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59화 (246/306)

259화. 함곡관 공성전

마등은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는 서역의 준마 위에 올라탄 채, 몇만 명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대군의 선두에 직접 서 있었다.

마등은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함곡관을 지키는 장수가 누구라 하였나?”

“조조의 족제, 조홍입니다.”

마등의 옆에는 장안 관서대도독부의 2인자, 양무장군 법정이 서 있었다. 법정은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마침 잘 됐군.”

마등은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전장에 나선다. 그리고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늘도 그런 것처럼 보였다. 마등은 여전히 아무 감흥 없는 얼굴로 주변을 보며 지시했다.

“놈을 데려와라.”

잠시 후.

“죽여라! 나를 어서 죽이란 말이다!”

반쯤 벌거벗은 젊은이 하나가 악을 쓰며 끌려왔다. 아직 여물지 않은 체격과 깨끗한 얼굴을 보면 청년인지 소년인지 애매한 나이처럼 보였다.

젊은이는 마등의 손짓 한 번에 높게 솟은 장대에 매달렸다.

함곡관 성벽 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홍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니… 문열(조휴의 자)?”

호표기를 이끌고 마가군 선봉대를 기습하러 나선 조휴다.

그러나 마가군의 선두에 서 있는 무장은 서량의 야차라 불리던 마등이었다. 조휴는 결국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조휴가 지금 마가군의 포로가 되어 장대에 매달려 있었다.

“이 짐승 같은 서량 촌놈들이 감히!”

조홍은 비참한 몰골을 한 조카를 보고 벽력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조홍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마등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진중에서 중년의 선비 하나를 불러냈다. 중년의 선비는 작달막한 체구와는 달리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이 써 온 격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역적 조홍은 들어라! 너는 대대로 한의 녹을 먹어온 몸으로…….”

원소군이 패망한 후, 마가군에 몸을 의탁한 문사 진림이었다. 진림은 온갖 화려한 문장으로 조홍의 조상부터 부모, 형제, 처자를 전부 끄집어내 모욕을 가했다.

“…이에 마땅히 너를 극형에 처해야 하겠으나, 우선 형편이 닿는 대로 너의 조카에게 본보기를 보일 것이다!”

진림의 낭독이 끝난 후.

성벽 위에서 잔뜩 욕을 먹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던 조홍이 갑자기 대경실색했다.

“아니, 저, 저… 저런 미친놈들!”

장대에 매달린 조휴의 몸 아래에 거대한 솥이 놓였다. 솥 아래에는 장작불이 잔뜩 타오르고 있었고, 물인지 기름인지 알 수 없는 솥 안의 액체가 끓으며 매캐한 냄새를 뿜었다.

팽형(烹刑).

사람을 끓는 기름이나 물에 삶아 죽이는 형벌이다. 그 잔혹성은 근현대는 물론 고대 사람들조차 따라가기 버거워서, 이 시기에는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어 있었다.

“저놈들을 어찌 사람이라 하겠느냐! 견융(犬戎)의 피가 섞인 짐승 같은 놈들!”

조홍은 성벽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얼굴은 금세라도 피가 흐를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등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

“삶아라.”

군사들이 줄로 묶인 조휴의 몸을 천천히 밑으로 내렸다. 마침내 발이 솥 안에 들어가자, 조휴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으흐흐… 으아아악!”

자리에 모인 수만 군사들 중, 사람을 산 채로 삶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참혹한 광경에 모두의 손발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마등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조휴가 팽형에 처해지는 것을 본 마등은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성벽 위의 조홍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등이 아주 큰 소리를 낸 건 아니었지만, 자리에 모인 수만 군사들은 이상하게도 마등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내 아들이 멀쩡하다면 참수로 끝낼 것이다. 만약 내 아들이 몸을 상했다면, 조맹덕과 네놈을 한 솥에 넣고 삶아 주마.”

“마등, 이 금수만도 못한 서역 잡종 놈아! 오냐, 내 오늘 네놈의 간을 씹고야 말 것이다!”

조카가 삶아지는 것을 보자 조홍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황금 투구를 쓰고 기병대를 휘몰아 성 아래로 뛰어나가려는 것을 부장 이통이 간신히 말렸다.

“장군, 고정하십시오! 이는 장군을 끌어내려는 마등의 계략입니다!”

“오냐, 그 계략에 내가 속아 줄 것이다!”

“아니 됩니다! 마초가 장제를 칠 때의 이야기를 잊으셨습니까? 장제의 조카 장수의 팔다리를 잘라 격동시켰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통은 조홍의 허리춤을 잡고 몸싸움까지 해 가며 필사적으로 말렸다. 조홍이 손찌검을 하자 다리를 붙들고 통사정할 정도였다.

그런 노력 끝에 조홍은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문열, 내 반드시 너의 복수를 해 주마!”

조홍은 충혈된 눈으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 사이, 사로잡은 적장을 끔찍한 극형에 처한 마가군은 사기를 잔뜩 올린 채, 함곡관 공성전을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용감한 마가군 선봉대다. 팽형을 통해 전쟁터 특유의 광기까지 끌어올리자 공격의 기세가 자못 맹렬했다.

“그러나 이 함곡관은 천하제일의 요새. 서쪽 방면에서의 공격으로는 절대 뚫지 못할 것이다.”

조홍은 분노와 슬픔으로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조홍 대신 부대를 지휘하는 이통은 침착했다.

인력도, 물자도 넉넉하다. 그는 함곡관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서쪽 방면에서의 공세를 몇 달이고 버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났다.

“급보! 동쪽에 적군입니다!”

“뭐야?”

전령의 말을 들은 이통은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동쪽이라면 낙양이 있는 쪽. 장안의 마가군 본대는 절대 그쪽에서 나타날 수 없다.

달려가 보니 동쪽 성문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으아아악!”

온몸에 불이 붙은 소교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아군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난전 중에 그가 원하는 만큼의 물이 있을 리 없었다. 소교는 끝내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생명을 다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이통이 상황을 파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쪽 성문을 기습한 부대는 약 삼천. 숫자는 많지 않지만, 지금 함곡관은 서쪽에서 두들기는 마가군의 공세를 막느라 동쪽을 허술하게 방치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이때, 동쪽 낙양 방면에서 삼천 정예병이 나타나 농성 중인 함곡관을 뒤에서 들이쳤다. 북망산에 여러 날 숨어 지내다 보니 다들 몰골은 꾀죄죄했지만, 하나하나 눈빛이 살아 있는 병주의 정예병들이었다.

동문을 들이친 삼천 정예병은 활도, 기병도 부족하다. 태반이 보병인데, 이 보병들이 기막힌 움직임으로 함곡관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이놈들에겐 뭔가 있다. 뭐가 있는지 찾아야 한다.”

이통 또한 병법을 아는 인물이었다. 당장 맞서 싸우는 대신, 이를 악물고 적진을 노려보며 특이한 점을 찾았다.

‘저들이 낙양 방면에서 왔다면 북망산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말을 여러 마리 갖고 있었을 리도 없고, 화살을 대량으로 갖고 있었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그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무기는 화공.

훈련도 높은 부대라면 인화물질 정도는 어떻게든 챙길 수 있다. 실제로 삼천 마가군은 함곡관의 동문을 들이친 뒤, 바로 요소요소에 불을 놓아 원군을 끊었다. 그리고 구원군이 불부터 끄는 동안 편안하게 거점을 제압하고 있었다.

가만히 마가군 군사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이통의 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 군사들의 움직임… 적장은 용병에 지극히 능한 자다.”

조인이나 하후연 같은 상장들이라도 이렇게 싸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통은 적장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한쪽 구석에서 군기와 나팔을 통해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는 장수가 눈에 띄었다. 껑충한 키에 창백한 안색을 가진 청년이었다.

“여남의 이통이다! 적장은 이름을 대라!”

이통은 달리면서 칼을 뽑았다.

사실 굳이 통성명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저 적장이 있는 한 전투에서 승리하기는 극히 어려워 보이니, 일찌감치 적장을 베서 후환을 없애려는 생각뿐이었다.

창백한 피부의 청년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의 육손. 그리고 그대를 베는 자의 이름은…….”

“뭣이?”

“장료.”

퍼억!

이통의 눈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장수가 긴 자루가 달린 참마검을 휘둘렀다. 이통의 허리 위쪽이 깨끗이 잘려 나가 허공으로 날았다.

“장료라면, 분명히 온현으로…….”

거기까지 말하자 폐에 저장한 공기가 떨어졌다.

상반신만 남은 이통의 정신이 흐릿해질 무렵, 마지막으로 장료와 육손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백언, 이제 우리는 뭘 하면 되지?”

“동문을 제압했으니 이제 적의 군량고를 태우면 됩니다. 포로를 심문해 위치를 알아 두었습니다. 군량고가 불타면 적의 본대가 불을 끄러 나올 겁니다.”

“으흠, 그럼 나도 군량고 공격에 따라가면 되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불 끄는데 총대장이 오는 법은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적진이 혼란해진 틈을 타서, 적 총대장의 목을 직접 노리십시오.”

함곡관 내부로 진입한 육손은 마지막으로 남은 기름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최대한 많은 군량고를 태우는 게 목표였다.

군량고가 불타며 함곡관 수비군은 대혼란에 빠졌다. 뒤쪽의 불을 끄는 데 총동원되어 정신이 없을 때.

조홍의 앞에 장료가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군, 황금 투구 쓴 얼간이. 나를 기억하겠나?”

장료는 빙글빙글 웃으며 조홍을 도발했다.

두 사람은 개봉대전에서 같은 전장에서 싸우며 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조홍은 이를 갈며 말했다.

“동탁군 출신이라던 그놈이구나. 네놈이 감히 칼솜씨를 믿고 방자하게 굴 셈이냐!”

스릉.

조홍은 그 자리에서 장검을 뽑았다.

그 또한 일신의 무용이라면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몸이었다. 게다가 그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는 군사들은 각 군에서 가려 뽑은 도부수들이었다.

장료는 씩 웃으며 참마검을 고쳐 잡았다.

“돈만 밝히는 줄 알았는데, 검술도 꽤 잘하나 보군. 하지만 나만큼은 아니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만 투항하는 게 어떤가?”

“하찮은 놈.”

조홍은 경멸의 눈빛으로 장료를 쏘아본 후, 도부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쳐라!”

이십여 명의 도부수들이 일제히 장료에게 달려들었다. 장료는 조용히 참마검을 들고 도부수들 사이로 들어갔다.

퍽.

퍽.

퍽.

장료의 무위는 과연 대단했다. 일격에 하나씩, 도부수를 틀림없이 쓰러뜨렸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홍의 입매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뭐 이런 놈이…….”

장료가 쥔 참마검은 스무 명이 거의 다 쓰러질 때까지 한 번도 병장기와 부딪히지 않았다.

도부수들의 공격은 장료의 몸에 닿지 않았다. 장료는 항상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하고, 뒤이어 무방비 상태인 상대의 몸에 참마검을 쑤셔 넣었다.

그러니 병장기끼리 부딪칠 일이 없었다. 참마검이 쇠와 부딪히는 건 오직 상대의 갑옷이나 투구에 닿았을 때뿐이었다.

조홍은 노호성을 터뜨리며 장료에게 달려들었다.

“동탁, 여포 휘하에서 칼잡이 노릇으로 돈푼이나 벌면서 살던 놈이, 이제 와서 용장 흉내를 내겠다는 거냐!”

“아아, 힘들었지.”

장료는 조홍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쩡!

장료와 조홍이 칼을 부딪쳤다. 참마검이 처음으로 상대의 병장기에 닿은 것이다.

칼날을 맞댄 상태로 힘을 겨루며 장료가 말했다.

“그래서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 않나. 이만큼 공을 세웠으면 이제 여생은 편할 테니까.”

장료는 조홍의 장검을 따라 그대로 참마검의 날을 미끄러뜨렸다.

끼이이익.

퍽!

참마검이 조홍의 손을 쳤다. 잘린 손가락 여러 마디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크아악!”

푹.

조홍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참마검의 칼날이 허벅지에 깊숙하게 박혔다. 조홍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장료는 빙글빙글 웃으며 참마검을 한껏 뒤로 당겼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동탁군 칼잡이에서 역적을 토벌하는 용장으로, 나도 참 대단하지 않나?”

쑤욱.

장료가 휘두른 참마검은 조홍의 황금 투구 아래, 턱 근처를 수평으로 베고 지나갔다. 금속의 마찰음 대신 무른 물체를 베는 듯한 타격음이 울릴 뿐이었다.

잠시 후, 황금 투구와 함께 조홍의 머리가 떨어졌다. 입까지만 남은 머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장료는 수급 대신 황금 투구만을 챙기고 다음 전장으로 이동했다. 이제 함곡관의 문을 안에서부터 열어젖히고 마가군을 맞아들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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