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양번 전투(3)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방덕과 태사자.
이미 두 발씩의 화살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
‘활 솜씨도, 기마술도, 몸놀림도 완전히 호각이다.’
쉽게 승부가 날 상황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80장까지 줄어들었을 때, 태사자가 먼저 수를 썼다. 말머리를 틀어 옆으로 달리며 수우각궁으로 방덕을 겨눴다.
다다닥.
방덕도 지지 않고 말머리를 옆으로 틀었다. 두 사람은 각자 서로의 왼편에 상대를 둔 채 활을 겨눴다.
타앙!
방덕과 태사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두 대의 화살은 모두 정확했다. 방덕이 쏜 화살은 정확히 태사자의 가슴을 향했고, 태사자가 쏜 화살은 방덕의 가슴을 향했다.
다닥!
방덕은 활을 쏘자마자 재빨리 말을 몰아 그 자리를 벗어났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자리로 태사자가 쏜 부형시가 날아들었다. 움직이지 않았으면 영락없이 치명상을 입었을 상황이었다.
태사자도 마찬가지였다. 활을 쏜 자세 그대로 몸을 옆으로 틀자, 방덕이 쏜 화살이 방금 전까지 태사자의 몸통이 있던 그 자리를 통과해 지나갔다.
두두두.
세 발의 화살을 교환한 두 장수는 말을 몰아 서로의 주위를 크게 돌았다. 화살을 쏘기 편하게 몸 왼쪽을 서로에게 향한 상태였다. 하지만 섣불리 네 번째 화살을 날리지는 못했다.
‘130장, 100장, 그리고 80장…….’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피하기 힘들어진다. 신중해야 한다.’
크게 돌던 두 사람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마침내 60장 거리가 됐을 때, 두 사람은 다시 한번 화살을 메겼다.
탕!
거의 동시에 두 개의 활시위가 튕기는 소리가 울렸다.
팟!
방덕의 화살이 태사자의 어깨 갑주를 스치고 지나가며 파편이 요란하게 튀었다.
태사자의 화살은 방덕의 투구술을 맞췄다. 비단으로 된 술의 잔해가 어지럽게 흩날렸다.
‘50장까지만 근접하면 확실히 맞는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다시 70장까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서로를 노려보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태사자와 방덕의 대결이 그렇게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태사자가 이끌고 온 수우각궁 기병대는 끊임없이 마가군 기병대를 괴롭히고 있었다.
슈우우웅.
마가군 궁기병의 주력인 강족 기병들보다 더 긴 사거리에서 일제 사격이 시작됐다. 거기에 맞은 강족 기병들 몇몇이 쓰러져 나가자, 수우각궁 기병들은 더 이상 덤비지 않고 다시 일사불란하게 후퇴해 거리를 벌렸다.
“제기랄. 잘도 저런 기병대를 육성해 뒀군.”
마가군의 지휘를 맡고 있는 마초는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대열을 정돈했다.
어느덧 시간은 정오를 지났다. 머리 위로 음력 6월의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대로는 진다.’
형주의 여름 날씨는 가혹하다. 서 있기만 해도 체력이 쭉쭉 떨어진다. 무거운 갑주를 걸친 북방 출신의 기병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면 태사자의 수우각궁 기병대는 달랐다. 남방의 부대답게 무장이 가볍고, 무더위에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다른 전장이었으면 중장갑으로 무장한 마가군 기병들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더운 남방의 여름날에는 달랐다. 수우각궁 기병대가 가벼운 차림으로 멀리서 활을 쏘고 재빠르게 빠지니, 마가군 기병들에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방덕이 더 먼 거리에서 적장들을 저격하면서 돌파구를 찾는다. 하지만 방덕은 지금 태사자와 호각의 싸움을 하느라 다른 데 정신을 팔 겨를이 없었다.
“마대. 이제부터 네가 부대를 지휘해라.”
마초는 결단을 내리고 마대를 불러 일렀다. 마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예? 형님은 뭘 하시게요?”
“나는 영명을 도와야겠다. 저 태사자라는 녀석을 제압하면 돌파구가 생길 것이다.”
다닥!
마초는 마대의 대답을 듣지 않고 말을 몰아 태사자를 향해 달렸다. 항상 마초를 수행하는 십여 기만이 뒤를 따랐다.
‘내가 접근하면 태사자도 나를 견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순간 방덕이 쇄도해서 거리를 좁히고, 먼저 쏴서 승부를 낸다.
방덕은 마초의 생각을 읽고 쇄도를 준비했다.
태사자도 마초의 생각을 읽었다. 그는 긴 팔을 들어 허공에 휘저었다. 통상적으로 쓰지 않는 기묘한 수신호였다.
“뭐지?”
마초가 태사자의 수신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을 때.
스으윽.
20장 앞의 둔덕에 엎드려 있던 강동군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1열의 병사들은 땅에 눕혀 뒀던 긴 목책을 들어올리고, 2열의 병사들은 창을 세워 마초의 돌진을 저지하려 했다.
“훈련이 잘 돼 있군.”
마초는 씩 웃었다. 그 다음에는 오히려 속도를 올려서 강동군 병사들을 향해 달렸다.
도철이나 절영은 이제 늙어서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타고 있는 말도 서역의 준마였고, 마초는 두말할 필요 없는 천하제일의 기수였다. 저런 함정 정도는 얼마든지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타닥!
준마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높이였다. 준마는 그대로 목책을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때, 강동군 병사들 틈에 섞여 있던 소년 하나가 목책을 딛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소년은 침착하게 등에 멘 장검을 뽑았다. 그리고 몸을 빙글 돌리며, 마초가 탄 준마의 머리를 노리고 크게 장검을 휘둘렀다.
퍼억!
깔끔한 일격이었다. 마초의 준마는 그대로 머리가 떨어졌다. 준마의 잘린 목에서 솟은 피가 소년의 얼굴에 어지럽게 튀었다.
마초는 그대로 말의 배를 박차며 옆으로 뛰었다.
끼익.
마초가 허공에서 자세를 잡아 미끄러지며 착지하는 동안, 머리를 잃은 말의 시신이 목책에 꿰였다.
“대장군!”
“무사하십니까!”
마초를 따르던 십여 기가 저마다 놀라서 소리쳤다.
마초는 손을 들어 수하들을 안심시킨 후, 자신의 앞을 막아선 소년에게 물었다.
“뭐 하는 놈이냐?”
“그저 병졸이오.”
소년은 억센 강동 사투리로 대답했다.
나이는 대략 10대 후반쯤. 키도 크지 않고 몸도 마른 편이다. 딱 봐도 귀한 신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들고 있는 춘추시대 양식의 장검은 범상치 않은 물건 같았다.
‘저래 보여도 무공이 대단한 놈이다. 그리고 나이는 10대라…….’
소년이 누구인지, 머릿속에 짚이는 바가 있었다.
마초는 씩 웃으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치란을 뽑아들었다.
“내게 혼자서 덤비는 놈은 오랜만이군. 목숨이 아깝지 않으냐?”
“그야, 살아남을 테니까.”
팟!
소년은 땅에 낮게 깔린 자세로 마초를 향해 달려 들어왔다.
마초는 천천히 치란을 머리 위로 들었다.
소년과 마초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마침내 한 발 앞까지 달려온 소년이 장검을 크게 위로 휘두를 때, 마초는 들어올린 치란을 내리쳤다.
깡!
칼과 칼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끼기기긱!
마초는 장검의 날을 따라 치란을 미끄러뜨렸다. 소년은 당황하지 않고 칼막이로 치란의 날을 받아내고 뒤로 물러섰다.
“아니!”
“저, 저럴 수가 있나?”
마가군 병사들과 강동군 병사들이 동시에 술렁거렸다.
병졸의 차림새를 한 소년이 쇠를 자르는 장도 치란을 막아내고,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마초와 대등하게 일합을 겨룬 것이다.
마초는 치란을 들어 날을 살폈다. 소년이 든 장검과 부딪히자 날이 살짝 뭉개져 있었다. 소년의 장검도 비슷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칼도 대단하고, 사람도 대단하군. 이름을 말해라.”
소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대장군이 병졸 이름을 알아서 뭐 하시려오. 이 곳은 전장이니 칼로 얘기합시다.”
“으하하! 이거 썩 마음에 드는 놈이군.”
마초는 소년을 보며 크게 웃었다.
“이름을 가르쳐 주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정승연.”
정봉, 자는 승연.
마초가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말하자 소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대장군이 어떻게 내 이름을…….”
쉬익!
마초는 정봉의 말을 다 듣지 않았다. 그대로 치란을 크게 휘둘러 정봉을 덮쳐 갔다.
쨍!
정봉은 마초가 휘두르는 치란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칼도 대단한 명검이고, 그걸 쥔 사람도 대단한 고수였다.
“좋아. 이건 어떠냐?”
팟.
마초는 정봉과 칼을 맞대고 청경을 시전했다. 정봉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칼날이 마초가 힘을 쓰는 방향으로 확 꺾였다. 결국 마초가 장도로 정봉의 장검을 땅에 눌러 놓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자 마초는 오른손을 칼자루에서 뗐다. 그리고 촌경의 수법으로 정봉의 가슴을 가격했다.
쾅!
그러나 정봉은 재빨리 몸을 눕히며 마초의 촌경에 직격당하는 것을 피했다. 정봉은 오른손으로는 땅에 처박힌 칼을 잡고, 왼손으로는 땅을 짚은 자세로 마초를 향해 발을 내질렀다.
쓰윽.
가볍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곡예 같은 발차기를 피하는 마초.
거리가 생기자 다시 자세를 잡고 검을 겨누는 정봉.
“청경에도 대응할 줄 아는군. 누구에게 배웠느냐?”
마초가 묻자 정봉이 대답했다.
“사부에게 배웠소.”
“그래? 그럼 네 사부도 천하제일인에 가까운 자겠군. 내가 너를 꺾으면 네 사부를 만나게 해 주겠느냐?”
“그건 안 되겠소.”
“어째서냐?”
“담로는 한 시대에 한 명이오. 그래서 내가 죽였소.”
“그거 아쉽군.”
타닥.
정봉은 좌우로 보법을 밟으며 마초를 향해 전진했다. 체중이 무거운 장수였으면 무릎이 꺾였을 만큼 과격한 동작이었다.
마초는 정봉이 보이는 동작에 현혹되지 않았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자신의 거리에 들어오자 치란을 뻗어 정봉의 얼굴을 냅다 찔렀다.
팟!
정봉은 앞으로 쓰러지듯 몸을 숙이며 마초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장검으로 마초의 다리를 쓸어 왔다.
쨍!
마초는 짧은 순간에 화경의 힘까지 담아서 정봉의 칼날을 쳐냈다. 정봉의 어깨가 젖혀질 만큼 강한 타격이었다.
“쳇!”
정봉이 뒤로 물러났다. 마초는 물러나는 정봉을 추격해 승부를 결정지으려 했지만, 정봉의 몸놀림이 빠르고 침착해서 여의치 않았다.
마초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말했다.
“나 죽은 다음에는 강동의 정봉이 천하제일이었다더니, 과연 그렇군.”
“그게 무슨 소리요?”
“너는 몰라도 된다.”
원래의 역사에서 관우, 장비, 여포, 마초가 모두 사망한 후.
삼국지의 차세대들 중 최고의 무위를 보였던 이가 정봉이다. 허술한 징집병이 아닌 정예병끼리의 대결로 전쟁의 양상이 변한 후, 더 이상 관우나 장비 같은 무위를 보이는 장수는 없었다. 오로지 정봉과 문앙만이 혼자서 수백 기병들을 패퇴시킨 기록이 있을 뿐이다.
“핫!”
정봉은 짧은 기합과 함께 마초에게 덤벼 왔다.
마초는 정봉의 공격을 받아내며 그대로 이십여 합을 겨뤘다.
강동 땅에 수백 년간 전해지는 담로의 검술은 과연 예리했다. 마초를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정봉의 신체였다.
촤악!
마초는 치란을 크게 휘둘러 정봉을 떨쳐낸 후 말했다.
“쉽게 결판이 나지 않는군. 하지만 이대로라면 내가 이긴다. 너도 느끼고 있겠지.”
정봉은 이미 숨을 쉴 때마다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작은 체구로 마초의 체격과 완력, 그리고 청경의 수법을 상대하느라 체력을 많이 썼기 때문이었다.
반면 마초는 아직 호흡이 평온했다.
“너는 젊다. 칼솜씨로 출세하고 싶다면 내가 도와주마.”
“나를 회유할 셈이오? 내가 그걸 어떻게 믿겠소?”
“정봉. 너는 이미 천하에 짝을 찾기 어려운 고수다. 그러니 정 계속하겠다면 널 죽일 수밖에 없다.”
마초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길 수는 있지만, 손속을 두면서 제압하기는 어렵다. 정봉은 그 정도의 상대였다.
“죽을 테냐, 투항할 테냐. 네 선택에 맡기마.”
마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마초에게서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의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정봉은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대로 가면 지겠군.’
설마 진짜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마초와의 단기접전에서 밀릴 경우를 대비한 방법도 아직 남아 있었다.
정봉은 뒤로 보법을 밟으며 마초와의 거리를 벌리고 말했다.
“내가 이기기는 어렵겠군. 그러나 앞으로 대장군과 50합을 겨룰 자신은 있소.”
“그러고 나서 죽겠다는 거냐?”
“시간은 대장군이 아닌 내 편이라는 걸 알고 있소. 대장군은 나보다 잃을 게 많지 않소?”
정봉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정봉이 마초를 막아서자 방덕과 태사자 사이의 교착 상태는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그 사이 강동군의 수우각궁 기병들은 치고 빠지는 전술로 마가군에 계속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강동군 쪽이 우세해질 것은 뻔했다.
마초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전황을 흘긋 돌아봤다.
그리고 다음 순간, 표정을 풀고 씩 웃었다.
“과연 그럴까?”
“무슨 소리요?”
“시간은 너희들의 편이었지. 하지만 이제 내 편이 도착한 것 같군.”
부우우우―
마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청을 찢는 듯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초를 따르는 서량병들은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강동군 중에는 이 소리를 아는 자들이 있었다.
“제길, 설마!”
정봉도 아는 소리였다. 정봉은 이를 악물고 전장의 뒤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잠시 후,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거대한 코끼리였다.
코끼리의 발밑으로 작달막한 남중의 말을 탄 기병대가 등장했다. 선두에는 키 큰 청년이 서 있었다.
남만의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비단옷을 걸치고, 검은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썩 잘생긴 청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