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83화 (270/306)

283화. 젊은 사자 (1)

217년, 5월.

마초는 낙양 저택의 후원에서 차를 마시며,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딱 적당하게 내렸다. 더위를 시원하게 식혀 줄 만큼, 홍수 걱정이 들지 않을 만큼이었다.

“상공.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마초의 뒤에서 양하원이 말을 걸었다.

혼인할 때 스물한 살이었던 아내는 어느덧 마흔다섯이 되었다.

지난 생의 아내는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달랐다. 십수 년간 편안하게 낙양 생활을 하며 부귀영화를 누릴 만큼 누렸다. 자식도 다섯 명이나 얻었다.

“부인은 어디 다녀오시오?”

“아, 격구 좀 하고 왔지요.”

최근 부인들끼리 만든 격구 모임에 푹 빠진 양하원이다. 마초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뼈 부러지는 부인이라도 생기면 내가 곤란해지오.”

“그런다고 상공을 원망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격구는 사내들도 하기 어려운데, 부인들끼리 잘 할 수 있겠소?”

“무슨 섭섭한 말씀을. 첫째 아가씨는 격구 실력이 무장들 못지않아요. 둘째 아가씨는 더 잘한다고 하는데, 먼 형주에 가 있으니… 아참, 제갈 선생 부인도 엄청 빠르게 늘고 있어요. 나만큼 키가 크고, 힘은 나보다 더 좋더군요.”

양하원은 마수와 황월영의 격구 실력을 한참 칭찬했다.

마초는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고개를 들어 아내의 얼굴을 쳐다봤다.

“뭘 봐요?”

“천하제일 미녀.”

“그런 말은 누가 가르쳐 줬어요? 나 선생인가?”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오.”

“으흠.”

양하원은 마초의 앞에 마주 앉아 턱을 괴고 찬찬히 마초를 훑어봤다.

“부인이야말로 뭘 그렇게…….”

뚝.

양하원은 손을 뻗어 마초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뽑았다.

“흰 머리가 났네요.”

“그런가? 이제 한두 가닥 날 때도 됐지.”

“머리만 그런가? 주름살도 보이는걸.”

“그야 나도 마흔넷이니까. 그래도 앞으로 삼십 년은 더 살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그렇게 몸을 함부로 쓰면서? 난 못 믿겠는데. 여포하고 싸우고 돌아온 날은 정말 죽은 줄 알았다고요.”

“어쨌든 이렇게 잘 살아 있지 않소.”

“그래요. 잘 살아 있죠. 그리고…….”

마초가 양하원에게 조금 다가갔다.

그러자 양하원은 마초의 턱을 손으로 붙들고 냅다 입을 맞췄다.

“여전히 잘생겼네.”

“그리고 앞으로도 잘생길 예정이지.”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24년차 부부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깔깔거리며 웃던 양하원이 문득 정색하며 물었다.

“그런데 괜찮은 거예요?”

“뭘 말이오?”

“조정의 일이요. 북방 개척과 토지개혁 때문에 엄청나게 반발이 컸잖아요?”

“요즘은 다들 잠잠해졌소. 내가 하겠다는데 자기들이 어쩔 텐가.”

“그래도 귀족들이 다 같이 반발하면…….”

“그치들은 내게 대항할 실력도 없고, 명분은 더욱 없소. 지난 10년간 조정 세입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지역마다 곡창도 꽉 차 있소. 나관중이 만들어 낸 면포, 종이, 설탕 같은 것들 덕분에 백성들 삶도 엄청나게 좋아졌고. 요즘은 형주에서 수차라는 걸 만들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만들어지면 쌀 생산이 두 배로 늘어난다던가.”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부인은 왜 그리 걱정하는 거요?”

“아니, 저잣거리에서 듣자니 북방 개척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으음, 그래? 그런 놈들을 다 잡아들여야 하나?”

“그런 짓 좀 하지 말아요. 잘생긴 조조 되고 싶어요?”

마초는 양하원을 보며 씩 웃었다.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부인은 너무 걱정할 것 없소. 그보다…….”

“그보다?”

“서량 건은, 생각해 봤소?”

마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양하원이 씩 웃었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요? 뜻대로 하세요.”

“고맙소.”

“고맙긴요. 나도 들었어요. 얼마 전에 성공영 장군이 죽었다지요?”

“아아. 서역 원정 중에 풍토병에 걸린 모양이더군. 아까운 사람이 갔소.”

“죽고 사는 건 하늘에 달린 일이니 어쩌겠어요. 성공영 장군이 없으면 서량도 꽤 혼란해지겠군요.”

“그래서 그 녀석을 보냈으니 혼란을 잘 수습할 거요.”

마초를 대신해 서북 3군을 통치하던 성공영이 죽었다.

이제부터 서북 3군의 실력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초는 아우 마철을 서량으로 보내서 서북 3군을 단속하게 했다.

뿐만 아니었다. 마철이 받은 임무는 하나 더 있었다.

마초가 서량 북지군 일대에 건설 중인 신도시를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앞으로 2년이면 금성(錦城)의 건설이 끝날 거요. 그때쯤 북방 개척과 토지개혁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척될 테니, 그때가 되면…….”

“서량에 가서 살자는 거죠? 알았어요.”

최고 권력자로서의 호화로운 삶을 포기하고, 북방에 개척한 신도시로 이주해 변방의 영주로 살아간다.

스스로의 손으로 북방 개척을 완수하기 위한 마초의 결단이었다.

또한, 가족과 함께 조용한 노후를 보내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권력이란 너무 오래 쥐고 있으면 반드시 탈이 나는 법이오. 이제 나도 천하를 위해 할 만큼 했으니, 내게 어울리는 삶을 살 때가 온 것 같소.”

마초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신이 원하는 삶.

그것은 낙양에서 권모술수를 부리는 권신의 삶이 아니다. 환락에 빠진 나태한 삶도 아니다. 구중궁궐 안에 틀어박힌 천자의 삶도 아니다.

‘서북쪽 변방에 큰 도시를 만들고, 그 도시를 지키는 것. 한인과 이민족들이 같이 부대끼는 곳에서, 이민족의 피를 가진 한인으로 사는 것. 때로는 교역을 하고, 때로는 기병대를 휘몰아 전투를 벌이며 사는 것.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이 낙양의 권력투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것.’

마초는 금성에서 북방을 지키며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전에 낙양의 일을 정리해야 했다.

* * *

오호대장.

다섯 명의 범 같은 장수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마초 휘하의 방덕, 서황, 장료, 감녕, 황충을 오호대장이라 불렀다. 하나같이 일기당천의 무위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이들이었다. 공식적인 호칭은 아니지만, 대장군부의 오호대장이라고 하면 모두 이들을 떠올렸다.

오늘은 간만에 오호대장의 회합이 있는 날이었다. 장소는 대장군부가 아닌, 마초의 저택이었다.

“이렇게 보자고 한 데는 이유가 있네.”

마초가 입을 열자, 서황이 먼저 대답하고, 뒤이어 황충이 대답했다.

“하명하십시오, 주공.”

“모두 주공의 뜻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마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 모인 다섯 명의 장수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자네들이 칼날과 화살을 마다하지 않고 싸웠기에 천하가 안정을 찾았네. 하지만 이제 난세가 끝났으니, 무장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각자가 가진 병권을 내려놓아 주게.”

이들 다섯 명은 다른 장수들과 다르다.

마초는 이 다섯 명에게 파격적인 자율권을 부여했다. 그래서 이들은 각자 5천에서 2만 사이의 병력을 이끄는 사령관들이다. 30년 전이었다면 하나하나가 강력한 군벌이 될 수 있는 규모였다.

듣고 있던 장료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병권을 내려놓는 건 좋습니다. 그런데 녹봉은 계속 나옵니까?”

“문원, 자네에게는 안문후의 작위가 내려질 걸세. 식읍도 1만 호로 늘어날 예정이고.”

“네, 후작. 그리고 1만 호… 잠깐, 뭐라고요?”

장료가 실눈을 크게 뜨고 마초를 바라봤다.

현후의 작위에 1만 호의 식읍을 가진 인물은 천하에 딱 두 명이 있었다. 마초와 마등이었다.

그만큼의 봉토를 이들 다섯 명에게 약속한 것이다.

“일 그만하면 나야 좋지요. 그렇게 막 퍼 줘도 됩니까? 그러다 나라 망하는 거 아니에요?”

“망하긴 왜 망해? 나라 곳간 훔치던 도둑놈들을 우리가 싹 다 잡았는데. 게다가 문관들이 소출도 엄청나게 늘렸지 않나.”

마초의 집권 후, 조정으로 들어오는 세곡과 세금은 난세 때의 세 배에 달했다. 전체 생산량은 다섯 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작년에는 창고가 모자라서 전국의 세곡을 면제시켰을 정도였다.

“주공의 말이 맞습니다. 앞으로는 문관의 시대지요. 그러니 저도 병권에는 집착을 버리고, 앞으로 문관으로 살아 보려 합니다. 예전에 잠깐 해보니 그것도 재미있더군요.”

고향 양현을 봉지로 받아 양후가 된 서황이 말했다.

학문과 행정 실무에도 조예가 있는 그는 이미 문관이 돼 있었다. 다음 달이면 황궁의 치안을 담당하는 위위로 임명될 예정이었다.

은퇴를 즐기겠다는 장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계속 일하려는 서황.

반면 이미 은퇴해 버린 이들도 있었다.

“영명, 너는…….”

“난 낙양 근처에서 격구나 하면서 살 테니까 찾지 마라.”

방덕은 이미 한량의 생활에 적응해 있었다. 최근에는 일곱 번째 첩을 들였는데, 이 여인이 격구를 좋아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격구장에 나타나고 있었다.

‘영명… 내 친구, 그리고 마가군 최고의 공신.’

방덕이라고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러나 방덕은 그런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한량 생활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초는 그런 방덕에게 속으로 깊은 감사를 표했다.

한편, 이미 중앙 관직을 내려놓고 형주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황한승, 자네는 벌써 형주로 내려간 지 4년째 아닌가.”

“처음에 딱 10년만 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그리고 형주에도 이런저런 일이 많습니다. 가끔 있는 산월족 토벌이 생각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전날 마신 술이 이제야 깨서 뒤늦게 대화에 끼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으음. 그래서 뭐, 장군직을 내려놓으라는 겁니까?”

“그렇지.”

“난감하군요. 이제 와서 다시 수적질을 할 수도 없고… 장사나 할까?”

감녕은 장사를 고민하는 척 말했다.

강동군이 해산될 때, 감녕이 강동의 치안 유지를 맡았다. 그러면서 뒤로 손을 써서 장강 교역권을 자기 사람들에게 나눠 준 상태였다.

마초는 피식 웃음이 났지만, 모르는 척 눈감아 주기로 했다.

“천하가 자네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네. 천하 만민 대신 내가 감사하네.”

마초는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다섯 장수는 병권을 내려놓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들이 없는 군부는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채워 갈 것이다. 숙장이라 할 수 있는 육손, 왕평, 장합, 학소, 그리고 최근 새롭게 등용한 주환, 장익, 장억 같은 이들이 있었다.

* * *

대장군부.

마초는 날을 죽인 대련용 장도를 들고 제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제자의 이름은 강유. 올해 열여섯 살의 소년이다. 큰 체격에 굳센 표정이 꼭 젊은 시절의 조운을 연상시켰다.

“핫!”

강유는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마초를 향해 치고 들어왔다.

마초는 발과 손을 빠르게 놀리며 강유의 칼날을 받아쳤다. 순식간에 십여 합이 오갔다.

끼익.

두 사람은 칼을 맞대고 힘을 겨뤘다. 칼날로 전해지는 강유의 완력을 느끼자 마초는 씩 웃었다.

“많이 늘었구나.”

깡!

두 사람의 칼이 불꽃을 튀기며 서로 떨어졌다.

강유는 여전히 빈틈없는 자세로 마초에게 5척 장도를 겨누고 있었다. 잠시 강유의 자세를 살피던 마초는 이내 칼을 거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백약(강유의 자)은 이제 나와 겨뤄도 승패를 가늠하기 어렵군.”

“과찬이십니다. 스승님께서 절초를 전혀 쓰지 않으시니 그럴 뿐입니다.”

은근슬쩍 절초에 대한 욕심을 내비치는 강유.

“또 절초 얘기냐? 아서라. 청경이니, 촌경이니 하는 것들은 삼사십 년씩 수련을 쌓아야 되는 무공이다. 너는 무장이 될 몸이긴 하나, 무공은 무장의 자질 중 일부에 불과하다. 거기까지 집착할 필요는 없다.”

마초는 웃으며 그런 강유를 달랬다.

그렇다면 마초 본인은 어떻게 삼사십 년의 수련이 필요한 무공을 20대 때부터 자유자재로 썼던 것일까?

강유는 잠시 의문을 가졌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마 마초가 타고난 자질이 워낙 뛰어나서 그럴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스승님. 결국 절초는 후대에 전하지 않으실 겁니까?”

“그래. 이제 그런 걸로 싸우는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루신 성취가 아깝습니다. 제가 아니라도, 장공자 정도의 재능이라면 이어받을 만하지 않겠습니까?”

강유가 말하는 장공자는 마초의 장남, 마명이다.

올해 스물한 살인 마명은 젊은 시절의 마초를 쏙 빼닮았다. 무공에도 천재라고 할 만큼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병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기 사람들을 휘어잡는 매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글쎄다. 스승으로서는 전수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아비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구나.”

마초는 마명이 아무리 졸라도 절초를 전수해 주지 않았다.

‘조용히 살 생각이라면 그 정도의 무공은 필요가 없다. 장수가 될 생각이라면 병법과 경험을 더 쌓는 게 옳다. 이제 장수가 선봉에 서서 돌격하던 시대는 끝났다. 무공을 믿고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장수는 좋은 과녁일 뿐이다.’

그렇게 절초의 전수를 거절당한 마명은 지금 북방 전선에 자원해 있었다.

* * *

병주, 상군.

마명은 성벽 위에 올라 멀리서 이는 흙먼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들이 흉노인가.”

마명의 모습은 젊은 시절의 마초를 꼭닮아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와 푸른 눈동자를 가진, 대단한 미남자였다.

옆에서 부장 학소가 말했다.

“장공자. 예측하신 대로 흉노의 좌현왕이 왔습니다. 표 선우의 처남이라고 합니다.”

마가군의 우군인 표가 흉노 전체를 아우르는 선우가 된 지도 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흉노는 마초의 북방 개척에 적당히 협조하여, 재물을 받는 대신 목초지를 계속 한인들에게 내주며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흉노와 마가군의 동맹은 뿌리가 깊다. 마초와 어부라 선우가 담판을 지어 결정한 일이며, 이후로 두 세력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갈등은 대화로 풀고 있었다. 마가군에서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해도 흉노는 협상을 선택했다.

오늘 목초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온 좌현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말만 시끄럽게 하고, 결국 마가군의 요구를 수용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돌아갈 것이다.

성벽 위에서 가만히 좌현왕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마명에게 학소가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획대로 할 것이다.”

대답을 들은 학소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명은 푸른 눈을 빛내며 웃음을 지었다.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성 안으로 끌어들여서 전부 죽여라.”

전란의 시대가 끝난 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화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보다 전쟁이 필요한 사람도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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