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역전(1)
사마의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만인적(萬人敵)이라고?”
“그렇습니다, 이공자. 관우와 장비는 만 명을 당해낼 수 있다고 해서 만인적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대답하는 청년은 하내 호족 양준이었다. 어려서부터 사마가와 통교가 있던 집안 출신으로, 지금은 사마의의 곁에서 부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건 둘이 합쳐서 1만이라는 건가? 저자들 싸우는 걸 보니 각 1만 같은데.”
사마의는 손뼉까지 쳐 가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여장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선이 가는 외모의 사마의지만 투구를 쓰고 있으니 제법 그럴싸한 장수 같았다. 고개만 돌려 등 뒤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유연한 몸은 여장했을 때는 여인 같고, 갑주를 걸치니 또 꽤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관우와 장비만 대단한 게 아니군. 천하제일인 마초에, 우림중랑장 조운이라. 그리고 저 덩치 큰 대머리는 누구지? 저자도 다른 네 사람 못지않은걸.”
“마가군의 황충입니다. 본래 유표의 사람인데 얼마 전부터 마초를 따른다고 합니다.”
“저만한 용력을 갖고 남쪽 형주에 처박혀서 수적이나 잡고 있었던 건가?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군.”
사마의는 전장을 휩쓰는 다섯 장수를 보며 연신 감탄을 표했다.
그러면서 손으로는 복잡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사마가의 가병들은 사마의의 수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방패와 짧은 모를 든 1열이 앞에서 버티고, 장창을 든 2열이 뒤를 받친다. 조조군이 창의 벽에 걸리면 쌍수검을 든 병사들이 옆에서 들이친다. 앞에서 백병전이 벌어지는 사이, 뒤에서는 궁병들이 쉴 새 없이 곡사로 화살을 쏘아붙인다.
이미 중원 최고의 무장들 수준에 오른 지휘력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양준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름난 장수들도 이처럼 지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공자, 언제 이렇게 병사들을 훈련시키셨습니까?”
“칼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잖아. 나중에 뭐라도 되려면 싸울 줄 알아야지.”
대체 뭐가 되겠다는 걸까?
사마의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양준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다섯 장수가 정면에서 조조군 본대를 붙들고 있는 사이, 사마가의 가병들은 옆으로 우회해 조조군을 쳤다.
다섯 장수의 무용만으로 이미 대열이 깨진 조조군이다. 사마의가 이끄는 군사들이 옆구리를 찌르니 형편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다 무너진 조조군을 향해 마가군 본대가 돌격해 왔다. 정면에서 분전하는 다섯 장수를 마가군 본대가 지원하자 이제 전장의 승패가 뚜렷하게 기운 것이 보였다.
“이 싸움은 이기겠군.”
“경하드립니다, 이공자! 이번 싸움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저 다섯 장수와 이공자입니다.”
양준이 호들갑스럽게 사마의를 칭찬했다.
하지만 사마의는 양준의 평가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마의의 눈은 마가군 본대의 움직임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처럼 빠르고 날카롭지는 않아. 하지만 정확하고, 강하다.”
마가군 본대는 온현의 수비병들과 병주 방면군으로 이루어진 혼성군이다. 그럼에도 여덟 개의 부대로 나뉘어 복잡한 명령을 정확히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노병의 운용이었다. 사정거리가 짧지만 화력이 강한 노병이 앞에서 쏘고, 사정거리가 긴 궁병이 그 뒤에서 곡사로 지원하는 이중 배치가 효과를 크게 내고 있었다. 게다가 요소요소에 섞여 있는 연노차가 뿌리는 연노는 공간을 제압해서 조조군이 전진하지 못하게 막았다.
사마의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마가군 본대의 움직임을 구경했다.
“아무래도 저 녀석과는 긴 인연이 될 것 같은데.”
사마의의 시선은 마가군 본대의 한가운데에 있는 수레를 향했다. 그곳에는 깃털부채를 든 온현 현령이 전투를 지휘하고 있을 것이다.
* * *
제갈량이 이끄는 본대는 느린 속도로 전진했다. 보병, 궁병, 노병, 연노차, 심지어 짐수레까지 함께였다.
짐수레를 앞세워 적의 화살과 기병돌격을 막는다. 난전에 대비하여 보병들은 대열을 크게 벌려서 준비하고, 뒤쪽에 노병과 궁병을 이중으로 배치한다. 상대는 보병으로 아군의 보병만 때릴 수 있게 만들고, 아군은 보병, 노병, 궁병이 동시에 상대 보병을 공격한다.
묘수나 기책이 아니었다. 대열을 잘 짜서 수적 우위를 가져가는 것은 병법의 기본이다. 제갈량의 지휘는 이런 병법의 기본을 아주 충실히 지키며, 장비와 화력의 우위로 상대에게 우세를 점하는 방식이었다.
“대단하군.”
마초는 제갈량의 지휘를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네 장수들과 함께 한바탕 적진을 휩쓴 마초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 사이 제갈량이 이끄는 본대가 전진해서 조조군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있었다.
관우, 장비, 황충, 조운. 그리고 제갈량.
어쩌다 보니 이번 전투는 오랜 숙장들이 아니라 새로 얻은 인물들, 그리고 외부의 원군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마초는 다섯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들과 이렇게 한번 싸우고 싶었지.”
지난 생에서, 이들은 유비를 중심으로 뭉친 촉한의 중신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한 전장에 모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령 모였다 한들, 당시 삶의 의욕을 다 잃고 껍데기만 남았던 마초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지금 내 곁에는 최고의 장수들이 있다. 그리고…….”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숙적이 앞에 있다.
벌컥. 벌컥.
달콤한 꿀물이 들어가자 피로한 근육이 다시 힘을 얻었다. 마초는 강족 기병 수십 기만을 거느리고 다시 말을 달려 앞으로 나아갔다.
“저 앞에 조조가 있다.”
보통의 경우, 선두에 서서 전투의 승기를 잡았으면 그걸로 만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마초는 조조의 목을 직접 노릴 생각이었다.
* * *
“이번 싸움은 졌소.”
조인은 장수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너무 많이 발생했다. 마초의 용맹, 유비의 원군, 제갈량이 이끄는 마가군 본대의 견고함, 그리고 사마의의 별동대가 벌인 활약까지.
이들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놀라운 일들이 여러 개가 겹쳐서 일어났다.
우금이 침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표기장군, 어째서입니까?”
“패인을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이런 날도 있기 마련이니까.”
대답하는 조인은 여전히 침착했다.
하후연이 울분을 토했다.
“오늘 싸움은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란 말이다!”
온현으로 도주한 마초를 토벌하는 싸움이다. 아무도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가 마초니까 만전을 기하는 차원에서 핵심 전력을 전부 동원했다. 그런데 그 핵심 전력이 마초가 급조한 군사들에게 패한다면?
“서주와 하북에서 승상께 반기를 드는 자들이 생길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연주에서도.”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장안의 마가군이 이제 곧 함곡관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온현에서 패배한 조조가 금철기를 앞세워 진격해 오는 마가군을 막는 것은 무리였다.
하후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조인이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서, 마초는 이제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그야…….”
잠시 생각하던 하후연은 말문이 막혔다.
“아니, 설마……?”
마초의 싸움은 항상 일관성이 있었다.
선두에 선다. 적의 지휘부를 직접 타격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전세를 결정짓는다.
조인은 하후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습니다. 마초는 이제 승상을 노리고 진격해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조인은 대답 대신 전령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는 이 길로 승상에게 달려라. 어서 빨리 전장에서 벗어나시라고 전해라.”
조조를 먼저 퇴각시킨다.
조인은 그렇게 결정한 후, 우금과 하후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주장으로서 필요한 것이 있소이다. 두 분이 나를 도와줘야겠소.”
“자효, 그게 무엇인가?”
“표기장군, 뭐든지 하겠습니다.”
하후연과 우금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인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잠시 두 사람을 쳐다보던 조인이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목숨을 주시오. 그것으로 이 싸움을 무승부로 만들어 보겠소.”
* * *
“서량의 마초가 여기 있다! 역적 조조는 나를 피하지 마라!”
도철에 탄 마초가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이제 마초의 앞을 막아서는 군사들은 전처럼 기세가 강하지 않았다. 승패가 기울었기 때문이다. 마초가 직접 나설 것도 없이, 수행하는 강족 기병들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마초의 앞을 막아서는 자가 있었다.
“승상께서는 이미 퇴각하고 계십니다.”
거대한 팔척검을 든 조인이었다.
뒤이어 양옆에서 장창을 든 우금과 각궁을 든 하후연이 나섰다.
마초는 하후연과 우금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조인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6대 1, 아니 7대 1이었나? 이놈 저놈을 잔뜩 모아서 나를 기습하던 때에 비하면 꽤 단출해졌군.”
“결국 대장군께서도 7대 1을 견디지 못하고 퇴각하지 않았습니까? 하후묘재와 우문칙은 승상부의 상장이니 가볍게 보셔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조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듣는 마초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금의 무예는 용장의 수준은 아니다. 하후연은 용장이지만, 지난번에 붙어 본 경험이 있다. 이 둘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문제는 조인이었다.
지난번 난전에서 붙어 본 결과, 팔척검의 무게 때문에 청경이 잘 통하지 않았다. 가볍고 빠른 무기를 쓰는 마초 입장에서는 가장 까다로운 적이었다.
다닥.
잠시 생각하는 사이 우금이 육박해 들어왔다. 방패는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 대신 장창을 들어 마초를 겨누고 있었다.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한 일격이었다.
우금의 등 뒤에서 하후연이 달렸다. 손에 든 각궁에 화살을 메기자 활몸이 잔뜩 휘었다.
“하나. 둘.”
하후연은 화살을 메긴 채, 우금에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숫자를 셌다.
그 박자에 맞춰서 ‘셋’이 됐을 때, 우금이 고개를 숙였다. 하후연은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화살을 쏘아 보냈다.
탕!
우금의 머리 위로 화살이 날았다. 피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강한 화살이었다.
마초는 화살을 피하지 않았다. 금마삭을 뻗어 화살을 겨누고 있을 뿐이었다.
까앙!
날아오는 화살촉이 금마삭의 창날에 맞아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창날의 비스듬한 각을 따라 옆으로 빗나갔다.
마초가 창날로 화살을 쳐내는 신기를 선보인 것이다.
“활 한 자루로는 통하지 않는다. 나를 잡고 싶으면 활이 열 자루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마초는 그렇게 하후연을 도발하며 눈으로는 계속 다른 장수들을 쫓았다.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우금이 마초를 향해 장창을 내질렀다. 충분히 쳐낼 수 있는 속도였다.
동시에, 옆에서는 조인의 팔척검이 날아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