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제7편 훈련을 받았습니다만…… (1)
그가 연무장을 나서자마자, 플로라가 누워 있는 나에게 물었다.
"일어나실 수 있어요?"
"무리야. 무리."
팔은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럼 업히세요."
플로라가 조금 기쁜 표정으로 날 등에 업었다.
뭐가 기쁜 걸까?
"마지막으로 업히셨던 때가 벌써 2년 전인가요? 공자님은 나이답지 않으셔서 마님도 걱정이랄까, 아쉬움이 많으세요."
물론, 저희는 그 덕분에 편하기도 하지만요.
뒤에 작게 덧붙이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슨 말을 하든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벌써 반쯤 눈이 감겨서 이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 뒤에도 뭐라고 계속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난 이미 잠들어 버린 뒤였다.
몸은 금방 회복되었다. 통증이 가득했던 몸은 다음 날이 지나가기 전에 멀쩡해졌다.
그리고 회복된 몸은 어제와 달라졌다. 더 단단해지고 더 강해졌다.
하루를 푹 쉬는 동안, 나는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반신욕과 마사지, 그리고 다과까지. 기절할 정도로 혹사한 몸을 회복시키라는 어머니의 배려였지만, 이미 몸은 다 회복되어 있었다.
그렇게 여유로운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아침. 기사 미겔이 직접 내 방으로 찾아왔다.
"앞으로 공자님의 훈련은 제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스트만 하는 것 아니었나요?"
"훈련 겸 테스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루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능력이니까요."
공작이 직접 찾아오고, 정식 기사가 막 6살이 된 아이를 훈련시킨다라…….
테스트가 계속된다고 해도, 뭔가 기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그리고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이미 상속 능력을 얻으셨으니 말을 놓으셔도 무방합니다."
미겔의 말에 난 입꼬리를 올렸다. 말을 놓으라고 했으니, 바로 놓아 주기로 했다.
"너무 빠른 것 아냐?"
"네?"
"실질적으로 훈련을 받기 시작하는 종자는 14살. 잡일을 시키는 시종도 아무리 빨라도 7살부터 받지 않나? 난 이제야 6살이 되었는데?"
내 말에 미겔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시동부터 시작하는 것일 리도 없고, 대단하신 시몬 형도 8살부터 기사 훈련을 시작했잖아."
더구나 능력을 외탁하신 우리 둘째 공자 꼬맹이는 아직도 능력 훈련을 받고 있지 않았다.
뭐, 전기 능력 이외에는 일반 꼬맹이 그 자체이니 벌써 이런 훈련을 받기에는 무리였다.
"저도 좀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공작님의 명령입니다."
공작의 명령이라는데 할 말이 없었다.
공작은 뭘 원하는 걸까?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육체 강화 능력일 뿐인데.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걸까?
어차피 공작의 명령이니 시키는 것을 하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시에 따라야겠지. 오늘도 뒤쪽 연무장이야?"
"넵."
안심한 듯한 얼굴로 기사가 냉큼 대답했다.
꽤 순진한 기사였다. 하기야 닳고 닳은 기사들이 서자인 내 교육을 맡을 리가 없었다.
나는 기사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왕따는 아닌 것 같고, 호구 계열인가?
뭐, 어쨌거나 실력만 좋으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바로 옷을 갈아입고 그의 뒤를 따랐다.
계속 훈련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싸늘한 얼굴로 기사를 노려보았지만, 공작의 명령이라는 말에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플로라는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 식당으로 달려갔고, 어머니는 방을 나서는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기사 미겔과 나는 둘이서 연무장으로 향했고, 잠시 뒤 도착한 연무장에서 뜻밖의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아니, 예상치 못했을 뿐 충분히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네가 여기를 왜 온 거지?"
미겔과 함께 온 나를 보고 공작의 맏아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다른 기사와 함께 연무장에서 검술 훈련을 받고 있었다.
나를 보며 아래로 늘어뜨린 검날에는 푸른빛이 은은하게 흐르는 중이었다.
마나로 만들어진 검기였다.
겨우 10살짜리가 유형화된 마나를 만들다니. 직접 보고 있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역시 그레시아 공작가가 자랑하는 후계자인가.'
시몬 형의 앞에 서 있던 기사도 무척이나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지? 여기는 공작가의 연무장이다.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기사가 미겔을 꾸짖었다.
하아, 귀찮게 되어 버렸다.
여기서 내가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나도 미겔을 쳐다보았다.
미겔은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렉스 공자를 훈련시키라는 공작님의 명령입니다. 오늘 조회 시간에 단장님이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그럴 리가……."
기사의 앓는 소리에 시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그는 훈련도 내팽개치고, 저택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나름 교양을 지킨다고 뛰지 않고 있었지만, 저래서야 뛰는 것보다 보기가 더 안 좋았다.
카메라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 장면을 남기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날 확인하고 오겠다는 시몬과 기사는 연무장에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미겔 밑에서 첫날부터 박박 기기 시작했다.
미겔은 첫날 받은 훈련과 달리 계속해서 달리기를 시켰다.
그것도 나이에 맞는 달리기가 아니라, 첫날처럼 기절할 정도로 달리게 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난 매일같이 달리다가 기절을 했고, 플로라의 등에 실려 저택으로 돌아갔다.
첫날 이후 이 연무장은 내 전용 연무장이 되어 버렸다.
시몬도 다시 오지 않았고, 공작도 들르지 않았다.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나 기사, 저택의 고용인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일주일 뒤.
"헉, 헉. 원래 기사 수업이 이런 식인가? 다들 어떻게 버티는 거지?"
처음으로 기절하지 않게 된 날, 난 미겔에게 물어보았다.
미겔은 다시금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그럴 리가요. 이런 식으로 수업을 했다면 다들 못 버텼을걸요? 저 같아도 도망쳤을 겁니다."
"뭐?"
황당한 소리에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다 앓는 소리만 내게 되었다.
"그런데 왜 난 이런 무식한 방법을."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잖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난 매일같이 기절하는 순간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달리는 어느 순간.
좀 더 빨라지고, 좀 더 숨쉬기 편해지고, 좀 더 튼튼해졌다.
평범하게 몸이 튼튼해지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레벨업!'처럼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느낌?
이건 매일같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느낌이 오는 시간적 간격이 점점 길어졌지만,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네 번 느꼈으니까 4레벨이라고 해도 되려나?'
너무 힘들어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미겔 기사의 말대로 내 능력은 확실히 성장하고 있었다.
* * *
"그 아이가 가문의 연무장에서 따로 훈련을 받는다고 하던데요."
"네. 공작님도 시몬 공자님도 다른 연무장을 쓰고 계십니다."
"거기다 공작님은 그 연무장을 찾아가시기까지 했다면서요."
"첫날 하루뿐이었습니다."
"며칠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왜일까요? 뭐 때문에 그 아이에게 신경 쓰는 걸까요. 머리가 좋은 거야 소용없는 일이고, 상속 능력도 별 볼 일 없는 것이었고……."
"따로 이유를 알아볼까요?"
수하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필요 없어요. 어차피 공작님의 보호도 각성일에 끝났으니."
조금 더 두고 보려고 했는데, 공작이 그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절대 그냥 놔둘 수 없었다.
"그것보다 가문 연무장이 외진 곳이라면서요?"
"네.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숲지기와 공작가 분들 이외에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곳에서 사고가 벌어져도 다른 사람들은 알기 어렵겠군요."
"공작님이 갑자기 찾으시지 않는다면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작님은 걱정하지 말아요."
잠시 말이 멈추자, 방 안 온도가 조금 내려간 듯했다.
"사람을 구해요. 암습에 능한 자로. 적어도 젊은 기사 하나는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자로요."
"알겠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나섰고, 아름다운 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 * *
"휴우우우."
긴 숨을 몰아쉬며 쏟아지는 땀을 털어 냈다. 몸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거의 한 시간을 한계에 이를 때까지 달렸지만, 이제 더 이상 기절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이렇게 조금 쉬면 어느 정도는 회복되었다.
겨우 한 달이 지났지만, 스스로도 크게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무장을 감싼 숲에서 진한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크지 않은 연무장 덕분에 마치 숲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수고하셨어요."
대기하던 플로라가 물컵을 건네주었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나니 기다리고 있던 기사 미겔이 입을 열었다.
"이어서 검술 훈련을 시작하죠."
그의 말에 플로라가 잔을 받아 들고 연무장 외곽으로 향했고, 난 허리에 찬 목검을 뽑아 들었다.
6살 키에 맞춘 장난감 같은 목검이었지만, 어른들이 쓰는 목검만큼 튼튼했다.
미겔은 기사답지 않게 순하게 생긴 얼굴이었지만, 훈련할 때면 전생의 유격 조교가 떠오를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굴려 댔다.
전생이었으면, 아니 내가 그저 평범한 6살이기만 했어도 아이 학대로 신고를 당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플로라도 내 훈련 모습에 놀라 어머니에게 알려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굴렀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 그늘에 앉아 한가롭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난 숨을 가다듬고, 들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아무런 기교도 없이 아래로 내려치기 2시간.
말도 안 되는 횟수였고 어른도 하기 힘들었지만, 한 달 동안 훈련을 받아 온 난 충분히 버텨 낼 수 있었다.
"핫! 핫! 핫!"
짧게 기합을 이어 가며 검을 내려치자, 검 주변에 바람이 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바람이 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목검에 흐르는 날카로운 기세가 바람처럼 느껴진 것이다.
일주일간 오로지 달리기로만 일관하던 훈련은 시간이 지나자 점점 검 훈련으로 대체되었다.
지금은 검을 휘두르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아직 검술이라고 불릴 정도의 훈련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흠, 예상보다 성장이 빠르군요. 상당히 무리하고 있는데도 탈도 안 나고. 역시 귀족의 능력이려나……."
목검을 휘두르는 나를 보며 미겔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는 놀랐다는 뉘앙스로 가득했다.
"훅, 훅, 다행이네요."
비교할 대상이 없어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기사인 그가 놀라는 것을 보니 나쁘지 않은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