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87화 (274/306)

287화. 홍농사변 (2)

마초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그동안 장수들이 마초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조운, 마대, 월길, 제갈량, 나관중. 제자 강유. 그리고 세 아들 마명과 마한, 마성이었다.

마초는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연왕부의 장수 위연이 사마의 곁에 있다. 이는 곧 연왕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연왕이요? 유비 말입니까?”

“아니, 연왕야가 왜…….”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마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를 깊이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다. 이제부터 연왕은 우리의 적이다.”

“크윽…….”

마대는 눈물까지 보이며 이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마초는 지시를 내렸다.

“우리가 숫자로 저들을 대적할 수 없다. 하지만 사마의와 연왕을 잡으면 적은 와해된다.”

마초가 말하자, 마명이 살기에 찬 눈빛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둘 다…….”

마초는 고개를 저었다.

“둘 다 베는 것이 아니다.”

“하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연왕은…절대로 죽게 해서는 안 된다.”

“예?”

“아버지, 아니 대장군. 연왕이 먼저 대장군께 칼을 겨눴습니다. 그런데 어찌…….”

“내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연왕의 몸을 상하게 하지 마라.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연왕을 발견하면 섣불리 덤비지 말고, 나나 조자룡에게 맡겨라.”

유비가 전사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 것.

마초는 한 가지의 방침을 분명히 하달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제갈량이 물었다.

“하면, 사마의는 어찌합니까?”

“사마의는…….”

번쩍.

마초의 눈에서 순간 빛이 번쩍였다. 모두가 볼 수 있는 푸른 안광이었다.

“반드시 죽여라. 천하를 위해.”

“존명!”

장수들은 일제히 손을 모아 마초에게 군례를 취했다.

이제 남은 병력은 약 3백. 어제부터 밤낮없이 계속된 갈족과의 싸움으로 지친 군사들이다.

이 병력으로 다섯 배에 달하는 금군과 맞서 싸워야 한다.

“왼쪽 구릉으로 이동하라! 마대, 월길, 엄호하라!”

이제 뿔나팔이나 신호기 대신 육성으로 지휘할 수 있을 정도로 병력이 줄어들었다. 마초는 크게 소리치며 군사들을 이동시켰다.

파르르.

금마삭을 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마초는 피로를 느끼자 피식 웃었다.

“예전 같지 않구나.”

일 다경 동안 싸운다고 가정하면 지금이 최강이다.

한 시진 동안 싸운다면, 그래도 최전성기 못지않다. 단기접전으로 여포를 베던 20대의 자신과 겨뤄도 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꼬박 이틀 동안 싸우는 건 얘기가 다르다. 40대 중반인 지금은 아무래도 피로가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피로를 느끼고 있을 새도 없었다.

금군은 각 지방군에서 뽑힌 최정예 병사들이 모이는 곳이다. 사마의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마가군을 압박했다.

두두두두.

사마의의 지휘에 따라 금군 병사들이 움직였다.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제대들이 여덟 개로 나뉘어 진을 펼쳤다.

지켜보던 마초의 눈썹이 꿈틀했다.

“팔진(八陣) 아닌가?”

팔진은 중국 신화 속 병법의 창시자, 풍후가 고안했다고 전해지는 포진법이다.

여덟 개의 부대가 각자의 임무를 가진 채 적을 상대한다. 정면에서 섣불리 돌격해 오는 적은 포위해서 상대한다.

방술 같은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병법인 것이다.

‘진짜 무서운 건 진법 그 자체가 아니다. 저런 복잡한 진법을 갖출 만큼 병사들이 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마초는 사마의가 펼친 팔진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뚫어져라 적진을 응시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간단히 의문이 풀렸다.

마초의 옆에는 제갈량이 있었다. 제갈량은 후한의 팔진을 개량해서, 후대에 팔진법의 중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인 것이다.

“정예 기병들을 이끌고 호익문(虎翼門)으로 들어간 후, 부대를 둘로 나눠 운문(雲門)과 풍문(風門)으로 나오십시오. 풍문 방향을 뚫은 군사들이 다시 사반문(蛇盤門)으로 들어오면 팔진도의 연결이 끊어집니다.”

“그런가. 그럼 운문 방면은?”

“호익문과 운문 사이에는 팔진도의 지휘부가 있습니다. 필시 거센 적의 저항이 있을 것입니다. 운문 방면으로 간 부대는 적의 핵심 전력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됩니다.”

제갈량은 팔진의 핵심을 바로 뚫어보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마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운문에서 적의 공세를 견뎌낼 장수가 하나, 풍문을 뚫고 적진을 찢어 놓을 장수가 또 하나 필요하겠군.”

“그렇습니다.”

누가 운문을 맡고, 누가 풍문 쪽을 맡을 것인가?

결론은 너무나 뻔했다. 운문을 마초가 맡고, 풍문은 조운이 맡기로 했다.

마초는 조운과 마명, 마대, 강유를 비롯한 주력들을 이끌고 지체 없이 말을 달렸다. 그리고 제갈량이 말한 팔진의 호익문으로 바로 돌입했다.

“여기서 갈라진다!”

신호가 떨어지자 조운이 말에 속도를 붙였다. 조운은 금철기 몇몇을 이끌고 그대로 풍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대가 조운의 뒤를 따랐다.

지켜보는 사마의는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둘로 갈라졌다? 설마… 팔진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자가 저들 중에 있는가?”

사마의가 오래된 병법서를 뒤져 가며 복원해 낸 팔진이다.

마초가 병법에 능하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풍부한 실전 경험을 통해 단련된 것이다. 팔진처럼 고대 문헌에 나와 있는 기책을 공부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 그 녀석의 생각이 틀림없다. 산 채로 잡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사마의는 눈을 반짝이며 제갈량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한가로운 생각 이전에 전투에서 승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사마의는 미리 정해 둔대로, 풍문 쪽에 원군으로 세 장수를 보냈다.

한 명은 유비를 따라온 연왕부의 장수 위연이었다. 다른 두 명은 사마의가 직접 발탁한 장수들이었다. 쓸 만한 인재들은 전부 마가군에 붙은 와중에, 힘들게 골라낸 맹장들이었다.

풍문으로 달려가는 조운과 마대의 앞에 세 장수가 나타났다.

“연왕부의 위연입니다. 위위 어르신께 한 수를 배우고자 하니 도망치지 마십시오.”

말투는 정중했지만 내용은 거칠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마대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어르신께서는 무명소졸을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 마대가 상대해 주마!”

“네놈은 뭐냐?”

“내가 바로 서량의 마대다!”

“마대? 아아, 마초의 종제인가?”

위연은 가래침을 모아 옆으로 뱉고 마대를 향해 다가왔다. 품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무공만은 진짜다. 조심해야 한다.’

말 위에서 대도를 뽑아 드는 모습만 봐도 고수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마대는 긴장하며 금마삭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위연은 같이 온 두 장수를 흘긋 돌아보며 말했다.

“이십 합 안으로 저놈을 끝내고 댁들을 도와주지. 댁들은 그때까지 조자룡 장군 손에 뒈지지 말고 잘 살아남으라고.”

타닥!

위연은 두 장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마대를 향해 달려 들어갔다. 마대도 지지 않고 위연을 향해 금마삭을 뻗었다. 첫 수로 위연을 꿰뚫어 버리겠다는 듯 강맹한 일격이었다.

콰직!

결과는 싱거웠다. 위연이 휘두른 대도는 너무나 쉽게 금마삭을 두 쪽으로 갈랐다.

“뭐야, 겨우 이 정도냐?”

위연이 한심하다는 눈길을 보냈다. 마대는 이를 악물고 5척 장도를 뽑아 들었다.

“마초의 종제가 여기저기서 공을 많이 세웠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그냥 귀한 신분이라 이길 것 같은 전장만 찾아다녔나 보구만.”

“닥쳐라! 네놈이 감히 대장군을 모욕할 셈이냐?”

“그놈의 대장군, 대장군. 사촌 형님 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나.”

위연은 그렇게 비아냥거리며 대도를 힘껏 휘둘렀다. 마대는 이번에도 장도를 뻗어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냈다.

깡!

두 사람의 칼날에서 불꽃이 튀었다.

마대의 장도 또한 포원이 만든 명품이었다. 반면 위연의 대도는 그저 평범한 물건이었으니, 한 번 부딪히자 날이 빠졌다.

하지만 위연은 개의치 않고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을 이어 갔다.

깡! 깡! 깡!

마대도 물러서지 않고 위연의 공격을 받아쳤다.

기마술에는 마대가 더 능하다. 칼도 더 좋은 물건이다.

그러나 그 외에는 모든 면에서 위연이 마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마대는 도법의 수준도, 완력도 위연에게 미치지 못했다. 위연의 무위는 마대가 아니라 장료나 황충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위연의 칼을 받아내는 마대가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크윽…….”

칼이 부딪치며 손에 통증이 온 마대가 말을 몰아 잠시 위연에게서 떨어졌다. 위연은 휘파람을 불며 그런 마대를 눈으로 좇았다.

“딱 이십 합 정도 걸리겠군. 도련님치고는 강한 놈이야.”

위연이 그렇게 마대의 기량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 동안, 조운은 사마의의 두 측근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마른 체격에 긴 창을 든 청년이 먼저 나섰다.

“관구검입니다. 평소 위위 어르신의 창술을 흠모해 왔습니다.”

“그런가.”

조운은 관구검을 슬쩍 본 뒤 옆에 있는 거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붕. 붕. 붕.

거한은 쇠사슬 끝에 철구를 매단 유성추를 들고 있었다. 벌써부터 유성추를 돌리고 있었는데, 체격만 큰 게 아니라 무기의 무게중심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었다.

조운과 같은 세대였다면 이미 천하에 맹장으로 이름을 떨쳤을 만한 인물이었다.

“이름이 뭔가?”

조운이 묻자, 거한이 짧게 답했다.

“왕쌍.”

스르륵.

조운이 왕쌍을 보는 틈에 관구검이 미끄러지듯 조운의 뒤로 다가왔다.

앞에는 왕쌍의 유성추가 있고, 뒤에는 관구검의 창이 있다.

위연을 맞아 고전하고 있는 마대도 구원해야 한다.

몸은 이틀째 계속되는 싸움으로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이번 싸움은 정말 힘들군.”

조운은 그렇게 말하며 청강창을 고쳐 잡았다.

좀처럼 기분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조운이다. 이번에는 싸움이 어렵다는 사실을 자신도 모르는 새 혼잣말로 드러냈다.

반면 얼굴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 * *

마초는 계속 운문을 향해 전진했다. 장남 마명과 제자 강유가 뒤를 따랐다.

그런 그를 막아서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거기 서라. 마초.”

유독 긴 상체가 눈에 띄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각지고 큰 얼굴에는 관상 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묘한 귀티가 흘렀다.

마초는 그를 보자 헛웃음을 지었다.

“중모. 설마 너도 사마의에게 가담한 거냐?”

“내가 설마 너의 밑에서 호의호식하는 걸로 만족하고 있는 줄 알았더냐.”

강동군과의 싸움이 끝난 후, 벼슬을 박탈하고 쫓아냈던 손권이었다.

마초는 손을 들어 마명과 강유를 제지하고 직접 앞으로 나섰다.

“손책이 죽고 나서 10년이 되니, 주유가 형주에 함정을 파서 나를 태워 버리려고 하더군. 그 주유가 실패한 뒤… 이제 또 10년이 됐군. 이번에는 네 차례냐?”

척.

손권은 말에서 내려 땅을 딛고 섰다. 그리고 손책이 쓰던 것과 비슷한 칼을 꺼내 들었다. 4척 길이의 두꺼운 직도였다.

“손가의 사내로서 투장을 청한다.”

“네 형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네가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투장을 청한다고 했다. 사내라면 피하지 마라.”

물끄러미 손권을 바라보던 마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고통 없이 보내주마.”

저벅. 저벅. 저벅.

마초는 말없이 손권을 향해 걸어갔다. 칼도 뽑지 않은 맨손이었다.

손권은 심호흡을 하며 마초를 향해 직도를 겨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