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소비장(小飛將) (2)
관색의 이마에는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마초에게 투구가 날아갈 정도로 강한 일격을 맞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용케 목이 부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관색의 얼굴을 보고 경악했던 마초는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관색을 노리려 했다. 무기가 부서진 관색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때, 마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퍼억!
관색이 주먹을 들어 마초가 탄 말의 목줄기를 후려친 것이다. 관색의 주먹이 닿자 말의 목이 기묘하게 꺾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우당탕!
마초는 쓰러지는 말에서 미리 뛰어내려 바닥을 굴렀다.
멀리서 지켜보던 마충이 황급히 달려와서 마초를 자신의 말에 태웠다. 관색은 마초의 금마삭에 맞은 충격이 큰지, 마저 달려들지 못하고 천천히 물러났다.
말을 바꿔 탄 마초가 어느새 멀어진 관색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관색입니다.”
“그런가. 관공과… 두씨 사이의 아들인가.”
“그렇습니다, 대장군.”
관색의 말투는 정중했다. 교육을 잘 받은 예의바른 청년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몸에 흐르는 피의 누구의 것인가.
모든 사정을 짐작한 마초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너의 부친과 모친의 혼사를 주선한 게 나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마초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관색은 의외로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소장의 친부가 여포라는 말을 하시려는 것이지요. 그 또한 알고 있습니다.”
관색이 너무 담담하게 말하니, 오히려 당황한 것은 마초였다.
“알고 있었느냐.”
“그렇다 한들 무엇이 바뀌겠습니까. 소장은 관우의 아들로 살아가기로 뜻을 세웠습니다.”
주르륵.
말을 하는 중 관색의 이마에서 다시 피가 흘렀다. 관색의 몸을 타고 적토마의 잔등까지 흐를 만큼 심한 출혈이었다.
출혈이 있는 것은 마초도 마찬가지였다. 손권에게 당한 상처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금세 서로의 상황을 눈치챘다. 마초가 먼저 말했다.
“내 목숨을 취하고자 했겠지만, 지금 네 상태로는 무리다.”
“동감입니다. 다만 대장군께서도 소장의 목을 얻기는 어려우실 줄 압니다.”
긴박한 싸움의 순간.
마초는 관색을 보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 예의 바른 척은 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건방지고 허세에 찬 놈이구나.”
“그렇습니까.”
“그런 면이 관공을 쏙 빼닮았군. 알았다. 가 봐라.”
“…예?”
“일이 이렇게 됐지만, 네 아버지는 여전히 내 벗이다. 돌아가서 내 안부를 전해라.”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팔진의 끝, 사반문이었다.
“저 사반문으로 조자룡이 진입한 게 보이느냐. 이제 너희들의 팔진은 무너진다.”
“으음…….”
“너희들은 실패했다. 가서 연왕의 목숨을 구해 도망가라.”
“진심이십니까.”
“연왕이 잘못되면 천하에 환란이 닥친다.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관색은 가만히 상황을 둘러봤다.
마초와 자신은 서로 부상을 입었고, 승패를 장담하기 어렵다.
마초의 옆에 있는 서역인 마충도 무공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위연이 가세한다고 해도 쉽게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팔진은 무너지고 유비는 생사를 알기 어렵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장군. 관모가 오늘 한 수 크게 배웠습니다.”
여포의 얼굴로 관우처럼 말하는 청년을 보자, 마초는 갑자기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알았으니까 얼른 꺼져.”
“그럼.”
관색은 정중하게 군례를 올리고 사라져 갔다. 지켜보던 위연이 투덜거리며 뒤를 따랐다.
관색이 사라진 후.
마초는 갑옷을 벗고 붕대를 풀었다. 상처가 터져 있었다.
병사들이 붕대를 가는 동안, 마초는 마충을 보며 말했다.
“대단한 놈이다. 몇 년 후에는 저놈이 천하제일이겠군. 아니, 지금도 나 말고는 저 녀석을 당해낼 만한 무사가 없을 거다.”
“저 애송이가 그 정도입니까?”
“관공도, 장익덕도 이제 늙었으니까. 내 무공도 곧 쇠퇴하기 시작하겠지. 반면 저놈은…….”
관색의 무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만 그 무공은 천하에 나오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대로 연왕을 데리고 유주로 돌아가라.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변방의 무장으로 세월을 보내라. 네가 그렇게만 하면… 나도 모든 것을 불문에 붙일 것이다.’
마초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 * *
관구검과 왕쌍을 쓰러뜨리고 운문으로 나간 조운.
그가 마대와 함께 군사들을 이끌고 사반문으로 들어오자, 사마의가 펼친 팔진이 크게 흔들렸다.
때맞춰 관색이 마초 기습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마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빌어먹을… 설마 2천 금군이 마가군 삼백을 못 당한다는 말인가!”
불과 15년 만에 천하를 평정했던 마가군이다. 마가군의 단위 부대 전투력은 사마의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욱 안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서쪽 방면에 적의 원군입니다!”
“홍농태수부는 이미 우리의 손에 떨어진 지 오래다. 누가 원군으로 온다는 말이냐?”
“서량 방면입니다. 관서대도독부의 군사들입니다!”
우드득.
사마의의 이가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마의는 잇몸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령에게 물었다.
“적장의 군기에 뭐라고 씌어 있느냐.”
“평서장군 마철입니다!”
마초의 아우 마철.
지금은 마초 대신 관서대도독부의 군무를 맡고 있었다.
사마의가 마초 습격을 위해 먼저 홍농태수부를 장악했을 때, 홍농태수부의 사람들 일부가 장안에 소식을 전했다.
소식을 들은 마철은 그대로 군사를 휘몰아 마초의 뒤를 따랐다. 밤낮없이 행군한 결과, 늦지 않게 마초를 구원할 수 있었다.
“대장군에게 칼을 들이댄 놈들이다! 살려두지 마라!”
마철은 우렁차게 소리치며 군사를 휘몰아 금군을 덮쳤다.
그것이 결정타였다. 기껏 펼쳐 놓은 진법이 조운의 활약으로 완전히 무너진 금군은, 마철이 이끄는 마가군 기병대의 습격을 막을 힘이 없었다.
사마의는 입술을 깨물었다.
‘졌다. 질 수 없는 싸움이었지만 졌다. 마초, 조운, 마철, 그리고 내 진법을 꿰뚫어 본 그놈, 제갈량…….’
너무 무모하게 덤빈 것일까.
어쩌면 초조했었는지도 모른다. 마초의 정권하에서는 사마가 같은 대호족이 설 곳이 없었다. 그래서 평소의 사마의답지 않게 무모하게 덤비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가문은 망하겠지만 내게는 아직 지모가 있고, 병사를 지휘할 능력이 있다. 먼 곳으로 도망쳐서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이다.’
사마의에게 다음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먼 곳.
그곳은 유비가 다스리는 유주뿐이다. 그곳으로 도망쳐 유비의 군사가 되어 공을 세우다 보면 언젠가 다음 기회가 올 것이다.
사마의는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유비를 돌아봤다.
아니, 돌아보려 했다.
푹.
사마의의 눈에 칼날이 들어왔다. 자신의 등허리를 찌른 칼이 배 쪽으로 뚫고 나온 것이다.
사마의는 그대로 고개만 돌려서 뒤를 돌아봤다.
“왕…왕야?”
사마의를 찌른 것은 유비였다. 유비는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 목을 여기 두고 가야겠어.”
“컥…….”
“일이 이렇게 됐으니 나는 도망쳐야 해서 말이야. 어쨌든 사람들은 자네를 주범으로 알고 있으니, 자네만 잡도록 해 주면 나에 대한 감시는 좀 느슨해지지 않겠나.”
“이런… 제길… 혼자 성인군자인 척은 다 하는 놈이… 뒤통수를…….”
중상이다. 살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자, 사마의는 분노에 차서 속에 있는 말을 쏟아냈다. 유비를 보는 눈동자가 분노와 증오로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유비는 그런 사마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내 고향에는 이런 말이 있지. 귀 큰 놈이 제일 못 믿을 놈이라고.”
“빌어먹을…….”
“그건 사실 나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중달.”
퍽.
유비는 사마의를 찌른 검은 그대로 둔 채, 반대쪽 손으로 또 한 자루의 검을 뽑아서 사마의의 목을 벴다.
데구르르.
사마의의 잘린 머리는 여전히 분노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유비는 사마의의 머리를 걷어차서 병사들 사이로 굴려 보냈다. 병사들이 당황해서 머리를 피해 와르르 달아났다.
“담 큰 녀석은 그걸 갖고 투항해라. 그러면 살 수 있을 거다.”
뒤이어 유비는 자신을 따라온 연왕부의 군사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졌다. 꿈은 여기서 포기하고 퇴각한다. 탁군으로 가서 조용히 살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마철이 이끄는 군사들이 들이닥치며 금군의 대열이 완전히 무너지고, 일방적인 살육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비는 낮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지.”
* * *
관색은 유비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유비가 보이지 않았다. 마철이 이끄는 관서대도독부의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그들 사이에서 유비를 찾기 쉽지 않았다.
“왕야! 어디 계십니까!”
목이 터져라 유비를 부르는 관색.
그런 그의 앞을 막아서는 자가 있었다.
“대장군을 노린 자가 네놈이냐?”
마초의 장남 마명이었다. 옆에는 강유가 함께 있었다.
관색은 마명이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초와 놀랄 만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군의 장남이군. 이자는 절정고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소년도…….’
오호대장이 전부 은퇴한 지금, 마가군 최고의 무사라면 당연히 이 두 사람이 꼽힐 것이다.
관색은 마명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대장군과 겨룬 것은 사실이나 승부를 내지 못했고, 지금은 패장이 되어 쫓기는 몸입니다. 대장군의 허가를 받아 자리를 피하고 있으니, 공자께서 소장을 막지 마시기를 청합니다.”
“그래? 대장군과 승부를 내지 못했어?”
마명은 관색을 보며 씩 웃었다.
“그렇다는 건, 이 자리에서 내가 네놈을 꺾으면 천하제일이라는 것이군.”
두두두.
마명은 그대로 말을 몰아 관색에게 달려 들어왔다.
관색은 계속 손을 모아 군례를 표한 채, 달려오는 마명에게 말했다.
“공자. 부디 소장을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오.”
두두두두.
마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순식간에 관색의 코앞까지 육박해 들어왔다.
마침내 마명의 금마삭 끝이 관색의 목을 노리자, 관색은 포권을 풀었다.
콰직!
마명이 내지른 금마삭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크윽!”
그런데 정작 마명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관색이 금마삭의 자루를 옆구리에 끼워서 잡은 것이다.
우직!
마명은 그대로 금마삭의 자루를 부러뜨리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주변의 군사에게 두 번째 금마삭을 받아서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5척 장도를 뽑았다.
“힘자랑을 할 셈이냐. 오냐, 어디 이것도 받아 보거라.”
불같은 투지였다.
관색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대신 옆에서 보고 있던 위연이 나섰다.
“어린놈의 새끼가 아비 잘 두니까 뵈는 게 없구나. 네놈 버릇을 내가 고쳐 주마.”
“위 장군. 이 자리는 소장에게 맡겨 주십시오.”
관색은 그렇게 위연을 제지하고, 주변의 병사들에게 수신호를 했다.
그러자 병사 둘이 낑낑거리며 거대한 칼을 들고 왔다.
싸울 때마다 대도를 망가뜨리자 관우가 새롭게 맞춰 준 칼이었다. 자루는 8척으로 관색의 키만큼 길었다. 거기에는 여느 대도보다 훨씬 크고 두꺼운 칼날이 붙어 있었다.
청룡언월도.
천하에서 관우만이 다룬다고 하는, 크고 무거운 칼이다. 관우의 명성 때문에 유행할 법도 하지만, 그 터무니없는 크기와 무게 때문에 실용성이 없어서 아무도 쓰지 않고 있었다.
관색에게는 바로 그 무게가 가장 큰 실용성이었다.
“이 칼은 부러지지 않습니다. 공자, 지금이라도 창을 물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 입을 닥치게 해 주마!”
마명은 벽력같이 호통을 치며 관색에게 달려 들어왔다.
관색의 눈썹이 곤두섰다. 관색은 비장(飛將) 여포와 꼭 닮은 얼굴을 하고, 적토마 위에 앉은 채, 청룡도를 들어 마명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