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60화 (247/306)

260화. 낙양 전투

낙양.

동탁에 의해 폐허가 된 후, 마초와 조조에 의해 재건되어 다시 황도가 된 도시다.

낙양은 지금 또 한 번의 난리를 겪고 있었다.

“승상, 함곡관이 뚫렸습니다! 탕구장군 장료가 뒤에서 들이쳤다고 합니다!”

“마가군 5만이 낙양으로 진군하는 중! 선봉은 태부 마등입니다!”

“승상! 마등이 조휴 공자를 팽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급보! 마가군이 낙양성 서문에 입성했습니다!”

승상 조조에게 들어오는 보고들 중에는 좋은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온 전투에서 패한 조조는 낙양으로 퇴각해서 군세를 재정비하려 했다.

그러나 마가군의 진군이 예상보다 너무 빨랐다. 믿었던 함곡관은 장료의 병주군이 뒤를 치자 안에서부터 무너졌다. 그렇게 열린 함곡관으로 마등이 이끄는 대군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병주군은 온현에서 마초를 돕고 있던 것 아니었나?”

조조의 혼잣말에 곽가가 대답했다.

“장료가 군사들 일부를 이끌고 북망산의 외딴곳에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함곡관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 예측하고, 뒤에서 칠 생각이었나 봅니다.”

가만히 곽가를 바라보던 조조는 이내 피식 웃어 버렸다.

“놀랍군. 그자에게 그런 머리가 있었다니.”

“장료는 천하 용장들에게 버금갈 만큼 용맹하지만, 이런 기책을 즐겨 쓰는 자는 아닙니다. 소인이 판단하기로, 병주군에서 이런 꾀를 쓸 만한 자는…….”

육손.

나관중이 만 리 밖의 강동에서 영입해 온 인물이다. 약관의 서생에 불과한 그가 병주군의 전략을 도맡아서 많은 전공을 세운 사실이 곽가의 정보망에 들어와 있었다.

한편, 전황은 조조군에 극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마가군이 서쪽에서, 조조군이 동쪽에서 각각 낙양에 입성했다. 두 무리의 군사들이 낙양성 안에서 시가전을 벌이게 되었다. 예전 장안에서 벌어졌던 이각과 곽사의 싸움보다 훨씬 치열한 전투였다.

결과는 마가군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낙양성 남궁의 북쪽, 현무문 근처의 대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어째서 마가군이 승리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흐익, 흐이익!”

조조군의 군관들은 마가군의 선봉에 서 있는 장수를 보고 겁에 질려 병장기를 거꾸로 잡고 도망치고 있었다.

짧은 턱수염을 기른 서른 살 남짓한 젊은 장수였다. 갑주와 말은 피칠갑이 되어 원래의 색을 알기 어려웠다. 오른손에 늘어뜨린 편곤에는 조조군의 피가 엉겨 붙어 번들번들하게 빛나고 있었다.

“제기랄, 저놈 이름이 뭐라고?”

“방덕이다! 말을 타고 검각을 넘었다는 그 미친놈이야!”

조조군은 낙양의 지리에 익숙하고, 조조는 당대 최고의 지휘관으로 용병술에 능하다. 마가군이 자랑하는 기병대는 좁은 시가전에서는 제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덕분에 조조군은 항상 유리한 상황에서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유리한 싸움에서 참패했다. 소부대끼리의 싸움에서는 마가군의 전투력을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쥐새끼 같은 놈들.”

방덕은 말의 배를 차서 앞으로 달려 들어갔다. 선두에 선 방덕을 따라 금철기들이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뒤따랐다.

벌써 한나절 동안 살육을 벌였지만 방덕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순식간에 조조군 대열에 접근한 방덕은 그대로 말발굽으로 조조군 병사들을 짓밟았다.

콰드득.

“으아아악!”

방덕은 계속 전진했다. 말발굽을 피한 자들의 몸에는 뒤이어 달려온 금철기의 창이 꽂혔다. 달려 나가는 방덕의 등 뒤에서 조조군 병사들의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하하, 이것 참. 아무래도 줄을 잘못 선 것 같군.”

방덕을 막아선 것은 전예였다. 전예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창을 한 바퀴 돌렸다.

“어양 사람 전예올시다. 그대는 마가군의 방덕이겠군. 부하들의 진퇴를 걸고 투장을 청하오.”

“투장?”

방덕은 그렇게 반문하며 전예를 돌아봤다.

전예 또한 어지간한 인물이다. 그러나 방덕과 눈이 마주쳤을 때, 오싹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어양 사람 전예. 그대의 고향에는 사람을 무는 개가 있나?”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전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미친개 한 마리 없는 동네가 어디에 있겠소.”

“그러면 개새끼와 투장을 하는 사람은 있나?”

퍽!

방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예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누군가 등 뒤에서 전예의 말 다리를 찍은 것이다.

“제기랄! 어떤 놈이냐?”

전예는 크게 욕설을 퍼부으며 바닥을 굴러 일어났다.

뒤에서 전예의 말을 기습한 것은 20대의 젊은 무장이었다. 몸놀림이 무척 빠르고, 얼굴은 선이 가늘면서 제법 준수했다. 손에는 두 자루 손도끼를 들고 있었다.

“왕평이다.”

전예를 향해 이름을 밝힌 왕평은 손도끼 두 자루를 놀려 전예를 압박했다. 전예도 지지 않고 창을 들어 왕평과 겨루기 시작했다.

마가군의 어지간한 무장들은 전예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왕평이라는 이름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왕평의 나이가 너무 어렸고, 누군가의 부장으로만 종군했었던 탓이다.

‘그런데도 무예가 이 정도란 말인가?’

전예는 내심 왕평의 실력에 놀라고 있었다.

왕평과는 대략 동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전예는 도박적인 수를 써서 왕평을 제압하기로 하고, 먼저 크게 창을 휘둘러 왕평을 떼 놓았다.

퍼억!

그런데 전예가 뭔가 수를 쓰기도 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뒤에서 다가온 방덕이 편곤으로 전예의 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강철로 만든 투구의 정수리가 움푹 들어갈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었다.

“어윽…….”

그것이 전예의 유언이 되었다.

방덕과 왕평은 따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아직 수많은 피를 더 봐야 했기 때문이다.

적장과 이름을 밝히고 투장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조조에게 받은 대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방덕은 그대로 조조군을 밀어붙이며 전진했다. 초반에는 그래도 싸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이제는 일방적인 살육이 되어 있었다.

방덕이 이끄는 군사들은 현무문 대로를 따라 서에서 동으로, 낙양성을 가로질렀다. 마침내 동쪽 끝에 있는 승상부에 이르렀을 때, 승상부 앞을 막아선 조앙과 만나게 되었다.

“멈춰라. 나는 조 승상의 장자다.”

조앙은 피를 뒤집어쓴 방덕 앞에서도 위엄이 있었다.

“마 태부를 뵙기를 청한다.”

저벅. 저벅.

방덕은 조앙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대로 편곤을 늘어뜨린 채 조앙을 향해 걸어갔다.

심상치 않은 기미를 감지한 조앙의 표정이 굳었다.

“이곳은 황도다. 서량 마가군은 동탁군의 흉내를 낼 셈인가? 그대는 조정의 진서장군으로…….”

콰직!

조앙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방덕이 세로로 휘두른 편곤에 맞아 머리가 날아간 것이다.

턱.

방덕은 쓰러지려는 조앙의 멱살을 잡았다. 조앙의 얼굴은 입까지만 남아 있고, 입 위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있었다.

“동탁군처럼 하지 못해서 그렇게 안 한 줄 아느냐.”

누구에게 말하는 것일까.

방덕에게 멱살을 잡힌 조앙은 이미 시신이 되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조조군 병사들의 눈에 경악과 공포가 가득했다.

“살고 싶은 자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대장군이 개선하시면 사면하도록 간언할 것이다. 단, 만일 대장군에게 변고가 생기면…….”

방덕은 살기를 가득 담은 눈으로 조조군 병사들을 돌아봤다.

“너희들은 모두 죽고, 낙양은 목초지가 될 것이다.”

* * *

낙양성의 남쪽에 용호탄이라 불리는 인공 호수가 있고, 이 용호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승상부의 별관이 있다.

낙양에 입성한 마철은 한 무리의 군사들을 이끌고 승상부 별관을 제압했다.

이곳은 정변 이후, 사로잡힌 마가군 중신들이 유폐되어 있는 곳이다. 조조에게 붙잡혀 있던 대표적인 인물 두 사람이 다가와서 마철에게 예를 표했다.

“삼공자 덕분에 살았습니다.”

“못 보는 새 늠름해지셨군요. 주공의 큰 복입니다.”

서황과 황권이었다. 마철은 왼손바닥으로 오른 주먹을 거세게 감싸 쥐며 답례를 올렸다.

“서 장군! 황 군사!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맹덕이 먹고 입는 것에는 편의를 잘 봐줬습니다. 다만 대장군의 소식이 들리지 않아 근심이 깊었을 뿐입니다.”

그때, 마철의 뒤에서 나관중이 나섰다. 승상부 별관 대신 자택에 연금되어 있던 나관중은 마가군이 낙양에 입성하자 바로 마철과 합류하여 이곳으로 오도록 안내했다.

“두 분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장군은 무사히 온현으로 몸을 피하셨습니다. 조맹덕이 7만 군사를 이끌고 온현으로 쳐들어갔지만 대장군은 1만 군사로 조맹덕의 대군을 격멸, 지금은 낙양으로 진군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오오!”

서황과 황권, 나관중과 마철은 서로를 마주 보고 기쁨을 나눴다.

이제 곧 마초가 낙양에 입성할 것이다.

* * *

“자수(조앙의 자)는 살아남기 어렵겠군.”

아직 조조에게는 조앙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조는 조앙의 죽음을 예측할 수 있었다.

낙양성에 돌입한 마가군의 기세를 보니 조앙이 아닌 그 누구라도 당해내기 어려워 보였다. 그럼에도 조앙을 보낸 것은, 조조의 후계자라는 지위 때문에 시간을 끄는 데 가장 유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자효(조인의 자), 자렴(조홍의 자), 묘재(하후연의 자), 문칙(우금의 자), 문겸(악진의 자)…….”

조조는 이번 전쟁에서 전사한 상장들의 이름을 가만히 읊조렸다.

그 외에도 무장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주령, 전위, 이통, 견초가 죽었고, 장합은 포로가 되었으며, 조창은 재기불능의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문관들은 이제 마등과 마초의 편으로 돌아서겠지. 이것 참, 이번에는 진짜로 어렵게 됐군.”

조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곽가를 돌아봤다.

머리 쓰는 이들에게 좀처럼 볼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보이는 인물이었다. 곽가는 조조에게 대답했다.

“아직 패국에 남은 기반이 있습니다. 이런 날을 대비해서 패국을 거대한 요새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으흠. 자네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

“동탁에게 패하고 쫓길 때의 곤궁함이 지금보다 덜하지 않았습니다. 승상께서는 패국으로 몸을 피하여 권토중래하실 것입니다. 아직 십만 청주병이 승상을 따르고 있고, 옛 근거지 연주의 태수와 현령들이 전부 우리 사람들입니다.”

조조의 고향인 패국 초현으로 피신한다.

마가군이 그곳으로 추격해 오면, 요새화된 패국 초현에서 한 번 싸움을 벌여서 마가군의 기세를 꺾는다. 그리고 연주에 계속 할거(割據)하며 다음 기회를 노린다.

이것이 곽가의 구상이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조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자네의 생각이 꼭 내 생각과 같군.”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조조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조조는 자신의 가솔들을 소집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자환(조비의 자)이 없다고?”

장남 조앙이 전사하면 대신 후계자로 세워야 하는 차남 조비가 사라진 것이다. 조조는 가노들을 다그쳤다.

“이런 시국에 자환이 어디로 갔단 것이냐?”

“그, 그것이… 장공자의 댁으로…….”

조앙이 돌아오지 못할 전장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자, 조비는 그 길로 조앙의 집으로 말을 달렸다.

그 내막에 대해 듣자 조조는 기가 막혔다.

“자환이… 자수의 첩을 탐했다고?”

“승상,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장공자 댁 작은 마님이 원 기주의 둘째 며느리였지 않습니까? 장공자께서 오환족을 아우르기 위해 댁을 떠나신 직후부터, 이공자께서 하북 원가에 대한 글을 쓴다는 이유로 작은 마님의 방에 왕래한 것이 여러 번입니다.”

조앙의 첩 견복과 조비의 사이가 수상하다는 말이, 이미 가노들 사이에서는 파다하게 돌고 있었다.

이런 전쟁통에 남의 여자를 탐내서 일을 그르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가만히 서 있던 조조는 갑자기 하늘을 보며 껄껄 웃었다.

“그놈이 내 핏줄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군. 알았다.”

조조는 그 자리에서 마음속으로 후계자를 교체했다.

장남 조앙은 전사했다. 차남 조비는 추문을 일으켰다. 삼남 조창은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었다.

결국 조조의 마음은 사남 조식에게 기울었다.

‘자건(조식의 자)은 총명하고 문재가 있다. 자기 절제가 부족하지만… 이제 마땅한 경쟁자가 없으니, 그 녀석을 잘 교육시켜야겠군.’

조조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패국 초현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조비는 내버려 두고, 대신 아직 나이 어린 조식을 근거리에서 수행하게 했다.

고향인 패국 초현에서 다시 힘을 길러서 마가군과 재대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패국 초현에서는 조조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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