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난세의 간웅
“마맹기 왔는가?”
조조는 등을 돌리지도 않은 채 물었다.
감옥의 창살 너머로 조조를 바라보고 있던 마초는 헛웃음이 나왔다.
“조공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리셨나 보오.”
“이 시간에 나를 방문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그리고 그들 중 이렇게 향기로운 술을 들고 찾아올 만한 사람은…….”
조조는 종이에 쓰던 것을 갈무리하고 돌아앉았다.
“자네뿐이지.”
도저히 곧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마초는 그제야 자신이 들고 온 장안 소주에서 나는 술 냄새를 눈치챘다.
“하하, 오늘이 아니면 조공과 술 한 잔 나눌 날이 없을 것 같아 찾아왔소.”
“잘 생각했네. 들어와 앉게.”
조조는 승상일 때나 죄인일 때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편안해 보였다. 자신을 괴롭히던 두통에서 해방된 까닭일 것이다.
마초는 감옥의 문을 열고 들어가 조조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직접 들고 온 향기로운 술과 고급스러운 안주를 풀어 놓았다.
“으흠, 이건 말린 전복 아닌가?”
“나는 내륙 출신이라 뭐가 맛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조공은 전복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소. 우리 군에 강동 출신이 하나 있는데, 그 친구의 고향 집에서 때마다 최상품을 보내 주고 있지요.”
“아아, 함곡관을 뒤에서 열었다는 그 친구로군. 이름이 육손이라고 했나?”
“기억하시는구려.”
“전투 기록을 봤지. 그 친구를 잘 키워 보게. 내가 보기에는 젊은 녀석들 중 그 친구 장재가 최고일세.”
“하하, 사실 그 친구에게는 더 가르칠 게 없소.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지경이오.”
마초와 조조는 마치 친구 사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잡담을 이어 갔다. 전복에서 육손으로, 육손에서 젊은 장수들의 인물평으로, 그리고 전쟁과 병법의 이야기로.
“마맹기, 자네가 이제까지는 천하제일의 무장이었지만, 앞으로의 전쟁에서도 그럴 수는 없을 걸세. 지금부터 젊은 장수를 육성해야 하네.”
“전적으로 동감하오. 난세에는 일신의 무용, 강력한 정예 부대, 그리고 수많은 징집병들을 통제할 수 있는 명성이나 장악력이 있으면 최고의 장수가 될 수 있었소. 그러나 앞으로 전쟁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겠지요. 누가 더 준비를 잘했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오.”
난세는 끝났다.
그것이 두 사람의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난세의 전쟁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세가 끝난 시점은 언제일까?
“아마 패국에서 내가 붙잡혔을 때겠지. 어쩌면 자네가 관우, 장비, 황충, 조운과 함께 단 5기로 대군의 대열을 무너뜨렸을 때일 수도 있고.”
“어쨌든, 그런 싸움은 이제 다시는 없을 것이오.”
마초와 조조는 마주 보고 웃으며 술을 털어 넣었다.
장안의 증류식 소주는 기술이 발전하며 점점 독해지고 있었다. 작은 잔으로 세 잔씩 비우자 얼굴이 붉어지고 술기운이 돌았다.
마초는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뭘 말인가?”
“낙양에 남아 붙잡혔던 내 사람들이 다치지 않은 것. 처음 조공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으나, 이제는 그 또한 싸움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소.”
“으흠.”
조조는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유사시에 그들의 목숨으로 자네를 협박할 수도 있고, 정변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관리들에게 나의 관대함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지. 그런 걸 꿰뚫어 보지 못했을 리 없는데, 자네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군.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자제들의 일은… 미안하게 됐소. 가족을 상하게 하는 것은 나의 본의가 아니오.”
“으하하하!”
조조는 감옥이 떠나가라 크게 웃었다.
“자수는 전쟁터에서 죽었고, 자문은 투장 끝에 팔을 잃었지.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조공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오. 나는 누구의 가족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소.”
이제 와서 회귀했다는 이야기, 지난 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마초는 피식 웃어 버리고 말을 이었다.
“조공이 내 사람들을 해하지 않았으니, 나도 조공의 남은 자제들을 굳이 쫓지 않을 것이오. 이제 천하는 안정될 테니, 그들은 어디 먼 변방에서 이름을 바꾸고 살아갈 수 있겠지.”
“그런 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네.”
조조는 사후의 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긴, 이 사내가 자신이 죽은 후의 일에 관심이 있을 리 없지.’
마초는 술을 몇 잔 더 들이켜고, 조조는 천천히 음식을 음미했다.
마초가 화제를 돌렸다.
“내일이면 국문이 시작될 것이오. 악형은 승상에게도 예외가 없소.”
“나도 그게 걱정이야. 아마 내일 밤에는 붓을 들지 못하겠지. 그러자면 오늘 다 써야 하는데 말이야.”
조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는 표정이었다.
마초는 조조가 쓰고 있던 글을 흘긋 돌아봤다.
“단가행(短歌行)이군.”
“으음? 자네가 어찌 이 시의 제목을 아는가?”
“아아, 그건… 내용을 보니 아마 그런 제목일 것 같았소.”
단가행은 문인 조조의 최고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다만 원래의 역사에서도 이맘때에는 단가행이 완성되지 않았다. 조조는 적벽대전에 나서며 이 시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니 지금부터 3,4년이 지난 후에 완성되었을 것이다.
“달 밝으니 별 드문데(月明星稀), 까막까치 남쪽으로 나네(鳥鵲南飛). 나무 위 여러 번 맴돌아도(繞樹三匝), 앉을 가지 마땅치 않구나(何枝可依).”
“그다음이 고민이야. 산 높은 것을 꺼리지 않고(山不厭高), 바다 깊은 것을 꺼리지 않으며(海不厭深)… 그리고 마무리만 하면 되는데, 이게 참 마무리가 어렵구만.”
조조는 껄껄 웃었다.
마초는 역사상의 조조가 완성한 그다음 구절을 알고 있었다.
‘주공처럼 선비를 맞이하면(周公吐哺), 천하의 마음이 돌아오리라(天下歸心).’
그러나 굳이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시인 조조는 자신의 역작에 마초가 한 글자를 더하고 빼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하, 조공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빌겠소.”
두 사람은 다시 술잔을 나눴다.
“예전에 어떤 이가 조공을 두고 난세의 간웅이 될 것이라 했다지요.”
“그 왜, 허자장이라고 인물평 하는 늙은이가 있었지. 그런데 그런 건 다 쓸데없는 이야기야.”
“쓸데없는 이야기?”
“그래. 얼굴 한 번 보고, 말 몇 마디 나눠 보고 사람을 어떻게 아나. 그런 자들은 사람의 배경이나 타고난 자질을 보고 적당히 그럴싸한 말을 만들어 붙이는 거지. 그런 자들은 내가 무엇을 타고 났는가에 대해서는 귀신같이 밝지.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네.”
조조.
이 시대의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자.
그가 마초를 보며 말했다.
“마맹기, 자네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으니 생각을 잘해야 하네. 삶은 주어진 상황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야.”
“무슨 뜻이오?”
“자네의 앞에는 이제 권신으로 사는 길이 놓여 있지.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세. 자네의 선택에 따라 권신으로 남을 수도, 충신이 될 수도, 토사구팽의 신세가 될 수도, 혹은 천자가 될 수도 있겠지.”
“하하하하.”
마초는 웃으며 마지막 잔을 비웠다.
“내가 무엇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소. 다만 내 손으로 이 난세를 끝내고, 천하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 것임은 분명하오.”
“그건 나 또한 가려고 했던 길이군.”
“하지만 조공은 실패했고, 나는 성공할 것이오.”
20년을 묵은 원한이 어찌 한 번에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분명히 뭔가 변화가 있었다. 죄인이 된 조조를 직접 보고 술잔을 나누자, 맺혀 있던 응어리가 더 이상 아프게 가슴을 찌르지 않았다.
“조공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조공에게 깊은 원한이 있지. 내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소. 조공이 실패했던 것을 나는 성공해서, 천하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곳으로 바뀌었을 때, 내 복수는 그때 완성될 것이오.”
턱.
마초는 그 말과 함께 작은 병을 조조의 앞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즐거웠소.”
“나야말로 즐거웠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군례를 올렸다.
마초가 등을 돌려 감옥을 나선 뒤, 조조는 마초가 남긴 작은 병을 들었다.
그리고 병에 담긴 액체의 정체를 눈치채자, 자신도 모르는 새 너털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건가. 이것 참, 고민되는걸.”
짐독(鴆毒).
독을 지닌 짐새의 피로 만들었다는, 고대 최고의 맹독이다. 짐독을 미량이라도 복용한 자는 예외 없이 즉사한다고 전해진다.
마초가 조조에게 짐독을 주고 간 것은, 고통 없이 가라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내일 국문장에서 조조가 할 말들이 밖으로 새 나오길 바라지 않는 것이다.
“나라면 이것을 기회로 삼아 천자의 수족을 잘라냈을 텐데. 답답한 친구로군.”
마초는 아직 천자와 대립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조조는 잠시 짐독을 바라보며 마초의 호의를 받아들일지 말지 생각했다.
“일단 밤새 글을 써 보고 결정해야겠군. 오늘 밤에 단가행을 완성할 수 있으면, 나도 홀가분하게 떠날 텐데.”
조조는 편안한 표정으로 다시 서안 앞에 앉았다.
* * *
다음 날.
조조는 시신이 되어 감옥 밖으로 나왔다. 향년 49세.
밤새 쓰던 단가행은, 원래의 역사에서 그가 남겼던 원문 그대로 완성되어 있었다.
* * *
“이제 그만 장안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마초는 마등과 마주 앉아 있었다.
조정 고관들은 물론 천자까지 닦아 세우며 한바탕 난리를 친 마등은, 이제 예전의 조용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알았다. 이제 다시는 조조의 정변 같은 일이 없도록 조정을 잘 단속하여라. 이 아비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뭘 그런 걸로 하늘이 무너집니까?”
“너는 자식을 잃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 거다.”
10년 전, 회귀했다고 밝힐 때 자식을 잃었다는 얘기도 같이했었다. 하지만 마등은 마초의 말을 그저 긴 꿈을 꾸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초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여튼 낙양의 일은 앞으로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저를 돕는 사람들이 많으니, 아버지는 걱정하지 말고 장안에 계십시오.”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꼭 말하고 가야겠다.”
“뭡니까?”
“조조에게 협력한 자들을 전부 소탕하지 않았는데 괜찮겠느냐? 네가 하기 뭣하면 아비가 손을 빌려주마.”
“그만하면 많이 숙청했습니다. 그리고 본래 시류에 따라 이리 붙고 저리 붙는 게 선비들의 생리이니 너무 몰아붙일 필요 없습니다. 조조가 강성할 때 조조에게 붙었으니, 우리가 강성할 때는 우리에게 붙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드물게 힘을 따르지 않는 선비가 있지. 그런 자들은 다른 선비들의 중심이 된다. 나중에 거추장스러울 것 같으면 미리 제거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마등의 눈빛은 진지했다.
마초는 마등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순령군 말입니까.”
“그렇다.”
“아버지, 순령군은 건드리면 안 됩니다. 그는 영천 호족의 좌장으로서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정변에서 대담하게 조조와 거리를 뒀지요. 조조가 이겼으면 순령군이 제일 먼저 숙청당했을 겁니다.”
“선비가 그런 기개가 있다면, 더욱 위험한 것 아니냐.”
마등이 아주 가끔씩 내비치는 속내는 놀랄 만큼 냉혹했다.
그 또한 서량에서 맨손으로 공업을 이룬 군벌이다. 가끔은 마초조차도 놀랄 만큼 차가운 계산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하하, 순령군은 앞으로 조정에 필요한 인물입니다. 그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그가 선비들에게 가진 영향력만 잘 활용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초는 거듭 마등을 안심시켰다.
마등의 걱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초 또한 순욱의 존재가 상당히 껄끄러웠다.
그러나 껄끄럽다고 계속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마초는 곧바로 순욱과의 회견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