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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274화 (261/306)

274화. 양번 전투 (1)

쿵.

황충은 방패를 땅에 찍었다. 그리고 방패 뒤에서 낭아봉을 어깨에 메고 주태를 노려봤다.

주태는 황충을 향해 철창을 겨눈 채, 불편한 다리로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 몸으로 대적할 셈인가.”

“다리가 성치 않아도 창은 쥘 수 있지 않나.”

주태는 평온한 말투로 대답했다.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뭔가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 같은 태도였다.

황충은 그런 주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부로군. 빨리 끝내 주지.”

퍽!

황충이 발로 땅을 구르자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황충은 그대로 방패를 앞세운 채 주태에게 달려들었다. 힘과 체중으로 주태를 덮쳐서 제압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주태의 입가에 희미하게 웃음이 스쳤다.

“내게 행운이 따르는군.”

주태는 천천히 창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황충의 방패를 향해 찔렀다.

콰직!

묵직한 통나무 위에 철판을 두른 방패다. 들고 있는 사람은 황충이다. 어지간한 공격으로 뚫릴 리 없다.

그러나 주태의 철창은 그대로 황충의 방패를 뚫었다.

“크윽!”

황충은 창날이 방패를 뚫고 들어오자 재빨리 몸을 틀었다. 그러나 창날이 옆구리를 스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몸 여기저기에 선혈이 튀었다.

‘한 치만 깊었으면 죽었겠군.’

간신히 급소를 피한 황충은 부서진 방패를 내던지고 낭아봉을 두 손으로 잡았다.

방패만으로도 보병 수십 명을 제압해 온 황충이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그런 방패를 뚫어 버릴 수 있는 무사였다.

부우웅!

황충의 낭아봉이 날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듣는 사람의 오금이 저릴 만한 소리였다.

하지만 주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땅에 디딘 두 발을 그대로 둔 채, 허리만 살짝 젖혀서 황충의 낭아봉을 피했다. 낭아봉이 주태의 얼굴 앞을 지나는 순간에는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강맹한 일격이었다.

“흡!”

주태가 황충을 향해 다시 한번 철창을 찔렀다. 허공을 헛친 황충은 이번에도 몸을 크게 틀어 주태의 공격을 피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주태는 불편하지 않은 오른쪽 다리로 땅을 박차며 황충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창을 좌우로 휘젓자 황충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수를 나눈 뒤, 주태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완력은 천하 용장에 못지않은데, 강한 상대와 겨룬 경험이 부족한 것 같군. 무기도 적진 분쇄를 목적으로 하는 무거운 것들이라 투장에는 적합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 형주에는 내 낭아봉을 받아낼 수 있는 상대가 없었으니까. 그대 같은 고수와 겨룰 일이 없었다네.”

황충은 즐거운 듯 말했다. 주태도 피식 웃어 버렸다.

“하긴, 그런 식으로 무공을 수련해서 단신으로 성문을 열 수 있게 되면, 그게 더 낫겠군. 내게도 그런 재주가 있었다면…….”

팟.

주태는 오른발을 크게 내디디며 창을 찔렀다.

황충이 그 창을 피하자, 이번에는 불편한 왼발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지지하는 힘이 부족해지자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황충이 그런 움직임에 현혹된 순간, 주태는 창을 비스듬히 뉘어 황충을 후려쳤다.

퍽!

황충은 팔뚝을 들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철창의 자루를 막았다. 뭔가 충격이 있었던 듯, 철창을 막는 순간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주공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촤악!

주태는 나직하게 신세 한탄을 읊조리며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황충을 향해 휘둘렀다.

황충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가슴에 길게 베인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하하.”

황충은 몇 발짝 뒤로 물러나 나직하게 웃었다.

옆구리와 가슴의 상처가 얕지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주태에게 목을 베일 수도 있는 위기였다.

어쩌면 다리를 저는 주태를 얕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을 달리해야겠군. 이 싸움은 주태, 그대가 우리 주공에게 가지 못하게 저지한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황충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주태에게 달려들었다.

주태도 지지 않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왼손의 철창을 뻗었다.

끼이익!

황충의 낭아봉이 주태의 철창과 충돌하며 미끄러졌다. 허공에서 잠시 힘을 겨루던 두 병장기는 이내 바깥쪽으로 같이 튕겨져 나갔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의 정면이 텅 비었을 때, 주태가 오른손에 쥔 검으로 황충을 찔러 왔다.

퍽!

황충은 팔을 길게 뻗어 손으로 검날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에서 피가 튀었지만, 황충의 두터운 손을 베기에는 검이 가속할 수 있는 거리가 부족했다.

주태가 인상을 찌푸렸을 때, 황충이 그대로 머리로 주태의 얼굴을 들이받았다.

퍽!

우드득.

주태의 코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타격음에 섞여 들렸다. 황충은 낭아봉을 던져 버리고 왼손 주먹으로 주태의 갈비뼈 언저리를 후려치려고 했다.

퍼억!

그러나 주태가 더 빨랐다. 주태는 철창을 놓아 버리고 단도를 뽑아 황충의 가슴팍을 내리찍었다.

“크윽!”

“으윽!”

두 사람은 굳이 고통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계속 치명상을 주고받았다.

쾅!

황충의 주먹이 주태의 갈비뼈를 강타하자 폭음이 울렸다. 주태는 몇 군데의 골절이 추가된 것을 느끼자 쓴웃음을 지었다.

“지독하군.”

“그대야말로.”

푹.

황충이 후려쳤던 그 위치에, 이번에는 역으로 주태의 단도가 비집고 들어왔다. 황충은 황급히 몸을 빼서 장기가 다치는 것을 피한 후, 손바닥으로 상처를 막았다.

“그대는 몸을 돌볼 줄 모르는가.”

주태는 말없이 황충을 향해 전진했다.

황충은 이를 악물고 자세를 낮추며 주태의 다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부드득.

이빨이 갈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황충은 주태의 다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황충은 그대로 주태의 무게중심을 흔들며 하늘로 들어 올린 후, 땅에 내리찍었다.

쾅!

돌바닥이었으면 즉사했을 만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흙바닥이었고, 주태는 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아직 움직일 수 있었다.

“아직…….”

퍽!

뭐라고 말하려는 주태의 입에 황충의 주먹이 떨어졌다.

“끝이…….”

퍽!

황충의 주먹이 한 번 떨어질 때마다 주태의 입에서 두세 개의 치아가 사라져 갔다.

당장은 전투의 흥분 때문에 통증도 모를 정도지만, 일 다경만 지나도 걷잡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올 것이다.

일 다경 후에도 살아 있을 수 있다면.

“아니다.”

스윽!

황충이 잠깐 빈틈을 보인 사이, 주태가 오른손에 쥔 단도를 크게 휘둘러 황충의 목을 벴다.

후두둑.

황충의 목이 베인 상처에서 쏟아진 선혈이 주태의 얼굴로 떨어졌다. 눈에 피가 들어와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이겼나?’

찰나의 순간, 주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바로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콰직!

황충의 주먹이 다시 한번 주태의 안면에 떨어진 것이다.

“컥…….”

이번에는 정신이 날아갈 정도의 일격이었다. 주태의 눈에 비치는 황충의 모습이 흐려지고, 이내 시야가 검게 변했다.

황충은 목의 상처를 틀어막은 채 낮게 읊조렸다.

“거의… 죽을 뻔했군.”

목의 상처도 옆구리의 상처와 마찬가지로 심각했다.

단도가 한 치만 더 깊게 들어왔으면, 또는 황충의 목이 남들보다 두세 배 두껍지 않았다면, 황충이 쓰러졌을 것이다.

퍽.

퍽.

퍽.

황충은 피가 흐르는 목을 왼손으로 감싸 쥔 채, 오른 주먹을 몇 차례 더 들었다. 그리고 주태가 완전히 제압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부는 곤궁한 지경에 처할수록 더욱 굳세어지고(窮當益堅), 늙을수록 더욱 건장해진다(老當益壯) 하였던가.”

마초의 선조, 복파장군 마원이 남긴 말이다.

황충이 평소 신조로 삼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구강의 주태. 그대가 진정 장부로구나.”

혈투에서 간신히 승리를 거둔 황충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흐려지는 시야에 마대가 급히 달려오는 게 보였다.

* * *

번성으로 마초를 끌어들여서 잡으려던 여몽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작전 계획은 치밀했다. 그러나 그 치밀한 작전 안에 100장 거리에서 성벽을 부술 수 있는 투석기에 대한 대비책은 없었다.

성벽이 부서지자 여몽은 패배를 직감했다. 그 즉시 태사자, 반장, 능통을 비롯한 주력 장수들을 양양성으로 탈출시켰다.

단,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번성에 남아 마가군에게 저항하며 퇴각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여몽의 선택한 인물은 자기 자신이었다.

“핫!”

촤악!

여몽은 수극을 휘둘러 달려오는 마가군 보병을 베어 넘겼다.

번성에서 가장 높은 누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지휘하던 여몽이다.

그런데 싸움이 계속될수록 병사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마침내 지휘할 병사가 다 없어지자, 여몽이 있는 누각으로 마가군 병사들이 돌입해 오기 시작했다.

“이제 끝인가.”

여몽은 씩 웃으며 성벽에 걸터앉았다.

멀리 한수를 건너는 배가 보였다. 양양성으로 퇴각하는 이들이었다.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성벽이 무너진 게 정오 즈음의 일이다. 그 상태로 꼬박 한나절을 싸웠으니, 그래도 꽤 잘 버틴 셈이다.

가만히 앉아있자니 옛날 일이 떠올랐다. 무사로 성공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올 때 어머니에게 했던 말들이었다.

―언제까지 가난하고 천하게 살 겁니까?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 법입니다.

―강동의 손 장군은 출신을 따지지 않고 실력만 있으면 중용해 준다고 합니다.

―어머니, 저는 부귀를 누려야겠습니다.

“까짓 거, 죽으면 죽는 거지요.”

마지막 말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말했다.

“누구에게 하는 소리입니까?”

여몽의 주변에는 어느새 마가군의 장수가 다가와 있었다. 누각 위로 올라가는 부하들이 계속 죽어 나가자 보다 못해서 직접 온 모양이었다.

“아아, 아무것도 아니오. 그러는 그대는 누구신가?”

여몽은 씩 웃으며 적장에게 물었다.

적장은 여몽과 달리 키가 무척 컸다. 여윈 체격에 여러 자루의 단창을 등에 꽂고 있었다. 나이는 여몽보다 십여 세 많아서 마흔 살 정도로 보였는데, 큰 출세는 하지 못했는지 갑주가 화려하지 않았다.

“장합, 자는 준예. 대장군의 수하입니다.”

“아, 그대가 장합인가. 소문은 많이 들었소.”

“소문이라. 소장은 큰 공을 세운 적이 없으니 강동까지 소문이 났을 리 만무합니다만.”

“실력은 출중한데 전공 운이 따르지 않는 장수라고 하더군. 모사들 말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높은 직위를 제시하면 아군으로 전향할 수도 있다던가.”

“하.”

장합은 길게 대꾸하지 않고 단창을 뽑아 들었다.

“나는 공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니 여 장군이 필요합니다.”

“하하하, 공이라. 공을 세워서 무엇이 되시려오?”

“뭘 또 무엇이 됩니까. 기왕 군문에 들었으니 이천 석까지는 올라가려는 거지요.”

장합은 무심하게, 그러나 인간적으로 대답했다.

여몽은 크게 웃고 장합을 향해 말했다.

“하하하, 꼭 나에게 꼭 어울리는 마지막 상대로군. 좋소. 상대해 드리지.”

여몽은 두 자루 수극을 꺼내 양손으로 잡았다.

장합은 단창을 들고 여몽의 주위를 서서히 돌며 말했다.

“공을 세우기 위해 꼭 여 장군의 목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이대로 투항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 말을 내가 들을 거라 생각하나?”

“듣지 않으시겠지요.”

깡!

장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몽의 수극이 날았다. 여몽은 수극 너머로 보이는 장합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정확히 봤소.”

깡!

이번에는 장합이 단창을 뻗었다. 여몽은 수극으로 단창을 쳐내고 보법으로 거리를 벌렸다.

장합은 등 뒤에 꽂은 단창 한 자루를 더 뽑았다. 그리고 뒤로 이동하는 여몽에게 단창을 던졌다.

쾅!

여몽이 급히 몸을 틀어 피하자 단창은 반대쪽 성벽에 박혔다.

그리고 그렇게 자세가 흐트러진 여몽을 향해 장합이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병장기가 어지럽게 얽히며 순식간에 십여 합의 공방이 이어졌다.

여몽과 장합이 잠시 발을 멈추고 무기를 맞대고 있을 때, 여몽이 장합에게 말을 걸었다.

“나보다는 그대가 더 강하군. 이대로 이십여 합을 더 싸우면 내가 밀리겠는걸.”

“소장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굳이 오래 싸울 이유가 없지.”

여몽은 그대로 수극에 들어간 힘을 뺐다.

푹!

장애물이 사라지자 장합의 단창은 그대로 여몽의 배를 파고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이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퍽!

장합이 잠시 인상을 찌푸린 사이, 여몽은 배에 박힌 단창을 부여잡고 장합의 어깨에 수극을 내리쳤다.

“큭!”

“얕았나. 그래도 팔 하나는 못쓰게 할 수 있겠지.”

곧 죽을 목숨이지만 여몽은 나름대로 즐거워 보였다.

장합은 이를 악물고 여몽의 수극을 들어 올리려 하고 있었다.

팔이 잘리면 목숨이 위험하다. 만약 팔이 잘리지 않아도, 어깨를 못 쓰게 된다면 무장으로서는 더 이상 출세할 길이 막막해진다.

“훗날의 마가군 상장을 내가 데려가는군. 이 정도면 나름대로…….”

퍽!

여몽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장합이 여몽의 배에 박힌 단창을 놓고, 그 손으로 또 하나의 단창을 뽑아 휘두른 것이다. 수극을 쥔 여몽의 왼손이 잘려서 허공으로 날았다.

여몽은 꿈을 꾸는 것 같은 눈으로 자신의 잘린 손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드니,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장합이 자신을 향해 단창을 겨눈 것이 보였다.

여몽은 평온한 말투로 장합을 향해 마지막 말을 남겼다.

“어쩔 수 없군. 부디 공을 이루시오.”

퍼억!

장합의 단창이 여몽의 가슴을 꿰뚫었다. 여몽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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