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제12편 범인을 찾았습니다 (2)
마리아 공작부인이 맞는 걸까?
아름다운 얼굴도 그대로였고, 미소도 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전처럼 따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이 마치…… 억지로 만든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왜 그러니?"
나를 보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는 거니?"
이제 그녀의 얼굴에 더 이상 미소가 보이지 않았다.
내 얼굴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했다.
지금도 머리와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힘과, 전과 달라 보이는 그녀의 모습.
그리고 다들 알지 못하던 그녀의 상속 능력.
나는 이제 어떻게 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어볼 정도로 날 죽이려 한 범인이 누구인지 확신이 들었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날 죽이려는 거죠?"
그녀의 표정이 살짝 금이 갔다.
"무슨 소리니?"
"제가 태어난 뒤로 계속 저를 죽이려고 하셨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공작부인의 표정이 계속 변했다.
불안과 의심, 고민과 깨달음.
마리아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설마, 내 능력을 막아 낸 거니?"
역시 예상대로였다. 내가 그녀를 좋아했던 것도, 모든 이들이 그녀를 좋아한 것도 그녀의 상속 능력 때문이었다.
"역시 상속 능력이었나요? 엘레나 누나가 상태 이상 치료 쪽이었으니 이비사 자작가가 정신 계열 능력일 테고, 그렇다면 공작부인은 호감을 높이는 능력을 가진 건가요?"
마리아는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어린아이로 보지 않았다.
"똑똑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작게 중얼거리던 그녀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똑똑하다고 내 능력을 막아 낼 리가 없어. 어떻게 막은 거지?"
나에게 물었지만,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설마 각성한 상속 능력이 그쪽이었나? 아닌데. 분명 신체 강화라고 했는데."
혼자 고민을 이어 가던 그녀는 결국 자기만의 결론을 낸 듯했다.
"너도 안드레 아들이란 거냐?"
공작의 아들이라. 역시 공작은 그녀의 능력에서 벗어나 있었던 건가.
"아냐. 브리비아의 아들들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반쪽인 네가 어떻게……."
그녀의 말에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좋아하던 사람의 진실된 속마음을 듣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았다.
그녀의 혼잣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말을 멈춘 사이 내가 입을 열었다.
"공작님은 그 능력에서 벗어난 거군요. 처음에 사이가 좋았던 것도 그 능력 때문이었고……."
내 말을 끊고,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냐! 능력 때문이 아냐! 그이는 정말 날 사랑했었어! 아만다! X녀 같은 네놈의 어미 때문이야! 그년이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은 거야!"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눈에는 내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하지만, 듣는 나로서는 황당한 소리일 뿐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갈 곳 잃은 자신의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토해 내다니.
그 탓에 타깃이 된 나에게는 그녀의 말이 그저 멍멍이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게 거짓이었군요. 나와 어머니에게 친절하게 대한 것도,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뭐, 날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은 습관이 되어 있었으니까. 날 좋아해 주는 것도 즐겁고, 너희 모자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내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비웃는 얼굴로 줄줄이 늘어놓던 그녀가 문득 표정을 바꾸었다.
"하아……. 너무 흥분했어. 어린애 앞에서 이성을 잃다니……."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공기가 다시 일렁거리며 그녀의 미소가 따스하게 나를 감싸려 했지만, 뭔가 효과를 보기도 전에 딱딱한 미소로 돌아갔다.
"방금 있었던 일은 잊어버리렴. 잠깐 화가 나서 마음에 없던 말을 한 거란다."
자신의 능력이 먹히지 않게 된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그녀는 따뜻한 말 뒤에 바로 협박을 이어 갔다.
"어차피 서자인 네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괜히 분란을 일으키면 네 엄마한테 피해만 갈 거야."
그녀는 그것으로 일을 무마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러려고 이렇게 일을 벌인 게 아니었다.
지금도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공작부인은 날 죽일 마음이 가득했다.
언제 암살자가 올지 알 수 없게 된다면 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럴 수야 없지. 이번에는 내가 시기를 정할 생각이었다.
자, 슬슬 화를 북돋아 볼까.
"부인의 말씀처럼 아무도 신경 안 쓸 수도 있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몇 번이나 죽을 뻔했잖아요. 태어날 때부터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을걸요?"
내 말에 그녀는 비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흥, 그걸 누가 기억한다고."
나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가리켰다.
"제가 기억하고 있어요."
"말도 안 돼. 그걸 기억하고 있다고?"
그녀의 비웃는 표정은 내 이어진 말에 확 바뀌었다.
"기억하다 뿐이겠어요? 살기 위해 열심히 울고, 음식을 뱉어 냈죠."
마리아는 눈을 크게 뜬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괴물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걸 네가 알고 한 거라고? 젖도 안 뗀 아기가?"
그때의 고생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기 노릇은 정말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난 그녀를 향해 몸을 숙였다. 손을 입에 올리고,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모르셨어요? 사람들이 저를 '천재'라고 부르잖아요."
내 비웃음이 잘 전해진 것 같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테스트도 잘 치렀어요. 내일부터 저택 뒤에 있는 연무장에서 '혼자' 훈련을 받게 될 거예요."
내 말에 공작부인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 연무장이 어떤 연무장인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공작 일가만 사용할 수 있는 연무장.
그 연무장을 내 형제들을 제치고 나 혼자 사용한다는 것은 내가 공작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만저만한 특혜가 아닌데?'
말을 멈추고 공작부인을 살피는 동안,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쨌거나 꽉 쥔 그녀의 주먹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고,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 말이 제대로 먹힌 것처럼 보였다.
슬슬 마지막 한 방을 날릴 때였다.
"내일부터 공작님이 '직접' 참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공작님이 제 말을 들어 주실지는 내일 되면 알겠죠."
물론, 공작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지난번 삶에서 공작이 찾아온 적이 있었으니 테스트에서 더 실력을 보여 준 지금은 더 빨리 올 가능성이 컸다.
아무튼 공작을 만난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빠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앞에 앉은 여성이 처음 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노와 혐오가 범벅이 된 얼굴.
그 얼굴에 조금씩 공포가 떠올랐다.
자, 이제 떠날 때였다.
"그럼, 오늘 다과는 즐거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와 하녀들이 귀엽다고 좋아하던 인사였지만, 내 앞의 여성은 내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남겨 두고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복도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자, 상처를 후벼 팠으니 이제 수습을 해야겠지.
이제 어떻게 할까.
미겔에게 갈까? 기사단장, 아니면 총집사에게?
아니,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 * *
아이가 떠난 응접실.
마리아 공작부인은 혼자 방 안에 남아 있었다.
항상 온화한 분위기의 응접실과 그녀의 모습이 지금은 시간 속에 딱딱하게 굳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와 함께 굳어 있는 그녀의 표정이 살아났다.
꽃이 피듯 미소가 피어났고, 삭막하던 응접실에 봄 향기가 나는 듯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긋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들어와요."
끼익.
문이 열리고, 남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마리아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이에게 지었던, 고용인들에게 지었던 미소와는 조금 다른 미소. 남자의 얼굴을 붉어지게 만드는 미소였다.
"네. 저번에 미루었던 일을 이제 해 주셔야겠어요."
"아, 그 서자 건이군요. 알겠습니다. 조금 이른 것 같지만, 날을 잡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아뇨. 날을 잡으면 너무 늦어요. 꼭 오늘 밤에 처리해 주세요."
남자는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일을 이렇게 성급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었었다.
"네? 너무 급하신 게 아닌지."
그의 말에 마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뇨. 돈이 얼마나 들어도, 무슨 요구를 해도 상관없어요. 제발! 오늘 밤 꼭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그녀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바로 응접실을 빠져나갔고, 방은 다시 얼어붙은 그림이 되어갔다.
* * *
오후가 지나고, 창밖에는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자신의 숙소로 물러갈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각. 플로라는 아직 내 방에서 나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무슨 일로 남으라고 하셨는지……."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에 아이 혼자 저택을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남으라고 한 거야."
내 말에 그녀는 더욱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해도 졌는데 대체 어디를 가시려고요?"
복도로 나서며 플로라의 물음에 대답했다.
"공작 집무실."
"……네?"
잠깐 멍해 있던 플로라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가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플로라는 나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고용인들이 물러난 저택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중간에 경계를 서는 경비병이 우리 두 사람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최대한 다른 사람들 모르게 공작을 만나려는 나에게는 지금의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렇게 층계를 내려가 긴 복도를 거친 뒤, 공작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집무실 앞. 총집사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충성스러운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공작이 아직 집무실에 있다는 소리였다.
그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공작님을 뵈러 왔습니다."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언제나처럼 그는 정중하게 물었다.
"약속을 잡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아직 업무가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약속을 잡아 다음에 오시지요."
정중한 거절. 하지만, 나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기다리겠습니다."
총집사의 하얀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때, 문 안쪽에서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여보내게."
역시, 공작 정도의 실력이면 복도에서 나는 소리 정도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나에게 화를 낼 수 없었던 총집사는 불쌍한 플로라를 엄하게 노려본 뒤에 문을 열어 주었다.
책과 서류들로 가득한 고풍스러운 집무실.
태어나서 처음 와 보는 집무실 중앙에 내 아버지, 안드레스 데 그레시아 공작이 앉아 있었다.
그는 갑자기 찾아온 서자가 달갑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도 그의 부정을 원하지 않았다.
지금은 비즈니스의 시간이었다.
나는 삭막한 집무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쿵.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공작과 나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