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제3편 천재가 되었습니다 (1)
다행히 이 동네의 연금술사는 납을 금으로 만들려고 했던 전생의 짝퉁 화학자가 아니었다.
달려온 연금술사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유식에 들어 있던 독을 찾아냈다.
연금술사는 쉽게 찾기 어려운 지속성 독이라 자신이 아니었으면 찾기 힘들었을 거라고 열심히 자화자찬을 했고, 난 그 자화자찬을 속으로 인정해 주었다.
앞서 죽었을 때는 주치의도, 신관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야가 다른 거겠지.'
어쨌거나 연금술사가 독을 발견하는 바람에 저택은 한바탕 난리가 나 버렸다.
서자이긴 했지만, 공작가 도련님을 죽이려던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방에 드나드는 하녀들은 물론이고, 저택의 모든 고용인이 긴장했다.
그리고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공작, 즉 내 아버지가 내 방으로 찾아오셨다.
겁에 질린 하녀들은 땅을 박을 듯이 머리를 깊이 숙였고, 어머니도 그를 향해 진중한 인사를 했다.
공작은 무심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뒤따라온 늙은 집사에게 말했다.
"범인은 잡았나?"
"네. 요리사 한 명의 자백을 받았습니다."
집사의 말에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백한 요리사는 죽이고, 그 가족은 영지 밖으로 목숨만 붙여서 쫓아내도록. 그리고 요리장과 책임자들에게도 조처를 취하고."
"네. 알겠습니다."
무섭고도 차가운 명령.
영지민이 영지 밖으로 쫓겨나게 되면, 다른 영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민이 될 뿐이었다.
영지민이 가진 것 없이 유랑민이 되라는 소리는 결국 죽으라는 소리와 별다른 바가 없었다.
하지만, 공작의 지시는 거기까지였다.
자백한 요리사를 심문하라는 말도 없었고, 약을 타게 한 사람을 조사하라는 이야기도 없었다.
결국, 일을 여기서 묻으라는 소리였다.
그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조차 무슨 말은커녕 고개도 들지 못했다.
'아이고, 아버지란 작자가 이 모양이면 정말 답이 없는데.'
말을 마친 공작이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이대로 공작을 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
정말 짜증이 나지만, 다시 한번 필살기를 써야 했다.
공작을 빤히 바라보면서, 배에 힘을 줬다.
그리고 힘껏 소리쳤다.
"빠빠! 빠빠!"
모두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공작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이다! 좋은 생각, 좋은 생각!'
눈꼬리를 휘고, 입을 벌리고 웃음 발사!
"까르르, 빠빠!"
말과 함께 계속 연습한 표정이었다.
그동안의 연습으로 하녀들과 엄마도 귀엽다고 인정해 준 웃음.
공작 뒤에 서 있던 늙은 집사도 내 웃음을 보고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하지만, 공작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짜증 나는 인간이다.
하지만, 버텨라. 내 안면 근육들아! 그동안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쏘냐!
방그읏, 방그읏!
그래도 꼴에 아버지이긴 한 모양이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공작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이 아이의 경호는 총집사 자네가 직접 담당하도록."
"아, 넵."
놀란 총집사의 대답 뒤에도 공작은 계속 말을 이었다.
"적어도 각성 때까지는 집안에 소란이 없었으면 좋겠군."
"모두에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총집사의 대답과 함께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큰 짐을 내려놓는 듯한 소리.
그녀가 다시금 공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공작은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보았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내 미소나 실컷 보라고.'
나도 열심히 그를 바라봐 주었다. 방실방실. 아, 턱이 저리다.
그래도 지금은 억지로 웃는 웃음이 아니었다.
목표를 이루었는데 웃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 턱이 떨리기 전에 공작은 방을 나갔고, 하녀들의 축하 속에 어머니는 나를 보며 눈물을 떨구었다.
역시 잘못 태어난 것 같다. 이렇게 무서운 귀족 생활이라니.
신관도 있고 마법도 있는데, 유아 생존율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위기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번 건가.'
난 공작이 나간 뒤 떠오른 화면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공작이 보장한 안전이었다. 적어도 전처럼 쉽게 암살자를 보내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공작의 보호는 더 강력했다.
* * *
고맙게도 지루한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공작이 선언한 뒤로 나를 죽이려는 시도는 사라졌다.
역시 저택 안. 내부자의 짓이었다.
누가 범인인지 알아내지 못해 무척이나 찜찜했지만, 아직 어린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성장해 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아기 때부터 천재로 인정을 받아 버렸기에 아예 그 오해를 인정하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말을 배우고, 일어나 걷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말을 배우는 것과는 달리 몸을 움직이는 건 쉽지 않았다. 육체적인 부분에서는 전생의 기억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겨우 다른 아이들보다 늦지 않게 앉게 되자 나는 바로 책을 보게 해 달라고 떼를 썼다.
다행스럽게도 이 세상은 다른 분야와 균형이 맞지 않게 발달한 부분이 있었다.
중세에 가까운 시대상과 다르게 출판업은 꽤 발달해 있었던 것.
그림이 가득한 동화책부터 전문 서적까지.
일반 평민에까지는 퍼지지 않은 귀족들과 부자들만이 누리는 특권이었지만, 내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을 달라는 말에 처음에는 당연하게도 그림책을 가져다주었다.
공주와 왕자가 그려져 있고,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책이었다.
나도 당연하게 다른 책을 달라고 떼를 썼다.
"글. 자. 책!"
모두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지만, 난 뻔뻔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글이 좋아! 그림 별로야! 글 보여 줘!"
"세상에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으신 건가요?"
놀란 하녀들이 책을 구해 오고, 어머니는 급하게 글을 가르치는 선생을 불렀다.
다행히 글은 어렵지 않았다. 표음문자에다 발음과 글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글이 만들어진 지 오래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성장에 필요한 기본적인 활동은 계속하면서 나는 공부를 이어 갔다.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
시간이 지나갔다.
시간과 함께 나도 쑥쑥 자라났다.
아쉽게도 열심히 움직였지만, 몸은 동년배의 아이들과 비슷했다.
하지만, 자라면서 쌓여 가는 지식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자라면서 점점 소문은 퍼져 갔고, 5살이 꽉 찬 지금은 저택 내 고용인들 모두가 나를 천재라고 부르고 있었다.
* * *
책이 가득한 서재.
책장에 기대어 있는 의자에 한 아이가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의자에 앉은 채로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흔들고 있었다.
하녀 플로라는 벽에 기댄 채 아이, 공작의 아들 알렉스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작은 아이가 다리도 닿지 않는 의자에 앉아 커다란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상체만 한 책을 무릎 위에 올리고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은 그녀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귀여워 보였다.
'보고 있는 책이 그림이 가득한 동화책이라면 더 좋을 텐데.'
미소를 짓던 플로라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 이제 막 6살이 될 알렉스 공자가 보는 것은 나이대에 걸맞은 동화책이 아니라 역사서였다. 그것도 고대 제국어로 쓰인 무척이나 어려운 책.
다른 평민들과 달리, 공용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지식인인 플로라도 전혀 읽지 못하는 책이었다.
역시 저택 전체에 소문이 난 천재 도련님다운 모습이었다.
아쉽게도 저택을 벗어나면 알렉스 도련님의 천재성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저택 안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도련님은 똑똑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플로라는 슬쩍 주위를 둘러본 뒤에 벽에 등을 기댔다.
'편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책을 보고 있는 도련님에게 속으로 감사했다.
공작 일가 앞에서 하녀가 벽에 등을 기대는 행위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알렉스는 아직 어렸지만 어린아이가 말을 잘못하기라도 하면 당장 쫓겨나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알렉스 공자는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아이답지 않게 자신의 예절은 잘 지키고 있었고, 고용인에 대한 배려는 저택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훌륭했다.
알렉스 공자는 한참 전에 그녀에게 허락해 주었다.
-나하고 둘만 있을 때는 편하게 있어도 돼.
1년보다 훨씬 전에 들은 말이었고, 그 뒤로 몇 달 동안 따르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들은 말이었다.
그때 알렉스 공자의 나이는 4살이었다. 당연히 4살짜리가 하는 말을 믿고 허술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공자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가 공자의 하녀로 들어오게 된 이유이자 소문의 시작인 하녀들의 실종도 그렇고, 그녀가 직접 본 공자가 꺼낸 첫말.
-맘마 아파.
덕분에 저택은 한바탕 난리가 났고, 그때부터 플로라는 공자를 외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뒤에도 공자의 행동은 범상치 않았다.
아기 때처럼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다.
빠르게 말을 배우고, 빠른 속도로 글을 배워 갔다.
공용어로 쓰인 책은 물론, 지금 읽고 있는 고대 제국어까지.
지금도 막 여섯 살이 되는 아이가 아카데미를 나온 어른들이 보는 책을 보고 있었다.
도무지 아이로 보기 힘든 천재.
옆에서 계속 지켜본 플로라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편하게 지내라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지켜졌다. 1년 동안 저택의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휴식을 알지 못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1년 동안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나…….'
생각을 이어 가던 플로라는 알렉스 공자를 보며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저택에 돌고 있는 소문과 그녀가 직접 본 독살 시도.
물론 독살 시도 이후에는 평온한 나날이 이어졌지만, 이제 그 평온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공작님이 약속하신 각성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처음과 다르게 알렉스 공자에게 무척이나 정이 들었지만, 하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때, 복도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된 것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벽에서 등을 떼고 입을 열었다.
"공자님, 이제 수업 시간입니다."
* * *
"대륙의 귀족은 500년 전 마왕군을 괴멸시킨 용사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귀족과 왕실들이 존재했지만, 그들은 평민과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고, 지금과 같은 능력을 지닌 귀족들은 아니었습니다."
"……저희 카를로스 왕국의 왕실은 용사인 카를로스 기사의 정식 후손입니다. 왕실에서 분리되어 나온 그레시아 공작가도 당연히 같은 후손입니다. 그리고……."
수업 시간.
앞에는 젊은 서기관이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남작가 출신의 유능한 서기관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졸음이 쏟아지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내가 만약 평범한 어린아이였다면 벌써 자리에 엎어져서 자고 있거나 생떼를 부렸을 게 분명했다.
하긴 평범한 아이가 이런 수업을 받을 리도 없겠지만.
물론 내가 졸린 것은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선행학습을 너무 심하게 했어.'
이미 3년 이상 저택에 있는 도서관급 서재에서 각종 책을 독파했다.
내 앞에 서 있는 교사의 말은 단지 지겨운 복습에 지나지 않았다.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별수 없었다. 이 정도도 감지덕지했다.
제대로 된 공작가의 자제라면 대단한 현자라도 모셔 올지 모르겠지만, 서자인 난 영지의 관료에게 수업을 듣는 것만 해도 고마울 정도였다.
이것도 저택 내에서 천재로 소문이 나서 받게 된 수업이었다.
물론 수업이라고 해야, 영지 내 서기관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받는 교양 수업과 회계 수업뿐이었다.
오늘 수업도 역사 이야기가 가득했지만, 결국은 '교양 수업'일 뿐이었다.
그래도 수업 내용은 무척이나 알찼다.
제대로 된 수업은 날 문관으로 만들 속셈으로 보이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