아왔다.

아름다운 소녀였다.

후작의 딸이자 큰형 시몬의 약혼자.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검을 치켜들었다.

"네가 공작가의 숨겨진 칼이라며? 나랑 한판 붙자. 내가 한 수 가르쳐 줄게."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소녀가 꺼낸 말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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