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69화 (256/306)

269화. 208년 봄 (1)

208년, 낙양.

천하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다. 이제 5년 전에 있었던 전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시 곳곳에 촘촘하게 연결된 수로를 통해 배가 드나들고, 잘 닦인 가도로 수레가 통행한다. 낙양은 이 수로와 가도를 통해 천하 곳곳의 물산이 모여드는 상업도시가 되어 있었다.

도시 외곽에 설치된 시장에서는 온갖 종류의 특산물들이 거래된다. 시장에서 형성된 부는 한때 폐허였던 낙양에 수많은 부호들을 새로 탄생시켰다. 익주의 비단옷을 휘감은 부호들이 서역의 유리 세공품을 장신구로 두르고, 주점에서 관중의 소주를 마신다. 주점에서 심부름하는 소동들조차 서량의 면으로 만든 옷을 걸치고 있었다.

먼 남쪽, 교주 출신인 환린은 번화한 낙양의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면옷입니다. 베옷보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하니 백성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태원후(太原侯) 어르신께서 서역에서 목화를 들여와서 서량에 목화밭을 만드셨기에 가능한 일 아닙니까.”

“하하, 덕분에 천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환린의 칭찬을 들은 비서랑 나관중은 멋쩍게 얼굴을 붉혔다.

후한 말로 전생한 지 15년. 나관중은 그가 살던 14세기의 문물을 여러 가지 도입해 놓았다.

등자와 고정식 안장은 군인의 삶을 바꿨다. 이는 원래 마가군의 금철기를 위해 도입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을 본 사람들이 앞다투어 차용하니, 이제 천하의 모든 말들이 등자를 걸고 있게 되었다.

종이의 개량과 활판 인쇄술은 지식인의 삶을 바꿨다. 수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닥종이의 대량생산에 성공하자, 활판 인쇄술도 폭발적인 속도로 보급되었다. 이제 선비들은 2천 자 남짓한 경전을 암송하는 대신 수만 자에 달하는 해설서들을 읽으며 공부의 폭을 넓히게 되었고, 관리들은 새 법령이 제정될 때마다 종이로 된 상세한 시행령을 수십 권씩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낙양에는 종이책을 파는 서점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리고 면직물은 서민들의 삶을 바꾸고 있었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서량은 목화 재배와 면직물 산업을 통해 부를 쌓으며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생계형 전쟁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만한 공로가 있으니, 나관중이 태원후의 작위를 받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고향인 태원 땅을 통째로 봉지로 받은 것이다.

“태원후께서는 참으로 하늘이 내린 인물이십니다. 태원후께서 저희 교주를 어여삐 봐주시니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교주의 사 사군께서 선정을 펼치시니 당연한 일입니다. 대장군께서도 사 사군을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대장군 마초는 교주를 다스리는 사섭을 교주자사로 천거해 권위를 세워 주고,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낙양의 대장군부에는 수시로 교주자사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들은 향신료 같은 남방의 특산품을 들고 와서 교역을 하기도 하고, 남방의 정세에 대한 정보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나관중의 요청을 받아서 비밀리에 뭔가를 개발하기도 했다.

“태원후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환린은 나관중의 앞에 거무튀튀한 가루를 쏟았다. 나관중은 손가락으로 가루를 찍어 맛을 봤다.

“으음, 단맛이 있긴 한데… 아직 갈 길이 멀었군요.”

“그래도 이제 뭔가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5년 안으로 태원후께서 만족하실 만한 물건을 완성해 보이겠습니다.”

나관중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설탕이었다.

남중을 다스리는 호만교위 맹획을 통해 인도에서 사탕수수의 종자를 들여온 지는 시간이 꽤 지났다. 원래 계획은 남중에 사탕수수밭과 설탕 산업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덥고 습한 교주에서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교주에서는 성과가 나고 있었다.

“좋습니다. 환 선생, 이 작물이 성공하면 교주는 엄청나게 번영할 겁니다.”

“이를 말씀이십니까? 저희 사 사군께서도 이 작물의 가치를 꿰뚫어 보고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반드시 성공시킬 것입니다.”

마가군의 손이 닿은 지역에는 반드시 경제적 번영이 뒤따른다.

익주는 비단 생산, 서량은 서역과의 교역과 목화 재배, 관중은 제지와 양조가 발달했다.

조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새롭게 얻은 연주, 예주, 기주, 청주도 치안이 확보되고 농업 생산이 늘어나며 난세 이전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나관중은 이 지역들에도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서 특산품 산업을 육성하려 하고 있었다.

특산품을 교역하려면 시장이 필요하다. 시장이 있으려면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가 있어야 하는데, 마초가 집권하고 대규모 전쟁이 사라지며 교역도 활성화되는 추세였다.

‘먹고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다음에는 교역을 활성화시켜서 각 지역을 밀접하게 잇는다. 이렇게 부가 쌓이면 지방의 실력자들도 전쟁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상인 출신인 나관중이다. 상업 실무에는 능하지 못했어도 경제의 흐름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형주목 유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표가 죽으면 형주도 마가군의 세력권에 편입된다. 형주는 교주와 이어져 있으니, 북중국의 경제권이 형주를 거쳐 교주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강동은 외롭게 포위된 섬이 된다. 손익 정권은 결코 오래갈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은 마가군의 편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남중국까지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나관중은 웃으며 환린에게 권했다.

“환 선생께서 모처럼 낙양에 오셨으니, 낙양의 명물을 구경하셔야지요.”

“낙양의 명물이라면 설마…….”

“오늘은 격구(擊毬) 경기가 있는 날입니다. 대장군께서도 격구 경기를 참관하실 테니, 같이 가시지요.”

“오오! 그게 정말입니까!”

환린은 뛸 듯이 기뻐하며 나관중의 뒤를 따랐다.

* * *

말을 타고 격구채로 공을 쳐서 상대편의 문에 집어넣는다.

격구는 본래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경기다. 유럽에서는 폴로, 동아시아에서는 격구라고 불렸는데, 공통적으로 두 지역 모두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부터 유행한 경기다. 원나라 때 사람인 나관중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기반으로 격구를 보급했는데, 이것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남방 출신인 환린은 격구 경기장에 들어서자 그 크기에 압도당했다. 경기장은 로마의 양식을 참고하여, 1만 석이 넘는 규모로 지어져 있었다.

무위에서 마초에게 귀부한 로마 출신 석공, 갈서가 지은 것이었다.

“하하, 놀라셨습니까. 저도 이렇게 큰 건물은 처음 봤습니다.”

“아니, 태원후… 하늘 아래 이런 게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15만석을 가진 로마의 키르쿠스 막시무스, 8만 석이 넘는 콜로세움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그러나 이제 막 전란을 극복한 낙양에는 엄청난 상징성을 부여하는 건물이었다.

“이 거대한 경기장은 전란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전장을 휩쓸던 금철기, 마을을 노략질하던 북방 이민족의 전사들, 갈 곳을 잃은 옛 조조군과 원소군의 군관들이 격구단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지요.”

격구는 활동의 재미, 관전의 재미, 군사 훈련의 효과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서량의 기병대장 출신인 마초를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상류 사회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지방의 자사부나 태수부, 중앙의 다양한 관청들이 저마다 앞다투어 격구단을 운영했다. 상산 의종 출신으로 이루어진 우림군, 옛 호표기 출신들이 많이 있는 정북장군부, 사마가의 후원을 받는 하내태수부 등이 대표적인 격구단이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대장군부 격구단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나관중은 경기가 가장 잘 보이는 좋은 자리로 안내되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마초가 손을 흔들었다.

“관중, 왔나?”

“주공!”

마초는 긴 검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금색으로 사자를 수놓은 남색 비단옷을 걸치고 있었다. 이제 30대 중반이지만 흰 얼굴과 뚜렷한 이목구비 덕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옆에는 환 선생이군. 강하에서 한 번 봤었지?”

“이 환린, 대장군을 다시 뵈오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환린은 마초를 향해 요란하게 인사를 했다. 마초는 환린을 앉게 한 후 말했다.

“내 수하 중에 서역의 대진국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고향에서는 이런 경기장에서 무사들끼리 싸우는 것을 구경한다고 하더군. 환 선생은 마음에 드시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겠습니다, 대장군.”

“하하, 대진국에는 이보다 더 큰 경기장도 있다는데 뭘 그리 놀라시오. 다만 중원은 돌이 단단해서 대진국처럼 큰 경기장을 짓기는 어렵다고 하더군.”

사실 격구에 가장 크게 매료된 것은 마초 본인이었다. 아예 본인의 저택 안에 격구장을 만들어 놓고, 수시로 격구단의 훈련에 참가해서 같이 말을 달릴 정도였다.

마초가 경기에 직접 출전하면 천하제일의 격구 선수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전장에서 이름을 떨친 무장이 직접 출전하지 않는 건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시작하는군.”

“오오!”

경기가 시작되자 경기장 안에 우렁찬 함성이 울렸다.

오늘 대장군부의 상대는 태학이었다. 환린이 의아한 듯 물었다.

“태학에도 격구단이 있습니까?”

“태학생들이라고 공부만 하란 법 있나. 젊은 친구들이니 문무를 같이 닦으면 좋지 않겠소?”

“으음, 하지만 대장군부 격구단은 금철기들도 많을 것 아닙니까? 태학생 중에 잘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해도, 당해낼 수 있을지…….”

“개인의 능력만 보면 그렇겠지. 하지만 격구는 10대 10으로 겨루는 것이오. 꼭 기마술만으로 승부가 갈리지는 않는다오.”

마초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경기장에 눈을 고정했다.

격구 채로 공을 치고, 공이 가는 곳으로 말을 달려서 공을 받는다. 어떤 선수는 화려한 기마술로 적의 진영을 돌파하고, 어떤 선수는 강하고 정확한 타법으로 멀리 있는 아군에게 공을 전달했다. 또 어떤 선수는 부지런히 움직여서 적 진영이 좋은 위치로 공을 날리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기마에 익숙하지 않은 환린이 보기에도 격구 경기는 박진감이 넘쳤다.

결과는 싱거웠다. 대장군부가 6점을 내는 동안, 태학은 1점밖에 내지 못했다.

그런데 태학에 눈에 띄는 선수가 하나 있었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그는 대장군부의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말을 몰아 정확하게 공을 날렸다.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군요. 저 정도면 이름난 무장에게 짝할 만하지 않습니까?”

환린이 보기에도 이름 모를 태학 선수의 솜씨가 범상치 않았다. 마초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저 친구는 태학생이 아니라 태학에서 상서(尙書)를 강론하는 박사요. 보다시피 격구를 아주 잘 하는데, 저 친구가 없었으면 태학생들이 대장군부와 시합을 할 수 없었을 것이오.”

“오오, 그렇습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경기가 끝났다.

나관중은 환린을 먼저 내보냈다. 그리고 마초에게 말을 건넸다.

“주공, 들으셨습니까.”

“양양성이 떨어졌다는 얘기 말인가. 오늘 낮에 들었네.”

인생을 한 번 살아 보고 회귀한 마초다. 부귀영화도, 주색잡기도 크게 재미가 없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푹 빠진 취미는 격구뿐이었다.

그래서 나관중도 굳이 격구 관람을 방해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경기가 끝났으니 대책을 논의해야 할 시간이었다.

“주랑은 아마 주공을 양양으로 끌어들이려는 생각일 겁니다. 그는 용의주도한 사람입니다. 무슨 함정을 파 놓았을지 모릅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만약 그가 함정을 팠다면…….”

마초는 아직 경기장에 남아 있는 태학 선수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태학생들을 이끌고 혼자서 대장군부에 맞선 태학박사가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뭔가 알고 있겠지.”

손권, 자는 중모.

20대 후반의 나이에 태학박사가 되었고, 격구로는 이름난 무장들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진,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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