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62화 (249/306)

262화. 전쟁이 끝난 후

조조가 패국으로 떠나고 닷새가 지난 후, 마초가 낙양성에 다시 입성했다.

서쪽에서 함곡관을 돌파하고 낙양성에 입성해 있는 마가군 중신들, 그리고 조조의 정변 후, 연금되어 있던 인사들이 성문 밖까지 나와 마초를 맞이했다. 마초는 그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한편 한 사람만은 마초의 이야기를 듣자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악!”

비서랑 나관중이었다.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오호대장이! 오호대장이 한 자리에 모여서 십만 조조군을 향해 돌격했는데! 내가 그걸 보지 못하다니!”

“아니, 십만까지는 아니었고…….”

고통스러워하는 나관중을 보고 마초는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고 참군들에게 전투의 모든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게 했지. 전투의 모습을 구술할 고참병들도 보내 줄 테니, 나중에 받아 적으라고.”

“크흑, 과연 주공이십니다!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주공!”

나관중은 그나마 기록이 충실하다는 사실에 눈물을 뿌리며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던 마초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0년… 이제 딱 10년이 됐나.’

이 시대로 회귀한 지, 그리고 나관중을 만난 지 딱 10년째가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나관중에게 딱 10년만 마가군에 종군하고 그다음에는 마음대로 하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다음날, 마초는 나관중을 자신의 낙양 저택으로 따로 불렀다.

“관중,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나?”

“10년만 열심히 일하고, 그다음부터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지요?”

마초의 물음에 나관중은 웃어 버렸다.

“그 제안은 흐지부지된 것 아닙니까. 바로 다음 해에 미오성에서 같이 맹세를 했으니까요. 난세를 끝내겠다고 말입니다.”

“하하, 그래. 그러고 보니 그때 나를 부추긴 게 자네였지.”

마초와 나관중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옛이야기를 했다.

마초가 기억하는 역사와 나관중이 기록으로 접한 역사를 대조하는 것만으로도 밤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두 사람이다. 이제는 10년간 쌓인 이야기들이 더 많았다.

“방사원이 연환계를 펼쳐 놨으니, 이제 조조와의 싸움도 곧 끝나겠지. 기왕이면 목만 왔으면 좋겠군.”

조조와는 어지간하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관중이 대답했다.

“패국의 조조가 정리되면, 이제 천하에 환란을 불러올 세력들은 거의 사라집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지만, 이제 천하에 주공께 맞설 수 있는 인물은 없습니다.”

조조의 세력을 흡수하면, 이제 마초는 천하의 대부분을 손에 넣는다.

강동의 손익, 여남의 유비, 유주의 원상 같은 이들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들의 세력은 각각 마가군의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손익과 원상은 일단 가만히 내버려 두고 기회를 봐서 토벌하면 됩니다. 유 사군에게는 확실한 논공행상이 있도록 힘써 주고,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되지요.”

“그래, 맞는 말일세.”

이번 전쟁에서 유비는 최고의 우군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온 전투에서 대승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가군도 많은 장수들을 잃었을 것이고, 조조와 힘겨운 싸움을 치르며 엄청난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적이 된다면…….’

유비는 당금 천자 유협과 같은 유씨다. 황실의 먼 종친인 것이다.

불리한 전장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천하 용장 두 명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그를 흠모한다.

“유 사군은 조조 같은 자에게는 최악의 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실 부흥이라는 대의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인물이니까요.”

원래의 역사에서, 유비는 최악의 상황에서 재기하여 조조의 천하통일을 막아서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흔한 군벌 중의 하나일 뿐이다. 대의명분을 얻지 못하는 유비는 마가군에게 위협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겠지.”

마초는 찻잔에 남은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향기로운 차를 여러 잔 마셔도 정리되지 않았다.

* * *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패국으로 도망친 조조가 오라에 묶인 몸이 되기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조조를 붙잡은 진류태수 장막은 그 길로 조조를 낙양으로 압송했다.

조조를 태운 수레가 낙양성의 동문을 통과하는 순간, 황궁에서는 조회가 열리고 있었다.

“…하여 신은 의문을 거둘 수 없사옵니다. 혹시 성상 폐하께서 조조의 정변을 승인하신 거라면, 신 등은 마땅히 이 자리에서 인수를 바치고 촌부로 돌아가는 것이 맞을 것이옵니다.”

말투는 공손하지만, 내용은 힐난하는 내용이다.

천자를 몰아붙이는 인물은 태부 마등이었다. 조조가 정변을 일으키고 마초가 생사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마등은 격노했다. 그 길로 전군을 소집해 함곡관을 뚫고 낙양으로 밀고 들어왔다.

마등이 장악한 낙양은 계엄령과 같은 상태에 놓였다. 조조군과 벌인 시가전으로 쑥대밭이 된 거리에서, 연일 조조군 쪽 인사들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이어졌다. 보다 못한 마초가 마등을 설득해 낙양 원정군 대부분을 장안으로 돌려보내기 전까지 쭉 그 상태였다.

그러고도 마등의 분노는 쉬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 천자가 조조의 정변을 승인하고 마초에 대한 숙청을 시도했던 것은 아닌지 추궁하고 있었다.

“태부, 성상 폐하의 어전입니다.”

이렇게 되니 대장군 마초의 입장이 난처했다. 조정의 최고 실력자인 마초지만, 마등은 그가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지 않은가?

완곡하게 마등을 제지하는 마초에 이어, 또 한 명의 고관이 나섰다.

“태부께서는 말씀을 삼가십시오. 정변을 승인한다는 조서는 조 승상에 의해 날조된 것임을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 일월이 다시 바로 섰으니, 과거의 일을 불러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상서령 순욱이었다. 정변 직후부터 조조와 거리를 둔 그는, 이후 숙청의 바람도 피해간 상태였다. 천자 유협도, 대장군 마초도 순욱에 대한 숙청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등은 복잡한 정치적 셈법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이 아니다. 순욱을 향한 적의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 등이 비록 배운 것 없는 변방의 무부지만, 사람의 도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니 순령군은 입을 다무시오. 그대가 조조의 사람인지 한의 신하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조의 사람이라면 마땅히 역모를 막지 못한 죄로 자진해야 할 것이고, 한의 신하라면 성상 폐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오.”

살아남기 위해 선비들을 대접해 명성을 쌓고, 세력을 키우기 위해 관후한 도덕군자의 모습을 연기했었다.

그러다 차남을 잃었고, 장남까지 잃을 뻔했던 변방 군벌은 거칠 게 없었다. 마등은 중앙 정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수위의 발언을 마구 쏟아냈다.

천자 유협은 옥좌 위에서 마등과 순욱의 설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얼굴에서는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무력한 천자는 한참을 기다렸다 마등과 순욱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늘의 혼란은 전부 짐이 미욱한 탓이니 태부께서는 노기를 거두시오. 이제 역적 조조가 압송되었다고 하니, 짐이 직접 조조를 문초하여 진상을 낱낱이 드러낼 것이오.”

그날의 조회는 그렇게 파했다.

다음날은 조조에 대한 국문이 있을 예정이었다. 천자가 직접 주관하는 친국이 될 것이다.

* * *

“이곳도 오랜만이군.”

조회가 파하자 마초는 대장군부로 돌아왔다.

낙양 시가전 와중에 대장군부도 전쟁터가 되어 엉망으로 부서지게 되었다. 마초의 집무실을 비롯한 몇몇 시설들만 급하게 수리해서 쓰고 있었고, 지금도 재건 공사가 한창이라 인부들이 드나들어 어수선했다.

“그러니 남의 이목을 피하려면 이곳에서 만나는 게 가장 좋지요.”

“이제 조조도 붙잡혔는데 남의 이목을 피할 건 또 뭡니까? 가 선생.”

마초는 자신을 찾아온 가후에게 다과를 권했다.

가후는 마초를 향해 말했다.

“조정의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주공께서 중간에서 잘 조정하셔야 합니다.”

“내 머릿속이야말로 복잡합니다. 예전에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몇 날 며칠 연회로 밤을 지새웠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기도 어렵군요. 정치라는 게 뭐 이리 어려운지…….”

마초가 투덜거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조조와의 싸움은 피아가 명확하지 않았다. 조조와 마초는 각각 승상과 대장군으로 조정의 두 축이었으며, 조정의 고관 중에는 확실한 조조군 인물, 확실한 마가군 인물보다 느슨한 친소관계에 따라 어느 쪽 계파인지 구분되는 인물이 더 많았다.

게다가 조조는 무력으로 정변을 일으키며 대의명분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순욱 같은 인물들은 그 과정에서 조조를 외면하게 되었다.

반면, 천자 유협은 조조와의 회담 이후 조조의 단독 집권을 묵인했다. 그러다 보니 철저하게 천자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마우, 충소 같은 인물들은 또 상황이 애매해지게 되었다. 작년까지는 분명히 친 마가군 성향의 인사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분명한 것이다.

“게다가 낙양 팔관 안에 근거지를 둔 호족들의 문제도 있지요. 낙양이 전쟁터가 되면서 아군에 의해 기반을 잃은 호족이 적지 않습니다. 하내의 사마가를 제외하면 삼하에서 아군을 지지하는 대호족이 거의 없을 겁니다.”

분노한 마등은 낙양에 입성하자 조조의 편에 선 인사들을 아낌없이 숙청했다. 과거의 동탁이나 이각과 같은 약탈은 없었지만, 대호족들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백성을 약탈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호족들의 지지가 없으면 군벌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시대다. 하지만 이미 대세를 장악한 마등은 굳이 호족들의 지지를 구걸하지 않았다. 조조의 편에 섰던 자들을 잡아내서 미련 없이 참수했다. 유독 악랄한 죄상이 있는 자들은 본보기로 끓는 기름 솥에 처넣었다.

“그래서 내가 솥은 좀 쓰지 말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있나.”

마등의 분노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마등에게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압도적인 강자가 쏟아내는 분노는 낙양의 귀족 사회에 두려움을 심어 주고 있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요. 태부께서는 곧 장안으로 돌아가실 테니, 앞으로 주공께서 강자로서의 도량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그래야겠지요. 한데 가 선생은 무슨 일로 날 찾아오셨습니까?”

마초가 묻자 가후는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주공. 내일부터 조조에 대한 국문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셨지요?”

“맞습니다.”

“조조가 입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성상께서… 조조의 집권을 승인했다는 말씀이시오?”

“그럴 것입니다.”

“당시는 조조가 창검으로 성상을 겁박하였으니 승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조조가 성상을 어떻게 설득했겠습니까? 주공이 집권하면 성상께서 옥좌를 지키기 더 힘들어진다고 설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야…….”

“정확한 내막은 아무도 모르지요. 조조가 어떻게 말할지도 내일이 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주공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잃을 것 없는 조조가 성상께서 주공을 의심했다고 말해 버린다면, 주공께 득이 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마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마초를 달래듯이, 가후가 말을 걸었다.

“주공, 그런 일로 성상 폐하를 원망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옥좌에 앉은 이는 고독한 법입니다.”

“원망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나와 성상은 서로의 형제를 걸고 맹세한 몸입니다. 비록 처지는 다르나, 개인의 영달에 개의치 않고 난세를 끝내려는 뜻은 같다는 말입니다.”

천자 유협에 대한 마초의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일이 꼬인 것은 사실이다. 조조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천자가 마초를 견제했다’고 말해 버리면, 앞으로 조정에는 쓸데없는 긴장감이 조성될 것이다.

천자 유협은 이런 일이 있을 줄 모르고 국문을 하겠다고 한 것일까?

‘어쩌면 성상은…그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지.’

사람들이 마초의 충심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마초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기 어렵다.

가후는 자신의 의심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마초에게 그런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지저분한 정치 싸움에 대응하는 것은 가후 자신이 할 일이었다.

“그러니 주공, 오늘 밤 조조의 입을 막으십시오. 그가 국문장에 나오도록 해서는 아니 됩니다.”

마초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가후가 다시 한번 마초를 재촉하려는 순간, 마초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게 생각이 있습니다. 가 선생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초는 그렇게 가후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서찰 한 통을 써서 어딘가로 보냈다.

약 한 시진이 지난 후, 마초의 집무실로 공사 인부의 복장을 한 인물이 하나 들어왔다. 여윈 뺨에 쑥 들어간 눈을 한 사내였다.

“이감. 그 물건은 준비했는가?”

“여기 있습니다.”

이감은 마초를 향해 작은 병을 내밀었다. 마초는 병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해시가 되면 정위부로 떠나세.”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정위부란 사법과 형벌을 주관하는 정위(廷尉)의 산하 기관을 말한다.

원래 있던 정위는 조조의 사람이라 파직시켰다. 지금 정위의 직무는 어사대부 순유가 겸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위부의 지하에 있는 감옥에는 조조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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