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홍농사변 (3)
붕. 붕.
붕. 붕. 붕. 붕.
왕쌍이 유성추를 돌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잠시 후, 왕쌍의 유성추가 직선으로 날았다. 쇠사슬 끝에 달린 철추가 정확히 조운의 가슴팍을 노리고 날아왔다.
조운은 창을 뻗어 날아오는 철추를 쳐냈다.
깡!
철추가 높이 하늘로 솟았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는 관구검이 장창으로 조운의 등을 노렸다.
휙.
조운은 유성추를 쳐낸 동작 그대로 몸을 틀었다. 관구검의 창이 몸을 스치고 지나가며 선혈이 튀었다.
조운은 개의치 않고 청강창의 쇠로 된 창대로 관구검의 창대를 후려쳤다. 나무로 된 관구검의 창대는 청강창에 맞자 옆으로 크게 튀었다.
그 때, 하늘로 솟아올랐던 철추가 다시 조운을 노리고 덮쳐 왔다. 왕쌍이 유성추를 되감은 것이다.
퍽!
조운은 간신히 철추를 피했다. 하지만 조운이 탄 백마는 그럴 수 없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백마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조운은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관구검이 달려들었다. 조운은 다시 옆으로 뛰며 관구검이 찌르는 창끝을 간신히 피했다.
마대와 싸우면서 곁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연이 한마디를 던졌다.
“뭐야, 2대 1이면 조자룡 장군도 별수 없나?”
“이놈, 어디다 한눈을 파는 거냐!”
쨍!
위연은 여유 있게 마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라. 이십 합이면 충분하다고 했지? 벌써 십 합을 겨뤘다. 앞으로 십 합 안에 네놈을 끝장내고 두 사람에게 가세할 것이다. 그때까지 조자룡 장군이 살아있어야 할 텐데.”
“이놈이!”
마대는 노호성을 지르며 위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칼끝은 오히려 처음보다 느려져 있었다. 위연의 묵직한 칼날을 받아내다 보니 체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위연이 마대를 밀어붙이는 동안, 관구검과 왕쌍은 조운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촤르르륵.
왕쌍의 유성추가 지나가며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철추에 스친 조운의 어깨에서 피가 튀고, 뒤이어 관구검의 창이 조운을 노렸다.
조운은 크게 청강창을 휘둘러 관구검을 떼어내고 숨을 골랐다. 조운의 뒤를 따르던 병사 하나가 급히 조운에게 달려와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의 고삐를 넘겼다.
다시 말에 오른 조운은 관구검과 왕쌍을 번갈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이 정도 싸우고 지치다니, 나도 예전 같지 않군.”
관구검이 조운에게 말했다.
“위위 어르신. 승패가 기울었습니다. 나라에 공이 크신 분이니, 여기서 투항하시면 예의를 갖춰 모시겠습니다.”
“그 말을 내가 들으리라 생각하나.”
“허면 여기서 끝내 드리지요.”
스르륵.
그 말을 신호로 관구검과 왕쌍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뒤로 조운을 향해 달려왔다.
조운은 나직하게 읊조리듯 말했다.
“내가 지쳤다. 너희들과 길게 싸울 기력이 없다. 그러니까…….”
다다닥.
조운은 말을 달려 관구검 쪽으로 달려갔다. 왕쌍이 급히 조운의 등을 향해 철추를 날렸다.
“빨리 끝내자.”
촤르르륵!
왕쌍의 유성추가 날아들었다. 관구검은 조운의 반대편으로 말을 달려 조운에게서 계속 거리를 벌렸다. 관구검에게는 닿지도 못한 채 유성추에 맞을 판이었다.
멀리 날아온 유성추가 조운의 등에 닿았다.
동시에 조운은 팽이처럼 몸을 돌렸다. 왕쌍의 유성추에 실린 힘을 이용해 일신시담(一身是膽)을 시전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관구검이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허공에 웬 창질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관구검의 눈이 커졌다.
조운이 허공에 찌르던 창을 그대로 놓아서, 던져 버린 것이다. 조운이 던진 청강창은 공기를 찢으며 관구검에게 날아갔다.
콰직!
청강창은 관구검의 다리와 말의 배를 한 번에 꿰뚫었다.
“으아아악!”
관구검과 말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말은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지고, 허벅지의 동맥이 파열된 관구검은 피를 쏟아내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으음.”
왕쌍은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유성추를 회수했다. 그리고 말을 달려 조운에게 접근했다. 조운이 창을 다시 집기 전에 승부를 낼 생각이었다.
붕. 붕. 붕.
왕쌍이 유성추를 허공에서 돌리자 바람 소리가 났다. 소리는 유성추가 빨라질수록 점점 커졌다.
조운은 왕쌍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다. 청강창을 집는 대신, 그대로 왕쌍을 향해 마주 달려 들어간 것이다.
“무기도 없이… 미쳤나?”
왕쌍은 그대로 유성추를 내리쳤다.
조운의 돌진은 왕쌍의 생각보다 더 빨랐다. 순식간에 왕쌍의 바로 앞까지 파고들어 갔다.
그런 조운의 어깨로 유성추의 쇠사슬 부분이 떨어졌다.
촤르륵!
쇠사슬 소리와 함께, 조운은 다시 한번 비스듬히 몸을 틀었다. 이번에도 일신시담의 수법이었다.
그리고 창 대신 주먹을 뻗어 왕쌍의 말머리를 후려쳤다.
쾅!
주먹으로 시전한 일신시담이 왕쌍의 말머리에 직격하는 소리.
우드득.
힘을 이기지 못한 조운의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
우당탕!
낙마한 왕쌍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여러 가지 소리가 동시에 울린 후, 승패가 결정되었다. 관구검과 왕쌍은 바닥에 구르고 있고, 조운은 말안장 위에 버티고 있었다.
조운은 그대로 말머리를 틀었다. 그 와중에 말발굽에 밟힌 왕쌍의 몸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우욱!”
왕쌍은 고통에 찬 신음을 뱉었다. 조운은 개의치 않고 마대를 구원하기 위해 말을 달렸다.
척.
조운은 달리면서 몸을 기울여 땅에 떨어진 청강창을 다시 집었다. 부러진 오른손 대신 왼손이었다.
“이런 제기랄.”
위연은 욕설을 내뱉으며 칼을 휘둘렀다.
깡!
마대의 5척 장도는 결국 위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나갔다. 두 사람이 꼭 17합을 겨뤘을 때의 일이었다.
위연은 마대를 두 쪽으로 베고 조운 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런데 조운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순식간에 마대의 등 뒤에 육박한 조운은 부러진 오른손을 뻗어 마대를 밀쳐내고 위연을 향해 창을 뻗었다. 상산창술 절기 애각이었다.
쾅!
두 사람의 병장기가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청강창의 창날은 본래 신독의 강철로 만든 청강검이다. 이미 이가 빠져 있는 위연의 대도는 청강창으로 시전하는 상산창술 절기를 버티지 못하고 날이 깨져나갔다.
“빌어먹을!”
위연은 금이 가서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 된 대도를 던져 버리고 조운에게서 멀어졌다.
위연이 근처에 있는 병사에게 다른 칼을 건네받는 사이, 마대도 근처에 있는 병사에게 창을 건네받았다. 순식간에 조운, 마대와 2대 1이 된 것이다.
위연은 이를 갈았다.
‘조자룡과 싸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조자룡의 손이 부러졌지만, 그래도 내 승률은 5할 정도. 게다가 마초의 사촌 아우 놈이 아직 살아 있으니…….’
계산이 분명히 섰다.
위연은 그대로 말머리를 돌렸다. 퇴각하는 위연을 보고 마대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비겁한 놈, 도망칠 셈이냐!”
“마음대로 떠들어라. 지금은 내 주군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위연이 멀어진 후.
조운은 오른손에 적당히 천을 감은 후 군사를 휘몰아 풍문으로 나왔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사반문으로 다시 들어간다.”
“존명!”
조운의 지시에 따라 마대와 마가군 군사들이 팔진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러자 팔진을 이루고 있는 군사들의 대형 전체가 휘청거리며 크게 흐트러졌다. 제갈량이 예측한 그대로였다.
* * *
손권이 들고 있는 직도는 손책이 쓰던 것과 꼭 닮아 있었다.
4척의 길이에 두터운 칼날. 남방의 무사들이 애용하는 물건이었다.
“핫!”
손권은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직도를 들어 마초를 내리쳤다.
마초는 칼도 뽑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직도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저 손권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가고 있었다.
척.
손권이 내리친 직도는 너무 쉽게 멈췄다. 마초가 손가락 두 개로 직도의 칼날을 받아낸 것이다. 청경의 수법으로 손권의 힘을 죽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윽!”
마초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칼날을 통해 힘을 흘려보내자, 칼자루를 쥔 손권의 몸이 옆에서 누가 밀치는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걸음마를 할 때부터 무공 수련에 전념하면, 오십이 넘어서 성취를 이룬다는 청경.
회귀 이전과 이후를 합쳐서 72년, 그중 대부분을 청년기의 몸으로 살아온 마초다. 일평생 무공에 전념한 이들도 보지 못한 경지의 청경을 구현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나를 대적하려 했느냐.”
마초는 손권의 직도를 잡아 옆으로 던져 버렸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손권이 씩 웃고 있었다.
“역시 천하제일인.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군.”
“그걸 아는 녀석이 단기로 덤빈 것이냐.”
“그래. 처음부터 이길 생각은 없었으니까.”
팟.
손권은 마초를 향해 그대로 달려들었다.
주먹을 들어 촌경의 수법으로 손권을 치려던 마초는, 문득 이상한 낌새를 채고 뒤로 물러났다.
“이놈이!”
격한 움직임을 하자, 손권의 옷이 안에서 무언가에 걸려 찢어졌다.
손권이 전포 안에 받쳐 입은 가죽 갑옷에는 작은 칼날이 무수히 박혀 있었다. 손에는 쇠장갑을 끼고 있었다.
“나와 동귀어진할 셈이냐.”
“네놈 밑에서 고향을 잊고, 형제를 잊고 개가 된 것처럼 10년간 기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어 복수할 기회를 얻지 못했지.”
“네가 꿍꿍이를 가진 걸 몰랐을 것 같으냐. 네놈에게는 애초에 기회가 없었다.”
“그랬었지. 그런데 지금도 그럴까?”
손권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마초는 인상을 찌푸리며 치란을 뽑아 들었다.
“네 형도, 주랑도 천하에 둘도 없는 영웅이었다. 그런 그들조차 나를 해하지 못했다. 네가 정 내게 도전하겠다면…….”
타닥.
손권은 바닥을 박차며 마초에게 달려들었다. 잔뜩 웅크린 자세였다.
“베어 주마.”
마초는 그 말과 함께 치란을 사선으로 크게 내리쳤다.
드드득!
손권의 갑옷, 쇠붙이, 뼈가 갈라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어깨를 가르고 반대쪽 옆구리로 빠져나와야 하는 치란이 나오지 않았다.
손권이 쇠장갑을 낀 손으로 치란의 칼날을 붙잡은 것이다.
“중모, 네놈이!”
끼익.
손권은 치란을 그대로 몸 안에 쑤셔 넣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피가 흘렀다.
마초는 치란을 놓고 대신 사자 투구를 벗어들었다. 그리고 사자 투구를 쥔 손으로 촌경의 수법을 써서 손권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펑!
당연히 절명해야 하는 일격이었다.
어쩌면 절명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손권은 계속 움직였다. 천하제일인의 명도에 몸이 반쯤 갈라지고, 절초에 맞아 장기가 너덜너덜해진 채, 계속 전진해서 결국 마초를 끌어안았다.
“큭…….”
손권의 갑옷에 박힌 칼날이 그대로 마초의 몸을 파고들어 일곱 군데의 상처를 만들었다. 마초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그리고도 계속 전진하던 손권은, 마초가 손으로 목을 꺾어 버리자 그제야 바닥에 쓰러졌다.
유언을 남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절명이었다.
“아버지!”
“대장군, 괜찮으십니까!”
마명과 강유가 황급히 마초에게 달려왔다. 마초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한 뒤 바닥에 주저앉았다.
“싸움이 급하니 얼른 상처를 싸매라. 우리의 임무는 운문 쪽에서 나오는 적을 견제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계속 운문 쪽을 주시하라.”
뚝. 뚝.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몸에서 떨어진 피가 땅에 고일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일대일의 싸움에서 얼마 만에 입은 중상인가?
장료나 황충, 정봉도 이 정도의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마초는 상처를 싸매는 병사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다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중모, 너 또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걸이라는 걸 말이다.”
손책과 같은 무력도, 주유와 같은 용병술도 갖지 못한 손권.
그는 결국 오랫동안 살아낸 끝에 마초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히고 죽었다. 손책도, 주유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 * *
위연은 그대로 말을 달려 팔진의 지휘부에 도착했다.
바로 유비에게 달려간 위연은 유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후, 자초지종을 말했다.
“…하여 조자룡이 풍문 쪽으로 나갔습니다. 그가 사반문 쪽으로 들어오면 아군의 팔진은 무너집니다.”
“그렇겠지. 이미 자룡이 사반문을 흔들고 있다는 전령이 왔다.”
유비는 옆에 있는 사마의를 돌아보았다.
“중달,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손가의 망나니가 제 몫을 해 줬다면 지금쯤 마초는 중상을 입었을 겁니다. 조자룡이 아군의 진영을 무너뜨린다면, 아군도 마가군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죠.”
사마의는 그렇게 말하며 유비를 쳐다봤다.
유비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그건가.”
“이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대장군이 이 앞에 있으니 그를 잡아야 합니다.”
자신을 연왕으로 천거했던 게 마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유비는 고개를 끄덕인 후, 위연을 보고 말했다.
“문장, 다시 한번 수고해 줘야겠다. 장생이 대장군을 직접 노릴 것이다. 장생은 아직 경험이 적으니 네가 같이 가서 도와다오.”
“알겠습니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위연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맞은편에 있는 청년을 돌아봤다.
관색, 자는 장생.
관우의 첩 두혜의 소생인 서자다.
또한 관우가 무사로서 가장 아끼는 제자이기도 했다. 관색에게 지어준 자가 관우 자신의 옛 이름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관색은 두 손을 모아 유비에게 군례를 취했다. 얼굴을 온통 가리는 투구를 쓰고 있어서 용모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