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관장마황조
관우가 주령과 장합이 이끄는 호표기를 제압하는 동안, 장비는 오환돌기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어떤 한인 기병대보다도 육중한 철갑을 두른 이민족 기병대였다. 잠시 그들의 싸움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장비는 고개를 돌려 부장에게 감상을 물었다.
“어이, 탁응. 저 녀석들을 보니 어떠냐?”
“대단한 기병대입니다. 북방 이민족의 기마술에, 금군 못지않은 장비를 갖춘 부대 아닙니까.”
부장 탁응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예주 출신인 그는 북방 이민족들이 낯설었다.
“게다가 선두에 서 있는 저 장수는 정말 막을 수가 없군요. 하늘이 내린 무사 같습니다.”
탁응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오환돌기를 이끄는 조창이었다.
조창은 화려한 차림새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오환돌기의 제식 갑주를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누구보다 눈에 띄었다. 오른손으로는 창을 휘둘러 백이병을 닥치는 대로 쓰러뜨리고, 왼손으로는 오환돌기에게 수신호를 보내며 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장비는 거대한 광대뼈를 움직이며 씩 웃었다.
“네 말이 맞다. 저런 무사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지. 저 녀석이라면 혼자서 천 명 몫을 할 수 있겠군.”
“장군, 어찌하시겠습니까?”
“뭘 어찌해?”
우두둑.
장비는 목을 양쪽으로 두 번 꺾은 후, 표월오의 배를 걷어찼다.
“한 번에 천 명을 벨 수 있는 기회 아니냐.”
두두두두.
장비는 그대로 표월오를 몰아 조창을 향해 달렸다.
“……!!!”
오환돌기 십여 명이 장비의 앞을 막아섰다. 오환족 말로 크게 떠들며 장비를 향해 각자의 창과 만도를 겨눴다.
부웅.
장비는 자신의 무기를 허공에 한 번 돌렸다. 긴 자루의 양쪽 끝에 검과 같은 창날이 달린 쌍신모였다.
부웅. 부웅. 부웅.
쌍신모는 한 바퀴 도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장비가 돌리는 대로, 점점 더 큰 소리를 내며 폭풍 속의 바람개비처럼 멈추지 않고 돌았다. 마침내 장비가 오환돌기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게 됐을 때는 창대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돌고 있었다.
퍼억!
마침내 쌍신모가 가까이 있던 오환돌기와 부딪혔다. 쌍신모는 그대로 갑주와 말머리를 자르고 오환돌기의 몸통까지 두 토막으로 잘라냈다. 그러면서도 회전하는 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부웅. 부웅. 부웅!
장비는 여전히 쌍신모를 돌리고 있었다. 이제 창날이 어디쯤 있는지 눈으로 좇아갈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그렇게 만들어 낸 거대한 원을 크게 휘두르며 적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람과 말이 원의 모서리에 닿을 때마다 피가 튀고 쇠가 잘렸다.
천하의 오환돌기라도 손쓸 도리가 없는 무위였다. 오환돌기들이 잠시 주춤거리자, 장비는 창을 돌리는 것을 멈췄다.
후우우웁.
그다음에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지켜보던 이들은 근처의 공기가 장비에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만큼 강맹한 호흡이었다.
그리고 고함이 터졌다.
“연인(燕人) 장비가 여기에 있다. 누구부터 목을 바치겠느냐!”
순간적으로 손발이 저릿한 느낌.
장비의 고함을 듣는 오환돌기 백여 명이 한순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환족이라도 다 알아들을 만한 간단한 한어였기 때문일까?
“아니, 한어를 전혀 몰라도 저 고함은 알아들을 수밖에 없겠군.”
조창은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승상부 오환교위 조창이다. 그대가 옛 연나라 땅 출신인 것은 알겠으나, 대한의 신하로서 적절한 언동은 아닌 것 같군.”
“오호라.”
장비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적장의 모습을 보며 씩 웃었다.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체격을 가진 장수였다. 허리는 좀 가늘지만, 어깨와 등, 목을 보면 장비 자신과도 용력을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
독특한 것은 얼굴이었다. 투구 아래로 씩씩해 보이는 각진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목구비가 10대 소년의 그것이었다.
조씨 성을 가진 소년 장수를 보자 아무래도 궁금한 게 있었다. 장비는 그것을 물었다.
“너희 아버지는 뭐 하시냐?”
“승상이시다.”
“역시 그랬구만. 조맹덕의 셋째 아들이 무예를 잘한다더니, 네가 셋째인가 보군.”
만약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난다면, 조조의 아들은 어떤 가치를 지닐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죽이지는 않는 게 낫겠군.”
꿈틀.
장비가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자 조창의 눈썹이 올라갔다.
“자만심이 지나치군.”
슈욱!
조창이 창을 찔렀다. 장비는 여유롭게 쌍신모를 들어 조창의 창을 막았다.
턱.
장비의 쌍신모와 조창의 창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리고 그 순간, 장비의 쌍신모가 아래로 내리꽂혔다. 조창이 청경의 수법으로 장비의 쌍신모를 내리누른 것이다.
조창은 청경으로 장비의 쌍신모를 제압하고 창을 찔러 왔다. 장비는 급히 몸을 틀어 자신을 향하는 창을 피했다.
다닥.
장비의 애마 표월오가 옆으로 두 걸음을 걸으며 거리를 벌렸다. 장비는 한껏 젖혔던 몸을 일으켰다.
“아직 스물도 안 돼 보이는데, 그 나이에 벌써 청경을 쓴다고?”
“무(武)의 재능은 하늘이 내리는 것. 그대만 그 재능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나?”
조창은 장비를 향해 다시 한번 창을 겨눴다. 장비는 조창을 보며 활짝 웃었다.
“좋아, 좋아. 가히 일기당천(一騎當千)이군. 천 명을 상대할 수 있는 무사야.”
다다닥.
조창은 긴 창을 옆구리에 끼운 채 장비를 향해 달려 들어왔다.
부웅. 부웅. 부웅.
장비는 쌍신모를 머리 위에서 돌리기 시작했다. 쌍신모는 자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바람을 찢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장병기를 빠르게 돌리는 힘도 엄청나고, 손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기술도 대단했다.
팟!
조창의 창은 빨랐다. 장비를 향해 쏘아지듯 찔러 들어왔다.
가만히 창끝을 지켜보던 장비는 머리 위로 돌리던 쌍신모를 내리찍었다.
퍼억!
이번에는 조창의 창이 두 쪽이 났다. 장비의 무공을 확인하자 조창의 표정이 흔들렸다.
조창은 부러진 창을 던져 버리고 말을 몰아 뒤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정확한 수신호를 넣으니 근처에 있던 오환돌기 십여 명이 조창과 장비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나는 아직 장비나 관우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건가. 그렇다면 내 방식대로…….’
조창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콰드드득!
조창과 장비의 사이를 막아선 오환돌기들이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 나갔다.
베이거나 찔리는 것이 아니다. 장비가 돌리는 쌍신모는 날에 닿는 오환돌기의 갑옷과 뼈와 살을 아주 부드럽게 잘라내며 계속 회전했다. 사람과 말이 갈려 나가는 듯한 광경이었다.
“아니?”
“조맹덕이 가르쳐 주지 않더냐? 연인 장비를 상대하려면 천 명으로는 약간 모자란다고.”
퍼억!
쌍신모가 만들어 낸 원이 마침내 조창에게 닿았다. 조창은 자신의 오른쪽 손목이 잘려서 하늘로 높이 치솟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격렬한 통증은 잠시 후에 찾아왔다.
“으아아악!”
“아비를 잘 만나서 죽음은 면하게 됐군. 무공만 폐했으니 그리 알아라.”
장비는 잘린 손목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조창을 보며 웃었다. 자기 딴에는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야차 같은 표정이었다.
“딱 9천 명이 모자랐구나. 아까웠다.”
장비는 뜻 모를 말을 남기고 휘적휘적 자리를 떴다.
오환돌기들은 진영으로 돌아가는 장비를 가로막지 못했다.
* * *
“으아아압!”
황충은 긴 방패를 가로로 눕혔다. 그리고 기합 소리를 내며 그대로 달려 들어갔다.
퍽!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는 황충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밀집대형을 이룬 조조군 병사 십여 명이 앞을 막았지만, 황충은 밭을 가는 소처럼 장애물을 다 무시하고 계속 전진했다. 조조군 병사들은 앞에 있는 황충의 방패와 뒷사람 사이에 껴서 꼼짝 못 하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황충이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병사들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우드득.
우드득.
우드득.
몇십 명인지 셀 수도 없는 조조군 병사들이 한 데 뭉쳐서 비명을 질렀다. 황충은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억지로 세 발짝을 더 전진했다.
마침내 황충의 전진이 멈췄을 때, 백마를 탄 조운이 화살처럼 달려 들어왔다. 조운은 왼손으로 청강창을 길게 잡고 황충의 앞에 뭉친 조조군 병사들을 향해 내질렀다.
쾅!
절벽을 뚫는다는 뜻의 상산창술 절기, 애각(涯角).
청강창을 통해 애각이 시전되자 뭉쳐 있던 조조군 병사들 사이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절명한 병사들이 힘없이 무너지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저마다 등을 돌려 달아나기 바빴다.
“내 차례다!”
황충과 조운이 만든 틈으로 마초가 뛰어들었다. 마초가 금마삭을 크게 휘두르며 종횡무진하자 아무도 그 앞을 막지 못했다. 마초를 태운 도철은 천하제일 명마의 이름을 과시하듯, 아비인 조황비전과 같이 빠른 속도로 어미인 절영처럼 영리하게 전장을 누볐다.
마초의 전진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싶을 때, 양옆에 황충과 조운이 붙어서 길을 열기 시작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적은 3기에 불과하다!”
“물러나지 말고 붙어라. 붙으면 이길 수 있다!”
하후연과 우금은 이 상황에서도 냉철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마초, 황충, 조운은 조조의 군기가 있는 본대 쪽으로 직접 쳐들어왔다. 병사들은 아직 따라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무너지지만 않고 버티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병사들을 독려하는 우금의 목소리가 커졌다.
“세 사람이 만 명을 대적할 수 있을 리 없다! 좀 더 붙… 아니!”
우금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조조군 본대를 공략하는 세 사람 사이에 두 명이 더 붙은 것이다.
82근 청룡도를 들고 녹색 전포를 휘날리는 관우.
검은 말, 검은 갑주에 쌍신모를 휘두르는 장비가 그들이었다.
관우는 수염을 쓸며 마초를 향해 예를 표했다.
“대장군은 그동안 강녕하셨소?”
“강녕하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강녕하고자 하오. 그런데 관공, 어찌하여 둘만 오셨소?”
“적병 1만 정도만 상대하면 되지 않겠소. 나와 익덕 아우 둘이면 1만을 상대할 수 있소이다.”
관우는 오랜만에 만난 마초를 향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던졌다. 장비도 마초에게 손 인사를 건네고 관우의 옆에 섰다.
마초는 피식 웃으며 대열을 재편했다.
중앙에 마초가 서고, 왼쪽에 관우와 장비가 섰다. 오른쪽에는 황충과 조운이 섰다.
“앞에 조조의 군기가 있다. 이대로 돌파해서 조조를 잡는다!”
왼쪽부터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
우연의 일치인지, 정사 삼국지의 관장마황조전에 기록된 순서대로 나란히 선 다섯 장수가 동시에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다섯 명을 막지 못해서 조조군의 대열이 무너진 것이다.
“도망치는 자는 군율로 다스릴 것이다!”
우금과 하후연이 악을 쓰며 막았지만 허사였다.
관우의 청룡도가 쓸고 지나가면 장비의 쌍신모가 번뜩이고, 황충의 낭아봉이 적을 부수면 조운의 청강창이 매섭게 찌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의 중앙으로 도철을 탄 마초가 뛰어들어 적병을 짓밟는다.
그러자 병사들 사이에 공포가 전염되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이러느니 도망치는 게 낫지!”
“도망쳤다 마가군이 이기면 다시 고향에 갈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뒈지면 다 끝 아닌가?”
병사들이 용기를 낸다고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공포는 역병처럼 조조군 진영을 휩쓸었다. 다섯 장수의 무위를 보자 병사들이 병장기를 내던졌다. 다섯 장수가 휩쓰는 정면 방향은 이제 완전히 대열이 무너져 버렸다.
단 5인이 대규모 전투의 승패를 뒤집은 것이다.
전장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마가군의 별동대는 다섯 장수가 만들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바로 2천여 군사가 조조군의 측면을 들이쳐서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조금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조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별동대의 움직임을 보니, 별동대를 지휘하는 장수가 전술적으로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장수가 아니군.’
어째서일까.
정면에서 신과 같은 무위를 뽐내며 대열을 부수는 다섯 장수보다, 별동대를 이끌고 측면을 공격하는 이름 모를 장수에게서 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조인은 전령을 불러 별동대 지휘관의 이름을 알아 오도록 지시했다.
잠시 후, 전령은 별동대를 누가 이끄는지 알아 왔다. 조인은 그 이름을 듣자 전령에게 반문했다.
“사마의라고?”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