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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8화 (8/563)

제8화

제8편 훈련을 받았습니다만…… (2)

"제가 본 것은 일반 종자들의 훈련뿐이었지만, 성장하는 속도를 보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네요. 성장이 어디서 멈출지 모르겠지만, 이대로만 성장하시면 훌륭한 기사가 되실 겁니다……."

말을 마칠 무렵, 미겔의 표정은 꽤 애매하게 변해 있었다.

평민에 비해 뛰어난 능력이고 강력한 기사가 되기에는 충분했지만, 능력을 지닌 귀족에게 기사는 그리 값어치 있는 지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흠, 영지 기사나 되어 볼까?'

잠깐 그런 생각도 해 보았지만, 역시 공작가에 매여 있을 것을 생각하니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뭐, 6살짜리가 벌써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거기에다 공작이 나를 눈여겨보는 이유를 빨리 알아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쑥쑥 자라나는 실력을 최대한 키울 때였다.

그렇게 한참을 훈련하고, 쉴 때가 되었다.

때마침 저택에서 하인이 와서 미겔을 불러냈다.

"단장님이 부르신다고?"

"네."

"알았어.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쉬고 계십시오."

역시, 에프엠 유격 조교. 그냥 끝낼 리가 없었다.

그가 저택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난 플로라와 함께 나무 그늘에 앉았다.

플로라가 차와 간식을 꺼내 놓았다.

"좋다."

따스한 음료가 몸속에 스며드니 근육이 노곤하게 풀려 나갔다.

'역시 부자, 귀족이 최고야.'

아쉬웠다. 나이가 들어 저택을 나가게 되면 이런 서비스를 못 받게 될 텐데.

난 옆에 앉은 플로라에게 물었다.

"심심하지 않아?"

"아뇨. 심심하기는요. 하나도 안 심심해요."

플로라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절대 이 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하기야 내가 봐도 심심할 정도로 꿀 보직이었다.

"편해 보이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아요. 공자님의 식성에 맞춰서 음식도 준비해야 하고, 지치면 쉬실 수 있게 물수건도 준비해야 하고……."

플로라는 열심히 자기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숲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

풀들이 서로의 몸을 쓰다듬는 소리.

지저귀는 벌레와 새…….

어라.

전혀 들리지 않았다.

새 소리도,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연무장에서 격하게 움직일 때도 들려왔었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표정이 차가워지고, 늘어져 있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 아니 그렇다고 힘들다는 건 아니고요!"

변한 내 표정 때문인지 플로라가 급하게 말을 바꿨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소리가 안 들렸지?

조금 전?

아니면 한참 전부터?

젠장, 너무 긴장을 풀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옆에 놓아두었던 목검을 쥐었다. 솔직히 그리 안심이 되는 무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검을 잡으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휴우.

난 최대한 소리가 안 나게 숨을 몰아쉰 뒤, 평범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슬슬 훈련을 시작해 볼까?"

"네? 아직 기사님이 안 돌아오셨잖아요. 좀 더 쉬세요."

플로라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그럼, 플로라는 기사님을 불러올래?"

이어지는 내 말에 플로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린아이의 지시였지만, 그동안의 내 이미지 덕분인지 곧바로 내 말을 따랐다.

"그럼 쉬고 계셔요. 얼른 모셔 올게요."

그녀는 바로 연무장을 가로질렀고, 난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일어났다.

플로라는 종종걸음으로 연무장을 지나 저택으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었다.

그녀가 막 시야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누구?"

그녀는 자신을 가로막은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옷 일색의 사람이었다. 몸도, 얼굴을 가린 수건도 모두 검은색.

"플로라, 피해!"

젠장. 나는 고함을 쳤고, 놀란 그녀가 입을 벌리는 순간.

푹.

그녀의 등으로 검게 칠해진 검날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흩뿌려지는 피.

"아……."

바람이 새는 듯한 신음만을 남기고, 그녀의 몸은 허물어졌다.

검이 뽑혀 나오고, 그녀가 누운 흙바닥에 피가 고였다.

나는 플로라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검은 복면인이 나타나고 플로라가 검에 찔리는 그 순간까지 나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나타난 순간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플로라가 검에 찔리는 순간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 뒤에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훈련으로 강해지기는 개뿔. 6살짜리가 한 달 훈련으로 달라지긴 뭐가 달라졌을까.

처음 본 살인 현장에 이렇게 얼어 버릴 것을.

거기다 너무 안일했다.

별 볼 일 없는 능력을 얻었다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전담 기사를 붙이고, 가족 연무장에서 홀로 수련까지.

거기다 공작까지 등장했으니.

나를 죽이려고 했던 자가 의심을 품기에 충분했다.

별 볼 일 없는 서자가 공작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정말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쓸 만한 도구인지 확인하는 중일까.'

각성 때 보았던 공작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먹이를 노리는 섬뜩한 눈.

그 눈은 기대를 품고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이 아니었다.

저벅. 저벅.

젠장,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죽은 플로라를 넘어, 지금은 연무장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남자는 복면을 쓴 채로 마치 산책을 하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제길, 공포에 질려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니.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떠올려 봤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잠깐, 공포에 질렸는데 이렇게 냉정하게 적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 갈 수 있나?

분명 아무리 노력을 해도 팔도, 다리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은 그리고 눈동자는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

설마.

공포 때문에 움직일 수 없던 게 아니었어?

나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

꽈직.

다행히 턱은 움직였다.

입술이 터져 피가 목을 타고 아래로 흘렀다.

"아, 아."

이제 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그레시아 공작가의 연무장이다. 여기서 살인을 하다니 뒷일은 생각도 안 하는 건가?"

내 말에 천천히 다가오던 남자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멈춰 세우긴 했지만,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검을 부여잡고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구에게 사주를 받았는지, 어디 단체인지 모르겠지만, 공작의 아들인 날 죽인다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 사주한 자들도 모두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야!"

이어진 고함에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검은 복면 위에 드러난 눈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신기한 물건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역시, 허세와 유도심문은 실패했다.

검은색으로 통일한 가죽옷과 얼굴의 반을 가린 복면, 검게 칠한 검.

플로라를 먼저 죽이긴 했지만, 딱 봐도 나를 죽이려고 온 자였다.

'젠장, 플로라에게 미안한데. 다음에 더 잘해 줘야겠다.'

나는 복면인 뒤로 보이는 플로라의 주검을 보며 속으로 사죄했다.

복면인이 다시 움직였다.

칙칙한 분위기를 풍기고 실력도 대단해 보이는 복면인. 어떻게 봐도 암살범이나 청부 살인업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방금 전 눈빛에서 내가 똑똑하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암살범이 타깃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

'정보가 부족한 걸까? 아니면 자신의 실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걸까.'

대답을 듣지 않아도, 걸어오는 그의 몸에서 작은 정보들이 흘러나왔다.

훈련을 받은 단단한 몸. 오른손잡이. 은연중 배어 나오는 자신감.

내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운 검 솜씨.

하지만, 타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렇지만, 또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는 암살자.

그리고 방해받지 않을 시간까지 알고 있는 암살자.

어라? 그걸 어떻게 알았지? 미겔이 자리에 없는 시간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미겔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신이 뛰어난 걸까? 아니면 시간에 맞춰 미겔을 불러낼 수 있었던 걸까?

만약 불러낸 것이라면 미겔을 불러낸 하인을 매수한 걸까?

정보가 늘어날수록 의문도 늘어났지만, 아쉽게도 당장 의문을 풀 수는 없었다.

복면인이 점점 다가왔다.

그가 다가올수록 몸이 덜덜 떨렸다.

왜 떨리지?

공포에 휩쓸린 건가?

하지만, 아직도 내 정신은 멀쩡했다.

덜. 덜. 덜.

몸이 떨리자, 손에 든 검도 마구 흔들렸다.

그 덕분일까. 움직이지 않던 몸이 조금은 움직여졌다.

'제발 좀 멈춰!'

나는 억지로 반대편 손을 움직여 마구 떨리는 검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젠장, 마음이 꺾인 것도, 겁에 질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몸은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지금은 혼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왜 안 움직이지?

이건 심리적인 게 아니야.

그럼 뭘까. 심리적인 게 아니면 무협지처럼 살기라도 뿌리고 있는 걸까?

어라?

잠깐, 이 세상은 전생과 달랐다.

몸을 치유하는 신관이 있고, 제대로 된 연금술사가 있는 곳. 거기다 손가락에서 스파크를 튀기는 철부지 둘째 형님도 있었다.

그럼, 내가 모르는 기운이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어라? 기운? 기운에 묶여?'

그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떠올랐다. 마치 머릿속 한 부위에서 스위치가 올라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몸 주변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방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기운.

그 기운은 내 몸을 감싸고 몸 안까지 밀고 들어와 몸을 떨리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바로 앞까지 다가온 복면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복면인에게서 흘러나온 기운은 내 안에도 있었고, 풀에도, 나무에도, 공기 중에도 흐르고 있었다.

'이게 뭐지?'

처음 느끼는 감각에 휩쓸리는 순간.

저벅.

복면인의 발소리가 멈추었다.

그는 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꼬맹이답지 않게 재미있게 해 주더니 왜 지금은 아무 말도 못 하지? 뭔가 한마디 해 봐."

복면 속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눈은 덜덜 떨리는 내 검을 보며 웃고 있었다.

역시 내 몸을 굳게 만들고, 지금 또 떨게 만든 건 눈앞의 복면인이었다.

"실력도 나쁘지 않은데,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가족도 알고 있나요?"

내 말에 복면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결혼은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들이나 딸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지. 죽은 엄마는 저세상에서 이런 아들의 꼴을 보며 또 뭐라고 생각할지……."

"이 자식이, 남의 멀쩡한 엄마를……."

역시, 욕은 가족 욕이 최고였다. 냉정하던 복면인이 내 말에 바로 성질을 냈다.

그와 동시에 검은 피가 맺힌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냉정하지 못한 검.

예상대로 내 몸을 감싸던 기운도 조금이나마 흐트러져 있었다!

'제발! 제발! 움직여!'

나는 조금이나마 흐트러진 기운 사이로 내가 가지고 있던 기운을 밀어 넣었다.

어떻게 그렇게 하게 된 건지는 알지 못했다. 기운을 느끼는 순간, 가능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그리고 검이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

콰직.

난 내 몸을 감싼 기운을 뚫고 옆으로 몸을 날릴 수 있었다.

서걱.

몸을 날리는 순간, 눈앞에 피가 솟구쳤다.

젠장, 역시 한 달 훈련받은 6살짜리 몸으로는 제대로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쿵.

나는 2m 정도 옆으로 날아간 뒤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가슴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다행히 심장이나 중요 혈관이 베인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가 너무 많이 쏟아지잖아!'

당장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이대로 죽기 딱 좋은 상처였다.

더구나 통증도 슬슬 밀려오기 시작했다.

검을 휘둘렀던 복면인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피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커진 눈동자를 보니 속이 시원해지긴 했지만, 그 감정은 이내 고통으로 뒤덮였다.

"아악!"

내 비명을 들으며 복면인이 중얼거렸다.

"내 검을 피하다니. 거기다 조금 전 꺼낸 말은 날 흔들려고 한 말이었나? 고통을 참는 것도 잘하는 것 같고. 흠, 이대로 죽이기엔 좀 아까운데. 조직에서 써먹기 딱 좋아 보이는데……."

그는 아쉽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아쉽다는 말은 빈말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한번 고용되었으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프로이든가.

'결국 죽는 건가?'

난 치켜든 검을 보며 혀를 찼다.

그때였다.

멀리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기사 미겔의 목소리였다. 고함을 열심히 지른 보람이 있었다.

미겔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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