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싸움을 끝내는 자 (2)
“이런 빌어먹을.”
장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밤송이 수염이 올올이 뻗쳤다.
관색과 위연이 후방의 태아포 진지를 습격하며 마가군 본대가 어수선해졌다. 그 틈을 타서 오환 기병대로 피해를 입히는 게 연군의 작전이었다.
그러나 마가군 장수의 지휘 능력은 장비의 상상을 초월했다. 마가군은 순식간에 여덟 개로 분열하며 대 기병용 진법을 구사했다. 그 사이로 들어간 오환 기병들은 한 번에 열 발의 쇠뇌를 쏘는 연노 앞에 무참하게 쓰러져 갔다.
“옛날 병서에 나온 팔진(八陣)이 저런 뜻이었군. 저걸 해석해서 실전에 써먹는 놈이 있다니. 적장 이름이 뭐라고?”
장비가 묻자 부장 탁응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
“중서령 제갈량입니다. 지금은 마초의 군사라고 합니다.”
“아주 골치 아픈 놈이군.”
장비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결국 이 싸움은 마초를 잡아야 끝난다. 나는 중군의 지휘를 맡아야 하니, 마초를 잡을 수 있는 건 단 한 명.’
좌군을 이끄는 관우다.
그렇다면 좌군의 전력을 온존하는 게 최우선이다. 장비는 결단을 내렸다.
“탁응, 구루돈. 너희들 목숨을 내게 다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 익덕 형에게 달라는 거요? 나는 연왕야를 위해 죽는 것이오.”
장비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밤송이 수염이 한껏 하늘로 솟구쳤다.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
장비는 그대로 포진을 바꿨다.
“기형진(箕形陣)을 짜라!”
두두두두.
연군은 곡식의 껍질을 거르는 키처럼 앞은 넓고, 뒤는 좁은 모양으로 벌려 섰다.
공격을 위한 진형이 아니다. 마가군 주력 부대의 공격을 받아내겠다는 방어형의 진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갈량은 지체없이 부대를 전진시켰다.
“전군 30장 전진한다. 금철기는 적의 측면을 노려라.”
금철기.
20년 동안 전장을 휩쓸어 온 중원 최강의 기병대가 연군을 향해 달렸다. 금철기는 연군의 중군과 좌군 사이를 끊고, 중군을 옆에서부터 들이쳤다.
콰직!
“으아악!”
금철기의 금마삭이 박히자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정면에서의 공격에는 극히 강력한 기형진이지만, 금철기가 측면을 찌르자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장비는 팔짱을 낀 채 계속 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이다. 아직 나서지 마라.”
그 사이 마가군의 중군은 수레를 앞세워 전진해 오기 시작했다.
마가군의 수레가 30장 거리로 들어왔을 때, 장비가 비로소 움직였다.
“연인 장비가 여기 있다!”
순간적으로 마가군의 발이 멎을 만큼 강렬한 함성이었다.
장비는 그대로 흑마에 올라탄 채 앞으로 돌진했다. 구루돈이 이끄는 오환 기병들이 장비의 뒤를 따랐다.
붕. 붕.
붕. 붕. 붕. 붕.
장비가 돌리는 쌍신모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마침내 눈으로 따라가기도 어려울 만큼 가속이 붙었을 때, 장비가 마가군의 수레에 충돌했다.
콰직!
장비의 쌍신모는 그대로 수레를 둘로 쪼갰다. 수레의 나무 파편이 어지럽게 흩날리고, 방금 전까지 마가군 병사들의 몸에 붙어 있었던 팔다리가 허공을 날았다.
“으아악!”
“엄살은. 이제 시작이다.”
장비는 고리눈을 부릅뜬 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달리는 방향이 이상했다.
“좌에서 우로 달린다고?”
지켜보던 제갈량이 경악할 만한 움직임이었다.
콰직. 콰직. 콰직.
마가군 대열에 충돌해서 수레를 부순 장비는 안으로 파고드는 대신 옆으로 달렸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수레들을 전부 두 쪽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수레를 부수면 팔진은 힘을 못 쓰지. 연노병이 바로 노출되니까!”
말은 맞는 말이다. 수레를 방패 삼아 전진하던 연노병들은 수레가 부서지자 그대로 오환족 기병 앞에 노출되었다.
활이 연노보다 연사력이나 관통력은 떨어져도 사거리는 더 길다. 오환 기병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노병들에게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다.
퍼퍼퍽!
“으아아악!”
연노병들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장비의 터무니없는 돌격은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퍽! 퍽! 퍽! 퍽!
장비가 연노병들의 앞을 가로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레를 부수고 다니는 장비의 몸에 수십 발의 연노 사격이 쏟아졌다. 숱하게 많은 쇠뇌살을 쌍신모로 쳐냈고, 두터운 갑옷이 막아 주었지만, 적지 않은 수가 장비의 몸에 박혔다.
“제기랄. 더럽게 아프군.”
쾅!
일곱 번째 수레를 두 쪽으로 갈라 버린 장비가 씩 웃었다. 온몸에 연노가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었다.
퍽!
장비를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던 연노병 하나의 얼굴에 화살이 박혔다. 뒤따라오던 구루돈이 날린 것이었다.
“잡졸 말고 장수를 쏘라고!”
“알았소!”
장비와 구루돈은 서로 소리를 버럭 지르며 의사소통을 마쳤다.
뒤이어 백이병들이 마가군 진영에 달려들었다.
퍼억!
흰 투구가리개를 한 고참병들은 방패를 앞세워 마가군 진영을 들이받았다. 상대가 연노병이든, 기병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저 왼손의 방패로 밀어붙이고 오른손의 칼을 찔러 넣을 뿐이었다. 백이병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통에 창검이 박히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연왕 전하의 복수다!”
“빌어먹을 서량 놈들!”
전쟁터의 흥분, 유비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마가군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목숨을 버린 자 특유의 광기가 서려 있었다.
제갈량은 깃털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생각하기 시작했다.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고 대비했다. 그런데 저자는… 나의 헤아림조차 뛰어넘는가.’
팔진은 완벽했다. 설마 연노를 몸으로 받아내며 수레를 창으로 부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뿐이다.
결국 장비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싸움을 끝낼 수 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제갈량은 깃털 부채를 휘둘러 신호를 보냈다.
유사시 장비를 상대할 방법도 준비되어 있었다. 순서가 뒤죽박죽되었을 뿐이다.
끼이이익.
검은 수레 하나가 장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수레를 끄는 말이 있어야 할 곳에는 말이 보이지 않고, 여러 개의 방패로 전면이 가려져 있었다.
퍽! 퍽! 퍽!
오환 기병들이 쏘는 화살이 수레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수레는 화살이 박혀 고슴도치 같은 모양이 된 채,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지켜보던 장비가 크게 소리쳤다.
“활을 거둬라! 너희들 상대가 아니다.”
15년 전, 장수 다섯 명이 7만 조조군을 밀어붙여서 승패를 뒤바꾼 적이 있다.
수레를 끄는 건 그때 장비와 함께 싸웠던 장수가 분명했다.
“그만 나와라, 황한승. 내가 상대해 주마.”
덜컹.
장비의 목소리를 듣자 수레가 멈췄다. 수레를 끌던 황충이 앞으로 나섰다. 왼손에 대형 방패, 오른손에 낭아봉을 들고 있었다.
“장익덕. 그대에게는 미안하게 됐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야?”
장비는 쌍신모를 들고 황충을 향해 말을 달렸다.
땅에 서서 방패를 들고 있는 황충은 그런 장비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고 싶으나, 그럴 상황이 아님을 이해하시오.”
“죽인, 다!”
수레 안에서 9척 5촌의 거한이 일어났다. 남만족 전사 올돌골이었다.
깡!
올돌골은 거대한 체구로 풀쩍 뛰어올라 장비를 창으로 찔렀다. 장비는 쌍신모로 올돌골의 공격을 받아넘겼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황충이 방패를 앞세워 돌진했다.
퍼억!
장비를 태운 흑마가 그대로 넘어갔다. 장비는 낙마해서 바닥을 굴렀다.
“어허!”
장비는 아직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대로 바닥을 굴러 일어나며 쌍신모를 돌렸다. 올돌골의 창 자루가 부러져 나가고, 황충도 방패 한 귀퉁이가 부서진 채 뒤로 물러났다.
“겨우 둘이냐?”
촤르륵.
장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 수레에 타고 있던 또 다른 한 명이 일어나 그물을 던졌다. 마초의 호위무사 마충이었다.
“흡!”
마충은 그물을 팽팽하게 당겼다. 장비의 상체에 여기저기에 그물이 얽혀서 행동이 부자유스러워졌다.
턱.
장비는 그 상태에서도 올돌골이 내리치는 도끼를 막았다. 올돌골의 손목을 틀어쥔 것이다.
그러나 황충이 방패를 눕혀서 밀어붙이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퍼억!
“큭…….”
이번에는 천하의 장비도 충격을 입었다. 황충은 굳은 표정으로 계속 방패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드드득.
장비의 발이 땅을 긁으며 뒤로 밀려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장기가 다 부서졌을 만한 중상이었다.
척.
장비는 쌍신모를 땅에 꽂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올돌골의 손목을, 한 손으로는 황충의 방패 모서리를 붙잡았다. 올돌골, 황충, 그리고 그물을 쥔 마충까지, 장비는 세 사람과 동시에 힘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셋이 덤비면 이길 것 같으냐?”
마치 비웃는 듯한 말투.
그런 장비에게 낮게 깔리듯 한 신형이 달려 들어갔다.
퍼억!
왕평이었다. 왕평이 손도끼로 장비의 오른쪽 허벅지를 깊게 베고 지나가자 피가 솟구쳤다.
“씩씩한 놈이군.”
장비는 왕평이 진심으로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왕평은 다시 뒤에서 앞으로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왼쪽 다리가 목표였다.
왕평이 거의 근접했을 때, 장비가 별안간 몸을 틀었다. 오른손으로 그물을 한껏 그러쥔 채 낚아챈 것이다.
“어엇?”
마충이 장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딸려왔다. 장비는 한 동작으로 왼쪽 다리를 들어 왼쪽 후방에서 접근하는 왕평의 배를 찼다.
쾅!
“……!”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왕평이 날아갔다. 왕평은 한참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부딪혀서 쓰러진 뒤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컥! 커억!”
왕평의 고통스러운 비명.
장비는 재빨리 뒤로 몇 발짝을 이동하며 그물을 끌어당겼다. 마충이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올돌골이 황급히 도끼를 들어 그물의 중간을 찍었다.
그 사이 황충이 장비에게 근접했다. 황충에게는 방패와 낭아봉이 있지만, 장비에게는 쌍신모가 없는 상황.
장비는 주먹을 들어 황충의 방패를 향해 뻗었다.
쾅!
황충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장비의 주먹은 남방의 거목으로 만든 방패를 너무나 쉽게 뚫고 황충의 몸을 후려쳤다.
“크윽!”
그러나 장비 이상의 체격을 가진 황충이다. 황충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버텨 내며 낭아봉을 휘둘렀다.
텅.
장비는 왼손으로 어렵지 않게 낭아봉을 막아냈다.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손잡이 부분을 잡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방금 방패를 부순 장비의 오른 주먹이 황충의 옆구리에 꽂혔다.
쾅!
황충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대로 낭아봉의 손잡이 끝으로 장비의 얼굴을 찍었다.
퍽!
장비의 얼굴에서 허연 머리뼈가 드러났다. 그리고 잠시 후, 상처 부위의 막대한 출혈로 머리뼈가 더 이상 안 보이게 되었다.
퍽.
퍽. 퍽. 퍽.
장비와 황충은 그대로 낭아봉 하나를 같이 움켜쥔 채, 반대쪽 손으로 서로의 몸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맨손이지만 한 방 한 방이 즉사할 만한 공격이었다.
쾅!
팽팽하던 싸움은 장비가 황충의 얼굴을 이마로 받아 버리며 한쪽으로 기울었다. 황충이 크게 휘청거리며 몇 발짝 뒤로 물러난 것이다.
“더 놀아 주고 싶지만…….”
퍽!
어느새 다가온 마충이 장비의 말을 끊고 삼지창을 내질렀다.
장비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삼지창을 한 번 내려다보고 다시 앞을 봤다.
“나라고 무한정으로 싸울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
올돌골이 다가오고 있었다.
쑤욱.
장비는 가슴에 박힌 삼지창을 뽑았다. 마충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퍽!
장비는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돌진하며 삼지창을 내질렀다. 올돌골의 팔에 삼지창이 박혔다.
퍽.
그 사이, 짧은 검을 뽑아 든 마충이 돌진하며 장비의 배를 찔렀다.
“쿨럭.”
장비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장비는 그 상태로 오른손을 뻗어 마충의 머리를 쥐었다.
콰직.
기묘한 소리가 나며 마충의 몸이 축 늘어졌다. 장비가 손으로 머리를 쥐어 터뜨린 것이다.
후두두둑.
장비의 온몸에서 선혈이 쏟아졌다. 여러 번의 치명상으로 인해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인지, 연노에 맞은 자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전투 불능이 된 올돌골과 왕평, 사망한 마충.
다만 황충만은 그 와중에도 다시 회복해서 장비에게 덤벼 왔다. 장비는 다가오는 황충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쾅!
두 사람이 충돌한 후.
땅에 쓰러져 있는 것은 황충이었다. 장비의 주먹이 안면에 꽂히자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장비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가 다시 쌍신모를 들었다.
후두두둑.
다시 한번 피가 쏟아졌다. 사람 한 명의 몸에서 나왔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피가 장비 주변의 땅에 고였다.
지켜보는 군사들은 아무도 끼어들지 못했다. 그저 장비의 무위에 경악할 뿐이었다.
두두두.
연군 기형진의 측면을 찔렀던 금철기 일부가 장비를 막기 위해 마가군 진영으로 되돌아왔다.
선두에 선 것은 마명과 강유.
먼저 마명이 달려들었다. 금마삭을 겨드랑이에 단단히 끼운 채, 서 있는 장비를 향해 내질렀다.
우드드득.
장비는 왼손으로 마명이 내지르는 금마삭을 잡았다. 사람과 말이 만들어 내는 충격력을 이기지 못해 발이 뒤로 질질 끌리며 밀려났다.
쌍신모를 쳐든 장비의 눈에 마명의 얼굴이 들어왔다. 푸른 눈동자까지 마초와 꼭 닮은 얼굴을 보자 장비는 마명의 정체를 짐작하고 씩 웃었다.
“어른들 싸움이다.”
퍽!
장비의 쌍신모가 한 번 번뜩이자 마명의 말머리가 날아갔다.
우당탕!
마명이 낙마해서 땅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마명의 등 뒤에 바싹 붙어 달리던 강유가 장도를 치켜들고 돌진했다.
쉬익!
강유의 장도는 빠르고 예리했다. 장비의 가슴에서 피가 튀었다.
동시에 장비는 빼앗은 금마삭을 휘둘렀다. 거꾸로 잡은 금마삭의 자루가 장비를 베고 멀어져 가던 강유의 등을 후려쳤다.
퍽!
촤아악.
금마삭에 등을 맞은 강유가 말에서 떨어져 땅에 처박혔다.
장비는 순식간에 땅에 쓰러진 마명과 강유를 보며 말했다.
“젊은 놈들이 끼어들어 죽을 자리가 아니다.”
터덜. 터덜.
이미 화살 수십 대가 박히고, 창검에 수십 곳을 상한 장비가 비틀거리며 마가군 진영으로 계속 전진하기 시작했다.
“으…으윽!”
“히에엑!”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군사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갈량은 장수 하나에게 명을 내렸다. 곽준이었다.
곽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연노차를 몰아 장비의 앞으로 다가갔다.
“천하 용장이라는 말도 부족하구려. 장익덕 장군, 천하가 그대의 무용을 기억할 것이오.”
퍼퍼퍽!
불과 10장 거리에서, 십여 발의 연노가 다시 한번 장비를 향해 날았다.
그러자 장비의 발이 멎었다.
장비는 비틀거리며 신형을 수습했다. 그리고 자신을 쏜 곽준 대신, 멀리 있는 제갈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 군사. 이 싸움은 그런 걸로 끝나지 않아.”
장비의 말이 들린 것일까.
제갈량은 깃털 부채를 들어 곽준에게 사격 중지의 신호를 보냈다. 두 번째 연노를 장전하던 곽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멈췄다.
털썩.
장비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도 그의 주변에 다가가지 못하니, 장비를 중심으로 넓은 공터가 생겼다.
앉아서 호흡을 고른 장비는, 쌍신모로 땅을 짚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날이 따뜻해졌구나. 복숭아꽃이 필 때가 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