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제4편 천재가 되었습니다 (2)
지겨웠던 설명이 끝나고 서기관, 아니 교양 선생이 나를 보며 물었다.
"질문 있습니까?"
아쉬운 듯한,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꺼내는 말.
애매한 내 처지를 여실히 느끼게 하는 표정이었다.
난 당연히 질문이 있었다.
"서기관님의 말씀처럼 현재 대륙의 거의 모든 귀족은 각성으로 상속 능력을 얻잖아요. 그리고 저희 그레시아 공작가도 용사인 카를로스 기사의 능력을 계승하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서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만족스러운 표정.
"그런데 500년이나 내려온 능력이 어떻게 계속 계승될 수 있었나요?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아도 벌써 30세대인데, 그동안 결혼을 30번은 했을 텐데요. 그럼 카를로스 기사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확률이 거의 몇만 분의 일로 줄어들잖아요."
둘 다 귀족이라고 해 봤자 한쪽 능력을 계속 얻게 될 확률은 2분의 일.
중간에 중복해서 결혼이 여러 번 이루어진다고 해도 30번 결혼이 이어지면 결국 확률은 수백, 수천 분의 일로 줄어들 뿐이었다.
"거기에다 형제 사이에 능력이 동시에 발휘될 수도 있고 다른 쪽, 즉 어머니 쪽 능력만 나오는 형제도 나올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계속 이어 올 수 있었던 걸까요?"
근친상간이라도 계속한 걸까? 미친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서기관의 눈이 커졌다. 깔보는 듯한 표정은 완전히 사라졌고, 대신 난감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음. 그건 아직 배울 때가 아닌 것 같군요. 아마 각성 이후에 따로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뭔가 비밀이 있는 듯한 말이었지만, 저 표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멘델의 유전법칙은 아직 무리였나?
하지만, 각성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나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천 년 전까지 이 세상은 전생인 지구의 중세 유럽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세상을 불태우는 마법도 없었고, 돌을 가르고 성벽을 부수는 기사도 없었다.
신관들도 성법을 쓰지 못했고, 연금술사들은 사기나 치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천 년 전 일어난 대격변 이후로 이 세상은 전생의 지구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천 년 전, 대륙 곳곳에 검은 문이 만들어지고 마계라 불리는 세상에서 괴물들이 넘어왔다. 평범한 동물들이 괴물로 변했고, 그 괴물들을 이끄는 마왕이라는 존재까지 나타났다.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는 그때, 인간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힘을 가진 자들이 나타났다.
용사라고 불리는 자들.
검으로 하늘을 가르고, 마법의 불로 바다를 불사르는 사람들.
그들은 멸망에 이른 인류를 구하고, 마왕을 쫓아내고, 마계의 문을 막았다.
그들 덕분에 인류는 살아남았지만, 그 뒤 세상은 그전과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몬스터라고 불리게 된 괴물들이 대륙 곳곳에 남게 되었고, 용사들의 능력은 자식들에게로 이어져 새로운 지배 계층이 형성되었다.
지금 귀족이라고 불리는 자들.
그리고 그 귀족들이 용사의 능력을 얻게 되는 날을 '각성일'이라고 불렀다.
태어난 지 6살이 되는 생일.
앞으로 이틀 뒤였다.
수업이 끝난 뒤에 나는 플로라를 따라 복도를 나섰다.
혼자서도 잘 다닐 수 있었지만, 서자이나 공작의 아들인 날 혼자서 다니게 할 리 없었다.
다행히 그동안 하녀들을 열심히 꾀어 놓아서 같이 다니는 데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때론 같이 다니는 덕분에 도움을 받을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어이, 잡종."
복도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시종들과 같이 복도를 걸어가던 두 소년.
그중 작은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시비를 걸었다.
거만한 표정으로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큰 아이.
같이 걸어가던 큰 소년은 힐끔 나를 보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그냥 지나쳤다. 날 무시하고 지나가는 큰 소년과 남아서 시비를 거는 작은 소년
저쪽은 형제로 생각도 안 하는 듯하지만, 그들은 내 형제들이었다.
시몬 데 그레시아.
마누엘 데 그레시아.
공작의 첫째 부인의 두 아들.
서자인 나와 다르게 제대로 된 그레시아 공작가의 정식 계승자들이었다.
8살짜리 꼬맹이가 거만한 얼굴로 날 비웃었다.
"며칠 뒤에 각성이지? 그런데 각성을 할 수나 있어?"
만날 때마다 듣는 비웃음이지만, 이번 말은 꽤 아팠다.
꼬맹이의 말대로였다.
저 두 사람은 모두 각성일이 지났고, 둘 다 제대로 각성을 했다.
마누엘 꼬맹이는 손가락 사이에서 스파크를 튀기며 계속 날 놀려 댔다.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첫째 시몬과 달리 둘째 마누엘은 그의 어머니, 첫째 공작부인 일가의 능력을 각성했다.
마법사 계열의 능력.
때문에 공작가를 잇는 데는 한 걸음 물러나게 되었지만, 공작부인 쪽의 지원을 얻기에는 더 좋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평민 출신.
나름 건실한 상인 집안이었지만 능력을 지니지 못한 이상, 귀족에게는 의미 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동안 도서관에서 열심히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속 능력을 주는 유전자는 열성 유전자에 가까웠다.
발현되기 어려운 유전자.
결국, 평민인 어머니를 둔 나는 각성할 확률이 4분의 1에 불과했다.
'역시, 죽으면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은 각성이 아닌 건가?'
아니면, 전생을 기억하는 것이 각성일지도 몰랐다.
음, 생각과 다르게 의외로 가진 게 많이 있었다.
이름 모를 신께 다시 감사.
'뭐, 부활 능력은 각성일에 각성한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이 상속 능력이면 무척이나 곤란했다.
더 얻을 능력이 없으니 각성일에는 아무 능력도 얻지 못할 테고.
각성일이 지나면, 평민으로 밀려나서 잘해 봤자 영지 구석의 서기관이나 행정직으로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잠깐…….'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 가던 난 입을 헤 벌렸다.
"각성을 못 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뭐라고?"
실수로 꺼낸 말에 마누엘 꼬맹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음, 살아남기는 그게 훨씬 좋을 것 같은데……."
공작의 비호가 있은 뒤로는 꽤나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그전에는 몇 번이나 죽음을 반복했는지 몰랐다.
되살아나는 능력이 없었다면 예전에 아기 시체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눈앞에서 마누엘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난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다. 각성했을 때와 하지 못했을 때를 저울질하기에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너무 한쪽만 바라봤는지도 모르겠는걸.'
죽을 위험을 계속 겪으니 죽지 않을 힘을 계속 원하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힘은 각성뿐. 그 때문에 생각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보니 각성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어차피 공작의 보호는 각성일까지였다. 각성일이 지나면 다시 죽음의 위협에 시달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각성에 실패한다면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생활. 한적한 문관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고마워! 형!"
난 덥석 꼬맹이의 손을 잡았다.
찌릿!
손에서 찌릿하게 전해 오는 정전기.
아직 개발이 안 돼서 약한 능력이었지만, 손 전체가 따끔거렸다.
하지만, 난 손에서 느껴지는 작은 통증도 기쁠 따름이었다.
"갑자기 무슨 짓이야!"
마누엘이 버럭 화를 냈지만, 말로만 성질을 낼 뿐이었다.
시몬과 마누엘은 모두 제대로 교육을 받은 공작가의 자제.
그리고 복도에는 플로라를 비롯한 고용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공작의 아들이 고용인들이 보는 앞에서 육체적인 폭력을 행하긴 쉽지 않았다.
난 마누엘과,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시몬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에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누엘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고, 시몬은 눈썹을 찡그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10살, 8살짜리 꼬맹이들과 티격태격할 생각이 없었다.
"둘째 도련님의 말을 그렇게 넘기시다니, 공자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뒤에서 플로라의 뜬금없는 감탄사가 들려왔지만, 난 각성에 대한 걱정이 줄어든 것이 마냥 기쁠 뿐이었다.
각성일은 금방 다가왔다.
당일 아침.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뒤, 어머니는 방을 나서는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각성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아.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어. 넌 정말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이란다."
난 어머니의 음성에 가슴이 포근해졌다.
육체가 어려지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여려진 것 같았다. 더구나 공작과 다르게 어머니는 날 사랑하고 있었다.
전생을 기억한다고 해도, 어머니는 어머니였다.
"네. 사랑해요."
처음으로 꺼낸 말에 날 감싼 팔이 굳어졌다.
두 팔이 좀 더 강하게 나를 감쌌고, 숨이 막혀 얼굴이 퍼렇게 변했다.
위험해. 죽을 뻔했어.
잠시 뒤, 어머니랑 하녀들과 함께 복도를 걸으며 난 며칠 동안의 고민을 이어 갔다.
역시, 각성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머니가 걱정이었다.
상속 능력을 가지지 못한 아이.
당연히 귀족이 될 수 없었고, 공작가에 필요 없는 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공작가에서 내쳐질지도 몰랐다.
'뭐, 외가도 못사는 편은 아니니까. 정 뭐 하면 내가 모시고 살면 되겠지.'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겠지만, 이 살얼음 같은 저택에서 나가는 편이 어머니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경제와 상업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
전생에 경험한 내용이 있으니 상가인 외가에서 일하는 것도 나쁜 것이 없어 보였다.
어쨌거나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뒤 각성식에서 결론이 나면 그때 고민해도 될 일이었다.
난 생각을 가다듬고 어머니를 따라 발을 옮겼다.
잰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저택 후원에 있는 가족묘였다.
왕의 동생으로 공작 위에 오른 초대 공작부터 할아버지까지 직계 가족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는 지하 석실.
가족묘 안쪽 깊은 곳은 공작만 들어갈 수 있어 저택의 고용인들 사이에서 온갖 소문이 들려오는 공작가의 비밀 장소였다.
하지만, 알렉스가 있는 곳은 각종 예식을 거행하는 맨 바깥 석실이었다.
가족묘에 있는 석관들은 깃발과 장식이 걸려 있는 석벽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 석실에는 벽에 걸려 있는 깃발과 장식 외에 바닥에 그려진 거대한 문양만 있을 뿐이었다.
석실 안에는 미리 사람들이 와 있었다.
한쪽에는 며칠 전에 시비를 걸었던 두 형제와 공작부인이 서 있었다.
브리비아 그레시아 공작부인.
지금도 성세를 이루고 있는 란사로테 후작의 첫째 딸이자 공작의 첫째 부인. 정실이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답고 무척이나 젊어 보이는 모습. 누가 보더라도 고귀한 귀족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우아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공작과 정말 잘 어울려…….'
딱 봐도 무표정한 공작과는 천생연분처럼 보였다.
'저 사람이 정말 나를 죽인 범인일까?'
나를 죽일 만한 위치와 힘을 지닌, 가장 범인에 근접한 사람.
공작이 범인을 추적하는 것을 능히 막을 만한 사람이었고, 나를 죽이려고 했던 하녀들을 소리 없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뭐, 공작이 하는 꼴을 보면 증거가 있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컸고,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따르는 귀족들이 벌인 일일 수도 있었다.
그녀야 슬쩍 눈만 감아도 되는 일.
내 죽음은 그저 그런 일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