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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3화 (13/563)

제13화

제13편 결자해지(結者解之) (1)

사각사각.

공작은 책상에 앉아 계속해서 서류를 확인했다.

어린 아들이 처음으로 아버지의 집무실을 찾아왔는데도 그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버지의 정이 그리워 찾아온 아들이라면 이런 냉담한 아버지의 반응에 울거나 화를 내며 뛰쳐나갔겠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이런 밀고 당기기는 전생에 많이 겪어 봤기에 기다리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무슨 일이냐."

드디어 공작이 입을 열었다. 눈을 들지도 않았고 펜도 내려놓지 않았지만, 이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듯했다.

"저를 죽이려는 자가 있습니다.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딱.

서류 위를 움직이던 펜이 멈추었다.

공작이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공작의 눈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나이답지 않은 아이라고 들었는데, 그 말대로군."

그의 표정과 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죽기 전에 보았던 복잡한 감정이 드러난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음 같은 차가움만이 그의 얼굴에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죽이려는 자라……. 그게 누구인지 네가 안다는 말이냐?"

"네."

내 대답에 공작의 차가운 표정이 살짝 금이 갔다.

"네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확실하지 않은 말로 남을 음해하면 그 책임이 결코 작지 않을 거다!"

공작의 묵직한 목소리가 집무실 안을 울렸다.

웅웅거리는 소리에 소름이 쫙 돋았다.

말의 내용과 말투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은 겁에 질리기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겁을 먹기에는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이 죽었다.

"책임지라면 책임지겠습니다. 저를 죽이려는 당사자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그제야 공작은 펜을 내려놓았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무표정했던 얼굴이 지쳐 보이기 시작했다.

"직접 들었다라……. 믿기 어려운 소리를 하는군."

그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마치 과거의 한 자락을 더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는 세수하듯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을 떼자, 살짝 허물어졌던 얼굴이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믿기는 어렵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너를 보호해야 하지?"

어이가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일종의 테스트 같긴 했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 별로 없던 정이 아예 먼지가 되어 사라질 지경이었다.

절로 대답이 딱딱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흠. 너도 각성했다 이거냐."

그는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이 말했다.

"육체 최적화 능력이라면 꽤 관심이 가는 상속 능력이지만, 아직 그 능력인지도 확실하지 않아. 그 능력이 맞더라도 내 생각만큼 성장할지 어떨지 알 수도 없고."

처음 말과 달리 그래도 꽤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공작이 관심을 가지는 능력이고 잘하면 생각보다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라…….

단서를 조금 더 얻은 건가.

공작이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그걸로는 인력을 낭비해야 할 이유로는 부족해."

공작이 다시 펜을 들었다.

완전히 관심을 잃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역시 관록이란 걸까. 갑이 저러니 진심이든 아니든 패를 다 깔 수밖에.

탁탁탁.

나는 집무실 한쪽에 서 있던 갑옷으로 다가갔다.

전시용으로 세워져 있는, 반짝이는 판금 갑옷이었다. 사람처럼 전시된 갑옷은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스르릉.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다행히 검은 잘 뽑혀 나왔다.

하지만, 예상보다 무거웠다. 휘청이는 검을 억지로 들어 올리고 공작을 바라보았다.

공작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운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없었지만, 황당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나이가 어리지 않았다면 검을 든 순간, 공작이 달려와 내 목을 베었을지도 몰랐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 세상은 꽤 무서운 곳이었다.

예의를 지킨다는 귀족이나 왕실에서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뭐, 나를 죽이려는 사람이 명목상으로는 어머니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따지면 별반 다를 게 없긴 했다.

"몰래 검술이라도 배운 걸 보여 주려는 거냐? 테스트 내용은 전부 들었다."

허접하게 검을 휘두르면 바로 두들겨 맞고 내쫓길 분위기였다.

하지만, 난 다른 것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가 모르는 것.

나는 몸속 깊숙한 곳에 숨겨진 힘을 일깨웠다.

움직여!

꿈틀.

작은 힘이 깊숙한 곳에서 솟아올랐다. 나는 솟아난 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와 눈으로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방식대로 이번에는 손으로, 그리고 검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역시 어려웠다. 하지만, 느렸지만 마나는 내 말을 들어주었다.

팔을 통해 손으로,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마지막에는 검으로 흘러들어 갔다.

우우우우웅.

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으악!"

검이 마구 튀어 나가려고 했다. 필사적으로 검을 잡고 있었지만, 이래서야 검을 휘두르기는커녕 잡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철검이 목검보다 마나를 더 잘 받아들인다는 말만 믿었는데, 이런 문제가 있을 줄이야!

"됐다! 거기까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떨리는 검을 잡고 있는데 공작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억지로 밀어 넣던 마나를 멈추고, 검에 기댄 채 공작을 바라보았다.

공작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나를 얻은 건가? 언제부터지?"

"테스트 뒤에 느꼈습니다."

"따로 훈련법을 배운 게 아니고?"

"네."

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중얼거렸다.

"테스트 후라……. 그럼 상속 능력으로 얻었다는 건가?"

"모르겠습니다."

"아니, 너한테 한 말이 아니다."

생각을 더듬던 그는 어느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마나를 얻고 만난 건가?"

만난 대상을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네. 마나를 움직이게 되자, 공작부인에 대한 호감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에 대화를 나누다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앞뒤도 다르고 알게 된 방법도 조금 달랐지만, 그리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

내 말을 들은 공작은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게 그렇게 쉽게 벗겨지는 거였나……."

공작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피곤하고 지친 중년 남자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 씌워져 있던 가면이 지금 완전히 벗겨져 있었다.

나는 계속 기다렸다.

시간이 지났다. 한참 동안 멍하니 있던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지만, 그 표정은 조금 전과는 달라 보였다.

"보호는 언제부터? 언제 죽이러 올 것 같았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 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하나 거래 상대에게 할 만한 말이었다.

전보다는 나아진 것일까?

그래도 다행이었다. 공작이 내 말을 받아들였다.

"당장 필요합니다. 오늘 밤에 올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나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직 마지막 요청이 남아 있었다. 제일 중요할지도 모르는 요청이었다.

"실력자가 필요합니다. 정기사 두 명 이상, 아니면 수석 기사급이 필요합니다."

기사단장이 와 주면 좋겠지만, 그가 나 같은 서자를 경호할 리가 없었다.

나는 긴장한 얼굴로 공작을 바라보았다.

내가 봐도 어이없는 요청이었다. 6살짜리 아이가 뭘 안다고 자신을 경호할 기사를 고르다니. 치기 어린 아이의 요청이라고 무시하기 딱 좋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미겔처럼 암살자에게 썰려 나갈 뿐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망했다.

"기사들을 이런 집안일에 쓸 수는 없지.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방으로 돌아가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집무실에서 쫓겨났다.

* * *

해가 떠오르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깊은 밤.

서자 알렉스의 방도 반쯤 어둠에 잠겨 있었다.

끽. 끼익.

달빛에 걸려 있던 창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창은 지루할 정도로 조금씩 열렸고, 잠시 뒤 열린 창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소리 없이 들어왔다.

창가에 내려선 그는 방 안을 훑어보았다.

탁자와 의자, 옷걸이와 선반, 그리고 침대.

침대를 본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급하게 벌인 일은 거절하는 게 맞는 거였어. 귀찮게 되어 버렸잖아."

그가 바라보는 침대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침대에 앉아 있는 사람의 그림자는 어린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복면인은 빠르게 방을 다시 훑어보았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방 안의 가구들 안에도 어른이 숨어 있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복면인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쩝, 제대로 된 기사를 등에 달고 도망가기는 쉽지 않을 테고,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가. 기사 하나라니."

복면인은 검을 뽑았다. 검게 칠해진 검을 그는 옆으로 늘어뜨렸다.

그와 함께 방 안의 기세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흡.

침대 밑에 숨어 있던 나는 넘쳐나는 마나에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어, 거기 있었던 거야? 일을 마무리할 수 있겠네. 나도 악운이 꽤 좋잖아?"

복면인은 전과 달리 말이 많았다. 다른 사람인가? 목소리는 같은데…….

마나를 움직이자,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침대 옆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복면인을 바라보았다.

왜 말이 많아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 맺혀 있었다.

침대에 앉아 있던 인영이 몸을 일으켰다.

파팍.

몸을 짓누르던 마나가 사라졌다. 아니, 다른 마나에 밀려나 버렸다.

"기사급 이상의 암살자라……. 확인해 봐야겠군."

인영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자, 은은한 달빛에 얼굴이 드러났다.

저택의 주인이자 영지의 주인인 공작의 얼굴이 달빛에 드러났다.

"제길! 악운이 좋은 게 아니었잖아! 일을 어떻게 한 거야?"

복면인은 고함을 지르며 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공작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복면인이 창에 도착하기도 전에 공작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복면인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복면인이 휘두르는 검은 스스로 발광하듯이 빛을 뿌렸지만.

콰직!

공작의 검과 닿자마자 마치 꾸겨지듯 접혀 버렸다.

복면인의 검과 달리 공작의 검은 아무런 빛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어두운 방 안에서도 검 주위 공기가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내 검을 막아 내다니 실력이 좋군. 이 정도 실력의 암살자라면 고문으로도 입을 열지 않겠지."

공작은 다시 검을 휘둘렀고, 복면인도 빠르게 다른 손을 휘둘렀다.

푹!

복면인의 손에서 단검이 쏘아졌다.

동시에, 복면인의 목이 잘려 나갔다.

복면인이 던진 단검은 침대를 거의 뚫을 뻔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미리 다른 곳으로 피해 있었지만, 복면인의 발악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공작은 내가 있는 곳을 힐긋 바라본 뒤에 입을 열었다.

"뒷정리하도록."

"알겠습니다."

공작의 말에 총집사가 문가에서 대답했다.

그가 언제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역시 총집사쯤 되면 숨기는 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엄마에게 보내도록."

암살자가 죽었으니 미끼 역할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에게 보내라고 하는 걸 보니, 쇳물이 흐르는 인간은 아닌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총집사가 나를 바라보았고, 나도 공작을 쳐다보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일이 마무리되려면 공작의 확답을 받아야 했다.

공작이 검을 쥔 채로 잠시 서 있었다.

그는 다시 누워 있는 목 없는 시체를 보았다.

잠시 뒤 공작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고 아만다에게 가거라. 오늘 정리될 거다. 내일부터는 널 죽이려는 사람은 이 저택에 없을 거다."

피 묻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공작은 방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지 나도 총집사도 묻지 않았다.

갈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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