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91화 (278/306)

291화. 영웅, 흙으로

스윽.

관색은 청룡언월도를 옆으로 한 자 정도 당겼다.

한 손에는 5척 장도를, 한 손에는 금마삭을 든 마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관색은 그대로 청룡언월도를 한 손으로 쥐고 뿌렸다. 마명이 쥔 5척 장도가 목표물이었다.

청룡언월도가 움직인 거리는 불과 한 자.

그런데, 청룡언월도와 5척 장도의 칼날이 접촉한 순간 폭음이 일었다.

쾅!

청룡도의 날에 닿은 5척 장도는 그대로 옆으로 날아갔다. 청룡도에 실린 힘이 어찌나 강한지, 5척 장도의 손잡이를 쥔 마명의 손이 찢어져 피가 튈 정도였다.

“크윽!”

마명은 경악하는 와중에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지 않았다.

말 안장 위에서 허리를 크게 회전시키며 왼손에 쥔 금마삭을 뻗었다. 금마삭의 창날이 관색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퍽.

무심한 소리가 났다.

관색이 금마삭의 자루를 오른손으로 잡은 것이다.

날아드는 창을 손으로 잡아내는 신기(神技).

그쯤 되면 기가 꺾일 만도 하건만, 마명은 그 상태에서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

마명에게는 아직 숨겨둔 수가 있었다.

마초의 절초, 촌경이었다. 금마삭의 창대를 통해 촌경을 발출하면, 창대를 쥔 관색의 손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마명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관색이 붙잡은 창대를 통해 먼저 촌경을 시전한 것이다.

펑!

나무로 된 금마삭의 자루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촌경이 발하는 힘에 밀린 마명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우당탕!

말에서 떨어진 마명이 바닥을 굴렀다.

관색은 손에 남은 짤막한 창대 토막을 옆으로 던졌다. 그의 마음을 헤아린 적토마가 천천히 마명의 주위를 돌았다.

“소장이 이겼습니다, 공자. 일각 전에 대장군께 은혜를 입었으니 이 이상 공자와 다투지 않겠습니다.”

관색은 그대로 말머리를 돌렸다.

금군이 마가군에게 크게 밀려서 완전히 대열이 와해되어 있었다. 연왕부의 군사들도 뿔뿔이 흩어져서 패주하는 상황이니 유비를 찾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일이 관색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빌어먹을 여포의 자식놈. 네 친아비는 내 숙부의 원수다. 이대로 보낼 것 같으냐?”

마명의 투지가 아직도 꺾이지 않은 것이다.

과연 그 투지는 정말로 선대의 원한 때문일까.

혹시 아버지를 뛰어넘고 싶은 아들의 욕심 때문은 아닐까.

여포의 이름이 나오자, 멀어져 가던 관색의 등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 관색이 천천히 뒤를 돌아봤을 때.

마명은 숨이 멎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알겠습니다, 공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해 드리지요.”

관색의 부릅뜬 눈에서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다닥.

적토마가 발을 굴렀다. 청룡도를 비껴 든 관색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명은 심호흡을 하며 다시 5척 장도를 들고 달려오는 관색에게 겨눴다.

관색의 옆에 강유가 다가와서 섰다. 그 또한 5척 장도를 뽑아 들고 있었다.

“함께 상대하겠습니다, 공자.”

“백약, 무슨 짓이냐?”

“저자와 일대일로 붙으면 죽습니다.”

“쳇. 방해나 하지 마라.”

두두두두.

관색은 순식간에 마명의 앞으로 달려 들어왔다. 강유가 옆으로 빠지고, 동시에 마명이 관색의 품으로 뛰어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청룡도의 거리에 들어왔던 마명은, 경지에 오른 기마술로 순식간에 그 자리를 지나쳤다. 무거운 청룡도로는 마명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간격이 장도의 거리로 좁혀진 순간, 마명은 치켜든 장도를 내리쳤다. 완벽한 일격이었다.

쩡!

그러나 마명의 일격은 청룡도의 자루에 걸렸다.

칼을 휘두른 마명과 막아낸 관색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마명은 그 순간 웃음을 보였다.

뒤에서 접근한 강유가 장도를 내리치고 있었다.

깡!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소리가 울렸다.

관색이 순간적으로 청룡도의 날을 등에 지고 강유의 공격을 받아낸 것이다. 관색은 경악하는 강유를 보며 짧게 말했다.

“그대가 조금 더 강하군.”

관색은 마명을 내버려둔 채 강유에게 집중했다. 등에 멘 청룡도를 미끄러뜨려 강유의 말을 찌른 것이다.

퍼억!

말의 몸통이 꿰뚫리고, 강유가 말 위에서 균형을 잃고 크게 휘청거렸다.

“이놈, 감히 내 앞에서!”

분노에 찬 마명이 다시 장도를 들어 관색에게 휘둘렀다.

관색은 마명의 장도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병장기를 들지 않은 빈손이었다. 관색의 왼쪽 손등이 마명의 장도 옆면에 닿았다.

쩡!

마치 쇠가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마명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관색이 손등으로 청경의 수법을 써서 마명의 무게중심을 흔든 것이다.

“크윽!”

관색은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는 청룡도를 들어 올렸다.

드드득.

청룡도의 칼등에 닿은 말의 등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강유는 난동을 부리는 말 위에서 결국 튕겨져 나가 바닥을 굴렀다.

“컥!”

강유가 쓰러지거나 말거나, 관색은 계속 청룡도를 들어 올렸다. 결국 청룡도는 칼등으로 말의 등가죽을 끊어낸 채 하늘로 솟구쳤다.

간신히 무게중심을 회복한 마명 앞에, 청룡도를 높이 든 관색이 보였다.

“피하십시오.”

“제기랄!”

마명은 그대로 말을 버리고 옆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마명이 앉아 있던 말안장 위로, 관색의 청룡도가 떨어졌다.

콰드드득!

청룡도의 날은 둔탁했다.

하지만 거기에 실린 힘은 말의 등뼈와 다리뼈를 한 번에 부수기에 충분했다. 마명이 타고 있던 서역의 준마는 순식간에 전신의 뼈가 부서진 채, 기묘한 모양으로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절명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마명은 몸 앞에 장도를 세운 채 적토마에 탄 관색을 노려봤다.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어깨가 마구 들썩였다. 건너편에 있는 강유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순식간에 두 사람의 말을 절명시킨 관색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소장과 칼을 맞대면 죽습니다.”

“제길!”

마명은 몸을 들썩거리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하지만 뛰쳐나갈 수 없었다. 관색의 말은 협박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강유도 멀리서 손을 들어 그런 마명을 말렸다.

‘일단 살아야 합니다, 공자.’

결국 마명도 이를 부드득 갈며 칼을 내렸다.

관색은 청룡도를 거두고, 마명에게 두 손을 모아 군례를 올렸다.

“대장군께서 소장에게 은혜를 베푸셨으니, 소장도 마 공자의 목숨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일은 잊어버리십시오.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두두두.

관색은 적토마의 말발굽 소리와 함께 사라져 갔다.

뿔뿔이 흩어져 패주하는 금군 가운데서 유비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달리는 관색의 등으로 다급한 마음이 전해졌다.

관색이 사라지자, 마명은 5척 장도를 바닥에 던졌다.

“빌어먹을. 저놈은 여포냐, 아니면 관우냐.”

“둘 다일지도 모르지요. 자기 말로는 스승님과… 대장군과 동수를 이뤘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당해낼 상대가 아닙니다.”

마명의 곁으로 다가온 강유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여포의 용력에 관우의 무공을 가진 청년은, 그렇게 두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 * *

평서장군 마철이 가세하며, 전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미 팔문금쇄진이 무력화된 상태였던 금군은 짚단처럼 쓸려나갔다. 연왕부의 군사들도 덩달아 뿔뿔이 흩어져 패주했다.

연왕 유비도 마찬가지였다. 비단옷을 벗어 던지고, 머리를 풀어 헤친 채 군사들 사이에 껴서 도주했다.

마가군 병사들이 그런 유비를 쫓았지만 잡지 못했다.

“그야 난 도망치는 거 하나는 천하제일이니까.”

홍농군의 작고 외딴 마을에 숨어든 유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산골 한 귀퉁이에 있는, 불과 백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곳은 원래 이감이 시랑군을 이끌고 숨어 살기 위해 개간했던 곳이었지만, 유비가 그런 사정을 알 리 없었다.

“마침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이군. 좋아, 이곳에서 며칠 숨을 돌리고…….”

그다음에는?

유비는 눈앞이 막막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초의 주변 경계가 가장 약해지는 때를 노려서 한 판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마초는 그마저도 이겨냈다. 한순간 야심을 부려 봤지만,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에이, 할 수 없지. 이게 마지막 기회였는데, 져 버렸으니 연왕부로 돌아가서 조용히 살다 죽어야겠군.”

유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초도 북쪽 유주까지 굳이 쫓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사마의의 편으로 돌아섰던 천자와 조정을 단속하느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연을 정벌하기 위해 아랫사람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뜻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연에는 관우와 장비가 있기 때문이다. 마초 본인이 직접 오지 않는다면 관우와 장비를 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이로써 천하는 확실히 안정되겠군.’

유비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천하에 마초의 토지개혁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천하를 안정시키려면 꼭 필요한 개혁이다.

그럼에도 유비가 홍농사변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야 나도 천자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토지개혁을 이어 가려면 당금 천자로는 안 되지 않겠나.”

만약 마초에게 패하면 깨끗이 물러날 생각이었다.

마초를 이긴다면, 그때는 천자 유협까지 제거하고 스스로 제위에 오를 생각이었다.

정통성과 정치력만 갖춘 천자는 토지개혁을 이어받지 못한다. 호족 세력을 본인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호족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인물은 단 하나. 억센 무력으로 그들을 짓누를 수 있는 군벌뿐이다.

천하에 그런 인물은 마초와 유비뿐이다.

만약 유협이 사마의의 힘을 빌려 마초를 제거했다면, 마초가 추진했던 개혁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다.

마초가 승리하거나, 또는 유비 자신이 승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천자 유협은 호족들이 지배하는 후한을 되살리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다 지난 일이다.”

유비는 그렇게 유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악! 놓아라, 이놈들아!”

“…! ……!”

갈족.

사마의가 끌어들인 북흉노의 일파다.

유비가 숨어 있는 마을에 갈족 패잔병들이 진입했다. 갈족들은 마을 사람들을 처참하게 약탈했다.

갈족은 곡식을 먹지 않는다. 백 명이 넘는 갈족 기병들을 먹이기 위해 마을의 가축들이 순식간에 동났다.

얼마 되지도 않는 가축들을 다 먹어 치운 후, 그들이 선택한 식량은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본 유비는 결단해야 했다.

“짐승 같은 놈들. 살기를 바라느냐.”

스르릉.

쌍고검을 뽑아든 유비가 갈족들의 앞으로 나섰다.

“……!”

갈족 기병들은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희끗한 머리의 사내를 두고 뭐라고 마구 떠들었다.

유비는 개의치 않았다.

현위 벼슬을 던졌을 때처럼.

조조에게 맞서 서주로 들어갔을 때처럼.

숨어 있는 마초에게 흔쾌히 원군을 내어주던 때처럼.

단기필마가 된 유비는, 다시 한번 남의 고난 앞에 목숨을 걸었다.

* * *

며칠 후.

“지독하군.”

마초는 이 말을 참을 수 없었다.

갈족 패잔병들이 약탈하고 간 마을은 그만큼 참혹했다.

월길과 강족 기병들이 갈족 패잔병들을 추격했다.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떠나던 갈족들은 결국 마가군의 습격을 받았고,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 채 전멸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갈족들을 전멸시켜 봤자 죽은 사람이 돌아올 리 없다.

마을 어귀의 나무에는 이제 부패가 시작된 시신 한 구가 매달려 있었다.

마초는 시신을 보자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시신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가장 믿음직한 우군, 최악의 적, 지난 생의 은인, 한때의 주군, 그리고 같이 난세와 싸우던 동료였다.

“…사군.”

사실 이제야 죽은 게 신기한 일이다.

유비는 그만큼 위험하게 살았다. 기적 같은 일들이 여러 번 일어나며 그의 목숨을 살렸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런 운이 따르지 않았다. 도망치기 위해 숨어든 마을에서, 일면식도 없는 백성들을 위해 갈족 기병과 맞섰던 유비. 그는 결국 이십여 대의 화살이 꽂힌 시체가 되어 마을 초입에 매달리게 되었다.

나관중이 다가와 마초의 옆에 섰다. 그의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협(俠)은…….”

나관중은 목이 멘 소리로 <사기>의 유협열전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행하는 바가 정의에 어긋날 때도 있지만(其行雖不軌於正義),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고(然其言必信), 행동은 반드시 과감하다(其行必果).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남의 위급함을 돕고(不愛其軀 赴士之阸困), 능력을 뽐내지 않으며(而不矜其能), 덕을 자랑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羞伐其德).”

나관중이 너무 좋아해서 외우고 있는 구절이었다.

유비가 태어나기 삼백 년 전에 쓰인 구절이다. 그러나 후대의 누구도, 유비가 어떤 사람인지 이 구절만큼 간결하게 드러낼 수 없으리라.

유비의 시신을 보며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던 마초는, 갈라진 목소리로 나관중을 불렀다.

“관중.”

“예, 주공.”

“오호대장을 다시 소집하라. 방덕, 서황, 장료… 감녕과 황충까지.”

“그 말씀은…….”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연왕 유비가 죽었다.

그러나 유비와 같이 죽기로 맹세한 두 사람, 관우와 장비는 아직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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