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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303화 (290/306)

303화. 싸움을 끝내는 자 (3)

금철기가 연군의 중군과 좌군 사이를 끊고, 중군을 옆에서 들이치는 동안.

연군의 좌군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장비의 전진으로 마가군 중군이 초토화되는 것을 보자, 마명과 강유는 돌입한 금철기 일부를 이끌고 급히 되돌아갔다.

남은 금철기를 지휘하는 것은 기병들 사이에 끼어 있던 장료였다.

“당황할 필요 없다. 장익덕이 아무리 용맹하다 해도 그 또한 사람이다. 이제 곧 싸움이 끝날 것이다.”

장료는 그렇게 금철기를 단속하고 계속 연군 중군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연군 좌군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좌군에 관운장이 있다. 적은 결국 관운장을 앞세워 주공을 직접 노릴 터.’

장비와 주력들이 전부 전진한 이상, 연군 중군은 금철기의 상대가 아니다.

장료의 진짜 목표는 연군 좌군을 전장에 계속 묶어 두는 것이었다.

마침내 성과가 나왔다. 장료가 연군 중군을 무너뜨리자, 계속 사태를 관망하던 좌군이 장료의 금철기 쪽으로 움직여 포위망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아, 걸렸구나. 학백도! 여기는 네가 지휘해라!”

장료는 부장 학소에게 금철기를 맡기고, 수하의 백여 기만을 이끌고 좌군 쪽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퍼억!

장료의 참마검이 가는 곳마다 어김없이 연군 병사들의 팔다리가 날았다.

“장료가 왔다(遼來)!”

뒤따르는 기병들이 장료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연군 좌군은 장료의 활약으로 크게 밀리기 시작했다.

단신으로 적진을 부술 수 있는 무장은 관우, 장비, 마초뿐만이 아니었다. 장료 또한 그들의 수준에 근접해 있었다.

“관운장. 어디 계획대로 할 수 있나 한번 보자.”

장료는 피를 뒤집어쓴 채 실눈을 크게 뜨고 씩 웃었다. 이렇게 적진을 부숴 버리면, 관우는 마초를 노리고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관우가 나올 때가 됐는데 나오지 않았다.

“마음대로 해 봐라. 그렇다면 이대로 꿰뚫어 버릴 테니!”

장료는 좌군의 대장기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렸다. 마치 붓에 붉은 물감을 묻혀 선을 그은 것처럼, 장료가 달리는 길을 따라 연군 병사들의 피가 뿌려졌다.

그렇게 길을 뚫어, 마침내 상장군(上將軍) 관우(關羽)의 이름이 크게 쓰여 있는 대장기에 도달했을 때.

장료의 계산이 빗나갔다.

“빌어먹을. 네놈은 뭐냐?”

“연 편장군 관평. 내가 상대해 주마.”

무르익은 대추처럼 붉은 얼굴, 누에가 누운 듯 짙은 눈썹.

그러나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장료는 관우 대신 관우의 장남 관평이 지휘하고 있는 걸 보자 이를 갈았다.

“벌써 움직였나.”

전장의 옆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황하에 전선 여러 척이 떠 있었다. 연군이 있는 동쪽에서 마가군이 있는 서쪽으로 물살을 거슬러 나아가고 있었다.

‘저 전선에 관운장이 타고 있을 것이다. 주공께 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

장료는 그 길로 강을 따라 마가군 진영 쪽으로 나아가려 했다.

관평이 청룡언월도를 빼 들고 그런 장료를 붙잡았다.

아니, 붙잡으려 했다.

“방해하지 마라!”

장료는 그대로 안장에 누워 관평의 청룡언월도를 피했다. 그리고 참마검으로 관평의 다리를 찍었다.

퍽.

“큭!”

허벅지를 찍힌 관평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장료는 그대로 손을 뻗어 관평의 갑옷 끈을 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우당탕!

중상을 입은 관평이 힘겹게 청룡도를 짚고 일어나려 했다. 장료는 그 청룡도마저 쳐서 날려 버렸다.

‘기백이 있는 녀석이군.’

장료는 관평의 목숨을 끊을까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온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는 본진으로 돌아간다. 전속력으로 달려라!”

“존명!”

관우를 막아야 한다.

장료는 이를 악물고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했다.

* * *

펄럭.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는 관우의 선단 앞에, 마가군의 전선들이 나타났다. 선두에 선 대장선은 비단으로 된 돛을 펼치고 있었다.

“감녕인가.”

이번 전투에서 감녕은 황하에 떠 있다가 유사시 연군의 후방을 공략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관우와 수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감녕은 이번에도 선두의 대장선 위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관우의 전선이 가까워지자 뒤를 돌아보며 호령했다.

“쏴라!”

빗발치듯 화살이 날았다.

강동군이 해체된 지금, 수전에 가장 능한 부대는 감녕의 금범군이다. 관우의 대장선은 순식간에 돛이 너덜너덜해지고, 뱃전에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꽂혔다.

관우는 가만히 수신호를 보냈다.

연군 병사들이 일제히 대장선의 고물 쪽으로 집결했다. 하중이 뒤쪽으로 쏠리자 자연스럽게 앞쪽은 들리게 되었다.

관우의 대장선은 그 상태로 감녕을 향해 전진했다. 관우는 번쩍 쳐들린 선수에 홀로 청룡도를 짚고 서 있었다.

“이쪽으로 넘어와서 배 위에서 난전을 하겠다? 할 수 있으면 한번 해 봐라.”

감녕은 잘생긴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웃었다.

금범군 병사들의 화살이 관우를 향해 집중되었다.

깡! 깡! 깡! 퍽!

대부분의 화살은 관우가 전포 아래에 걸친 두터운 쇄자갑에 걸렸다. 그중에도 몇 발은 쇠사슬을 뚫고 관우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그 사이 금범군 조타수는 절묘하게 배의 방향을 틀어 금범군 대장선의 선수가 연군 대장선의 측면을 노리게 했다.

관우는 개의치 않았다. 대장선과 대장선이 접근할 때까지 기다린 후, 마침내 선수끼리 서로 닿을 정도가 되자 청룡도를 치켜들었다.

쾅!

관우의 청룡도가 떨어진 후.

“아니!”

“이럴 수가!”

감녕이 이끄는 금범군 대장선에서 경악에 찬 비명이 터졌다.

대장선의 선수를 관우가 잘라낸 것이다. 대장선은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뒤로 크게 쏠렸다.

“이런 빌어먹을! 배를 더 붙여라! 내가 직접 건너갈 것이다!”

“배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감녕의 대장선을 격침시킨 관우는 갑옷에 꽂힌 화살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몇몇 화살에서는 관우의 피가 같이 딸려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금범군이 압도해야 했을 수전은, 금범군 대장선이 격침되며 난전으로 흘렀다.

관우는 그사이 연군 대장선을 강안에 댔다. 그리고 마침내 땅을 밟았다.

멀지 않은 곳에 마가군의 본진이 보였다.

“숙지(진도의 자)는…….”

관우는 고개를 돌려 강을 봤다.

부장 진도는 전선 다섯 척을 이끌고 강 위에서 금범군과 치열하게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관우가 이끄는 전선 여섯 척이 강안에 배를 댈 수 있도록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다.

“관공, 가십시오! 가서 뜻을 이루십시오!”

“고맙네.”

관우는 강 위의 진도를 향해 힘 있게 두 손을 모았다.

관우는 백이병 삼백 명을 이끌고 전진했다. 유주에서 새로 얻은 자들보다 여남이나 서주에서부터 관우를 따른 노병들이 많았다.

그런 관우의 앞을 한 무리의 병마가 막아섰다.

“멈춰라, 관우.”

예비대로 빠져 있던 장합이었다.

“장준예인가. 그대와 참으로 인연이 깊군. 지난날에는 그대가 북쪽에서 내려왔고, 내가 남쪽에서 그대를 막아섰지.”

관우는 희끗희끗한 수염을 쓸어내리며 백마 전투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장합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나를 막아섰던 것은… 춘추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무인이었다.”

“그런가.”

“사사로운 은원을 위해 천하를 불태우는 자는, 내가 존경하던 무인이 아니다. 그저 저잣거리의 협객일 뿐.”

“그렇군.”

“들어라! 관우를 잡으면 이 전쟁이 끝난다. 모두 관우만을 노려라!”

“허허허.”

관우가 너털웃음을 짓는 동안, 장합의 군사들이 둥글게 벌려 서서 관우를 반원형으로 포위해 왔다.

“이제껏 무사로 살았으니, 죽을 때는 그저 협객으로 죽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관우는 허공에 청룡도를 한 번 그었다.

돌격의 신호였다. 백이병들은 저마다 손에 방패와 칼을 쥐고 장합의 군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퍽!

퍽! 퍽! 퍽!

보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강한 충격력이었다. 장합의 군사들이 짠 진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관우는 태연하게 전장의 중앙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후미에서 지휘하는 장합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부웅!

장합의 단창이 날았다. 관우는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서며 장합이 던진 창을 피했다.

팟.

창날이 관우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피가 튀었다. 누에가 누운 듯 풍성한 눈썹이 꿈틀거렸다.

“빨라졌는가.”

장합의 창이 빨라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걸음이 느려진 것인가.

지금은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관우는 계속 전진했다.

두두두.

장합은 말을 타고 관우의 주위를 비스듬히 돌았다. 그리고 등 뒤에서 두 번째 단창을 꺼내 손에 들었다.

‘어설픈 공격이 관공에게 들어갈 리 없다. 기회는 한 번이다.’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며 관우의 주위를 맴도는 장합.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장준예, 저자는 목에 칼을 맞고도 뒈지지 않는 자다. 똑바로 겨냥해라.”

“장문원.”

장료가 전장을 가로질러 달려온 것이다.

장료는 그대로 말을 달려 장합을 스쳐 지나 관우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내가 관운장과 칼을 나누는 걸 잘 보고 있어라. 그리고 내가 떨어지면 던져!”

“알았네.”

장합은 고개를 끄덕이고 장료의 뒤에 붙어서 달렸다.

관우는 다가오는 장료에게 청룡도를 겨눴다.

“연진에서 중상을 입었을 텐데, 그 새 나았나.”

“그대만 하겠나?”

장료는 참마검을 들어 관우를 덮쳐 갔다. 눈으로는 빈틈없이 관우의 모습을 담았다.

‘관우의 다음 수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작은 동작으로 경력을 쓰겠군. 그리고…….’

관우의 뒤에서 누군가 접근하고 있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장료는 관우와 충돌하기 직전 말머리를 틀었다.

끼이이익!

말발굽이 땅을 긁는 소리와 함께 장료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그러나 장료는 곡예사 같은 동작으로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졸지에 상대를 잃어버린 관우에게, 어느새 뒤에서 다가온 감녕의 우철간이 날아들었다.

쩡!

관우는 청룡도를 몸에 붙인 채 뒤로 돌아 우철간을 막았다.

물에 흠뻑 젖은 감녕은 기습을 위해 구리 방울까지 빼놓고 있었다. 관우가 사각철간을 막자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웃었다.

“하나 더 있다.”

쩡!

감녕의 좌철간이 우철간 위로 떨어졌다.

여포와도 힘 싸움이 됐던 감녕이다. 기습적으로 관우를 밀어붙이자 관우도 두 발짝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움직임이 봉해진 상태에서 장합의 단창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부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장합의 단창은 허공을 갈랐다.

“아니!”

“빗나갔다고?”

장합은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크게 빗나갈 리 없다. 머릿속으로 온갖 잡념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장료가 외쳤다.

“속지 마! 옆걸음으로 이동한 거다!”

뒤이어 관우에게 달려드는 장료.

“흡.”

낮은 기합 소리와 함께 힘을 쓰는 관우.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

두 자루 사각철간을 밀어붙이던 감녕의 몸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청경의 수법으로 감녕이 가하는 힘을 바깥으로 흘려내 들어 올린 관우는, 뒤이어 장으로 감녕의 배를 후려쳤다.

펑!

“컥!”

짧은 비명과 함께 감녕이 뒤로 날아갔다. 그러면서 관우는 청룡도를 한 손으로 쥐고 크게 바깥쪽으로 돌았다. 목표는 달려오는 장료였다.

장료가 다시 한번 눈을 부릅떴다.

‘좋아. 아주 조금의 차이로 내 참마검이 먼저…….’

뻐억!

그러나 장료의 계산이 틀렸다.

관우가 몸을 돌리며 청룡도가 다시 한번 가속한 것이다. 82근의 청룡도가 단검처럼 빠른 속도로 장료의 옆을 쓸었다.

쾅!

청룡도의 자루에 맞은 장료가 그대로 낙마해서 땅에 처박혔다. 관우는 한 동작으로 청룡도의 날을 장료의 목에 겨눴지만, 굳이 숨을 끊을 필요도 없었다.

“컥…어윽…….”

확실한 전투 불능이었다. 왼팔이 부러지고, 입에서는 연신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날아오는 단창.

휘잉!

관우는 머리를 틀었다. 방금 전까지 머리가 있던 자리로 장합의 단창이 지나갔다.

그 사이 곁눈으로 감녕을 확인하니, 감녕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세 장수를 제압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푹.

무심한 소리와 함께 관우의 배에 창이 박혔다.

관우의 곁으로 다가온 장합이 단창을 손에 쥐고 찌른 것이다.

쿨럭.

관우가 토한 피가 장합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장합은 이를 악물고 관우의 배에 창을 다시 한번 쑤셔 넣었다.

푸욱.

다시 뒤로 한 발짝 물러난 관우. 장합을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미안하네.”

“뭣이?”

그 말과 함께 짧게 잡은 청룡도가 장합의 어깨에 떨어졌다.

콰직!

9척 장신인 장합의 긴 몸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절명이었다.

관우는 자신의 배에 박힌 단창을 뽑아냈다. 그 모습을 보던 백이병들이 눈물을 뿌리며 관우에게 물통과 종이 쌈지를 가져왔다. 화타에게 받아 둔 앵속이었다.

관우는 앵속을 입에 털어 넣었다. 모르핀이 작용하며 고통이 사라지고, 두 눈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이제 버티기 어렵겠군.’

무공이라면 아직 천하의 누구보다도 강하다. 그러나 환갑이 가까운 몸은 마음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모르핀이 없으면 버틸 수 없는 부상을 겪은 지 여러 번이다.

이 싸움에서 이겨도 관우 자신에게는 미래가 없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여기까지 온 사람은 없다.

백이병들도.

진도도.

노숙도.

관평, 관흥, 관색 세 아들들도.

그리고 장비도 마찬가지다.

“백이병, 전진하라. 저 앞에 마초가 있다.”

관우는 잔뜩 수축된 동공을 한 채, 걸어서 전진했다.

백이병 삼백이 그런 관우의 앞에서 길을 열었다. 죽음을 각오한 노병들의 기세는 자못 흉흉했다. 마가군의 정예병들이 막아 보려 했지만 백이병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런 백이병들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을 멈춰라.”

덜컥.

마치 뭔가에 걸린 것처럼, 맨 앞줄에 선 백이병들의 발이 멈췄다.

“다시 한번 말한다. 창을 멈춰라.”

은빛 갑주에 사자 투구를 쓴 마초였다.

마초는 말을 타고 백이병들의 사이를 유유히 지나쳤다. 마초를 향한 살의를 불태우던 백이병들은 막상 마초가 눈앞에 나타나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초는 관우의 20장 앞에 멈췄다. 그리고 관우가 말이 없는 걸 보자 자신도 말에서 내려 관우에게 걸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두 사람의 거리가 10장으로 가까워진 후.

마초가 자신을 둘러싼 백이병들을 향해 말했다.

“관운장과 내가 싸움을 끝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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