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담로와 태아 (1)
거기장군 동승이 자결한 후.
수도 낙양에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천자가 동승을 시켜 마초를 제거하려다 실패했다는 소문이었다.
이러한 소문을 단속하는 것은 정위 서서였다.
“이미 소문이 많이 퍼졌습니다. 무작정 단속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간자들을 풀어 다른 소문을 흘려야 합니다.”
서서는 사공 순유에게 자신의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순유가 물었다.
“어떤 소문 말인가?”
“사람들이 믿을 만한 것을 던져 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동 국구가 다른 이의 첩과 치정 관계에 얽혀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했다는 소문이라던가 말이지요.”
“‘다른 이’라면?”
“장수교위 충집이 좋겠습니다. 그는 나이도 지긋하고 명문가 출신이기도 하니 동 국구의 추문 상대로 적절할 것입니다.”
충집은 평소 동승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인물이다.
그는 일의 전말을 예상한 듯, 동승이 죽자 바로 낙양에서 자취를 감췄다.
“알았네. 그러면 충 교위는…….”
“마충이 추적하고 있습니다. 형양의 친척 집으로 피신한 것이 확인되었으니, 조만간 마충의 손을 빌려 그의 목을 취하려 합니다.”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이네.”
“명심하겠습니다.”
서서가 정중하게 인사하고 나간 후.
집무실에 혼자 남은 순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가.’
주유의 양양성 침공 소식이 전해진 후.
마초는 5만의 군사를 이끌고 형주를 수복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다.
낙양에 남아 의대조 사건의 뒷수습을 하는 것은 순유, 서황, 서서, 그리고 마철이었다.
의대조 사건이 있은 후, 마가군과 황실 사이에는 전에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잡음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신으로서 순유가 할 일이었다.
‘동탁을 베려 한 것이 벌써 17년 전이구나.’
순씨 가문의 배경도, 본인의 재주도 탁월하다. 평온한 관직 생활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젊은 혈기를 참지 못하고 동탁 암살을 기도하다 실패한 날부터, 순유가 평온한 관직 생활을 이어갈 방법은 없어졌다.
정치를 해나가려면 결국 어느 한쪽의 편에 서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흙탕물이 튀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을 것이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동탁을 베려 했던 청년 순유와, 마가군의 편에서 정치공작을 벌인 장년기의 순유를 비교하며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러나 순유의 믿음은 확고했다.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쓴 채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정치가의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잘 가시오, 충 교위.”
순유는 집무실의 창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 창천이었다.
* * *
형주 양양은 한수라는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 한중에서 동쪽으로 흘러 온 한수가 급격히 남쪽으로 꺾이는 지점에 양양이 있다. 그러니까 양양성은 북쪽과 동쪽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수 건너편, 양양성의 북쪽에는 번성이라는 요새가 있다. 높고 튼튼한 성벽을 가진 번성이 양양을 지키는 1차 방어선 역할을 한다.
“게다가 강동군은 천하제일의 수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수는 강동 수군의 놀이터나 마찬가지고, 적들은 한수를 통해 식량과 물자를 무제한으로 보급 받고 있습니다. 아군은 감 장군의 금범군 외에는 이에 대응할 만한 마땅한 수군 전력이 없지요.”
형주 북부, 완성.
마초가 형주 원정의 기지로 삼은 이곳에서 양양 공략에 대한 군의가 열리고 있었다.
현황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것은 마초가 발탁한 부장 육손이었다. 20대의 나이에 이미 병주 전선에서, 그리고 조조군과의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운 명장이었다. 마가군의 장교들 사이에서는 육손의 병법이 이미 천하제일을 다툴 수준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마초는 육손의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북방의 군사들이 물싸움에서 남방 군사들을 당해내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무리해서 수전을 벌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마가군에서 강동군과 물 위에서 싸울 수 있는 부대는 단 하나.
절충장군 감녕이 이끄는 금범군 3천 뿐이다.
그런데 마초는 금범군을 움직여 한수에서 강동 수군과 맞붙을 생각이 없었다.
“흥패(감녕의 자), 자네가 할 일은 알고 있겠지.”
“한중에서 대기하다가, 번성이 함락되면 한수를 타고 내려오라고 하셨지요? 뭐 저야 상관없지만… 번성을 깨뜨릴 방법은 있으십니까?”
“내게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아군이 번성을 깨뜨리고 양양으로 돌입할 때, 자네는 그 순간에 역할을 해 주면 되네. 아, 그리고 익주의 그 녀석에게 연통을 넣는 걸 잊지 말고.”
“이미 전령을 띄웠습니다. 10년 만에 그 녀석을 다시 보겠군요.”
감녕은 잘생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씩 웃었다.
익주에 있는 친 마가군 성향의 유력자 하나가 이번 형주 정벌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계획대로 된다면, 그는 한중에서 내려오는 감녕과 함께 양양성의 뒤를 찌르는 역할을 맡아 줄 것이다.
마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참. 그대들의 임무가 막중하다.”
“한 치의 부족함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씩씩하게 대답하는 이는 남양태수 겸 독군중랑장 소칙.
본래 서량 출신으로, 원래의 역사에서는 조조 휘하에서 뛰어난 목민관으로 이름을 남기는 인물이다. 마초는 아직 젊은 소칙을 전격적으로 발탁해서 남양태수로 삼고 형주 전선의 보급을 총괄하게 만들었다.
“소 태수는 충분히 믿을 만한 인물입니다. 이 두기가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 대장군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런 소칙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것은 예주자사로 전임된 두기였다.
두기는 마초가 이각과 곽사를 친 직후 등용한 인물로, 원래는 삼보윤으로 관중의 재건을 맡았던 인물이다. 실력이 하도 탁월해서 관중이 재건된 이후에는 여기저기 새로 얻은 영지들을 돌아다니며 내정을 맡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예주자사가 되어 인접한 형주 전선에 물자를 대고 있었다.
“좋소. 두 분을 믿고 맡기겠소. 그리고…….”
마초는 이번에는 자리에 모인 이들을 죽 둘러보았다.
나관중, 방통, 두기, 소칙, 육손.
감녕, 황충, 장합, 마대, 왕평.
형주 공략에 부족함이 없는 인선이다. 하지만 마초는 이들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이들을 불러온 상태였다.
“주공과 함께 싸우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10년쯤 된 것 같은데.”
“태원에서 여포를 잡았을 때가 마지막이었나. 딱 10년 됐군.”
마초는 진서장군 방덕과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방덕은 장안에, 마초는 낙양에 머물렀기 때문에 자주 볼 일이 없었다. 10년 만에 친구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게 되니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또 한 명, 방덕과 함께 움직이는 책사가 있었다.
“효직과 전장에 나온 것도 10년 만이군.”
한동안 내정에 전념하다 오랜만에 전장에 나온 법정이었다.
법정은 날카로운 눈으로 좌중의 인물들을 훑었다. 경쟁심을 느낀 것인지, 그의 눈은 비슷한 또래인 방통에게 유독 오래 머물렀다. 어지간한 무장들도 오금이 저리는 법정의 시선이었지만, 방통은 그런 법정의 시선을 태연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주공께서 이번 싸움도 승리하시도록 만들 것입니다.”
법정은 평상시의 그답게 자신감 속에 오만함을 섞어서 내비쳤다.
마초는 농담으로 받았다.
“나는 자네 아니어도 이길 테니, 자네는 나를 좀 더 쉽게 이기게 하는 데 집중하라고. 그런데 ‘그 사람’은 데려왔나?”
“장안을 다 뒤져서 찾았습니다. 지금 별실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잘 됐군. 당장 만나 보세.”
마초는 나관중과 눈을 마주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을 통째로 바꿀 만한 능력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시대를 잘못 만나 제대로 쓰이지 못했던 인물.
‘그 사람’은 나관중이 역사서를 뒤져서 찾아낸 비장의 무기였다.
* * *
번성.
한수를 사이에 두고 양양성의 북쪽에 위치한 요새 도시다.
마초가 주둔하는 완성으로부터의 거리는 약 삼백 리. 마가군 보병대라면 닷새 만에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전투를 앞두고 있지만, 번성은 평온했다. 번성을 수비하는 여몽이 전투 준비를 단단히 해놓은 탓이다.
“여 장군의 병법이 일취월장하였다고 들었는데, 소문이 헛되지 않았군요.”
강동과 형주 사이의 연락을 담당하는 독군종사 여범은 번성을 시찰하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손책이 강동군을 이끌던 시절, 강동군 무장들 사이에서 막내 취급을 받던 여몽이다. 그런 여몽이 어느새 성장해서 일군을 이끄는 늠름한 장수가 되어있었다.
정작 여몽 본인은 겸손했다.
“무공으로 최고가 되지 못하니, 병법에라도 능해야겠지요. 병법은 주 도독께 배웠으니 남들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여 장군, 지나친 겸손도 예가 아니올시다. 그런데 이 포진은…….”
여범은 여몽이 준비한 포진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여몽이 씩 웃었다.
“눈치채셨습니까.”
“너무 과감한 것 아니오?”
“여 선생. 상대는 마초입니다. 그는 이번에도 선두에 서서 돌격해 올 것입니다.”
마초의 싸움에는 독특한 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총대장이면서 항상 선두에 선다는 점이었다.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일신의 무용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초는 그 방식으로 매번 혁혁한 전과를 거뒀고, 불리한 상황에서 대역전을 이끌어 낸 적도 숱하게 많다.
“여 장군. 하지만 마초는 실로 용맹한 자요. 그자를 잡을 수 있겠소?”
“그래서 그를 잡기 위해 강동의 맹장들을 준비했습니다.”
여몽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줄 장수들을 여범에게 소개했다.
한 명은 여범이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태사 장군, 반갑습니다.”
“여 선생. 내 돌아가신 손 장군과 약속한 공을 아직 이루지 못했소. 이번 싸움에서 공을 이루고 오후를 뵐 것이오.”
문관풍의 외모를 가진 기병대장, 태사자가 인사를 건넸다. 누구나 인정하는 강동 최고의 용장이었다.
뒤이어 험악한 인상의 근육질 사내가 나섰다. 이마에는 죄인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두건을 두르지도 않고 머리를 풀어 헤쳐서 시원하게 문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장이오.”
반장은 패거리를 이끌고 강동 일대를 휩쓸고 다니는 무법자 출신이었다. 성정이 거칠고 통제가 어려운 만큼, 칼솜씨 하나는 확실한 자였다.
여범은 뒤이어 키가 큰 젊은이와 인사했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젊은이였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능조의 아들 능통입니다.”
“오오, 공적(능통의 자)이구나. 언제 이렇게 훤칠한 대장부로 자랐느냐?”
진 전투에서 마가군과 싸울 때, 손책을 지키다 전사한 능조.
그 능조의 아들 능통이 어느새 장성하여 마가군과의 전투에 다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주유평… 설마 자네까지 번성에 있었나.”
여범은 주태를 올려다보며 침을 삼켰다. 손책을 지키다 숱한 상처를 입었던 사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직까지 선봉에 서고 있었다.
태사자, 반장, 능통, 주태.
강동 최고의 맹장들이 전부 번성에 모인 것을 보자, 여범은 여몽에게 물었다.
“여 장군. 설마 양양성이 아니라 이곳 번성에서 승부를 낼 작정이오?”
“잘 보셨습니다. 마초가 선두에 서서 쳐들어오면, 강동의 맹장들을 총동원해 그를 잡을 것입니다.”
여몽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여범은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마초의 기세가 만만치 않소. 서량의 네 맹장을 단신으로 이겼고, 여포를 단기접전으로 꺾었으며, 조조의 일곱 맹장과 겨루고도 살아남았다고 하오. 물론 이들이 대단하기는 하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담로(湛盧)가 우리의 편에 서기로 했습니다.”
“뭣이?”
여범의 눈이 커졌다.
담로.
수백 년 전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왕이 얻었다는 명검의 이름이다. 지금의 강동 땅에 위치한 오나라는 이 담로를 활용해서 초나라, 즉 지금의 형주 땅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담로는 그저 전설 아니었소? 아니 설령 전설이 아니라 실제라고 한들, 수백 년 전의 검 한 자루를 얻었다고…….”
“여 선생. 담로는 검이 아닙니다.”
“검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이오?”
“담로는 검술이며, 또한 검술을 익힌 사람이기도 합니다. 강동 땅에 수백 년간 대를 이어 가며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강동에서 칼 밥을 먹는 자들 사이에서는 가끔 담로에 대한 이야기가 떠돈다.
담로와 한 합을 겨뤘는데 칼이 부러졌다거나, 쌀 한 섬을 한 손으로 드는 장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담로였다거나 하는 식이다.
“저 또한 그저 떠도는 풍문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담로는 실재했습니다. 담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에게만 일인전승으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문파이며, 누구든 벨 수 있는 천하제일의 검객입니다.”
그렇다면 전설 속의 명검은, 이 담로의 전인이 활약했던 것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일 것이다.
여범은 그제야 여몽 옆에 서 있는 소년에게 시선이 닿았다.
아직 16, 7세밖에 안 돼 보이는 소년이었다. 키도 크지 않고 몸은 마른 편이었다. 눈빛에도 딱히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여 장군. 설마 이 소년이…….”
“22대 담로입니다. 그리고 관우나 장비에게 뒤지지 않는 만인적(萬人敵)의 무사이기도 합니다.”
여범은 여몽의 설명을 들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년은 몸이 다 자라지 않은 지금도 태사자와 주태를 능가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 자질은 혼자 힘으로 전장의 승패를 뒤집을 수 있는 천하 용장의 그것이었다.
아직 무명이지만, 실력으로는 명백히 강동 최고의 무사.
소년은 여범에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
“정봉, 자는 승연. 검술을 조금 익혔으니, 마초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