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98화 (285/306)

298화. 연진 전투 (1)

“연진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총대장 육손은 장수들을 둘러보며 힘주어 말했다.

“연진부터 낙양까지는 황하의 물살이 평탄합니다. 적이 연진을 얻는다면, 겨울이 끝남과 동시에 황하를 거슬러 낙양으로 밀고 들어올 것입니다. 어떻게든 여기서 막아내야 합니다.”

군막 안에는 육손보다 훨씬 더 많은 군공을 세운 장수들이 즐비했다. 그중에는 육손의 옛 상관인 장료도 있었다.

그러나 마초는 그들 대신 육손을 총대장으로 세웠다. 파격적인 인선이었다.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육손의 병법이 천하제일을 다툴 수준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또한 연공서열에 얽매여 인사를 할 만큼 전황이 한가하지 않았다.

“좋아, 좋아. 우리들은 자네 말에 반대할 생각이 없어. 그런데, 장익덕을 누가 막지?”

장료의 물음에 좌중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장비는 최고의 병법가이면서 최강의 무사다. 그는 단신으로 전장에 뛰어든다. 그런 장비를 잡기 위해 원군이 출동하면 그때부터 장비의 책략이 펼쳐진다.

출동하지 않으면?

“그때는 혼자서 전장을 쓸어버리지. 터무니없는 자다.”

방덕의 어조도 무거웠다. 그는 맞수이자 벗이었던 서황이 사로잡힌 이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차라리 우리 셋이 장비를 상대하는 건 어떤가.”

방덕이 말하는 셋은 방덕 자신과 장료, 감녕이었다.

그러나 육손은 고개를 저었다.

“적진에 장비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부장 위연과 관색 또한 용장들입니다. 무리해서 장비를 노릴 필요 없습니다. 아군은 적의 다섯 배에 달하니, 진지를 굳게 지키면 적이 섣불리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연왕부의 원정군은 총 5만.

그중 장비가 이끌고 있는 부대는 2만.

반면 연진을 막아선 육손의 병력은 10만에 달했다.

사실 지금의 마가군은 10만 명의 군단을 다섯 개까지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전투에 10만을 넘는 대군이 투입되면 지휘체계의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런 상태로 최강의 단위 전투력을 자랑하는 장비나 관우의 부대와 맞서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전력 차는 열 배. 아군은 굳이 전투에서 이기려 할 필요 없다. 굳게 지키면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육손은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장비에게 연진을 내주지 않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있었다.

장료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하지만 말이야. 싸우다 보면 아군이 이득을 취할 상황이 올 수도 있잖아? 그때도 철저히 지키기만 할 건가?”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육손은 고개를 젓고 감녕을 쳐다봤다.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채 다리를 탁상에 올리고 있던 감녕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 육손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육전에서는 아무리 유리해도 선제공격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전에서는 다르지요. 기회가 나면, 감 장군과 금범군이 적의 빈틈을 찌를 것입니다.”

* * *

218년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연진 일대의 황하도 얼어붙었다. 하루 이틀 날씨가 풀리면 조금씩 녹는 듯 보였지만, 사흘도 못 가 다시 찾아오는 혹한으로 얼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장비는 혹한에 아랑곳하지 않고 싸움을 걸어 왔다. 방덕과 장료, 황권이 번갈아 장비의 공세를 막아냈다. 싸움이 난전으로 접어들어 큰 재미가 없을 것 같으면 장비는 욕심부리지 않고 물러났다. 마가군도 굳이 장비와 생사결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 219년 1월이 되었다.

“새해가 돼도 저놈의 장익덕은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군.”

장료가 투덜거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황권이 말했다.

“연군은 멀리 원정을 나와 있고, 진지도 습지대 가까이에 있소. 아군보다 혹한을 견디기 더 어려웠을 것이오. 동상으로 군사들을 적잖이 잃은 게 틀림없소.”

“내 생각도 그렇긴 한데, 저놈들은 어째 기가 죽은 것 같지 않구려.”

장료와 황권의 대화에 육손이 끼어들었다.

“적은 관운장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관운장을?”

“연군의 진중에서는 관운장이 사람이 아니라는 소문이 났다지요.”

“그야 내 생각에도 사람 같지 않기는 한데… 사람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용입니다. 연군 병사들은 관운장이 청룡이라 여긴다더군요.”

“청룡이라.”

장료는 멀리 연군의 진중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거 그럴싸하군. 그자는 단순히 힘이 세다거나, 무예를 잘한다거나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야. 그자의 싸움을 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투둑.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장료는 휘파람을 불었다.

“드디어 날이 조금씩 풀리나 보군.”

황하의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였다.

강추위 때문에 잠시 멈췄던 싸움이 다시 시작되는 소리이기도 했다.

장비는 지체없이 군사를 냈다. 위연이 선봉이 되어 밀고 들어왔다.

“상대의 진지를 빼앗아라!”

위연은 군사들을 독려해 과감하게 전진해 왔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휘이이익.

퍽!

“으아악!”

진지 방어를 맡은 방덕은 몸소 활을 쏘며 마가군을 독려했다. 서량의 신궁이 쏘는 화살은 한 번 날 때마다 장수들, 군관들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었다. 위연 본인도 몇 번이나 중상을 입을 뻔했다.

“제기랄, 뭐 저런 놈이!”

방덕의 진지를 쉽게 함락시키지 못하고 이를 가는 위연.

반면 방덕은 여유가 있었다.

“진을 치기 좋은 곳은 전부 아군이 선점하고 있다. 이대로 버티면 적은 제풀에 무너진다.”

위연은 결국 적잖은 손실을 낸 채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연군의 주장 장비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상황이 좋지 않군. 눈이 완전히 녹으면 우리 쪽 진지는 진흙탕이 된다. 반면 저 마가군 놈들은 건조한 곳에 있으니… 어떻게든 봄이 오기 전에 진지를 빼앗아야 한다.”

겨울 동안 매번 장비가 이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작 겨울이 끝날 때가 되니, 상황은 장비에게 극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장비는 속으로 적장 육손의 솜씨에 감탄하며, 위연과 관색을 불렀다.

“총공격이다. 문장은 좌측, 장생은 우측으로 나아가라. 나는 강 위에 있다가 그대들의 전황을 보고 유리한 쪽으로 합류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존명!”

장비가 불리한 쪽이 아니라 유리한 쪽에 붙는다.

어떻게든 전력을 한 점에 집중시켜서 뚫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연군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황하의 남쪽이 되는 좌측으로는 위연이, 우측으로는 관색이 일군을 이끌고 전진했다.

장비는 강 위에 전선을 띄우고 전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촤아아악.

그런데 상류 쪽에서 물살을 가르며 한 무리의 작은 배들이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연군이 보유하지 못한 대단한 쾌속선이었다.

“그럴 줄 알았지.”

장비는 고리눈을 부릅뜬 채 씩 웃었다.

마가군에는 물싸움에 극히 능한 부대가 있다. 장비 스스로 물 위에 떠 있으면 반드시 이 부대로 습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펄럭.

선두의 마가군 전선이 비단 돛을 펼쳤다. 예상대로였다.

“그대로 두면 아주 귀찮은 놈들이지. 네놈부터 강바닥에 처박아 주마, 감녕.”

장비는 목을 우두둑 꺾으며 손수 북채를 잡았다.

감녕의 금범군은 수전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종의 비대칭전력이다. 그런 금범군을 꺾으려면 지금처럼 얼음이 완전히 녹지 않고 수량이 적어 배의 기동이 불편한 늦겨울이 가장 좋았다.

게다가 장비는 수전에도 어지간히 자신이 있었다. 마가군이 그 사실을 모르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감녕은 전선의 이물에 발을 올린 채, 팔짱을 끼고 장비의 전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장비라는 놈이 전신(戰神)이라지. 하지만… 에이, 좌현으로 틀어!”

“좌현으로!”

“좌현으로!”

감녕이 급하게 지시하자 금범군들이 복창하며 배의 방향을 틀었다.

끼이이익.

선두에 선 감녕의 대장선은 뿌연 물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바위를 비껴 나갔다. 뒤따르던 배들도 대장선을 따라 배의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장비, 이 빌어먹을 황하에 배를 띄운 게 실수다. 여긴 전신이 뒈지기 딱 좋은 강이거든.”

딸그랑.

감녕은 방울 소리를 울리며 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신중하게 겨눈 후, 첫 번째 화살을 장비의 대장선 쪽으로 쏴붙였다.

텅.

화살은 뱃전을 때리고 떨어졌다. 아직 피해를 입히기에는 먼 거리였다.

장비의 대장선에서는 응사하지 않았다. 그러자 감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속지 않는군. 제법인데.”

장비의 대장선에서 응사하게 만들어 일찌감치 화살을 소모시킬 의도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장비는 물싸움에 능했다.

감녕은 바람의 방향을 확인한 후, 즉시 다음 작전으로 이행했다.

“돛을 펼쳐라! 장비의 대장선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라!”

“전속력으로!”

“전속력으로!”

철썩.

금범군 병사들이 일제히 노를 저었다. 천하의 어떤 수군보다도 힘 있고 일사불란한 동작이었다.

동시에 비단 돛이 찢어질 듯 부풀었다. 순풍에 물살의 힘, 노의 힘까지 더해진 감녕의 배는 장비의 대장선을 향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감녕의 배로 빗발치듯 화살이 날아들었다. 금범군 몇몇이 화살에 맞아 바닥에 쓰러지고, 강물 속으로 빠졌다.

배가 고슴도치처럼 되거나 말거나, 감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일견 무모해 보이는 돌진이었다.

그리고 배가 장비의 대장선에 근접하자, 감녕은 뱃전에 눕혀 놓았던 길다란 물건을 꺼내 들었다.

끼이이익.

돛대를 뽑아 만든 1장 8척짜리 봉이었다. 예전과 다른 점은 봉 끝에 충각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장팔범봉이라 불렀고, 지금은 장팔삭(朔)이라 부르고 있는 무기다.

“기병들만 창 들고 돌격하란 법 있나. 으아아압!”

감녕이 힘을 쓰며 장팔삭을 들어 올렸다.

금범군 병사들은 정확히 감녕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감녕이 장팔삭을 꽂기 좋도록, 장비의 대장선의 선수에서 살짝 비껴난 곳을 노려 전속력으로 들이받았다.

콰드드득!

“으어어억!”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돛대를 뽑아 만든 창을, 사람이 배에 꽂아 버린 것이다.

금범군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팔삭이 뚫어낸 커다란 구멍으로 쇠뇌를 마구 쏴붙였다. 쇠뇌에 달려 있는 기름 주머니가 터지며 독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다음에는 불화살의 차례였다. 화전이 날아들자 장비의 대장선 곳곳에서 불길이 일었다.

“돛을 접어라. 전속력 후진!”

“전속력 후진!”

장비의 배가 치명상을 입은 걸 확인하자, 감녕은 미련 없이 다음 단계로 이행했다. 금범군의 배는 그대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곤란해진 것은 순식간에 배가 부서진 장비였다.

“하, 이런 빌어먹을. 마가군에는 별 미친놈이 다 있군.”

어떻게 수를 쓸 사이도 없었다. 장비의 대장선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수량이 적어서 배의 기동이 불편하다. 지금이라면 감녕과 대등하게 수전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기동이 불편하다는 점을 역이용해 허를 찌를 줄이야.’

쿵.

대장선이 크게 흔들렸다.

침몰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장비는 북채를 내려놓고 징을 쳤다. 퇴각의 신호였다.

* * *

개전 후 3개월.

감녕의 활약으로 마가군은 처음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날 이후, 장비가 이끄는 연군은 황하에 전선을 띄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이제 상류냐, 하류냐를 정해서 육전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쪽을 택하든, 황하를 장악한 마가군이 뒤를 노리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졌다.

육손은 침착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아직 적의 사기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거지?”

“관운장 때문입니다. 연주를 공략한 관운장이 곧 연진에 합류할 겁니다. ‘관공이 오면 달라진다’ 연군 병사들에게는 그런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놈의 관우 타령, 지겹지도 않나. 관우가 진짜 용이라고 믿고 있는 것 아냐?”

감녕은 피식 웃으며 육손을 바라봤다.

‘주공이 이 녀석을 주장으로 세운 이유가 있군. 전공을 세운 건 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판을 짠 건 이 녀석이다. 게다가 작은 승리에 휘둘리지 않는 평정심까지 있군.’

육손이 짜 놓은 판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얼음이 녹고 있었다. 저습지에 위치한 연군의 진지는 곧 진흙탕이 될 것이다. 멀리 원정을 나와 혹독한 겨울을 보낸 피로도 연군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묵묵히 듣고 있던 방덕이 말했다.

“관운장이 온다면 저쪽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우리에게도 원군이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육손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말했다.

“대장군부에서 기별이 왔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후방의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곧 대장군이 옵니다.”

마초가 연진으로 온다.

육손이 선언하자, 제장들의 눈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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