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300화 (287/306)

300화. 산양 결전

패주하던 마가군은 마초의 군단과 마주하게 되었다.

주장 육손이 앞으로 나아가 마초에게 군례를 올렸다.

“적을 막지 못하고 연진을 내주었습니다. 패장으로서 주공께 죄를 청합니다.”

그러나 마초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지만 이루는 건 하늘이니, 홍수로 인해 일이 틀어진 것을 어찌하겠나. 홍수만 아니었으면 연군이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그대의 책략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범람한 황하는 하동, 하내, 낙양의 여러 고을에 수해를 입히고 지나갔다. 연진에 있던 육손보다 낙양 일대에 있던 마초가 먼저 홍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줄기는 천리마보다 빠르니 마땅히 소식을 전할 방법도 없었다.

결국 자연재해로 인해 꼼짝없이 연진을 내주게 된 셈이다.

육손은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주공. 장료 장군은 중상을 입었고, 방덕 장군의 부상도 가볍지 않습니다. 감녕 장군은 무사히 아군에 합류했지만, 홍수 때문에 금범군을 많이 잃었습니다.”

“낙심할 필요 없다. 적도 많은 것을 잃었다.”

“적이 잃은 것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황하가 범람하며 물줄기가 바뀌었다. 적은 이제 낙양을 바로 노릴 수 없게 되었다.”

황하는 수십 년에 한 번씩 물줄기가 바뀐다. 고대의 황하와 현대의 황하는 수천 킬로미터 단위로 위치가 달라질 지경이다.

그런 특징 때문에 연진의 전략적 가치가 사라졌다. 낙양까지 이어지는 물줄기가 끊어졌으니, 적은 황하를 거슬러 바로 낙양을 노릴 수 없게 되었다.

“5만 군사가 먹을 군량을 운송하려면 황하를 통할 수밖에 없지. 그러니 적은 반드시 이곳을 지나게 된다.”

척.

마초는 지도 위의 한 점을 짚었다. 육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양현이군요.”

운명의 장난일까.

마초가 제위에 오르기 위해 마지막 결전을 벌일 장소는, 원래의 역사에서 폐위된 천자 유협이 살게 되었던 산양현이었다.

“연진이 뚫릴 경우에 대비해서 이곳을 요새화하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무덕현의 물길을 미리 끊고 있었지. 홍수 때문에 무덕현에 쌓은 제방이 무너져 버렸지만, 어쨌든 적을 산양으로 유인할 수 있게 되었다.”

육손 자신의 패배까지 염두에 두고 짜는 촘촘한 계획.

‘이것은 주공의 방식이 아니다. 주공이라면 연진에 합류해서 난전의 승리를 도모했겠지.’

그렇다면 이런 전략을 누가 짰다는 말인가?

육손의 머릿속에 짚이는 바가 있었다.

“제갈공명입니까?”

“잘 아는군.”

마초가 육손을 바라보며 씩 웃은 뒤, 제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전투에서의 패배에 낙담하지 마라. 우리는 여러 번의 패배를 딛고 승리하는 과정에 있다. 결국 우리가 이길 것이다.”

육손이 이끄는 제1군단은 마초가 이끄는 제2군단과 교대했다.

산양 벌판에서 마초의 10만 대군이 연군 5만을 맞이할 것이다.

* * *

“그리고 제 3군단도 준비돼 있다고 합니다. 거기장군으로 전임된 순유가 군사 8만을 이끌고 온현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연군, 총대장의 군막.

총군사 노숙은 관우와 장비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장비가 씩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제 3군단만 해도 우리 총병력보다 많군.”

“제 4군단도 있습니다. 신임 관중도독 마철이 이끄는 서량병 7만입니다. 이들은 홍농에 있다가 제 3군단이 투입되면 온현으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육손이라는 놈이 이끄는 10만 대군을 기껏 쫓아냈더니, 아직 25만이 남은 거구만. 제 5군단은 없다던가?”

“없습니다. 제 4군단이 투입되면 그동안 재정비한 육손의 제 1군단이 동시에 투입되어 총력전을 벌이는 구조입니다.”

“그것참 대단하군. 운장 형, 들었소? 이러다 뒈지겠는데.”

장비는 빙글빙글 웃으며 관우를 돌아봤다.

관우는 웃통을 벗은 채 호상에 앉아 있었다. 백발의 의원 한 명이 관우의 목에 난 큼직한 상처를 꿰매고 있었다. 장료가 만든 검상이었다.

의원이 꿰맬 때마다 바늘이 살을 뚫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웃통을 벗어 던진 관우는 가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갈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살 생각으로 거병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긴 그거야 그렇지. 그래도 살아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소? 안 그래, 자경 선생?”

장비가 묻자 노숙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유비의 부고와 함께 삶에 미련을 버린 지 오래였다.

“물론입니다. 연왕 전하께서는… 주공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이길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내 생각엔 딱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장비의 말에 노숙과 관우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제 2군단을 격멸하고 마초를 잡는다.

전투에서는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길 방법은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좋아. 작전이 정해졌으니 속이 편하군. 그런데 자경 선생. 그 녀석 소식은 없었나?”

그 녀석.

관우의 장비의 오랜 벗이다. 노숙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자룡 장군은 몇 달째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는 천자를 지키는 우림중랑장 출신이니, 찬탈을 공식화한 마초를 도울 수 없었겠지요.”

천자의 옛 친위대장.

관우와 장비의 옛 친구.

그리고 마초의 의형제이자 매제.

여러 가지로 난처한 입장에 처한 조운이었다. 그가 두문불출을 선택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가. 이번 생에 조자룡을 다시 만나려면 마초를 잡는 수밖에 없겠군. 그런데 운장 형, 아프지 않소?”

장비의 물음에 관우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아프지 않을 리가 있나. 하지만 앵속(罌粟, 아편)을 많이 써서 견딜 만하군.”

“조심하시오. 앵속은 많이 쓰면 폐인이 된다지 않소.”

“알았네. 혹시 이 상처를 입힌 장료라는 자가 다시 전장에 나오거든, 아우도 꼭 피하게. 내가 운이 좋아서 이겼을 뿐, 이미 우리들 못지않은 무용을 지닌 자일세.”

“나 참. 마초를 때려잡아야 하는데 장료인지 뭔지를 경계할 틈이 어디 있소.”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관우와 불퉁거리는 장비. 여느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노숙은 문득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사이 관우를 치료하던 의원, 화타는 봉합을 마치고 두 손을 모았다.

“수많은 환자를 치료했지만, 관공처럼 위엄 있는 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관공께서는 과연 신이 내린 인물이십니다.”

“과찬의 말씀을.”

관우는 짧게 화타에게 답례했다.

화타는 관우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은 채 군막을 나왔다. 그런데 한 가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관공은 처방한 앵속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마취제도 없이 살을 찢는 고통을 참을 수 있는 것인가.

쓰지 않은 앵속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화타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 * *

둥. 둥. 둥. 둥.

219년 2월, 산양 벌판에 북소리가 울렸다.

동쪽에는 연 상장군 관우가 이끄는 연군 5만.

서쪽에는 양왕 대장군 마초가 이끄는 마가군 10만이 포진했다.

마가군은 이번 싸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군단장인 육손, 순유, 마철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수와 참모들이 참전했다.

쟁쟁한 참모들 중, 주장 마초의 곁에서 총군사를 맡은 것은 제갈량이었다.

“후방에 태아포를 열 문씩 배치한 진지 세 곳을 설치했습니다. 적의 주력이 정면으로 오면 갑 진지로, 좌측으로 오면 을 진지로, 우측으로 오면 병 진지로 유도하면 됩니다.”

제갈량은 기책을 선보인 적이 없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각각의 수에 맞는 대책을 꼼꼼하게 준비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마초는 제갈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마도 적은…….”

둥. 둥. 둥.

연군이 전진했다. 정면의 연군이 올리고 있는 거대한 군기에는 연인(燕人) 장비(張飛)라고 씌어 있었다.

“…정면으로 올 것 같군.”

장비는 1만가량의 선봉대를 이끌고 천천히 전진했다.

“정지하라!”

“정지!”

장비는 화살의 사거리까지 들어오기 전에 멈춰 섰다.

화살 또한 귀중한 물자다. 연군은 장거리 원정을 왔고, 병사의 숫자도 마가군의 절반에 불과하다. 화살 교환을 하면 득보다 실이 큰 것이다.

“섣불리 공격하지 마라. 연군이 돌격해 오길 기다려라.”

“연노대, 준비하라!”

마초의 지시에 이어 제갈량의 호령이 떨어지고, 연노대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 섰다. 그 앞에는 수레를 앞세운 창병들이 섰다.

적이 돌진하면 먼저 궁병들이 곡사로 화살을 퍼부은 후, 수레에 의지한 창병들이 돌격을 저지한다. 그리고 연노대가 일제사격을 통해 적을 제압한다.

맹장 한두 명을 앞세운다고 뚫을 수 없는 탄탄한 포진이었다.

“산 넘어 산이군. 연진에서 육손이란 놈을 상대하면서 죽다 살아났는데, 더 무서운 놈이 있었나.”

고리눈을 부릅뜨고 적진을 관찰하던 장비가 너스레를 떨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오환족 대인 구루돈이 핀잔을 줬다.

“익덕 형은 병사들 사기는 생각하지 않소?”

“이놈아. 내 주변에는 죄다 백이병이다. 이놈들은 내 말도 귓등으로 듣는다고.”

흰 투구 가리개를 귀처럼 늘어뜨린 백이병.

서주 시절부터, 일부는 하북 시절부터 유비를 따라 종군했던 고참병들이다. 딱히 체격이 크지는 않았다. 나이도 사십 줄에 접어든 노병들이 즐비했다.

그들은 장비가 뭐라고 하던 신경 쓰지 않았다. 한껏 해이해진 상태로 그저 군령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장비는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마가군 진영에서 장비가 바라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태아포 진지에 적습입니다!”

마초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적습이라. 황하에는 감흥패가 있다. 그들을 피해 남쪽으로 우회할 수 없었을 텐데.”

“북쪽입니다! 적 기병대가 흑산을 넘어 산양 벌판으로 쏟아져 내려왔습니다!”

말을 타고 산을 넘는다.

연군에 그런 짓을 할 만한 장수가 한 명 있다. 마초는 그를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 참 안 바뀌는군. 적장은 위연이라는 놈일 것이다. 맞상대하지 말고 별동대를 기다리라 전해라.”

마초는 그 자리에서 위연을 상대할 별동대를 편성했다.

주장에 방덕, 부장에 마대였다.

“그리고 맹획, 너도 같이 가라. 다른 남만 장수들도 마찬가지.”

“위연이 그 정도입니까?”

“때를 잘 만났으면 그 명성이 황한승이나 조자룡에게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 방심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마초의 부름을 받고 수천 리를 달려온 맹획은 군례를 올린 후 방덕과 마대의 뒤를 따랐다. 작달막한 말을 탄 남중 기병대가 맹획의 뒤를 따랐다.

정면의 장비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위연이 적의 후방을 교란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마초는 위연을 제압했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태아포 진지에서 다시 전령이 달려왔다.

“급보! 별동대가… 밀리고 있습니다!”

“그래? 위연을 상대하기에 부족한 포진은 아니었을 텐데.”

“위연의 곁에 대단한 맹장이 있습니다! 적,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들었습니다!”

“알았다.”

마초는 즉시 말머리를 돌렸다.

관색까지 같이 별동대로 투입했다는 것은, 어떻게든 이 별동대의 활약에 승부를 걸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처리하고 승기를 잡을 것이다. 공명, 나 대신 지휘하라! 이제부터 그대의 말은 내 말과 같다.”

“알겠습니다.”

제갈량이 마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초는 그대로 금철기를 이끌고 후방의 태아포 진지를 향해 말을 달렸다.

예상대로였다. 태아포 진지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마초의 눈앞에 보이는 태아포 하나가 별안간 크게 기울었다. 그리고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으아악!”

태아포가 무너지며 깔린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쓰러진 태아포 근처에서 한 명의 장수가 말을 타고 달려 나왔다. 마초는 그가 누구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태아포를 일격으로 꺾을 만한 무기는 청룡언월도밖에 없는 것이다.

“기껏 목숨을 살려 줬더니 죽으러 온 것이냐.”

관색은 마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청룡도를 비껴 잡고, 적토마를 휘몰아 마초에게 달려 들어왔다. 여포를 꼭 닮은 영준한 얼굴에 단호한 결의가 떠올라 있었다.

“처음 병장기를 잡은 날부터 이때까지, 살기를 바란 적 없습니다.”

관색은 병장기를 들지 않은 왼손을 허공에 뻗었다.

관색의 옆에 있던 연군 병사 하나가 관색을 향해 또 하나의 무기를 던졌다.

척.

관색은 병사가 던진 무기를 왼손으로 낚아챘다. 창끝에 초승달 모양의 칼날이 달린 무기, 방천화극이었다.

마초는 금철기들에게 수신호를 했다.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다. 내가 직접 상대할 테니 끼어들지 마라.”

두두두.

마초는 그대로 금마삭을 뽑아 들고 관색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사자 투구가 초봄의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맞은편의 관색도 녹색 두건을 휘날리며 돌진해 왔다. 왼손에는 방천화극, 오른손에는 청룡언월도를 든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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