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제2편 공작가 서자가 되었습니다 (2)
삼 일 뒤.
다른 하녀들의 퇴근 직후.
"으아아아아아앙!"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칸나 앞에서 난 다시 신나게 울어 젖혔다.
한 번에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면 그만이었다.
칸나가 당직을 맡을 때마다 난 자지러지게 울어 댔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약해졌지만, 밤에 홀로 남겨 두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칸나를 향하는 시선이 점차 묘해져 갔다.
"공자님과 칸나가 안 맞는 것 같죠?"
"칸나가 담당일 때만 그러니까."
칸나가 없을 때, 다른 하녀들끼리 쑥덕거리는 일도 늘어났고.
"혹시 칸나 혼자 있을 때 뭔가 잘못하는 거 아냐?"
은근한 험담을 하는 하녀도 생겨났다.
그리고 내가 네 번째 울음을 터트린 이후.
칸나는 결국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힘들었다.'
쓰린 목을 가다듬으며 난 칸나를 마음속으로 배웅했다.
'어디 가서 콱 뒈져 버리길.'
그날, 새로운 메시지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위기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예스! 예스!
떴다. 이건 세이브 포인트다.
역시 죽으면 무조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죽는 상황이 해결되면 그 시점에 새로운 저장 시점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죽을 때마다 처음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난 다 때려치웠을 것이다.
매번 아기에서 다시 시작한다니,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다.
"어, 공자님이 웃고 계셔요."
"저번처럼 이상한 웃음이 아닌데요."
"정말 칸나가 싫었나?"
하녀들이 쑥덕거렸지만, 난 눈곱만큼도 개의치 않았다.
이제 다시 평온한 아기 라이프가 시작될 참이었다.
하지만 그런 섣부른 생각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오늘부로 이곳에 새로 배속 받은 하녀, 루이실입니다."
칸나 대신 새로 들어온 하녀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날 노려보고 있었다.
소름이 쫙 돋고 온몸의 솜털이 바짝 솟았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평범한 하녀처럼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칸나가 나갔다고 일이 끝날 리 없었다. 무기가 망가지면 새로운 무기를 쓰면 그만이었다.
배후에서 살인을 지시하는 자가 그만두지 않는 한, 암살자는 계속 올 게 분명했다.
나는 새로 온 하녀를 열심히 주시했다.
하지만, 의외로 새로운 하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표정이 어두워지지도, 뜻밖의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처음 당직을 설 때도 조용히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웠을 뿐이었다.
'착각이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매번 암살자가 하녀로 들어올 리 없었다.
밤새 긴장했던 난 겨우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조심해야겠지만, 이렇게 매번 긴장하고 있을 순 없어. 자객은 없어. 이러다간 키도 안 클 거야.'
그렇게 편한 시간이 지나고.
사흘 뒤.
난 또다시 베개에 입맞춤 당하게 되었다. 물론 코도 막혔고.
제길.
또 죽어 버렸다.
[사망하셨습니다. 자동 저장 시점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벌써 두 번째.
그나마 다행이라면 돌아온 시점이 다르다는 것 정도일까.
"칸나는 오늘부로 배속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난 작별 인사를 하는 칸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죽음의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통증을 느끼기 어렵다는 아기인데도, 그리고 단순히 숨이 막혀 죽은 것뿐인데도.
죽는 순간의 막막함과 허무함을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젠장, 내가 포기할까 보냐.'
한 번 죽고 나면 어쨌거나 범인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범인을 알게 되면 적어도 다음 죽음은 막을 수 있을 터.
다음 날, 난 몰래 날 노려보는 루이실을 마주 노려봐 주었다.
"어머, 귀여우셔라. 공자님이 루이실을 빤히 쳐다보고 있어요."
노려보던 루이실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하녀들이 쑥덕거렸다.
"루이실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한번 안아 보겠습니까?"
하녀장의 말에 루이실이 아기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아니라고! 반대야!
날 안아 드는 루이실을 보며 난 결국 최종 병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앙!"
"어, 어쩌죠?"
"이런, 아직 익숙하지 않은가 보네요. 이리 주세요."
하녀장이 돌려받은 뒤, 난 울음을 멈추었다.
시간이 흘렀다. 변화는 없었다.
사흘 뒤.
다시 루이실이 홀로 야근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난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아앙!"
사흘마다 반복되는 울음.
결국, 새로 온 하녀도 다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또 한 번 하녀가 바뀌고.
저택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배속이 바뀐 하녀들 전부 그만둔 거 아세요?"
"그 하녀들 모두 그만둔 뒤에 소식이 끊어진 모양이에요."
"소식이 끊어져요?"
"가족들 모두 떠난 집도 있고, 혼자 연락이 안 된 아이도 있더라고요."
"혹시 설마……."
수군거리던 하녀가 창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다른 하녀가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 죽었겠어요? 다들 무슨 일 때문에 영지를 떠난 거겠죠."
"하지만, 모두 여기서 떠났던 사람들인데……."
수군거리던 하녀들이 침대에 누워 있던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모두 소식이 끊어지다니. 설마 뒤처리를 한 걸까?
그런 권력이 있는 사람은 이 공작가에서 몇 없을 텐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 모두 지금, 아니 앞으로도 겨우 서자인 내게는 감히 발끝에도 닿을 수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 * *
"이번에도 시도조차 못 했다고요?"
"네. 전처럼 아기가 우는 바람에 결국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벌써 세 번째라……."
"우연일 수도 있고, 아이가 아마추어인 애들의 살기에 놀랐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겠죠. 기존과 다른 능력을 깨우쳤을 수도 있고."
"각성일이 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뭐, 가정일 뿐이니까요."
"그럼 계속 진행할까요?"
"아뇨. 세 번도 너무 많았어요. 벌써 소문이 도는 모양인데, 하녀를 들여보내는 일은 여기서 멈추죠. 다음에는 다른 방법을 쓰도록 하자고요."
"알겠습니다."
"아이가 몇 개월이나마 좀 더 세상을 느끼게 해 주어야죠."
비밀스러운 대화가 끝이 났다.
그 말을 끝으로, 아름다운 방 안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 *
'해방이다!'
세 번째 하녀가 나간 뒤, 드디어 편안한 밤이 이어졌다.
그 뒤에 들어온 하녀는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평안한 밤. 개운한 목.
드디어 기쁘게 먹고 자고 싸고 할 수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계속 버틸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천재가 되어야겠다.
"우아아, 아브브브."
"벌써 옹알이를 하시네요."
"아브아브."
"그런데 너무 옹알이를 오래 하시는 것 아닌가요?"
"우우우. 브아아아."
그동안 열심히 울어 젖히느라 목이 너무 상했다. 목이 아파 죽겠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말문이 터져야 했다.
그래서 난 오늘도 옹알이를 계속 시도했다.
"아브아브아브……."
* * *
시간이 지나, 드디어 모유를 떼게 되었다.
어머니가 직접 수유를 해 준 것이 아니고 유모가 따로 있었지만, 대귀족가라면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쩝, 이유식 맛이 별로인데.'
처음 먹어 보는 이유식 맛은 생각 외로 그리 좋지 않았다.
전생에 보았던 아기들은 허겁지겁 먹던데.
역시 시대가 달라서 음식 문화가 발달이 안 된 것일지도.
커서 향신료 무역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유식을 먹어 가면서 난 무럭무럭 커 나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일장춘몽이었을까.
어느 날부터일까. 난 조금씩 잠이 많아졌다.
졸렸다.
깨어 있는 시간도 줄고, 얼굴과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팠지만, 졸음은 계속 이어졌다.
이상했다.
하녀들이 억지로 음식을 먹였지만, 먹던 음식도 토해 내고, 체력을 잃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놀란 어머니가 주치의를 부르고 신관도 불렀지만, 주치의의 치료도 신관의 성법도 아픈 내 몸을 고치지 못했다.
"도대체 아기가 아픈 이유가 뭡니까!"
"죄송합니다. 아직 어린아이의 병들이 다 밝혀지지 않아서……."
주치의는 솟아나는 땀을 소매로 계속 닦아 냈다.
치유 마법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주치의는 딱 봐도 청결 개념도 없는 돌팔이 의사였다. 역시 중세 시대. 유아 사망률이 장난이 아닐 게 분명했다.
시간이 계속 흘렀지만, 그는 치료는커녕 병명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으아, 아프, 아브."
내가 신음처럼 꺼내는 울음소리에 어머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셨다.
"네가 어디가 아픈지 말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녀의 말에 난 다시 울음소리를 냈다.
"아브, 아프, 아프."
'배가 아파요! 장이 꼬인다고요! 젠장, 음식이 이상하다고요!'
주치의와 달리 난 내 몸이 아픈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목 놓아 외친 고함은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아기의 울음으로 들릴 뿐이었다.
기력이 사라진 마지막 날 밤.
며칠 동안 내 옆에서 밤을 새운 어머니가 나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널 지켜주지 못해서."
그녀도 내 병이 자연적인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네가 아픈데, 공작님은 찾아오시지도 않는구나."
어머니는 골골거리는 내 얼굴을 보며 눈물을 떨구었다.
난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마치 전원이 꺼지듯 숨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사망하셨습니다. 자동 저장 시점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또 죽어 버렸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난 입술을 악물었다.
'젠장! 너무 여유를 부렸어!'
'천재는 개뿔. 외계인이라도 되어야 할 판이잖아!'
세 번째 하녀를 쫓아낸 다음의 순간으로 돌아온 나는 필사적으로 말을 연습했다.
늦으면 끝이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필요한 것은 단 두 마디.
그리고 난 결국 해내고 말았다.
"아, 이거 드세요. 이유식이에요. 후, 후, 안 뜨거울 거예요. 자, 맘마."
그날, 첫 이유식을 먹게 된 순간.
난 하녀가 숟가락으로 떠 준 이유식을 입으로 베어 물었다.
그리고 힘껏 뱉었다.
퉤!
이유식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놀란 하녀들이 다가왔다.
"이런, 아직 이유식이 안 맞으시나?"
당연하지! 안 맞는 정도가 아니었다.
자, 그동안의 노력을 선보일 때였다.
배에 힘을 모으고.
입과 혀를 제 위치에 놓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난 힘껏 외쳤다.
"맘마!"
하녀들이 모두 놀란 얼굴이 되었다.
"설마?"
"지금 말씀하신 거죠!"
"마님을 부른 거 아닌가요?"
"마님을 모시고 올게요!"
놀란 하녀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어머니를 모셔 오기 위해 달려갔다.
잠시 뒤, 어머니가 방 안으로 달려오자 난 다시 한번 외쳤다.
"맘마!"
어머니와 하녀들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지만, 난 여기서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거기다 '맘마'가 엄마란 뜻도 아니었다.
"아파!"
"맘마가 아파!"
동시에 손을 들어 사방으로 쏟아진 이유식을 가리켰다.
앙증맞은 손가락을 들고 첫말부터 헛소리를 늘어놓는 아이.
어머니도, 하녀들도, 그리고 소식을 들은 저택의 고용인들도 모두 황당해했다.
공작 아들이 처음 꺼낸 말이 '엄마', '아빠'도 아닌 '맘마가 아파'라니.
또다시 이상한 소문이 돌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머니는 자식의 말을 가볍게 듣지 않았다.
딱딱하게 표정을 굳힌 그녀는 남아 있는 이유식 그릇을 낚아챈 뒤, 하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주치의……. 아니 연금술사님을 불러오세요!"
"네? 연금술사님요?"
"영지에 한 분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요?"
"아, 네. 계시긴 합니다만."
"아이의 말을 못 들었나요! 당장 불러요!"
하녀들이 놀라 되물었지만, 어머니, 즉 공작의 첩 아만다는 다시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어서!"
"네! 네!"
신분이 평민이고 지금도 첩일 뿐이었지만, 공작의 여자라는 위치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하녀들이 급하게 달려 나갔고,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윽. 너무 세게 잡으셨다. 피가 안 통한다.
"아, 아파."
어쩔 수 없이 처음 배운 말을 다시 써먹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