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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화 (1/563)

제1화

제1편 공작가 서자가 되었습니다 (1)

별것 아닌 인생이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

회사에 치이고 카드빚을 갚는 데 허덕이는 평범한 삶이었다.

그 인생의 마지막도 별것 아니었다.

사인은 동사.

꽤 오래 사귄 애인에게 차인 뒤, 술을 진탕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겨울밤. 퍽치기에 걸려 기절한 채 방치된 탓에 얼어 죽고 말았다.

그렇게 첫 번째 삶은 끝이 났다.

다시 눈을 뜨자, 난 강보에 싸여 유아용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때, 처음 듣는 낯선 언어가 들려왔다.

"알렉스, 넌 그레시아 공작의 아들이란다."

신기하게도 바로 이해가 되는 말.

아기가 된 나에게 아름다운 여성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금발 여성. 그녀는 내 어머니였고, 난 갓 태어난 아이였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난 당연히 '전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분명 난 전생한 것이 맞았고, 이곳도 지구가 아닌 것 같았다.

창문 밖으로 달이 세 개가 나란히 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을 지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간이 지났다.

어쨌거나 새로운 인생은 꽤 괜찮아 보였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중세풍의 화려한 방. 여러 명의 하녀.

그리고 공작의 아들이라는 어머니의 말.

분명 난 대단한 귀족의 아들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잠을 이기지 못하는 와중에도 무척이나 기뻤지만.

역시 마냥 좋은 일만 일어날 리 없었다.

처음 눈을 뜬 뒤로 얼마 뒤에 멋지게 생긴 남자가 들어왔다가 나갔고, 그는 아기인 나를 힐끔 보더니 어머니를 데리고 나가 버렸다.

꼴을 보니 아버지인 공작이 분명했다.

날 보고도 별로 기뻐하지 않는 모습.

알고 보니, 어머니는 평민이었고 난 가문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서자였다.

그것도 본부인이 둘씩이나 있고, 형들도 둘이나 되는 천덕꾸러기. 어머니가 없을 때 날 보며 낮게 혀를 차는 하녀도 보였다.

공작과 어머니의 관계도 내가 알던 부부 사이와 꽤 달라 보였다.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질 않았다.

'도대체 귀족가에 태어났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잖아! 이건 대체 언제 적 클리셰야! 공작 아들로 태어났으면 살기 편한 막내라든가 아니면 힘숨찐인 첫째라든가 해야 하잖아! 아니면 시스템창이라도 나오든가!'

반짝이는 정령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시스템창, 설정창, 스탯창을 외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신이 준 선물도 없었고, 신은커녕 천사 나부랭이도 본 적이 없었다.

졸린 눈을 부릅뜨며 뭔가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 고민은 채 몇 분을 넘길 수 없었다.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 그저 졸음에 겨워 다시 잠이 들 뿐이었다.

대귀족이라서 그런지 어머니의 방과 내 방은 따로 있었고, 난 쓸데없는 걱정과 함께 유모의 젖을 먹으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난 퍼뜩 잠에서 깼다.

달빛이 들어오는 방 안에 하녀 하나가 서 있었다.

'아, 칸나네. 오늘 밤 당직인가.'

어머니를 도와 나를 돌보는 하녀 중 하나였다.

'근데 난 왜 깬 거지? 배도 고프지 않고, 아래도 축축하지 않은데…….'

갑자기 깬 나는 멀뚱하니 칸나를 바라보았고, 하녀 칸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날 마주 보았다.

"그냥 자고 있지. 왜 잠을 깨서……."

뭔가 미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녀는 소리 없이 요람 옆으로 다가왔다.

뭔가 불길한 상황.

난 놀라 입을 벌렸지만, 그보다 먼저 머리 위로 커다란 베개가 덮쳐 왔다.

베개를 잡은 양손은 칸나의 손이었고, 베개는 내가 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내 얼굴을 덮어 버렸다.

숨이 막혔다.

"미안해요. 공자님은 너무 일찍 태어났어요."

점점 멍해지는 귓가로 들려오는 소리.

'아니, 뭔 막장 드라마냐고! 이건 아니잖아! 태어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암살이라니! 난 아무것도 해 보지 못했다고!'

속으로 마구 고함을 질러 댔지만, 베개에 눌린 입에서는 울음소리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점점 의식이 멀어졌다.

아쉽게도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은 찾아오지 않았다.

숨이 멈추었다.

'젠장, 별 황당한 전생이 다 있네.'

그렇게 허탈한 투덜거림을 끝으로, 내 두 번째 인생도 끝이 났다.

깜깜한 어둠. 녹아내리는 정신. 죽음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눈앞에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국일까?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악!

빛이 어둠을 뒤덮었다.

그리고.

"으애애애앵!"

난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여성.

"알렉스, 넌 그레시아 공작의 아들이란다."

그동안 매일 보았던 그녀는 몇 달 전 처음 보았던 표정으로 나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그리고.

드디어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사망하셨습니다. 자동 저장 시점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난 눈앞에 떠오른 한글을 보며 울음을 뚝 그치고 말았다.

며칠 멍한 정신으로 지낸 뒤,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게 아니었다.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 때로 돌아온 게 분명했다.

전생에 이어 회귀라니.

태어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죽은 것도 황당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버리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어이가 없었다.

더구나.

[사망하셨습니다. 자동 저장 시점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정신을 집중하면 허공에 나타나는 글자는 이 회귀가 한 번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자동 저장 시점이라…….'

분명 전생에서 즐기던 싱글 게임에서 자주 본 문구였다.

게임 유저가 직접 게임을 저장하는 것이 아닌, 특정 위치를 지나가면 자동으로 게임이 저장되고, 그 뒤에 유저가 죽으면 게임이 저장된 곳에서 부활하는 세이브 로드 기법.

그때 등장하는 문구가 바로 '자동 저장 시점'이었다.

'지점이 아니라 시점이라면 특정 위치가 아니라 시간인가.'

이 세계로 오게 한, 알지 못하는 존재에게 감사를.

역시 아무 대안도 없이 낯선 세계에 던져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마냥 좋은 일일 수는 없었다.

'앞으로 죽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해.'

기껏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매번 죽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언제까지 살아나리라는 보장도 없었고, 무한히 살아나더라도 영원히 죽음이 반복되는 삶이 계속될지도 몰랐다.

그래서야 다시 살아나는 능력은 축복이 아니라 되레 저주가 될 뿐이었다.

하지만, 죽지 않는 방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은 시기는 겨우 태어난 지 몇 개월 지난 시점. 말은커녕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시작부터 헬 난이도라니…….'

그렇다고 다시 죽어 줄 수는 없었다. 끔찍한 죽음의 기억과 함께 막막한 아기 생활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 기필코 살아남아야 했다.

다행히 누가 범인인지는 알고 있었다.

물론 뒤에서 지시한 사람은 따로 있겠지만, 실행한 범인을 알고 있으니 범인을 치워 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날 죽인 하녀는 칸나.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여자였다.

어머니의 하녀들 가운데에서도 그리 모나지도 않고 나름 착실해 보이는 여성.

전생을 살아온 눈으로 봐도 사람을 함부로 죽일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뭐, 전생과 시대가 다른 거겠지.'

딱 봐도 피와 살이 마구 튀는 중세 시대였다. 잘나가는 귀족 집안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별다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쏟아지는 잠을 이겨 내며 난 칸나를 계속 관찰했다.

덕분에 하녀들과 어머니는 잘 울지도 않고 잠도 잘 안 자는 아이라며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난 그런 시선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똑같은 시간이 다시 흘러갔다.

공작인 아버지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가끔 나를 보고 가기도 했고, 조금씩 잠이 줄어 관찰할 시간도 늘어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녀 칸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이걸, 왜 못 알아봤지?'

지금 보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어두운 얼굴이었다.

다른 하녀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했고.

'사람을 죽이려는데, 더군다나 공작의 아들을 죽이려는데 얼굴이 멀쩡할 리가 없지. 뒷일은 생각도 안 하나?'

베개로 덮어 자연사로 위장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없을 리 없었다. 잘하면 책임을 지고 죽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난 어두워지는 칸나의 표정을 보고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살인자를 안타깝게 여길 이유는 없었다.

"아! 도련님이 웃으셨어요."

"잘 안 웃으셨는데, 다행이네요."

"그런데 웃는 표정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쯧! 어디서 그런 말을!"

내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하녀들이 하녀장에게 혼나고 말았다.

난 아직 코웃음을 칠 나이는 아닌 듯했다.

죽었던 때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하녀들이 군대 불침번 때처럼 밤마다 몇 시간 간격으로 돌아가며 지켜봐 주었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밤에 남는 하녀는 한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녀들은 내가 울지 않는 이상 방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처음보다 무척이나 허술한 보살핌이었지만, 전생과 비교하면 그래도 과한 보살핌이 분명했다. 역시 대귀족가.

칸나는 밤에 혼자 남게 되는 시간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칸나가 혼자 남게 되는 밤.

"들어가세요."

"그럼 수고해."

"괜찮아요. 공자님이 조용해서 힘들지 않아요."

퇴근하는 다른 하녀들의 인사에 칸나가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그 뒤에, 내 쪽을 보며 언뜻 미안한 표정을 짓는 그녀.

하지만, 난 그녀의 얼굴에는 관심이 없었다.

몇 시간 뒤, 밤이 깊어지면 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기다리는 대신 크게 입을 벌렸다.

그리고 목청껏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좀처럼 울지 않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저택 안에 울려 퍼졌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이야!"

"공자님의 울음소리예요!"

방을 나섰던 하녀들이 금세 다시 달려오고, 방에서 쉬고 있던 어머니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달려온 하녀들은 물론이고 어머니까지 칸나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지만, 하얗게 질린 칸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냥 갑자기 우시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얌전하던 애인데, 갑자기 그럴 리가 없잖은가!"

어머니가 칸나에게 버럭 화를 냈다. 화를 잘 안 내시는 분인데 많이 놀라신 것 같았다.

그런데 칸나 말이 맞는데요.

하녀장이 우는 나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나쁜 꿈을 꾸셨거나 갑자기 깨서 놀라신 모양입니다. 금방 다시 잠드실 겁니다."

그럴 리가. 잠들면 끝장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앙!"

다시 한번 풀 파워로!

얼굴이 빨개지도록 울어 젖혔다.

놀란 하녀장이 나를 놓칠 뻔했고.

"당장 신관과 주치의를 불러요!"

어머니가 하녀들에게 고함을 쳤다.

어라? 주치의는 알겠는데, 웬 신관? 설마?

아무튼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가운데, 난 필사적으로 울음을 이어 갔다.

힘들었다. 지쳤다.

온종일 우는 아기도 있다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미친 거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버텨야만 했다.

난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으아앙, 으앙, 헉. 헉. 켁, 으앙!"

그날 밤, 난 하얗게 밤을 불태웠다.

다음 날 아침.

난 침대 위에 널브러져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특별한 병은 없어 보입니다. 너무 울어서 목이 부은 것을 빼고는 모두 건강하십니다. 부은 목도 이제 곧 괜찮아질 테고요."

주치의의 말이 들려왔지만, 난 지금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느라 귀담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환한 빛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중이었다.

하얀 로브를 입은 노인이 내 조그마한 목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었고, 그 손가락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신관을 부르라는 말에 혹시나 했는데, 이렇게 사실이 될 줄이야. 이곳은 전생의 지구와 같은 평범한 중세 시대가 아니었다.

이곳의 성직자들은 신의 힘을 쓸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법사도, 검기를 쓰는 기사가 있을지도 몰랐다.

좋은 건가? 아직 이게 나한테 유리할지 어떨지 파악이 안 되었다.

아니,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무사히 밤을 보냈지만, 아무 변화도 없었다.

위험이 지나갔다든가 하는, 새로 떠오르는 메시지도 없었고 칸나도 멀쩡히 저쪽에 서 있었다.

오히려 어머니가 칸나에게 다가가 사과를 하고 있었다.

"어제는 너무 놀라서 그랬어. 괘념치 마렴."

"괜찮습니다. 마님."

칸나가 멀쩡한 것을 보면 아직 위기가 지나간 게 아니었다.

아쉬웠지만, 이런 상황도 예상하고 있었다.

나도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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