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담로와 태아 (2)
나관중이 특별히 영입에 공을 들인 인재가 있다.
관서대도독부에서는 장안을 샅샅이 뒤져 그 인물을 찾아냈다. 아니나 다를까, 나관중의 예측대로 그 인물은 도박 빚 때문에 곤궁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도박 빚을 갚아 주는 대신 마가군에 합류했다고?”
“그렇습니다, 대장군! 이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빚 대신 머나먼 형주 전선까지 끌려온 청년은 마초를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외모든 체격이든 옷차림이든, 아무리 봐도 재능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구질구질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후대 사람인 나관중은 이 청년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나관중은 마초와 눈빛을 교환한 후 청년에게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성은 마, 이름은 균, 자는 덕형이라 합니다.”
마균.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공학자다. 베틀과 나침반, 수차와 연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그는 별다른 업적 없이 생을 마쳤다. 공학에만 능하고 언변과 인품이 모자라는 그의 재능을, 시대가 제대로 쓰지 못한 탓이리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시대를 앞서가는 무기가 있으면 한 번에 양양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후.
양양성을 포위한 몽골군은 아랍인 기술자들을 통해 시대를 앞서가는 공성 병기를 만든다.
당시 중국의 성이 설계될 때 고려한 범위를 넘어서는 무기였다. 결국 양양성은 함락되고, 몽골군은 그대로 강동으로 진격해 남송을 멸망시키게 된다.
“내가 따로 전달했던 게 있을 걸세. 좀 고민해 봤는가?”
나관중이 묻자 마균이 눈을 빛냈다.
“물론입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르신께서는 정말이지 하늘이 내린 인물이십니다.”
“흰소리는 됐고, 만들 수 있겠는지 말해 보게.”
“만들 수 있지요. 이걸 한 번 보십시오.”
마균은 주섬주섬 옆에 있는 물건을 꺼냈다.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관중이 주문한 공성 병기의 모형이었다. 마균은 나관중의 착상을 기반으로 여러 번 실험을 거쳐서 공성 병기의 설계 모형을 완성한 것이다.
“소인이 생각하기로는 이 포가 완성되면 기존의 발석차보다 세 배 무거운 돌을, 세 배 먼 거리까지 날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군이 일단 번성을 포위하기만 하면…….”
“적의 화살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번성의 성벽을 깰 수 있습니다.”
마균이 자신 있게 말하는 무기는 무게추 방식의 투석기다.
거대한 활시위를 만들어서 사람이 당기는 이 시대의 발석차와는 전혀 다른 물건이다. 무거운 추를 올려놓아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돌을 날리는 무기인 것이다.
나관중이 살던 시대, 이 무기에는 아랍에서 들어왔다는 뜻의 회회포(回回砲)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겠지요. 주공, 어떤 이름이 좋겠습니까?”
“이름은 언제나 그렇듯이 자네가 붙이라고. 자네가 이름을 붙이면 잘 됐으니까.”
마초는 그렇게 나관중에게 신무기의 명명권을 넘겼다.
잠시 고민하던 나관중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 포는 모든 것을 베는 보검이나 다름없는 무기이지요.”
“그렇지.”
“그러니 태아(泰阿)라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거 괜찮군. 태아로 하세.”
마초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아는 옛 초나라 땅, 그러니까 지금의 형주에 전해진다는 전설의 보검이다.
이 땅의 정당한 주인이 강동군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 * *
번성 포위 후.
두 달이 지나도록 마초는 마땅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번성을 지키는 강동군 장수들은 초조해졌다.
“빌어먹을 서량 놈들. 언제 공격하는 거야?”
반장은 성벽에 올라 마가군 진영을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이렇게까지 움직임이 없을 리가 없는데.”
반장의 옆에 서 있는 능통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는 한수를 통해 무제한적으로 보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적장은 한수에서 수전을 벌여 보급을 끊거나, 아니면 다른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래. 이를테면 기병대를 동원해 인근 고을들을 점령하며 압박해 와야 한다. 놈들은 육전에 능하니까 말이야.”
“그럼에도 아무 움직임이 없다는 건…….”
“뭔가 준비하고 있다는 거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반장은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이마에 새겨진 죄인의 문신이 꿈틀거렸다.
그때.
“저게 뭡니까?”
“뭐 말이냐?”
능통이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가만히 능통의 손가락을 따라가던 반장의 눈이 커졌다.
“저건 발석차 아닌가?”
“아니, 좀 다릅니다. 발석차보다 훨씬 크고, 모양도 다르게 생겼군요.”
“이런 제기랄. 저런 걸 만들고 있었군.”
태아포.
발명가 마균의 솜씨로 재현한 천 년 후의 무기였다.
반장과 능통은 전장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태아포를 보며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태아포의 첫 탄이 발사됐을 때, 불길한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콰앙!
300근이 넘는 바위가 100장을 날아와 번성의 성벽에 직격했다. 엄청난 폭음이 귀를 때리고, 뒤이어 성벽이 진동했다.
“화살을 쏴라! 화살을 쏴!”
소교들이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에 맞춰 번성의 수비병들은 활을 당겼다.
그러나 100장(약 250m) 거리를 날아갈 수 있는 화살은 없다. 급한 대로 방어용 발석차를 끌고 왔지만, 그 또한 30여 장을 날아갈 뿐이었다.
쾅!
태아포의 두 번째 포격이 성문에 작렬했다.
이를 악물고 태아포를 노려보던 반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런 썅.”
“왜 그러십니까?”
“돌이 맞는 위치를 봐라.”
반장의 말은 들은 능통은 태아포의 돌이 어디에 맞았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사람이 당기는 발석차는 매번 장력이 달라지며 탄착군이 일정하게 형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태아포는 매번 일정한 무게의 추를 통해 발사한다.
그러니 추진력이 일정해지고, 매번 같은 지점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것이다.
“정확히 그 위치에 다시 맞았군요.”
“저건 그냥 발석차가 아니다. 저건… 전쟁을 통째로 바꿔 버릴 무기다.”
콰앙!
반장과 능통의 대화가 채 끊어지기도 전에, 세 번째 탄이 번성의 성벽을 때렸다. 이번에는 다리가 휘청할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반장과 능통은 서로 마주 본 후, 성벽에서 내려갔다.
* * *
후두둑.
방덕은 손에 쥔 편곤을 한 번 털었다. 편곤의 자편에 묻어 있는 적병의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제 끝인가?”
태아포가 포격을 시작하자, 번성의 강동군은 태아포를 잡기 위해 성문을 열고 돌격해 왔다.
형주에서의 첫 번째 대규모 무력 충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마가군의 대승이었다.
방덕의 옆에 있던 왕평이 적진을 살핀 후 대답했다.
“아군의 대비 태세를 봤으니, 적은 더 이상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태아포가 포격을 시작하면 다급해진 강동군이 성을 나올 것은 미리 예상했던 바다.
그렇게 끌어낸 적을 요격하기 위해 왕평의 궁병대와 방덕의 궁기병대가 미리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돌격하는 강동군은 빗발치는 화살 앞에 낙엽처럼 쓰러져 나갔다. 화살비를 뚫어내고 접근한 일부 병사들은 장합의 창병대가 내뻗는 창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때, 주장 마초의 부대가 있는 쪽에서 깃발로 신호가 왔다. 신호를 보자 방덕과 왕평은 마주 보며 씩 웃었다.
“이제 진짜를 보여줄 때가 됐군요.”
“저 정도의 위력이면 오늘을 넘기지 않고 성문이 열리겠군.”
쿠구구궁.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울렸다. 미리 깔아 놓은 나무토막을 따라 또 다른 태아포들이 이동하는 소리였다.
텅.
3문의 태아포가 부채꼴로 자리를 잡았다. 천재 공학자 마균이 두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병기였다. 태아포 3문이 향하는 곳에는 번성의 성문이 있었다.
“좋아. 쏴라!”
방덕의 호령이 떨어지자 3문의 태아포에 동시에 무게추가 걸렸다.
슈우우웅.
쾅!
쾅!
콰앙!
잠깐 동안의 시간 차를 두고 3개의 바윗돌이 성문을 때렸다. 통나무에 철판을 덧대서 만든 성문이 찌그러지는 게 보일 정도였다.
번성의 수비병들은 화살의 사거리 밖에서 날아오는 바윗돌에 반격할 방법이 없었다. 세 번째 일제사격이 끝나자 번성의 성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쓰러졌다.
쿵!
“장군, 돌격할까요?”
“아직 더 기다려라. 성벽을 마저 부숴라!”
성문이 부서졌다고 바로 돌격하지 않는다. 그것이 약속된 전략이었다.
방덕은 기다렸다.
잠시 후, 3문의 태아포는 성문 주위의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성벽은 강동군이 보수할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참혹하게 부서졌다. 아니, 정확한 탄착군으로 바윗돌이 계속 날아오는데 거기에 들러붙어 보수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번성의 정면이 방어력을 상실했을 때였다.
드르르륵.
수십 개의 방패를 둘러친 수레가 한 대 나타났다. 말 대신 황충이 끄는 수레였다.
“성문이 열렸으니 이제 내 차례인가?”
“오호대장의 황한승이 나섰으니 번성도 끝장이군. 기대하겠소.”
“아, 것 참. 방 진서는 농이 지나치시오.”
방덕은 의외로 나관중이나 마대가 좋아하는 낯간지러운 칭호들을 즐기는 편이었다.
반면 그런 쪽에 취미가 없는 황충은 방덕의 짓궂은 농담에 투덜거리며 선봉에 섰다.
황충의 수레가 접근하자 강동군 병사들의 화살이 쏟아졌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황충은 개의치 않고 방패로 둘러싸인 수레를 끌며 단신으로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강동 놈들. 형주 땅을 침탈하고 살기를 바라느냐!”
창을 뽑아 들고 찌를 준비를 하던 강동군 병사들은, 황충이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자 자신도 모르는 새 움찔했다.
황충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콰직!
황충이 양손에 대형 방패를 들고 밀어붙이자 수십 명이나 되는 강동군 병사들이 그대로 밀려났다. 저마다 창이며 칼을 내뻗어 봤지만, 방패의 무게와 황충의 압도적인 완력 앞에 의미가 없었다.
콰드드득!
“으아악!”
앞에는 황충의 방패, 뒤에는 동료. 그사이에 껴 버린 병사들은 앞뒤에서 가하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뼈가 부러지고 피를 토했다.
황충은 방패를 들고 한바탕 날뛰어 성문 근처의 강동군을 정리한 뒤 노호성을 질렀다.
“형주 사람 황충이 여기 있다! 감히 맞서겠느냐!”
“화, 황충이라고?”
“설마 관장마황조의 그 황충 말인가?”
5년 전, 조조와 마초의 마지막 전투에서 있었던 일이다.
패색이 짙었던 마초의 곁에 범 같은 맹장 네 명이 나란히 섰다. 관우, 장비, 황충, 조운이 그들이었다.
이 다섯 장수는 순수하게 개인의 무용으로 전투의 승패를 뒤집었고, 한의 최고 권력자였던 조조는 관장마황조의 활약 앞에 결국 패주하는 신세가 되었다.
황충은 이 전설적인 무용담의 주인공이었다.
“틀림없다. 황충은 구척장신에 짐승 같은 체격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게다가 두발이 없어서 항상 번들번들한 대머리를…….”
“닥쳐라!”
황충은 뜬금없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낭아봉을 뽑아 휘둘렀다. 공성추를 방불케 하는 파괴력이었다.
쾅!
“으아아악!”
혼비백산한 강동군 병사들은 저마다 병장기를 거꾸로 쥐고 도망쳤다.
요새도시 번성의 성문은 너무나도 쉽게 열렸다. 태아포의 포격에 성문과 성벽이 부서지고, 성문 근처에 집결한 병사들은 황충이 단신으로 흩어 버린 것이다.
성문을 제압하고 아군의 돌입을 기다리고 있는 황충에게 강동군 장수 한 명이 다가왔다.
“그대가 황충인가.”
거구의 사내였다. 황충만큼 몸이 두껍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컸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듯, 다리를 저는 것 같은 움직임이 황충의 눈에 들어왔다.
“그대는… 그런가. 들은 적이 있다. 강동군에 다리가 불편한 무사가 있다고.”
거구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아무래도 마 대장군은 보기 힘들 것 같군.”
“그렇다. 나와 방덕이 이 전투를 끝낼 것이다.”
“마 대장군의 목을 노리려 했는데, 아쉽게 됐군.”
사내는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마초를 노리고 번성에 설치한 함정이 무용지물로 돌아갔다. 몸이 불편한 자신은 탈출해서 다음 기회를 노리기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은 내 뜻대로 마무리하고 싶군. 마가군의 상장을 한 명 데려가면, 나도 저승에서 돌아가신 주공을 뵐 면목이 있지 않겠나.”
황충은 사내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정했다. 왼손으로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는 낭아봉을 쥐었다. 그리고 큼지막한 이목구비를 움직여 시원하게 웃었다.
“이거 자칫하면 죽겠군.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 자네 이름이나 미리 듣지.”
“구강의 주태.”
철컥.
주태는 지팡이처럼 짚고 있던 철창을 뻗어 황충을 겨눴다. 온몸을 뱀처럼 휘감고 있는 상처 자국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