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홍농사변 (1)
서량 북지군, 황하 유역.
훗날 서하의 수도 흥경이 들어서는 곳이다.
마초는 이곳에 거대한 신도시를 건설하고, 비단의 도시라는 뜻으로 금성(錦城)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신도시의 건설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중서령 제갈량이 금성 건설 현장에 부임한 후, 막혀 있던 문제들이 단숨에 해결되었다.
“황하 유역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이 일대에서만 30만 석의 소출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대진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하수로 기술을 이용했습니다.”
제갈량의 말을 듣자 마초는 흡족하게 웃었다.
“그거 잘 됐군.”
“성곽에도 최고의 기술이 들어갔습니다. 다만 성벽을 무작정 높게 쌓기보다 곳곳의 요새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30문의 태아포를 설치했으니, 설령 성이 포위된다 해도 쉽게 떨어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태아포가 있으면 어떤 적을 상대해도 버틸 수 있겠지. 그런데, 내가 오면서 보니까 시장이 이미 활성화되어 교역이 열리고 있더군.”
“그렇습니다. 앞으로 이 금성에서는 서량의 면포, 관중의 술과 소금, 유목민들의 말과 양, 그리고 익주의 곡식과 비단이 거래될 것입니다. 북방 유목민들은 금성이 망가지면 면포와 비단, 곡식을 조달할 길이 사라집니다. 섣불리 금성을 침탈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강제로 평화롭게 지내게 된다.
마초가 오랜 기간 유목민들과 부대끼며 깨우친 원리였다. 마초는 이 금성을 거대한 교역 창구로 만들어, 한인과 유목민 모두가 시장에서 이익을 볼 수 있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년 유목민의 물자를 대량으로 사들여 줘야 하지. 유목민의 교역품이 한인들의 것보다 가치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유목민의 물자, 즉 말과 마구와 가축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사업을 벌여야 한다.
마초가 추진하는 사업은 서역과의 교역이었다. 한 세대에 반짝 진출하는 게 아니라, 하서 지방의 오아시스에 끊임없이 거점을 건설하고, 그러면서 서역으로 조금씩 진출해 나가는 것이었다.
서역과 교역을 하면 많은 부를 얻을 수 있다. 마초는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교역 수지를 맞출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부를 얻고, 아무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됩니다. 이상적으로 돌아간다면 말이지요.”
“그것을 잘 돌아가게 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몫이겠지. 어쨌든 공명, 자네가 고생이 많았네.”
마초는 금성 건설이라는 대사업을 마무리한 제갈량을 연신 칭찬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든 지 15년. 제갈량은 눈부신 경력을 쌓아 가고 있었다.
‘온현령, 사공연속, 상서, 영천태수, 대장군부 군사중랑장… 자리 하나를 맡을 때마다 눈부신 성과를 냈다. 그리고 중서령이 되어 토지개혁과 북방 개척에 큰 공을 세웠지. 이제 때가 됐군.’
“이제 삼공의 자리에 오를 때가 됐지. 자네를 사공으로 삼을까 하네.”
“감사합니다.”
제갈량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투로 감사를 표했다. 마치 예상했다는 것 같은 태도였다.
마초는 제갈량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와 같이 낙양으로 돌아가세. 그리고 사공이 되어, 재상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주게. 내년이면 나는 조정을 떠나 금성으로 내려올 걸세. 자네가 재상의 자리에 있다면 나도 마음 놓고 조정을 떠날 수 있겠어.”
마초는 즐거운 듯 말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웃을 수 없었다. 마초가 조정을 떠난다는 말을 듣자, 제갈량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 * *
금성을 둘러본 마초는 이내 낙양으로 향했다.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최측근들을 비롯해 수백 기만이 마초를 수행했다.
평상시라면 문제가 생길 리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마초 일행이 장안을 거쳐 사례 홍농군에 이르렀을 때, 수행하던 월길이 다급히 달려왔다.
“주공, 주공!”
“무슨 일이냐?”
“큰일입니다. 유목민 수천 기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월길이 말하자 마초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유목민이라. 강족도, 선비족도 이 근처에는 얼씬하지 않는다. 대체 어느 부족이란 말이냐?”
“흉노입니다!”
흉노라는 말에 일행을 둘러싼 공기가 얼어붙었다.
작년의 오원 전투 이후, 오랜 우군이었던 흉노는 원수가 되었다.
올겨울 사마의에게 패하고 초원으로 쫓겨난 것으로 알고 있었던 흉노가 이 자리에 있다면 목적은 하나.
“나를 노리는 거로군.”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 장남 마명이 나섰다. 이를 부드득 갈고 있었다.
“아버지. 제가 죽기로 싸워 흉노를 막겠습니다.”
“기병 수천 기를 무슨 수로 막겠다는 말이냐?”
“흉노와 직접 원한을 지은 것은 접니다. 제가 나서면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천하를 위해 저는 없어도 되지만, 아버지는…….”
턱.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초는 마명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하지만…….”
뭐라 말해 보려던 마명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마초의 눈은 마치 불꽃이 튀는 것처럼 푸른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모두 수레를 버리고 말로 옮겨 타라. 이제부터 전속력으로 홍농태수부까지 달린다. 월길, 말 잘 타는 군사들을 뽑아 먼저 홍농태수부로 보내라. 원군을 준비할 수 있도록.”
“존명!”
홍농태수부까지의 거리는 대략 이틀.
그때까지 흉노의 공세를 막으면서 도주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다시는 가족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초는 그렇게 되뇌며 치란의 손잡이를 굳게 잡았다.
* * *
흉노의 선봉대가 마초 일행을 습격하며 난전이 벌어진 것은 그로부터 한 시진 후의 일이다.
마초 일행의 숫자는 흉노 선봉대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가군의 최정예인 금철기와 강족 기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난전을 걸어 온 흉노 선봉대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었다.
퍼억!
마초의 옆으로 화살 하나가 날아와 꽂혔다. 제법 겨냥이 정확한 자였다.
‘저놈을 먼저 죽여야겠군.’
마초는 인상을 찌푸리며 옆에 있는 장수에게 말했다.
“마대! 오른쪽의 수염 많은 녀석이다!”
“예, 형님!”
마대는 기운차게 대답하며 금마삭을 들고 마초가 말한 오른쪽으로 달렸다.
“에, 그런데… 죄다 수염이 많잖아?”
흉노의 선봉대는 독특했다.
코가 높고, 눈이 쑥 들어가 있고, 수염이 풍성한 자들이 많았다. 눈이 푸른 자나 머리가 노랗고 붉은 자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중원의 유목민들보다 체격도 좋아 보였다.
마대는 그들 중에서 결국 한 명을 찾아냈다. 마초가 말한 활잡이였다.
퍽!
금마삭이 가슴에 박히자 흉노 궁수는 피거품을 뿜으며 말에서 떨어졌다. 풍성한 노란 수염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마대는 피를 털어내고,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갈족(羯族)인가 보군.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갈족은 흉노의 휘하에 있던 백인계 민족이다. 훗날 중국으로 쳐들어와 5호 16국 시대의 주역 중 하나가 된다.
흉노 선우 표가 북흉노를 끌어들이면서, 북흉노 휘하에 있던 갈족들이 원래의 역사보다 일찍 중원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마대가 그런 사정을 알 리 없었다. 마대는 그저 갈족들 사이로 뛰어들어 창과 칼로 열심히 찌르고 벴다.
“흩날려라… 앵속화(罌粟花)!”
불혹의 나이에도 마대의 취향은 변함이 없었다.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스스로 만든 초식으로 갈족 기병들을 몰아쳤다.
그러나 무공만은 명백한 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마대의 창과 칼이 번뜩이자 갈족 기병들의 팔다리가 하늘로 날며 비명 소리가 울렸다.
마대뿐만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놈들. 너희들이 원하는 게 나의 목이냐!”
마명은 노호성을 지르며 갈족 기병들을 찌르고, 벴다.
마대의 전투 방식도 마초와 흡사했지만, 마명은 그 이상으로 비슷했다. 금마삭과 5척 장도를 휘두르며, 신기의 경지에 오른 기마술을 믿고 무모하게 돌진하는 모습이 젊은 시절의 마초와 꼭 닮아 있었다.
콰드드득!
마명의 말발굽에 짓밟힌 갈족 기병들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마초의 젊은 시절을 아는 고참병들이라면 누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대장군의 아들… 아니, 마치 젊은 대장군 같구먼.”
“대장군이 저 나이 때 딱 저렇게 싸웠지.”
마명의 수는 점점 과감하고, 무모해졌다. 자책감과 분노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창이 부러졌다. 마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뒤로 조용히 따라붙던 조운이 청강창을 뻗어 마명을 노리는 적병을 찔렀다.
펑!
폭음과 함께 청강창에 맞은 갈족 기병의 상체 절반쯤이 사라졌다.
마명은 얼른 조운에게 손을 모아 감사를 표했다.
“고모부.”
“자중해라. 아버지의 근심을 더하지 않도록.”
마명은 그제야 흥분에서 벗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마초 일행을 습격했던 갈족들은 이제 전열을 정비해서 물러가고 있었다.
적지 않은 피해를 냈지만 퇴각하는 모습에 절도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조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만만치 않은 놈들이군. 곧 다시 습격해 올 것이다.”
갈족들은 목표물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마치 첫 사냥에 실패하고 사냥감을 좇는 늑대처럼, 마초 일행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추격해 왔다.
갈족들이 다시 나타난 것은 그날 밤이었다.
“제기랄!”
“무기를 들 수 있는 자는 모두 싸워라!”
처절한 싸움이었다.
마초, 조운, 마대, 월길은 전부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적을 상대했다.
마초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장남 마명은 단신으로 수십 명의 적을 베어 넘겼다. 무공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차남 마한, 아직 10대 소년에 불과한 삼남 마성도 각자 창과 칼을 들고 용감하게 싸웠다. 무공이 없는 나관중이나 제갈량은 알아서 말을 타고 피해 다니며 살아남아야 했다.
싸움이 끝난 후.
이번에도 이기기는 했다. 그러나 피해가 너무 심했다. 금철기와 강족 기병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한 번만 더 습격이 있으면…….”
“살아남기 어렵겠군.”
슬슬 상황을 비관하는 병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멀리서 갈족들이 다시 나타났다.
마초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새 시달려서 눈 주위에 피로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대강 이천여 명인가.”
적의 숫자가 파악되자, 마초는 고개를 돌려 조운을 바라봤다.
“자룡. 기억나나?”
“무엇 말인가.”
“상산에서 흑산적들과 싸울 때. 그때는 적들이 저보다 훨씬 많았지.”
“아아, 기억하고말고. 평생 잊지 못할 걸세.”
조운은 25년 전의 상산 전투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때는 둘 다 약관의 청년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장년이 될 때까지 친구로, 의형제로, 처남과 매부로 긴 인연을 이어 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우리 둘이 해야겠군.”
“그럴 수밖에 없겠군.”
조운이 먼저 청강창을 마초 쪽으로 내밀었다.
마초는 금마삭의 날로 청강창의 자루를 쳤다.
깡.
맑은 금속성의 소리가 울렸다.
그것을 신호로, 마초와 조운이 맹렬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25년 전의 그날에 뒤지지 않을 만큼 빠른 질주였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눈앞의 갈족들에게 충돌했다.
콰드드득!
“끄아아악!”
마초가 금마삭을 쭉 뻗자 세 명이 꿰였다. 첫 번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하고, 두 번째는 폐가 망가진 듯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른 것은 배에 창을 맞은 세 번째 갈족 병사였다.
조운 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쇠도 잘라내는 청강창으로 상산창술 절기를 쏟아내자, 가는 곳마다 폭음과 함께 갈족 병사들의 선혈이 튀었다.
쾅!
쾅!
쾅!
조운의 창은 난폭했다. 여느 때의 정교하고 절제된 초식과 달랐다.
마치 이제까지 참고 있었던 본능을 쏟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조운은 분노한 맹수처럼 살육을 벌이기 시작했다. 창날에 찔리거나 베이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힘이 실린 창대에 맞는 것만으로도 사람과 말의 뼈가 부러져 나갔다.
“……!”
“……! ……!”
갈족들은 알 수 없는 서역의 언어로 다급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마초와 조운을 막으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말해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서역에도 이런 무사들은 없었다.
마초의 조운의 주위로 갈족들의 시체가 쌓였다. 두 사람은 마치 풀을 베는 농부처럼 갈족들의 머리와 팔다리를 수확하고 있었다.
전장의 모든 병사들이 경악과 공포, 존경심이 뒤섞인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마초와 조운을 지키려는 한인과 강족 병사들도, 마초와 조운의 목을 노리는 갈족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일기당천(一騎當千)…아니, 만부부당(萬夫不當)인가.”
혼자서 천 명을 당해낼 수 있는 맹장에게 일기당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두 사람은 그 이상이었다. 만 명이 있어도 당할 수 없다는 만부부당의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전황이 바뀌었다.
갈족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초나 조운의 곁에 가면 죽는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할 만큼, 수많은 갈족 병사들의 목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갈족의 입장에서는 전황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마초와 조운은 단 두 사람의 무위로 대열을 뭉개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마초와 조운을 앞세운 마가군이 갈족을 다시 한번 쫓아낼 게 분명했다.
“하아, 하아.”
마초는 티 나지 않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정돈했다. 조운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 격렬하게 움직인 탓이었다.
마초는 잠시 숨을 고르며 전황을 지켜봤다.
마가군이 반격하고 있었다. 마초와 조운의 활약을 본 갈족들이 슬금슬금 뒤로 빠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갈족들을 쫓아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때, 갈족들의 뒤편에서 한 무리의 인마가 쏟아져 나왔다.
얼핏 봐도 천 명이 훌쩍 넘는 군대였다. 그리고 전부 한인들이었다.
마초는 그들의 가운데 있는 지휘관을 보자 코웃음을 쳤다.
“역시 네놈이었군, 사마의.”
“금군중랑장 사마의가 대장군을 뵙습니다.”
“어떻게든 네놈을 제거했어야 했는데, 조맹덕과 싸움이 급박하여 살려둔 게 한이로군. 좋다, 대신 오늘 네놈을 죽여서…….”
거기까지 말하던 마초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사마의의 옆에 서 있는 장수는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사마의 옆에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자, 마초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사마의의 옆에 서 있는 자는 유비군의 장수 위연이었다.
연왕 유비가 마초의 반대편에 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