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금마초연의 (2)
“태자가 되신다고요?”
비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마한은 비의를 보며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렇게 되었다.”
“으하하! 경하드립니다, 주공. 이제 몇 년 후면 황위에 오르시겠군요.”
“그렇긴 한데…….”
마한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던 비의는 마한의 고민을 알아챘다.
“성상 폐하께서 퇴위하시면, 조정 중신들이 함께 은퇴할 것을 걱정하시는군요.”
“그래. 대장군 육손이 내년에 관직을 내려놓고 오군으로 돌아간다고 하지. 승상 제갈량도 아마 폐하와 함께 퇴임하려 할 테고.”
승상의 자리는 한동안 공석이었다.
신하의 몸으로 가진 권한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양나라의 틀이 어느 정도 잡혔으니, 마초는 승상을 3년 임기제로 만들어 제갈량에게 맡긴 상태였다.
마한의 측근, 상서 비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제갈 승상은 고금에 다시없는 인걸입니다. 폐하께서도 재위 중에는 계속 제갈 승상의 임기를 연장하실 테고… 아마 주공께서 즉위하실 때가 되면 한 번 더 연장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러면 나는 고작 3년만 쓸 수 있겠군. 아버지는 20년 써먹은 인물을 말이야.”
마한이 말하자, 비의도 아쉬움을 표했다.
“제갈 승상도 천하가 안정되면 물러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다더군요. 아쉬운 일입니다.”
“만약…….”
마한의 눈이 번쩍 빛났다.
“내가 윤허하지 않으면?”
“예?”
“황제는 승상의 임기를 연장할 수 있지. 10번 연장하면 30년 아닌가?”
마한은 살짝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를 빛내며, 입꼬리만 한껏 올려 악당 웃음을 지었다. 마초를 꼭 닮은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비의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이황자…설마 이제까지 보였던 관인후덕한 모습은 다 연기였나? 이황자가 집권하면 관직 생활이 편할 것 같았는데…….’
과연 편안하게 관직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비의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훗날 양 태종 마한의 치세에 제갈량은 24년간 승상으로 재임하게 된다. 비의, 진군, 장완, 유파, 마량 같은 이들이 그런 제갈량을 도왔다.
태종 치세의 신료들은 격무로 인해 여러 번 쓰러지며 양나라의 번영을 이끌었다. 오직 20년간 제갈량을 보좌한 부승상 육손만이 한 번도 쓰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 * *
260년, 병주 태원군.
대장군 강유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휘날리며 외쳤다.
“물러서지 마라! 이곳은 고제께서 여포를 토벌하신 곳이며, 이 나라를 바꾸신 태원후의 묘가 있는 곳이다!”
강유의 외침을 들은 병사들이 저마다 창검을 굳게 쥐었다.
마초가 북방 개척을 시작한 이후, 이민족들은 양나라의 변방을 약탈해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곳곳에 배치된 요새, 발달한 농업 기술로 인한 농경지의 증가, 균전제로 인해 안정된 군사력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면 더 이상 양나라와 대등한 관계로 있을 수 없다. 언젠가 양나라에 흡수되고 말 것이다.
그런 위기감을 가진 인물이 선비족의 독발수기능이었다. 그는 선비족들을 규합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오랜 평화 때문인지 초기에는 양 조정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대장군 강유가 직접 출진한 다음부터는 독발수기능을 상대로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강유, 저 늙은이가 고제의 제자라고 했던가.”
독발수기능은 강유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총대장 강유의 목을 취하는 것 말고는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모든 전력을 강유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 또한 여의치 않았다. 강유는 고제 마초에게 직접 무예를 사사한 직전제자로, 아직도 그 솜씨가 선봉장들보다 더 뛰어났다.
무사들을 보내서 강유를 직접 잡으려는 독발수기능의 계획은 강유가 그들을 전부 베어 넘기며 틀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냐, 저놈은?”
두두두두.
강유의 곁을 지키던 부장 하나가 쏜살같이 독발수기능에게 달려 들어왔다.
스무 살 전후의 젊은 청년이었다. 청년은 창 한 자루를 옆구리에 낀 채 단신으로 독발수기능의 친위대 사이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대장군부 교위 문앙이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자는 덤벼라!”
콰드득!
문앙은 창을 내질러 선비족 백부장 하나를 꿰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허공으로 들어 올린 채 창을 돌리기 시작했다.
“으…으아악!”
“크악!”
사람을 꽂은 창을 한 손으로 들고 돌리는 괴력.
문앙을 보자 선비족들도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저, 저놈은 대체 뭐냐?”
수십 년 전에는 저런 무장들이 여러 명 있었다고 한다.
양나라를 세운 고제 마초. 그의 벗이자 맞수였던 관우와 장비. 마초의 앞을 가로막았던 여포. 마초를 도운 장료. 마초의 의형제 조운 같은 이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전설로만 여겨지는 인물들이다. 혼자 힘으로 적진을 무너뜨리는 맹장은 더 이상 없는 줄 알았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놈이군. 하지만 개인이 무용을 뽐내는 시대는 지났다.”
독발수기능은 부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선비족 기병 두 명이 길게 늘어뜨린 밧줄의 양쪽 끝을 잡고 문앙에게 달려들었다. 밧줄로 문앙의 말을 걸어서 낙마시키려는 것이다.
“어리석은 놈들. 걸릴 것 같으냐?”
문앙은 그대로 말을 몰아 밧줄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당황한 선비족 기병들을 한 창에 하나씩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옛날의 관우, 장비를 연상케 하는 무용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양나라와 오랫동안 교류한 선비족들은 관우, 장비가 활약하던 그 시대의 선비족들이 아니었다. 밧줄이 통하지 않자 그다음에는 마름쇠를 뿌렸다. 심지어 연노까지 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선비족이 연노라니!”
퍼퍼퍽!
연노에는 당할 도리가 없다. 문앙의 말이 십여 발의 쇠뇌살 일제사격을 견디지 못하고 땅에 쓰러졌다.
문앙은 얼른 말에서 뛰어내려 땅을 미끄러지며 착지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강유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차건(문앙의 자), 경솔하게 무용을 뽐내지 말라고 그리 일렀거늘!”
문앙의 재주는 분명히 아깝다.
그러나 강유의 입장에서는 부장 한 명을 구하겠다고 군사들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을 수 없었다.
문앙은 말을 잃은 채로 용감하게 싸웠다. 숱한 선비족들이 그의 창에 쓰러져 갔다.
그러나 조금씩 상처가 늘어갔다. 창의 속도도 조금씩 느려져 갔다.
“이제 됐다. 내가 직접 상대하겠다.”
이제 어깨를 들썩이는 문앙을 향해 선비족 최고의 무사, 독발수기능이 직접 나섰다.
“좋아. 와라!”
기세 좋게 외치는 문앙.
그러나 독발수기능만 상대할 수는 없었다. 독발수기능의 호위무사들이 양 옆에서 문앙을 찔러 갔다.
호위무사들의 창을 피해 자세가 무너진 문앙을 향해, 독발수기능의 창이 날아들었을 때.
“난리를 틈타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거늘(乘亂不祥).”
문앙의 귀에 춘추좌씨전의 구절이 들렸다.
“…어?”
문앙은 당황했다.
백발의 노인 한 명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노인은 독발수기능이 양손으로 찌른 창을 왼손으로 틀어쥐고 있었다.
펄럭.
노인의 흰 수염이 휘날리며, 동시에 문앙의 눈에 노인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병기가 들어왔다.
“청강창?”
상산 의종의 단주에게 전해지는 신병, 청강창이었다.
그때, 멀리서 함성 소리가 울렸다. 동쪽 기주 방면에서 나타난, 한 무리의 의용군이었다.
“단주를 따르라!”
“무를 통해 벗을 만나고(以武會友), 벗을 통해 의롭게 되리라(以友輔義)!”
상산 의종의 구호와 함께 한 무리의 기병대가 쏟아져 나왔다.
독발수기능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상산의 의종이 일어선 것이다.
“제기랄!”
독발수기능은 노인에게 잡힌 창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노인은 침착하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독발수기능의 힘을 흘려냈다. 마초와 관우가 쓰던 청경의 수법이었다.
동시에 노인의 몸이 반 바퀴 돌았다. 독발수기능이 쓰는 힘은 노인의 몸을 거쳐 오른손에 쥔 청강창으로 전달되었다.
쾅!
상산창술 조가식, 일신시담.
청경의 힘이 더해지니 그 위력이 더욱 강했다. 노인의 일격에 독발수기능의 말머리와 상체가 사라졌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절초를 본 문앙의 입이 벌어졌다.
“독발수기능이 죽었다! 전군 돌격!”
때맞춰 강유가 군사들을 휘몰아 달려왔다.
순식간에 우두머리를 잃은 선비족 진영은 그대로 와해되었다.
문앙의 곁으로 다가온 강유는, 문앙을 구해 준 노인을 보고 두 손을 모았다.
“오랜만입니다, 관공.”
“대장군.”
상산창술의 전인, 관색은 웃으며 강유에게 답례했다.
“고제께서는 관공이 천하제일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지만, 이제 보니 그조차도 뛰어넘은 것 같군요. 이 정도면 고금제일의 경지 아닙니까.”
“무란 다른 이들의 창을 멈추게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법. 창검의 시대가 끝났는데, 기예의 길고 짧음을 논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관색은 문앙을 슬쩍 돌아본 후 말했다.
“그러나 관모가 다행히 좋은 스승들을 만나 성취가 있었으니, 후대에 진전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요. 마침 이 젊은이는 무사로서의 자질은 뛰어나지만 장수로서는 아직 미숙한 것 같은데, 관모가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가겠습니다!”
강유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문앙이 함성을 내질렀다.
“허락해 주십시오, 대장군. 소장이 관공을 모시고 상산창술의 진전을 이어받겠습니다!”
관우와 조운의 기예를 동시에 전수받은 인물.
관색은 그런 문앙을 보며 잔잔히 웃었다. 강유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미숙하지만, 훗날 나라의 동량이 될 친구입니다. 관공께서 훌륭한 무장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문앙은 그렇게 상산 의종의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큰 공을 세운 것은 60세가 넘었을 때의 일이다. 흉노가 양나라의 변경을 침공했을 때, 문앙은 흉노 선우 유연의 목을 베서 전쟁을 조기에 끝내게 된다.
* * *
237년, 양 태종 6년.
태원후 나관중은 완성된 책의 초판본을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드디어… 드디어 이 책이 완성되었구나.”
십상시의 전횡과 동탁의 집권.
이각이 장악한 조정, 할거하는 군웅들.
이각에게 도전하는 서량의 젊은 영웅, 마초.
여포와의 대결과 미오성의 맹세.
원소와 조조, 유비와 손책이 합종연횡을 거듭한 황하 전쟁.
조조와의 결전, 그리고 주유와 벌인 형주 전쟁.
홍농의 변과 관, 장의 난, 양나라의 개국까지.
후한 말의 난세가 평정되는 과정을 담은 소설책이었다.
“상공의 꿈이 이루어졌군요. 천하를 위해 큰일을 하는 것도 좋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역시 글 쓰는 사람은 좋은 글이 나왔을 때 가장 행복한 거 아니겠어요.”
머리가 하얗게 센 채염이 그런 나관중을 축하했다.
본래 채염은 소설책의 문장을 스스로 다듬고자 했다. 나관중이 쓴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다시 엮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관중이 반대했다.
“소설은 읽는 이가 있어야 의미가 있소. 나는 이 책이 선비들의 것이 되기를 바라지 않소. 그저 많은 사람들이 읽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오.”
소설은 그래서 나관중의 희망대로 구어(口語)로 씌어졌다. 채염은 나관중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했다.
[금마초연의]
본래대로라면 황제의 이름을 쓰지 않는 피휘의 관습 때문에 나올 수 없었던 제목이다.
하지만 황제가 된 마초는 피휘의 관습을 없애 버렸다.
―마초를 마초라고 부르지 못하면 그게 무슨 나라냐?
그런 이유로 피휘의 관습은 없어졌다. 나관중은 활판으로 인쇄한 금마초연의의 초판본을 들고 짐을 꾸렸다.
“태상황께 가시려는 거군요. 얼마 만이죠?”
“3년이 넘었소.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못 뵌 건 처음이니, 가서 인사를 드리고 와야겠소.”
2대 황제 마한에게 양위하고 태상황이 된 마초는 서량에 새로 지은 금성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채염은 마초의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태상황 폐하는 참 여전하세요. 부귀영화도 싫고, 용상도 싫고, 그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말을 달리는 게 좋다는 황제라니.”
“그분의 마음을 범용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있겠소. 내 다녀오리다. 한 달쯤 걸릴 거요.”
나관중은 채염의 배웅을 받으며 태원의 저택을 나섰다.
두부, 마구, 소주, 면포, 설탕, 투석기, 수차, 그리고 활판인쇄술.
수많은 미래의 문물을 통해 천하를 바꾸고, 그 공로로 열후의 자리에 올라 부귀를 누린 나관중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옛 전우와 함께 밤새 옛날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 * *
대한민국, 서울.
“마초가 건국한 후, 양나라는 700년간 존속합니다. 이건 중국사에서 매우 특이한 일이에요.”
“뭐가 특이한데요?”
“일단 한 왕조가 무려 700년이나 이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눈부시게 빠른 발전 속도. 양나라 초기의 역사를 보면 마치 현대의 압축 성장을 보는 느낌이에요. 과학기술의 발전도 그렇고, 사람들의 인식도 그렇지요. 정치적으로는 북방 개척과 서역 경영이 이뤄지며 유목민과의 대결에서 향후 수백 년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눈부신 번영을 이뤘죠. 문화적으로는 중국문학 최고의 성취라고 불리는 금마초연의가 쓰였고요. 어쩌면 양 고제 마초는 시간 여행자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소개팅 자리에서 역사 이야기를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남자와 여자를 흘끔거리기 시작했다.
여자의 눈빛에 점점 분노가 떠올랐다. 직장 상사가 주선한 소개팅이라 밥까지는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여자를 더욱 분노하게 했다.
“하영 씨.”
“네.”
“관우 아세요?”
휴우우.
여자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제 상식 테스트하시는 거예요?”
“아니 뭐 그렇다기보다…….”
“이 라떼가 식기 전에 대답해 드리면 되나요.”
남자의 눈이 커졌다.
“오오, 아시는군요? 그런데 하영 씨,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 전에 안량의 목을 벴다는 건 금마초연의의 창작이에요. 사실은 어떤가 하면…….”
남자는 백마 전투의 진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주로 우드위키에서 읽은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에 대한 판단을 끝냈다.
“오빠는 음식 뭐 좋아해요?”
“핫하하하! 저는 한식도 좋아하고 이탤리언도 좋아합니다! 마침 여기에 맛있는 파스타집이…….”
“그럼 마라탕 먹으러 가요.”
“예?”
당황한 남자를 뒤로하고 여자는 먼저 일어섰다.
마라탕집에서도 남자가 입을 다물지 않으면, 자신이 학창시절 금마초연의의 BL팬픽을 썼다는 사실을 공개할 생각이었다.
또각.
마라탕집으로 향하던 여자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소개팅 자리에서까지 금마초연의 이야기를 할 만큼 역사를 잘 아는 남자에게, 평소부터 궁금한 것을 묻고 싶어진 것이다.
“마초 말인데요.”
“핫하하, 마초를 좋아하시는군요!”
“마초는 뭐가 되고 싶었던 걸까요?”
“뭐라니요?”
“그렇잖아요. 마초의 삶은 어딘가 이상해요. 처음부터 황제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 열심히 살았잖아요.”
마초의 초기 생애는 황제가 되려는 야심가와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의미의 충신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너무나도 치열했다.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충신도, 야심가도 아닌 마초를, 무엇이 그토록 치열한 삶으로 이끌었을까.
“이상하다니, 그렇지 않아요. 하영 씨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한 고조 유방이나 명 태조 주원장에 비하면, 양 고제는 싸움마다 이기면서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남자는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 * *
248년, 서량 금성.
마초는 태상황부의 후원에 앉아 새들이 노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뭘 그리 골똘히 보시나요.”
“황후.”
백발의 양하원이 마초의 옆에 앉았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자세가 꼿꼿하고 거동에 힘이 있었다.
반면 마초는 거동이 불편했다.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옛 생각을 하고 있었소.”
“요즘 부쩍 옛날 생각을 하시는 일이 많네요.”
“벗들이 다 먼저 떠났으니까.”
재작년에 나관중과 제갈량이 죽었다. 한동안 움직임이 불편하던 마초의 오른팔도 그때쯤 완전히 못쓰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지나친 혹사가 원인일 것이다.
양하원은 마초가 좋아하는 남중의 차를 한 잔 건넸다.
“이걸 한 잔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하하, 부인은 못 속이겠군. 고맙소.”
노부부는 차를 놓고 나란히 앉았다.
“이제 만족하시나요?”
“만족이라. 뭘 말이오?”
“폐하는 고금 제일의 영웅이에요. 새 나라를 세운 제왕이고, 또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성군이었지요. 아, 귀족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지만.”
양하원의 말을 들은 마초가 씩 웃었다.
“그건 그렇지.”
“누가 봐도 만족스러운 삶이지요. 사내들이 동경할 만한 삶이고.”
“아마 그렇겠지.”
“그래서, 뭐가 제일 만족스러우신가요? 영웅? 아니면, 성군? 아니면… 천하제일인?”
“하하하.”
눈부신 군공을 세운 전쟁영웅.
나라를 잘 다스린 성군.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무사.
마초는 고개를 저었다.
“셋 다 아니오. 영웅도, 성군도, 천하제일인도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불리게 됐을 뿐이지.”
“그러면 뭐가 되고 싶었는데요?”
“그저…….”
마초의 눈앞에 지난 생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기성의 성벽 위에서 목숨을 잃은 아내와 딸들.
부고만 전해 들었던 어린 아들.
자신의 거병으로 인해 처형당한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이번 생에서 삶이 바뀐 그들의 모습이 다시 한번 눈앞을 스쳤다.
“그저 사내로서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오.”
“하하, 폐하도 참. 그래요, 50년 넘게 똑같은 얘기를 하면 믿어야지, 뭐.”
양하원이 크게 웃었다. 덩달아 마초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렵더군.”
마초는 눈을 감았다.
봄바람이 따뜻했다.
<‘금마초연의 : 삼국지 상남자전’ 완결>
*공*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