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무성(武聖)
“저자가 관우인가. 생긴 건 그럴싸하군.”
“그런데 생각보다 늙었잖아?”
억센 형주 말씨로 관우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것은, 장패의 옆에 붙어 있던 무사 두 명.
이번 임무를 위해 마초가 붙여 준 인물들이다. 마초는 무명의 인재들을 어디선가 데려와서 요긴하게 써먹는 일이 많았다. 이들 두 사람에 대해서는 ‘두 명이 같이 싸우면 천하 용장이라도 잡을 수 있는 무사’라고 평했다.
“범강. 장달. 경거망동하지 마라. 상대는 관우다.”
“예이, 예이. 알았습지요.”
“그야 예전에는 한가락 했겠지.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늙은이 아니오.”
장패가 말해도 형주 출신의 무사, 범강과 장달은 이죽거리며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장패는 그들을 나무라려다 그만뒀다. 잠시 후면 관우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범강과 장달은 이름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력만은 과연 천하 용장이라도 잡을 수 있을 만한 자들이었다.
“비록 나이가 들었다 하나 관우는 천하 용장이다. 방심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장패는 범강과 장달을 그렇게 단속하고, 눈을 돌려 또 다른 한 명의 무사를 살폈다.
이제 서른 살 정도 된 사내였다. 팔 척의 키와 건장한 체구가 어지간한 용장들 못지않았다. 관우를 보자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설마 이자가 우리 편에 서다니.’
조조의 삼남, 조창.
조조 사후, 마초의 배려로 청주에서 집안의 제사를 모시며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관우, 장비와 싸운다는 소문을 듣고 청주병 수백을 이끌고 의용군으로 참전한 것이다.
“기왕이면 장비를 바랐는데,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철컥.
조창은 오른손에 큼직한 철퇴를 끼웠다. 소년 시절 장비의 쌍신모에 오른손을 잃었던 그다. 그만하면 무공을 폐할 만도 하건만, 조창은 없어진 오른손 대신 철퇴를 끼워 무공을 이어가고 있었다.
장패, 범강, 장달, 조창은 저마다 자신의 병장기를 챙기며 곧 있을 충돌에 대비했다.
마침내 관우가 화살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쏴라!”
서서의 호령과 함께 궁병들이 앞으로 나섰다. 넓게 펼쳐 선 궁병들이 저마다 직사로 활을 당겼다.
목표는 단 하나. 선두에 선 관우였다.
깡!
퍽! 퍽!
대부분의 화살은 청룡언월도에 걸렸다.
그러나 전부 다 걸릴 수는 없었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로 몸을 보호하는 사이, 몇 발의 화살이 관우가 탄 말에 적중했다.
이히힝!
울음소리와 함께 관우의 말이 땅에 쓰러졌다. 관우도 같이 땅바닥을 굴렀다.
관우의 뒤를 따라 돌진하던 연군 기병들은 개의치 않고 계속 전진했다. 모든 화살이 관우에게 집중된 사이, 연군 기병들은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마가군 대열에 충돌했다.
콰직!
“당황하지 마라!”
“수레 뒤로 숨어라!”
마가군 병사들은 미리 약속한 대로 수레를 앞세우고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기병을 막기 위해 제갈량이 개량한 팔진의 방법이었다.
연군 기병들은 총대장이 쓰러지거나 말거나 계속 돌격해서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수레 뒤에 숨어서 활과 장창으로 반격하는 마가군에게 결정타는 입히지 못했다.
“일단 성공이다.”
“그런데 관우는? 설마 그걸로 끝인가?”
그때, 관우가 다시 나타났다.
철컹.
철컹.
말을 잃은 관우는 요란하게 쇠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걸어서 전진하고 있었다. 낙마하며 머리가 깨졌는지 녹색 두건 밑으로 피가 흘러 수염에 맺힐 정도였다.
“역시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군. 쏴라! 관우를 쏴!”
마가군 병사들은 오직 관우만을 노렸다. 수십 발의 화살이 관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깡!
깡! 깡! 깡!
그런데 관우의 몸에 화살이 날아들 때마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일부는 튕겨 나가고 일부는 박혀 있었지만, 관우는 개의치 않고 계속 전진했다.
철컹.
철컹.
장패가 인상을 찌푸렸다. 관우가 걸을 때마다 나는 쇳소리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다.
“쇄자갑인가. 어지간히 두꺼운 걸 껴입었나 보군.”
관우는 낡은 전포 아래에 쇠사슬을 짜서 만든 쇄자갑을 걸치고 있었다. 근거리에서 쏘는 화살을 다 튕겨낼 정도면 걷기도 힘든 무게겠지만, 관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내 관우가 마가군 대열의 앞까지 당도한 관우는, 82근 청룡도를 들어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수레를 후려쳤다.
쾅!
방금 전까지 수레였던 물체가 나무토막으로 변하며 터져 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으로 관우가 걸어왔다.
“연노를 쏴라!”
서서의 호령과 함께 연노차들이 관우를 노렸다.
제갈량이 만들어낸 신병기. 한 번에 열 발의 쇠뇌를 쏴서 공간을 확실히 제압하는 무기다.
퍼퍼퍼퍽!
근거리에서 쏘아진 쇠뇌살들이 관우의 몸에 무수히 날아들었다.
이번에도 관우는 쓰러지지 않았다. 수십 발의 쇠뇌살이 박힌 채 그저 계속 전진했다. 머리 쪽으로 향한 쇠뇌살들은 관우의 두건에 둘러진 쇠테에 맞아 부러졌다.
관우는 연노차 하나로 다가가 청룡도를 가로로 휘둘렀다.
콰직!
연노차는 아래쪽만 남은 채 위쪽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파편에 맞은 마가군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퍽.
퍽.
퍽.
관우는 말없이 마가군의 대열을 부숴 나갔다. 연군 기병을 상대로 잘 버티고 있던 마가군은 관우 한 명의 돌입으로 완전히 흐트러지게 되었다. 그러자 연군 기병들은 방해받지 않고 살육을 벌일 수 있었다.
장패는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저렇게 화살을 맞으면 이미 죽었어야 하지 않나.”
쇄자갑이 관통상은 막아 주겠지만 충격력은 막을 수 없다. 연노는 충격력이 더 강하다. 평범한 무장이라면 온몸의 뼈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늙은이가 아주 대단하구만!”
“하지만 노인은 뼈가 약하지!”
범강과 장달이 뛰어들었다. 범강은 날이 얇은 장검을, 장달은 1장 5척이나 되는 장창을 들고 있었다.
먼저 장달이 장창을 한껏 위로 치켜들었다가 내리쳤다. 장창의 무게, 장달의 근력, 내리치는 힘까지 더해진 강맹한 일격이었다.
툭.
그런데 관우의 어깨에 닿은 장창에서는 맥 빠진 소리가 났다.
관우가 장창을 손으로 잡으며 청경의 수법으로 힘을 죽인 것이다. 동시에 관우는 촌경의 수법으로 장창을 통해 힘을 썼다.
펑.
“으아악!”
관우의 경력이 전해지자 창대를 잡고 있던 장달이 뒤로 튕겨지듯 날아갔다. 반면 경력이 통과한 장창은 멀쩡했다.
마초의 청경과 촌경을 수차례 견식한 이들도 보지 못한, 극에 달한 경지였다.
“이놈!”
동시에 범강의 장검이 관우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장달의 장창이 상대를 묶어 놓으면, 범강의 장검이 급소를 벤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두 사람의 절초였다. 이 공격이라면 천하 용장이라도 잡아낼 자신이 있었다.
범강의 장검은 정확히 관우의 턱을 노리고 날아갔다.
깡!
그러나 범강의 의도와는 다른 곳에 맞았다. 두건에 둘러진 쇠테에 맞은 것이다.
“왜… 왜 맞지 않는 거지?”
관우가 몸을 굽힌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겨냥이 빗나가는 것은 어째서일까.
범강은 이를 악물고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두 번째는 없었다. 관우는 청룡도의 자루를 범강의 몸에 대고 힘을 썼다. 범강의 몸이 허공을 날아 5장 밖의 연노차에 처박혔다.
콰직!
“컥…….”
연노차가 부서지고, 수십 개의 뼈가 부러진 범강은 제대로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겨우 일어선 장달은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눈앞에 자신이 쓰던 장창의 자루가 날아왔다.
퍽!
장창을 거꾸로 잡은 관우가 장달을 찌른 것이다. 장달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그때, 관우의 고개가 옆으로 돌았다.
어느새 근접한 조창이 관우를 향해 오른손의 철퇴를 날린 것이다.
탁.
그러나 조창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관우는 왼손으로 조창의 철퇴를 감싸 쥐었다.
“크윽!”
관우는 청룡도의 자루로 달려드는 조창의 몸을 막았다. 그리고 왼손을 당기기 시작했다.
우드득.
그러자 조창의 의수가 되어 있던 철퇴가 뽑혀 나왔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조창.
관우는 별다른 말없이 청룡도를 치켜들었다. 악에 받쳐 고개를 든 조창의 눈에 떨어지는 청룡도의 칼날이 들어왔다.
콰드드득!
베이지는 않았다.
그저 82근의 중량에 짓눌려, 온몸의 뼈가 부러지며 땅에 붙은 시체가 되었을 뿐이었다.
조창이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사이, 장패는 자신의 무기인 극을 크게 휘둘러 관우의 드러난 몸통을 노렸다.
쇄자갑의 쇠사슬이 아무리 두꺼워도, 자신의 극이라면 그것을 뚫어낼 자신이 있었다.
콰직!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갔다. 관우의 몸에 뭔가가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관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장패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아니?”
경악하는 장패를 향해 청룡도를 가로로 휘두르는 관우.
퍽.
무심한 소리가 울렸다. 청룡도는 그대로 장패의 허리를 둘로 끊었다. 장패의 하반신이 먼저 땅에 쓰러지고, 뒤이어 상반신도 바닥을 굴렀다.
쓰윽.
관우는 옆구리에 박힌 장패의 극을 뽑아냈다. 피가 묻어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옆으로 던졌다. 동작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철컹.
철컹.
관우는 다시 쇄자갑 소리를 울리며 전진했다. 수십 개의 화살과 쇠뇌살이 박힌 채, 순식간에 네 장수의 목숨을 거뒀지만, 관우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 목표는 연노차였다.
두두두둑.
쇠뇌살이 관우를 향해 날아드는 소리.
쾅!
청룡도 한 방에 연노차가 부서지는 소리.
첫 번째 연노차와 똑같이, 두 번째 연노차도 부서졌다.
관우는 마지막 세 번째 연노차로 향했다. 이번에는 쇠뇌살이 날아들지 않았다. 세 번째 연노차의 병사들은 관우가 다가오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콰직!
세 번째 연노차도 청룡도에 부서지자, 더 이상 아무도 관우를 제지하지 못했다.
용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초인적인 무위.
관우의 힘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전장을 연군 기병들이 휩쓸기 시작했다. 진도와 구루돈의 부대가 뒤이어 돌입하고, 노숙이 이끄는 본대도 바로 총공격을 시작했다.
관우는 청룡도를 땅에 박아 세우고 쇄자갑의 끈을 잘라냈다. 사람의 몸무게만큼 묵직한 사슬 갑옷이 떨어져 내렸다.
“관공.”
어느새 다가온 연주자사 서서가 관우에게 군례를 올렸다.
“아무래도 이곳이 소생이 죽을 곳인가 봅니다. 한 명의 무사로서 관공에게 도전하겠으니 뿌리치지 마십시오.”
서서는 칼을 뽑아 관우를 겨눴다. 검술을 제대로 배운 티가 나는 자세였다.
관우는 물끄러미 서서를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그대는 내 목숨을 위협할 수 없다.”
“뭣이?”
서서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러나 관우는 더 이상 서서에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관우 대신 진도가 이끄는 군사들이 서서에게 달려들었다. 서서는 몇 명을 베어내며 분투했지만 이내 포박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휘이이잉.
늦가을에서 겨울에 접어드는 계절이었다. 관우는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잔뜩 흐린 하늘을 올려다봤다.
“복숭아꽃이 피려면 아직 넉 달이 남았구나.”
이제 곧 겨울이 온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황하를 장악하는 것이 연군의 계획이었다.
관우는 겨울 동안 연주와 청주를 휩쓸어 후방의 위협을 제거할 것이다. 그동안 장비는 연진을 비롯한 황하 일대의 포구들을 장악한다.
그 상태로 봄이 오면, 황하를 거슬러 낙양을 바로 노릴 수 있는 것이다.
* * *
업성을 떨어뜨린 장비는 순식간에 백마진을 장악하고, 황하를 거슬러 남하하기 시작했다.
장비가 마가군을 맞닥뜨린 곳은 연진.
과거 마초와 조조가 연합하여 원소와 싸울 때, 전장이 되었던 곳이다.
“그때는 원소 편에 붙었었지. 운장 형은 마초의 휘하에 있었고. 이제 다 추억이구만.”
장비는 휘파람을 불며 연진을 점령한 마가군의 진채를 살피고 있었다.
곁에서 가만히 마가군의 진을 살피던 위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진을 아주 잘 펼쳐 놨군요.”
“네 생각도 그러냐?”
“딱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적당한 평지는 이미 다 적들이 선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을 칠 곳은 습지대밖에 없지요.”
“보기와는 달리 영리한 녀석이군.”
“내가 그런 말을 장 장군에게 들어야 합니까?”
위연은 아는 글자가 몇백 자밖에 안 되지만, 병법에 있어서는 여느 군사들보다 뛰어났다. 장비는 그런 위연이 썩 마음에 들었다.
“나와 운장 형이 죽으면 네가 우리 연의 상장이었을 텐데.”
“그게 무슨 불길한 소립니까?”
“됐다. 적장이 누구라고 했지?”
장비가 묻자 투덜거리던 위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총대장은 육손이고, 군사로 방통과 황권이 있습니다. 숙장들 중 방덕, 장료, 감녕이 별동대를 이끌고 합류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 정도라면…….”
장비가 씩 웃자, 밤송이 수염이 올올이 뻗쳤다.
“마초도 곧 오겠군. 그때까지 내가 재미있게 놀아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