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305화 (292/306)

305화. 금마초연의 (1)

휘이이잉.

한 번 거센 바람이 불었다.

바닥에 앉아 있는 장비의 옷깃이 크게 흩날렸다. 장비는 가진 힘을 다 쏟아낸 듯, 쌍신모를 짚은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곽준이 연노차를 몰고 장비의 앞으로 다가가 마충의 시신을 수습했다. 곽준 휘하의 병사들이 중상을 입은 마명과 강유, 황충과 왕평, 올돌골을 부축해 진영으로 돌아왔다.

제갈량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궁노나 창검으로 끝낼 수 없는 싸움이다.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건…….’

그때.

마가군 진영이 둘로 갈라지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평복 차림의 인물이었다. 그는 말도, 갑옷도, 병장기도 없이 그저 장비의 앞으로 걸어갔다.

“익덕 형님.”

털썩.

평복 차림의 사내는 장비의 앞에 같이 주저앉았다. 장비는 사내가 손에 들고 있는 걸 보자 활짝 웃었다.

“자룡이냐.”

조운이 손에 들고 있는 건 술잔과 술병이었다.

누구의 편에도 서지 못한 채 천하가 요동치는 싸움을 관망했던 조운은, 승패가 기울자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조운은 별다른 말 없이 가득 채운 술잔을 장비에게 건넸다.

벌컥. 벌컥.

목이 탔던 것일까. 장비는 독한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뭘 좀 아는 녀석이군. 그래, 이 싸움은 이렇게 끝내야지.”

“어쩌자고 이런 무모한 싸움을 벌였습니까.”

“으하하하! 다 알면서 뭘 물어?”

맹세.

죽을 때까지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다.

한날한시에 죽기를 바란다.

나라를 위해 싸우고, 백성을 평안케 한다.

“벌써 한참 전 일이군. 그때는 다들 새파랗게 젊었지. 나도, 운장 형도, 대형도.”

조운은 어느새 비어버린 장비의 잔을 다시 채웠다. 장비는 이번에도 쉼 없이 술을 들이켰다.

“자룡, 대형은 너를 넷째로 여겼다. 운장 형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

조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도 우리 속을 짐작할 수 있겠지. 우리는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하나가 먼저 죽으면, 다른 둘이 같이 죽는 거지. 나는 운장 형이 먼저 죽을 줄 알았지만 말이야.”

농담을 던지고 껄껄 웃는 장비를 보며, 조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까.”

“다른 방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이 정도면 썩 괜찮은 삶인데. 어디 보자, 그날이… 30년, 아니 32년 전인가? 따뜻한 봄날이었지. 복숭아꽃이 피는 날이었다. 마치…….”

톡.

장비가 들고 있는 술잔에 무언가 내려와 앉았다.

장비는 술잔을 바라보고 씩 웃음을 지었다.

“오늘처럼.”

조운은 고개를 들었다.

때 이르게 핀 복숭아꽃이었다. 봄바람을 타고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잠시 복숭아꽃을 바라보던 조운이 입을 열었다.

“후방에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운장 형님이 대장군의 칼에 쓰러졌다고…….”

툭.

조운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장비의 손에서 술잔이 떨어졌다.

조운은 손을 들어 장비의 눈꺼풀을 쓸어 눈을 감겼다. 화살 수십 발이 꽂히고, 막대한 출혈이 있었지만, 그래도 장비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 * *

마초는 쓰러지는 관우의 시신을 끌어안았다.

“관공. 어째서… 내 목숨을 취하지 않았는가.”

관우가 살아남을 방법은 없지만, 마초와 동귀어진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관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초는 한참 동안 관우의 시신을 안고 있었다. 관우의 몸에서 흐른 피가 비단 전포를 흠뻑 적셔서 무게가 느껴질 때, 그제야 비로소 군사들에게 시신을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수수.

하늘 가득 복숭아꽃이 흩날렸다. 마초는 고개를 들어 비처럼 내리는 복숭아꽃을 바라봤다.

“그런가. 이제 알겠군.”

어찌 된 영문일까.

복숭아꽃 피는 동산에서 세 사람이 나눈 맹세가 마초의 눈앞에 떠올랐다.

“죽을 때까지 서로를 배신하지 않고, 죽을 때는 함께 죽고자 하였는가.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마초는 사자 투구를 벗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쏟아졌다. 마초는 관우의 시신을 향해 사자 투구와 함께 두 손을 모았다.

“천하는… 내가 반드시 평안케 하겠소.”

마초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봤다.

군사들이 장료와 감녕을 부축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장합의 시신을 수습하느라 분주했다.

백이병들은 저마다 눈물을 훔치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장군!”

“대장군, 괜찮으십니까!”

여기저기서 장수들과 병사들이 마초를 향해 달려왔다.

마초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한 뒤, 백이병들의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싸움은 끝났다. 모두 창을 멈춰라.”

텅.

백이병 하나가 창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연으로 돌아가라. 가서 창 대신 호미를 들어라. 밭을 일궈 처자식을 먹여라. 천하는 내가 평안케 할 것이니, 너희는… 다시는 창을 들고 목숨을 던지지 마라.”

여기저기서 백이병들이 창과 칼과 방패를 바닥에 내던졌다.

복수의 불꽃으로 자신의 몸을 태워버린 관우는, 어째서 마지막 순간 칼을 멈췄는가.

그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세 사람이 나눈 맹세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천하를 평안케 한다는 마지막 맹세가 깨지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219년 2월.

반년 동안 천하를 진동시켰던 관우와 장비의 난이 평정되었다.

복숭아꽃이 피는 날이었다.

* * *

낙양.

나관중은 자신의 집에서 노숙과 마주 앉아 있었다.

몇 달간 옥고를 치른 노숙은 조금 초췌해져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힘이 있었다.

“제가 살아 돌아가도, 정말 괜찮겠습니까.”

노숙이 묻자 나관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이는 대장군의, 양왕 전하의 뜻입니다.”

마초는 포로가 된 연의 장수와 병사들에게 아무 죄도 묻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었다. 관우와 장비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렀다.

관색을 비롯한 연군 장수들은 이미 풀려나서 어딘가로 떠났다. 오직 노숙만이 몇 달 더 억류되어 있었지만, 이제 그마저도 풀려나게 된 것이다.

나관중은 노숙을 바라보며 궁금한 것을 물었다.

“자경 선생, 어째서 그런 결단을 하신 겁니까?”

노숙은 관우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바로 투항했다.

그리고 포로의 몸으로 나관중에게 독대를 청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서를 전달했다. 균전제에 반대해서 연군을 지원한 하북 호족들의 명단과 그 증거들이었다.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지요.”

“맹세라니요?”

“태원후. 그들의 맹세는 단지 같은 날 죽자는 것이 아닙니다.”

성씨는 다르지만 서로를 형제로 여기며, 어렵고 위험할 때 서로 돕는다.

한날한시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한날한시에 죽기를 바라며, 서로 은의를 저버리지 않는다.

위로는 나라를 위해 싸우고, 아래로는 천하 백성을 평안케 한다.

“천하 백성을 평안케 한다…….”

“그렇습니다. 처음 두 가지는 너무나 쉬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맹세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는… 두 분 장군도 치열하게 고민했지요.”

노숙은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대장군의 개혁을 이어 가는 것은 연왕 전하의 뜻이었습니다. 지난날 홍농에서 대장군과 맞선 것도, 대장군이나 연왕 둘 중의 하나가 집권해야만 개혁을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명단을 넘기시는 겁니까.”

“이는 두 분 장군의 뜻이기도 합니다. 두 분은 싸움의 결과와 관계없이 대장군의 개혁이 이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이… 연왕 전하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자경 선생.”

“대장군과 태원후께서 승리했으니, 부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들의 맹세가 마지막까지 지켜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관중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나는 절대로 그들의 죽음이 헛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난세는 사람을 바꾼다.

그러나 사람이 난세를 바꾸기도 한다. 유비, 관우, 장비는 결국 자신들의 의지대로 난세를 살아냈다. 원래의 역사에서도 그랬고, 마초와 나관중의 존재로 인해 바뀐 역사에서도 그렇게 되었다.

노숙은 그 후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고향 서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뿐이었다.

* * *

220년 1월.

마초가 제위에 올랐다. 국호는 양(凉)이었다.

즉위식에서는 한의 천자 유협이 직접 면류관을 들어 마초의 머리에 씌웠다.

유협은 여남왕으로 봉해지고, 유협의 직계는 앞으로 양나라 황족에 준하는 신분을 갖게 되었다. 호칭은 선황이라 하며, 천자의 기물과 예법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마초는 이 사실을 붉은 글씨로 기와에 새긴 후 반으로 쪼갠 단서철권(丹書鐵券)을 만들어 유협에게 주었다. 훗날 양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단서철권을 가진 유씨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지만, 이는 먼 나중의 일이다.

마초는 12년간 재위했다. 균전제와 양세법을 축으로 하는 토지제도는 그의 재위 기간 동안 더욱 튼튼해졌다. 천하 모든 곳의 곡창이 가득 차고, 화폐 경제가 재건되며 교역이 활발해지고, 인쇄술을 비롯한 새로운 문물로 인해 중국은 전에 없는 번영을 누렸다.

마초는 구중궁궐에 틀어박혀 정무만 보는 황제가 아니었다. 초반 6년간은 곳곳의 반란을 토벌하느라 여러 번 친정을 나섰고, 후반 6년간은 북방 개척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북쪽 변경 곳곳을 시찰했다. 북방 개척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훗날 있을 이민족의 대규모 침공을 막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초는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퇴위했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양나라 태조, 고제라 불렀다.

관우와 장비의 난이 진압된 후, 오호대장은 다시 각자의 길로 떠났다.

방덕은 권력과 거리를 두었다. 가끔 격구장에 나타나서 황제 마초의 옆자리에서 한껏 거만한 태도로 격구를 관람하고 돌아갔다. 그는 80세를 훌쩍 넘길 때까지 장수했으며, 첩이 아홉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서황은 문관직으로 양나라의 조정에 남았다. 마초의 명을 받아 군제 개혁을 추진하던 육손이 숙장들의 반발에 부딪혔을 때, 육손에게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힘을 실어 준 일화로 훗날까지 유명세를 얻었다.

장료는 싸움이 끝난 후 은둔했다. 부귀영화와 은퇴를 바라던 그였지만, 막상 그것을 이루자 다시 싸움터를 갈망하게 되었다. 병주와 기주에는 가끔 이민족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홀연히 나타나는 노검객의 소문이 돌았는데, 사람들은 소식이 끊어진 장료가 그 노검객 아닌지 추측할 뿐이었다.

감녕은 강동으로 떠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래 살지 못하고 풍토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에는 장강의 뱃사람들과 수적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황충은 형주로 돌아갔다. 왕찬의 뒤를 이어 형주자사가 된 이엄이 그를 수 차례 불러들이려 했으나 황충은 모든 것을 고사하고 초야에 묻혀 살아갔다. 황충의 몰년은 확실치 않다. 다만 이후, 형주의 무공들이 전부 외공과 완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뀐 것으로 보아, 황충도 마냥 조용히 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유비의 사후 연왕부는 해체되었다. 유주 자사 자리에는 마대가 부임해서 옛 연나라 땅을 관할하게 되었다. 마대는 위엄 있는 태도로 선정을 베풀어서 유비 사후의 혼란을 빠르게 수습했다.

왕평은 마초의 재위 기간 동안 진북, 진남, 진동, 진서의 사진장군을 전부 역임했다. 마초는 반란이 있을 때마다 왕평을 가장 먼저 찾았고, 왕평은 그런 기대에 훌륭하게 부응해서 훗날 양 고제의 칼이라고 불리게 된다.

맹획은 남중에서 생을 마쳤다. 225년에 일어난 익주의 반란을 진남장군 왕평과 함께 토벌하게 되었는데, 이때 맹획의 상급자가 된 왕평이 거만한 태도로 맹획을 괴롭힌 일이 있었다. 하지만 맹획은 남중 전체를 대표하는 자로서 끝까지 인내심을 잃지 않고 왕평에게 머리를 숙이며 분쟁을 피했다고 한다. 맹획이 당번병 시절 왕평을 괴롭혔었다는 사실은 끝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가후는 원래의 역사보다 2년 빨리, 221년에 죽었다. 마초가 황제가 된 후, 가후는 자신을 옭아매던 속박이 끊어진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본래 평판이 좋지 않았던 그의 빈소는 한산했다. 생전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순유만이 오랫동안 가후의 빈소를 떠나지 못했다.

방통은 양나라 건국 초기의 반란 진압에 많은 공을 세웠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곧 죽을 것처럼 병치레를 하던 그는, 결국 폭식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70세까지 살았다. 만약 폭식을 하지 않았다면 80세를 거뜬히 넘겼을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육손은 마초의 의지대로 군제 개혁을 추진했다. 육손의 개혁에 따라 양군은 보급, 의료, 장비가 개선되며 중세 최강의 군대로 거듭난다. 그 공으로 오후의 작위를 받은 육손은 고향 오군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초가 황제가 된 후, 마등은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금성에 은거했다. 상황의 예우도 거절한 그를 사람들은 태공이라 불렀다. 그는 고제 7년에 노환으로 죽을 때까지 말을 타고 북방의 요새들을 시찰했다.

양양공주 마수와 왕찬 사이에는 다섯 아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아버지의 두뇌와 어머니의 기백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다섯 아들은 전부 나라에 큰 공을 세워 훗날까지 그 이름이 전해지게 되었다.

상산공주 마화와 조운은 상산으로 가서 여생을 보냈다. 조운은 양나라의 관직이나 작위를 전부 사양하고 고향으로 가서 의종의 단주로 살아갔다. 만년에 뛰어난 제자를 들여 자신의 창술을 전부 다 전했다고 한다.

양 고제의 치세 12년간은 마냥 평화롭지 않았다.

왕조 교체와 과거제는 명문 귀족들의 반발을 불렀다. 균전제와 양세법은 지방 호족들이 반발했고, 북방 개척과 군제 개혁에는 이민족과 군소 군벌들이 반발했다.

고제 마초는 끊임없이 싸웠고, 끝내 모든 도전을 이겨냈다.

* * *

224년, 고제 5년.

황제 마초는 낙양의 황궁에서 일황자 마명과 독대하고 있었다.

“너를 왜 불렀는지 알겠느냐.”

“짐작하고 있습니다, 폐하. 하명하소서.”

자신과 꼭 닮은 장남을 바라보던 마초는 긴 한숨을 쉬었다.

“명아. 나는 죽을 때까지 제위에 있을 마음이 없다. 지금의 과업들이 마무리되면 서량으로 돌아갈 것이니, 미리 태자를 세워 후사를 대비하고자 한다.”

일황자 마명과 이황자 마한은 올해 스물아홉, 삼황자 마성은 스물다섯이다.

마초는 이들 중 후계자를 지명하고, 후계자가 마흔이 되기 전에 제위를 넘겨줄 생각이었다.

“올해 태자 책봉이 있을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래. 너에게는 미리 이야기를 해 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한이를 태자로 세우고자 한다.”

너무나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래서 수십 번, 수백 번을 고민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 봐도 결론은 같았다.

새롭게 탄생한 제국의 2대 황제에 어울리는 인물은, 장남 마명이 아니라 차남 마한이었다.

“폐하께서는 이황자에게 돌아가신 숙부님의 풍모가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래, 그랬지.”

“이황자는… 한은 능히 용상을 감당할 인물입니다. 신념이 있고 학문도 깊습니다. 꺾이지 않는 의지력도 있고, 사리사욕보다 천하를 중요하게 여기지요. 소자보다는 한을 태자로 세우심이 옳을 것입니다.”

마명은 담담하게 마초의 결정을 수용했다.

젊은 날의 마초를 꼭 닮은, 오만하고 재능이 넘치는 장남 마명.

생전의 마휴와 많이 닮은, 강한 의지력을 가진 노력파 마한.

마초의 선택은 분명했다. 마명 또한 짐작하고 있었다.

“게다가 소자는 지난날 야심에 눈이 멀어 흉노와의 친선을 망가뜨렸습니다. 홍농의 변과 관, 장의 난이 그로 인해 비롯되었으니, 용상은 소자가 탐낼 자리가 아닌 것으로 압니다.”

“명아.”

마초는 장남에게 다가가 와락 끌어안았다.

해 주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마명이었다.

“폐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말해 보거라.”

“태자가 정해지면, 다른 황자들에게도 작위가 내려질 터. 소자는 봉지로 돈황을 청합니다. 아울러, 허울뿐인 군왕이 아니라 실제로 돈황을 다스리기를 청합니다.”

돈황.

양나라의 서쪽 끝. 마초조차 발을 디뎌보지 못한 곳이다.

마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돈황왕이 되어 서역으로 떠나겠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소자가 낙양에 남아 있으면 한이도 껄끄러울 것입니다. 낙양에서 사라져 2대 황제의 치세에 방해가 되지 않고자 함이 첫째이며, 서역과의 교역로에 있는 위협을 소자의 재주로 제거하여 천하를 평안케 하고자 함이 둘째입니다. 또한… 먼 곳에서 공을 세워 지난날 지었던 죄를 씻고자 함이 셋째입니다.”

마명은 스스로 변방에서 여생을 마치기를 청했다.

마초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힘이 부치거든 언제든 돌아오너라. 천하가 너를 손가락질하더라도, 너는 내 피를 이은 아들이다.”

“소자는 폐하의 아들입니다. 어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겠습니까. 폐하, 부디 강녕하십시오. 소자는 부개자와 반초의 위업을 계승하기 전에는 중원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마명은 마초에게 절을 올리고 황궁을 빠져나왔다.

황궁의 바깥에는 마명의 측근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명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었다.

“가, 가신 일은, 어떻게, 어떻게…….”

“뜻한 바대로 되었다.”

마명은 말더듬이 청년의 어깨를 툭 쳤다.

“우리는 내년에 돈황으로 간다. 그곳을 기반으로 서쪽으로 뻗어나가, 서역을 다시 우리의 땅으로 만들 것이다.”

“과, 과연, 주공은, 주공은, 대단, 대단…….”

마명은 말을 더듬는 등애를 보며 씩 웃었다.

마초를 빼닮은 푸른 눈동자에는 황위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될 싸움에 대한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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