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연환계(連環計)
패국 초현.
조조는 어린 시절을 고향인 이곳에서 보냈다.
중앙 정계의 거물이 되고 난 후에는 패국 초현을 요새화했다. 군량을 댈 수 있게 둔전을 설치하고, 곳곳에 성채를 올렸다. 곳곳에 위치한 곡창에는 인근 고을에서 거둔 식량들이 가득 쌓였고, 패국상의 치소에는 수만 대군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가 비축돼 있었다.
만약 중앙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패국을 최종 거점으로 삼고 연주의 조조 세력이 집결해서 패국을 지키는 구조였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으면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패국상 조안민은 조조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조조의 조카인 그는 성실하고 수완이 있어서 조조의 지시를 잘 이행하고 있었다.
조조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린 채 조안민에게 반문했다.
“낭야상 장패가 배신했다고?”
“그렇습니다. 장패가 무리들을 이끌고 연주를 공격했는데 그 기세가 심히 강맹합니다.”
“장패는 싸움에 능한 자다. 연주의 샌님들이 장패의 진격을 막아내기는 어려웠을 텐데.”
“승상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외적이 연주에 침입할 때를 대비해, 방도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방도가 무엇이냐?”
조조가 묻자, 조안민은 자신이 준비해 둔 방도에 대해 소상히 말했다.
먼저 연주의 모든 고을 사이에 봉화와 가도를 통해 연락 체계를 만든다. 한 고을이 공격받으면 그 소식이 모든 고을로 전해지고, 각 고을은 미리 부여된 임무에 맡게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공격받은 고을을 구원한다.
“이번에 공격받은 것은 동평국이지요. 동평국이 공격받았을 경우의 계획도 다 짜여 있습니다. 제북은 북쪽에서, 임성은 남쪽에서, 제음은 서쪽에서 병력을 총동원하여 출병합니다. 제음과 임성의 치안 공백은 양국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메우고, 동군에서는 군량을 댑니다.”
조안민은 자신이 도입한 연주 방어 체계에 대해 설명했다. 장패의 공격을 받은 동평국을 구원하기 위해, 연주의 각 고을들이 즉시 총동원을 해서 빠르게 격퇴하는 계획이었다.
누가 봐도 나무랄 데 없는 작전계획처럼 보였다.
그런데 작전계획을 읽던 조조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안민.”
“예, 승상.”
조조는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안민을 불렀다. 조안민은 조조의 곁으로 바싹 다가섰다.
퍽!
“어억!”
별안간 조조가 주먹으로 조안민의 얼굴을 후려쳤다. 조안민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당황해서 조조 앞에 부복했다.
“승상, 어찌하여 이러십니까?”
“네놈의 경솔한 짓 때문에 우리가 쌓은 공업이 물거품이 되게 생겼구나. 이 계획을 입안한 자가 누구냐?”
조조의 얼굴에는 격렬한 분노가 떠올라 있었다. 조안민은 조조의 표정을 보자 뭐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그것이… 얼마 전, 병법에 능한 인물 하나가 패국에 터를 잡고 살겠다고 흘러들어왔습니다. 형주 출신의 젊은이인데, 얘기를 나눠 보니 그 재주가 천하를 아우를 만했습니다. 일단은 제가 패국상부의 군사로 쓰고 있고, 추후 승상께도 천거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조조는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연환계(連環計)에 걸렸구나.”
“예? 연환계라니요?”
조안민은 뭔가 잘못된 건 알았지만, 뭐가 잘못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조조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조조는 깊게 한숨을 쉰 후 말했다.
“연주의 모든 고을이 일사불란하게 총동원을 해서 동평국에 대한 침공을 격퇴한다고?”
“그, 그렇습니다. 군사가 분명히 그렇게…….”
“그렇다면 동평국만 침공하면 연주 모든 고을의 군사를 동평국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냐?”
조안민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장패의 진군은 저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연주는 텅 비게 된다.’
조안민의 새 군사가 입안한 연주 방어계획은 모든 경우마다 세세한 대응 계획이 짜여 있었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서주 방면에서 동평국을 침공할 경우, 연주 방어는 서주와 가장 멀리 있는 한 고을이 전담하고, 나머지 고을들은 전부 서주 방면으로 전력을 투사하게 된다.
조안민은 지금 연주 방어를 전담하고 있는 고을의 이름을 읊조렸다.
“…진류.”
조안민이 도입한 새 연주 방어체계 덕분에, 진류군의 군사들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텅 빈 연주를 가로지를 수 있게 되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전령이 달려왔다.
“급보! 진류태수 장막이 배신했습니다! 현재 진류의 군사들이 이곳 패국으로 진군 중!”
장막은 조조의 오랜 친구다.
그러니 다른 태수들과는 입지가 달랐다. 진류에 있는 군사들은 정병만 5천이 넘었다.
그 군사들이 패국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는 꼴이 된 것이다.
조조는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얼마 전부터 그를 괴롭히는 원인 모를 질병이었다.
“장맹탁(맹탁은 장막의 자), 이자가 결국 마가군 쪽에 붙었나.”
“승상,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여봐라! 당장 방 군사를 이곳으로 데려와라!”
조안민은 부하들을 다그쳐 새로 등용한 군사를 불러오려 했다.
그러나 그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조안민의 눈에 들어 패국의 군사가 된 형주 출신의 젊은이, 방통은 이미 자취를 감춘 후였다.
* * *
열흘 후.
한밤중의 어둠을 틈타, 굳게 닫힌 패국 초현의 성문이 열렸다.
진류태수 장막이 이끄는 군사들이 성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한밤중에 야습을 당한 조조군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했다.
아니, 초현의 성문이 열린 순간, 저항할 의지를 상실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역적 조조를 잡아라!”
“조조를 산 채로 잡아 오는 자에게 천금의 상을 내릴 것이다!”
여기저기서 군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울렸다.
총대장인 진류태수 장막은 조조만을 노리고 패국상부로 돌입했다. 그리고 패국상부에서 가장 높은 누각에서, 마침내 조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맹덕. 순순히 오라를 받게.”
조조는 침소에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자신을 향해 창검을 겨눈 군사들을 지켜본 뒤, 피식 웃고 일어나서 옷을 꿰어 입기 시작했다.
“모처럼 깊은 잠이 들었는데, 옛 친구가 야박하게 구는군.”
일 년쯤 전, 조정의 정치 싸움에서 마가군의 우세가 확연해진 다음부터 두통으로 인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두통은 전쟁터에 나가니 더 심해졌고, 전쟁에 패해서 초현으로 쫓겨 온 뒤,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는 묘하게 두통이 가라앉았다.
장막의 군사들이 성 앞에 당도한 뒤. 자신의 결말이 보이기 시작한 다음부터였다.
조조는 화려한 비단옷을 걸치고 관을 썼다. 그다음 장막에게 물었다.
“맹탁, 내 처지가 아무리 곤궁하다 해도 자네에게 패할 만큼은 아닐세. 누군가 자네 대신 군사를 부려 줬겠지. 그게 누구인가.”
장막은 슬쩍 옆으로 몸을 비켰다. 그러자 장막의 뒤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얼굴이 희고 풍채가 당당한 중년인이었다.
“조공은 나를 기억하시겠소?”
조조는 중년인의 얼굴을 보자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공대(진궁의 자), 그대도 나를 배신하고 마초에게 붙었나.”
“배신이라 함은 당치 않소. 나는 그저 연주 사람으로서, 연주를 지키기 위해 강한 자의 편에 선 것뿐이오.”
장막과 진궁.
조조는 자신을 배반한 옛 동료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와 그대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겠군. 아니, 원본초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는 게 좋겠어. 얼마나 재미있는 글이 되겠나? 어디 보자, 이런 이야기를 남기려면 시문보다는…….”
정치가로서, 군인으로서 품은 모든 꿈이 좌절된 순간.
조조는 문사로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기록할지에 대해 즐거운 듯 떠들었다.
장막과 진궁은 한참 동안 조조의 장광설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실 만한 시간이 지나고, 조조의 말이 잦아들자 장막이 입을 열었다.
“우리와 낙양으로 동행하세. 자네가 아직 승상의 직을 가지고 있으니 예는 지키겠네.”
“맹탁. 예를 지키고 싶다면 내 청을 들어다오.”
“청이 무엇인가?”
“그자를 불러와라. 연주에 연환계를 걸고, 초현의 성문이 안에서 열리도록 모략을 쓴 쥐새끼 말이다.”
“그자라면…….”
장막과 진궁은 뒤를 흘긋 돌아봤다.
쿵.
쿵.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비대한 몸집을 한 청년이 걸어 나왔다. 살에 파묻혀서 목과 턱의 경계선이 잘 보이지 않는 젊은이였다.
“으하하, 승상께서 이 몸을 찾으셨다고요?”
조조는 청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피식 웃었다.
“쥐가 아니라 돼지였군. 이름이 뭐냐?”
“성은 방, 이름은 통, 자는 사원이라 합니다.”
방통은 기쁨을 숨기지 않고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조조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자라기에는 지나치게 둔한 외모였다.
“너는 마초를 섬기는 자냐?”
“그건 앞으로 대장군 하기에 달렸지요. 지금은 그저 한의 신하일 뿐입니다. 어쨌든 재작년에 대장군부에 합류하고 나서 이렇게 큰 공을 세웠으니, 대장군도 앞으로 저를 박대하지는 못하지 않겠습니까?”
조조도 방통을 마주 보며 씩 웃었다.
“천하를 아우를 만한 재주를 가진 자치고는 겸손이 지나치군. 아깝구나, 내게 왔다면 삼군을 통솔하는 군사가 되었을 것을.”
“으하하하, 소생이 승상부로 갔어도 승상은 소생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을 겁니다. 형주 시골 출신 뚱보를 중용하셨겠습니까?”
“그 또한 부정할 수 없군.”
조조는 초현에 단단히 전쟁 준비를 해 두고 있었다.
군량과 물자뿐만이 아니었다. 초현의 지하에는 병력이 이동할 수 있는 땅굴, 운병도(運兵道)가 건설되어 있었다.
만약 마초가 패국으로 쳐들어온다면, 이 운병도를 이용해서 한 번은 대승을 거둘 자신이 있었다.
“그랬다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요. 승상이 패국과 연주를 기반으로 재기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오륙 년은 길게 버텼을 것입니다. 수많은 인력과 물자를 투입해야 겨우 이길 수 있었겠지요.”
방통이 연환계를 써서 그것을 막아내고, 조조를 추포한 것이다.
정작 추포당한 조조는 이 방통이라는 청년이 썩 마음에 들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굳이 이 패국으로 온 이유는 무엇이냐? 네가 적진 한복판에서 드러나지 않는 위험한 임무를 하는 동안, 마초의 휘하에 있는 다른 젊은 놈들이 많이 두각을 나타냈다.”
온현 호족 사마의.
병주군 군사 육손.
그리고 온현 현령 제갈량.
이 세 사람은 이번 싸움에서 빛나는 공을 세웠다. 전부 방통의 동년배들이고, 미래의 경쟁자들이었다.
방통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이 가장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지요. 사내가 길게만 살면 뭐 하겠습니까?”
방통은 간단하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해가 밝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조조는 술을 한 잔 청해서 마시며, 그동안 머릿속을 맴돌고 있던 시구를 종이에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시를 쓸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자, 조조의 압송이 시작되었다. 목적지는 낙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